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 [재미동포 기고문] 오 필승, 코리아 - 빈 의자와 김구 선생의 인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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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0-21 20: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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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코리아 - 빈 의자와 김구 선생의 인장 이야기
김범 (재미동포)
2025년 10월 19일 저녁, LA 한인타운 서울 국제공원의 광장은 ‘한인의 날’ 축제를 맞아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YB(윤도연 밴드)였다.
해가 완전히 져서 푸른 조명이 광장 위를 덮고, 사람들은 자리마다 서서 야광봉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무대 가까이로 걸어가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사방에서 동시에 내 이름이 들렸다.
“김범 씨!”
두세 명이 거의 같은 순간에 불러, 목소리가 겹쳐졌다.
고개를 돌리니 반가운 얼굴들이 손짓했다.
“여기요, 자리 하나 비었어요.”
그쪽으로 가 보니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다.
앉으려는 순간, 옆자리의 김환단 선생이 말했다.
“조금 전까지 김구 선생 손자 며느리가 여기에 앉아 계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무심결에 의자 등받이를 쓸어보았다.
짧은 시간 앉았다 떠난 자리였지만, 그 자리는 묘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구 선생의 이름이 떠올랐다.
해방 이후, 나라의 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으로 향하던 그 봄날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1948년 4월, 남북 분단의 조짐이 뚜렷해지던 시기였다.
김구 선생은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평생 반공주의 노선을 걸어왔던 김구 선생이 북행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민족의 분열을 막고, 자주적 통일의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는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민족을 둘로 나눌 수 없다”고 말하며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가방 속에 하나의 상징물을 넣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장(국새)이었다.
이 인장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조선의 정통성과 독립정신을 상징하던 도장이었다.
그에게 이 인장은 단순한 행정용 도장이 아니라, 조선의 독립과 주권의 법통을 이어온 정신의 증표였다.
평양에 도착한 김구 선생은 연석회의 일정 중 김일성 주석과 단독으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구 선생은 품속에서 임시정부의 인장을 꺼내어 말했다.
“조선을 진정으로 이끌어가실 분은 주석님이십니다. 이 인장은 임시정부의 상징입니다. 이제 저는 모든 것을 주석님께 맡기겠습니다.”(출: 통일의 길에 이름을 남긴 애국인사들6)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인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 인장은 선생이 가지고 가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민대중의 신임이지, 인장이 아닙니다.”
이 짧은 대화는 두 인물의 철학적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조국의 통일에 대한 공통된 열망을 보여주었다.
김구 선생에게 인장은 ‘정통성’의 상징이었다.
반면 김일성 주석에게 통일의 정당성은 인민의 신임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김구 선생의 인장은 다시 공식 기록에 등장하지 않았다. 임시정부 인장의 행방은 오늘날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사료에서는 그 인장이 김구 선생의 유품으로 남아 있었다고 전하지만, 공식적으로 어디에 보관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인장이 ‘찍히지 못한 도장’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인장은 분단이 확정되기 직전까지 존재했던 ‘하나의 조선’의 마지막 증거였다.
김구 선생이 인장을 김일성 주석 앞에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상징적 권력을 넘기려 한 것이었고, 정통의 계승과 민족 단일의 의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그것을 받지 않은 것은 “통일은 문서의 도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단결로 완성된다”는 메시지였다. 그 도장은 아직 찍히지 않았지만, 그 정신은 조선민족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윤도연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자
광장은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박자를 맞추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오히려 역사의 회화가 들렸다.
김구 선생의 음성,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대답이 겹쳐 들리는 듯했다.
“이것이 임시정부의 인장입니다.”
“우리에게는 인민의 인장이 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오 필승 코리아’의 구호는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분단된 민족이 아직 하나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는 증거였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권과 존엄을 되찾는 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자,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나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김구 선생의 손자 며느리가 앉았다 떠난 그 빈 의자 앞에서 멈춰 섰다. “선생님, 언젠가 그 인장이 코리아반도 위에 찍히는 날이 오겠지요. 그 마음은 이미 우리 가슴마다 새겨져 있습니다.”
옆자리의 역사 선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갑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빈 의자는 단순한 좌석이 아니라, 아직 찍히지 못한 조국의 인장을 상징하고 있었다.
1948년 평양에서 있었던 김일성 주석과 김구 선생의 인장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조국 통일을 두고 두 지도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민족의 정통성과 민심의 정당성을 나누어 보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김일성 주석은 인민대중의 신임을 대표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표현으로 같은 뜻을 말했다.
“조선은 하나여야 한다.”
오늘 우리가 부르는 “오 필승 코리아”는 한쪽의 승리를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분단을 넘어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날의 인장이 다시 찍히는 순간, 비로소 코리아반도는 완성된 하나의 조국으로 서게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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