국제 | [로동신문]《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의 전횡을 가리우는 간판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1-26 18:03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로동신문]《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의 전횡을 가리우는 간판이다
편집국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반정부시위가 그칠새없고 말 그대로 사회정치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의 변할 수 없는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진면모를 분석한 글을 게재하였다.
글은 결국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돈이자 국가정책이며 부자들과 대독점체들이 품들여 내세운 권력자들은 그들의 사환군노릇을 할수밖에 없는 현실을 밝히고, 자본가계급은 근로자들의 투쟁으로 저들의 지배적 지위가 뒤흔들릴 때에는 《민주주의》의 가면마저 집어던지고 파쑈적 탄압을 가하는 현상들을 지적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의 전횡을 가리우는 간판이다
프랑스, 그리스를 비롯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반정부시위가 그칠새없이 일어나고있다.여러 정당이 혼란된 정세흐름을 타고 세력권확장에 열을 올리고있다.각 당들사이의 정쟁으로 정권교체현상이 잦아지고 온 서방세계가 말그대로 사회정치적혼란에 시달리고있다.
그 와중에서도 정객들과 그 어용나팔수들은 여전히 서방식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타령을 집요하게 외워대며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고있다.즉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인간의 기본권을 최대한 발양시키는 민주주의》, 《정치인과 민중이 일체적인 감정속에 융합되는 통합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이기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하는 서방사회는 능히 혼란을 극복하고 민생을 구출할수 있으며 발전할수 있다는것이다.
자본주의를 미화하는 한갖 궤변에 불과하다.자본주의국가정치의 기본리념으로 되고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온갖 불평등과 사회악, 침체를 빚어내는것으로 하여 이미 력사의 배척을 받았다.
원래 《자유민주주의》리념은 제국주의자들이 근로대중이 지향하던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의 개념을 자본가계급의 구미에 맞게 외곡변형시킨 부르죠아민주주의를 분식하기 위해 고안해낸것이다.랭전시기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를 자본의 착취와 침탈행위들을 변호하고 사회주의를 악랄하게 비방하는 사상적도구로 리용해왔다.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허울좋은 보자기를 쓰고있는 《자유민주주의》의 변할수 없는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진면모가 재확인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이다.광범한 근로대중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그들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며 인민들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보장해주는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서방이 떠드는 《자유민주주의》는 근로대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서방의 정객들이 《자유민주주의》가 《국민에 의거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정치》라고 하고있지만 그들이 념두에 둔 국민은 근로대중이 아니다.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사회의 극소수를 이루는 자본가를 비롯한 특권층이다.인구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근로대중을 배제하고 극소수 특권층만 참가하는 서방의 국가정치가 민주주의정치로 될수 없다는것은 자명하다.
서방의 정객들이 입버릇처럼 외워대는 《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 특권층의 독단과 전횡을 가리우기 위한 간판이다.그들이 《자유민주주의》의 반인민적정체를 숨기기 위해 국민에는 근로자들을 포함한 전체 주민이 속한다고 정의하고있으나 사회가 리해관계를 달리하는 적대되는 계급으로 갈라져있는 서방세계에서 정치는 지배계급인 극소수 특권층의 리익을 옹호하기마련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를 이루는 자본가들과 통치배들만이 특권을 행사하고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로대중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자라나 신분적예속을 자본의 예속으로 바꾼 착취제도로서 철두철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이다.자본가들은 특권을 부리며 부와 권력을 저들에게 최대로 집중시키고있다.국가주권은 자본가들이 사회에 대한 정치경제적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저들이 장악한 국가권력에 의거하여 근로자들에 대한 략탈을 강화하고있다.이는 자본주의제도와 착취계급의 생존방식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표본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서만도 모든 정책이 독점자본가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작성되고 시행되고있으며 그들의 리익을 극대화하는데로 복종지향되고있다.이때문에 빈부의 차이는 더욱더 심해지고있다.
다른 서방나라들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량극분화가 심화되고있다.많은 근로자들이 생계조차 유지할수 없는 처지에 빠져들고있다.반면에 부유층은 동물적인 취미를 충족시키는데로 나가면서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극소수의 특권행사는 절대다수의 권리를 침해하고있다.근로자들의 정치적권리는 물론 생존권, 로동권과 같은 인간의 가장 초보적이며 기본적인 권리가 무시되고있다.
사회적재부의 대부분을 거머쥐고있는 극소수는 권세와 특권을 누리지만 광범한 근로대중은 물건처럼 취급당하는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실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근로대중에 대한 극소수 착취계급의 억압과 독재통치를 합법화하는 《민주주의》이다.
서방의 정객들과 그 대변자들은 《민주주의》는 주민들모두가 의회선거에 참가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것을 의미한다고 하고있다.하지만 독점자본가들은 재력에 의거하여 정권을 쥐고 근로자들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할수 없게 해놓았으며 그들의 정치적권리행사를 억제하고 인민들을 제 마음대로 압박하고있다.하기에 언제인가 미국의 대독점재벌이였던 듀폰은 대아메리카는 자기들의 소유물로서 미국이라는 국가는 독점재벌을 떠나서 존재할수 없다고 공공연히 선언하였으며 미국대통령이였던 죤슨은 대독점재벌들이 미행정부의 주주이고 자기는 그들의 대변자이라는것을 실토하였다.
까타르의 알 자제라TV방송웨브싸이트는 한 론평에서 《〈민주주의제도〉로 부드럽게 불리워지는 철면피한 과두정치체제에서 미국의 기부자(선거기간 두 당의 후보들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주는 대독점자본가)들은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과두들의 조종은 이미 미국의 〈정치풍경〉에서 흔히 볼수 있는것으로 되였다.미국정부는 돈주들에게 속하고 돈주들에 의해 구성되며 돈주들에게 복무한다.》라고 밝혔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거대한 재부를 가진 부자들과 가난한 근로자들사이에는 정치적평등이 있을래야 있을수 없다.
싱가포르의 《련합조보》는 서방이 운운하는 《민주주의정치》는 이미전부터 소수를 위한것이였다고 하면서 정치가 부자들과 정객들의 수중에 쥐여져 개인의 리익에 복무하고있다, 인민들은 정치분야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무력감과 실망감은 사회적위기를 격화시키고있다고 전하였다.
현실적으로 자본가계급은 근로자들의 투쟁으로 저들의 지배적지위가 뒤흔들릴 때에는 《민주주의》의 가면마저 집어던지고 파쑈적탄압을 가하고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미국을 비롯한 서방나라들에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지배계급은 무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자본주의나라들은 수많은 악법들과 방대한 폭압기구들을 동원하여 국내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과 일반주민들의 일거일동을 항시적으로 감시하고 제약하고있다.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것처럼 흉내를 내지만 일단 저들의 리익에 저촉될 때에는 가차없이 폭압의 칼을 휘두르고있다.
얼마전에도 프랑스의 각지에서 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100여만명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당국은 수만명의 경찰과 무인기, 장갑무력까지 내몰아 시위자들에 대한 탄압에 광분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서방나라들에서 《민주주의의 표징》이라고 떠드는 《개성의 완전한 자유》, 《평등》, 의회제, 다당제나 3권분립과 같은것은 부르죠아독재통치를 가리우기 위한 위장물에 불과하다.자본주의나라들에서 다당제를 실시하고있지만 그 당들은 거의다 착취계급의 정당들이다.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다 자본가들을 위한 정권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서방의 정객들이 이런 반동적인 정치제도를 《자유민주주의》타령으로 분칠하는것이야말로 참다운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바라는 근로대중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돈에 의하여 좌우되는 황금만능의 정치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을 위한것으로서 돈으로는 가늠할수 없으며 금전과 바꿀수 없는것이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권리이다.돈에 의해 좌우지되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세계에서는 금전이 곧 정치이며 선거라는것은 부유계층의 독연으로 되였다.민주주의에 대한 근로대중의 요구는 오히려 잡음으로 되고있다.금전이라는 마귀가 정계의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차지하고있어 공평과 정의라는것은 있을수 없다.
서방나라들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다.나라를 통치하는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도 아니다.사회의 실제적인 지배자는 돈이다.금전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결정한다.자질과 능력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대통령으로 될수 있다.
서방나라들에서는 선거때마다 막대한 돈이 소비되고있다.대통령이나 국회의원후보로 나서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후보로 지명받으려고 해도 그렇고 TV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자기가 적격자임을 선전하자고 해도 그렇고 선거 전 과정에 많은 돈을 뿌려야 하기때문이다.
서방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있다.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모금놀음부터 벌려놓는다.대독점자본가들은 저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시할수 있는자들을 물색하여 후보자로 내세우고 거액의 자금을 대주고있다.자본의 리익을 위한 정치투자이다.
결국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돈이자 국가정책이다.부자들과 대독점체들이 품들여 내세운 권력자들은 그들의 사환군노릇을 할수밖에 없다.
미국 마사츄세쯔공과대학의 한 정치평론가가 말한것처럼 정책작성에 대한 부자들의 영향력과 그들의 재부수준은 정비례관계에 있다.
이런 정치제도에서 부자들의 리익에 배치되는 그 어떤 정책에 대하여 기대할수 없다.
서방의 력대 집권자들자체가 부자들과 대독점자본가들의 충실한 대변자들이였다.이들이 근로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수 없었다는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서방국가들의 의회에서 법과 결정을 채택하는것은 이미 의회밖에서 독점자본가들에 의하여 결정된것을 합법화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데 지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동적본질과 그 허위기만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자기 시대를 다 살았다.
리학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