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조선의 소리】 어머니날 특집기사 < 어머니날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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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1-18 19:3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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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성구역 은하종합진료소 준의인 박영심에게도 따뜻한 사랑이 간직되여있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친동생외에 5명의 동생들이 더 있습니다.
아침이면 동생들의 등교준비를 해주느라, 저녁이면 숙제지도를 해주느라 늘 바쁘게 보내고있습니다.
태권도를 남달리 좋아하는 고급중학교 졸업반 학생인 충혁이와 노래에 취미가 있는 충성이와 충강이, 공부를 잘하는 충복이와 충심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가 하는 생각으로 그는 늘 골몰해있습니다.
영심이가 16살 나던 때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자기에게 오던 부모의 정이 그애들에게로 다 가는것만 같았다고 처녀는 그때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TV로 부모없는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18살 처녀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그는 동생들을 잘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고 합니다.
《나에게 힘을 준것은
혈육간의 정은 말과 행동표면에 비쳐지는것이 아니라 마음에 비쳐진다, 그애들을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사랑을 주어라, 네가 집안의 맏이이고 누나이니 네가 사랑을 주고 품어주고 이끌어준다면 그애들도 너를 혈육으로 따를것이고 정이 흐르는 형제가 될것이다…
그때 어린 나이에는 그 말의 참뜻을 다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나어린 처녀에게 있어서 맡은 일을 하면서 동생들을 돌보는것은 정말 힘에 부치는 일이였습니다.
《늘 출장을 다니는
그저 밥이나 해주고 빨래만 해주면 되는것이 아니였습니다.》
한창 놀음밖에 모르는 나이들여서 공부하기보다 놀기를 더 좋아하고 응석을 부릴 때가 더 많았습니다. 숙제도 채 하지 못한채 잠든 아이들을 깨워 공부시킨 때도 있었고 때로 잘못에 대해 타이르면 옴해있는 그 마음을 좀처럼 풀어놓지 않아 안타까운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그럴수록 처녀는 동생들에게 진정을 주고 더더욱 사랑을 기울였습니다. 동생들은 처녀를 친혈육처럼 따랐고 처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동생들을 보살펴주었습니다.
23살 나던 해 처녀는 한 마을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라고있는 2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자고 부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처녀는 5명의 동생들을 돌보게 되였습니다.
동생들에게 있어서 처녀는 누나, 언니이면서도 어머니였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처녀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렵고 힘든데서 20년, 30년 한생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처녀는 사랑을 안고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진실한 어머니사랑이 처녀의 작은 가슴에 가득 차있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은 2023년 12월에 진행된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를 계기로 제정되였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이 제정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40여명의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상자들이 배출되였습니다.
그들속에는 아들들을 공화국영웅,로력영웅으로 내세운 어머니들도 있고 자식들모두를 조국보위초소와 어렵고 힘든 일터로 떠밀어주고 당의 농업정책관철과 원군사업에 헌신한 녀성들도 있으며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훌륭히 키운 어머니들과 과학자,교육자가정의 어머니,영예군인의 안해도 있습니다.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를 몇달 앞둔 어느날이였습니다.
이날
그로부터 얼마후인 10월 어느날 또다시 일군들을 부르시여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수여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어머니들은 녀맹원들뿐 아니라 당원들과 직맹원, 농근맹원들속에도 있다고 하시면서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제정하는 문제를 다시 폭넓게 연구하고 보고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수여받게 될 녀성들에게 자신의 존함을 모신 금반지를 수여하며
그후에도
그해 12월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의 한없는 존경과 기대속에 진행된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석하신
그때 그 자리에는 세자식모두를 훌륭한 과학자들로 키워낸 평양시 대성구역에서 사는 남길현녀성도 있었습니다.
《대회에 참가해서도 나를 상당히 중히 여겨서 주석단에 앉도록 해주었습니다.
추천되여 갈 때까지도 몰랐는데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받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를 추천하는 사업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수여받았다는 영광이라는건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은
올해 80살인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상자 백정숙어머니에게는 세 자식이 있습니다.

박사이며 부교수인 맏딸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이고 박사인 아들은 국가과학원 부원, 둘째딸은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 교원인데 석사입니다.
《세 자식을 키우면서 관심을 둔것은 과학자가정의 자식들을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이끌어주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자신이 자식들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저 자신도 35년간 교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
과학자남편의 뒤바라지도 하고 세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는 평성예술학원에서 교원, 강좌장, 학부장을 하면서 부교수의 학직도 받았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들은 인생과 애국의 참뜻을 깨달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속에 희망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원과정을 거친 세 자식은 각기 맡은 부문에서 실력을 발휘하고있습니다.
맏딸은 맡은 학급을 발명가학급, 대학생과학탐구상수상자학급으로 만들었으며 전국적인 교육방법토론회에서 1등한 전적도 있습니다.
아들은 경제적효과성이 큰 연구성과를 이룩하고
대학생때 벌써 국내에서 높은 급의 개인경연인 2.16예술상개인경연에 참가했던 둘째딸은 어머니처럼 예술인후비육성에 심혈을 바치고있습니다.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나라의 대들보로 끌끌하게 자라는 자식들의 성장을 보는것보다 더 큰 락은 없는것입니다.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내면 어머니의 본분이 끝나는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백정숙어머니는 맏딸이 박사론문을 집필하던 때를 돌이켜보았습니다.
《맏딸은 이미 부교수가 되고 일정한 지위도 있었기때문에 그만두겠다고 하는것을 나라에 한가지라도 도움이 되는 박사론문을 쓰라고 제가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한 5~6년 걸린것같습니다. 그 과정에 애로와 난관이 많았지만 사람이 한번 택한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면 안된다는것, 속담에 우물도 한 우물을 파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시작한 일이 힘들다고 뒤로 물러서면 그 다음대가 해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다, 사람이 생의 흔적을 남긴다는데 무엇이 남니, 자기 지식이 남는것이지, 네가 편안하겠다고 물러설수 없다고 일깨워주면서 끝까지 밀어주었습니다.》
자식들이 나라를 위해 성실히 일하도록 가르치고 인생길을 헛디딜세라 바로잡아주고 고무해준 어머니의 수고와 공적은 그대로 자식들의 성장의 밑거름이 된것이였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라고 하면 누구나가 다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낳아 키우는것은 자기의 본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라에서는 그것을 크게 보고 자식들을 과학자, 교육자로 키웠다고 내세워주고…
제 나이 80인데 나라에 보탬을 주면 얼마나 주겠습니까. 그러나 공산주의어머니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세 자식모두가 마지막까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뒤받침하겠습니다.》
이런 훌륭한 어머니들의 품에서 성장한 후손들이 다음세대에 애국충성의 바통을 넘겨주고 또 그것이 자자손손 물려지면서 조국의 미래가 건설되게 됩니다. 그래서
평양제4소학교 교장 길금순입니다.

그의 제자들은 아직은 세상리치를 잘 모르는 소학교시절에 길금순교장에게서 어머니다운 사랑을 느꼈다고 추억하고있습니다.
평양제4소학교 교원 김주경은 이 소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한다고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학습터였던 학교 뒤마당에서 동무들과 함께 공부하댔는데 교장
이 소학교를 다닌 어제날의 꼬마들이 오늘은 어엿한 교원으로 성장하여 길금순교장
길금순은 평양교원대학을 졸업한 후 김성주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15년, 평양제4소학교에서 교장으로 25년 일해왔습니다.
그는 소학교의 교정을 결코 작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의 꽃대문에 들어선 어린 학생들을 나라의 인재로 키우는 첫 교정, 조국의 커다란 뜨락으로 여기였습니다.
그는 학교를 전국적으로 인재들을 제일 많이 키워내는 본보기적인 학교로, 1번수로 되게 하려는 목표를 내걸고 교원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피타게 노력하였으며 실리있고 우월한 새 교수방법을 많이 창조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자면 자신이 모든데서 본보기가 되여야 하듯이 교장 역시 교원들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평양제4소학교 교장 길금순은 말했습니다.
《학생들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가 될 때, 나라를 떠받드는 주추돌이 될 때 나는

수십년전 외국의 벗들이 이 학교를 참관하고 학생들을 지덕체를 갖춘 훌륭한 인재들로 키우고있는 교원들의 공로가 크다고 경탄할 때 그는
길금순교장은 제14차 전국교원대회를 비롯한 국가적인 여러 대회들에 참가하였으며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길금순교장은 오늘도 학생들과 교원들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보살피며 교육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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