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통일 강연회> 강연 1 - 이흥노 강사

[게시날자 : 2010-01-28]

북핵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

이흥로 (칼럼니스트)

한반도와 우리 민족문제에서 미국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하다. 이 말은 한반도의 운명 이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돼왔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영향력과 입김은 막강 하 다는 뜻이다. 한반도문제를 논할 때에 미국과 더부러 주변의 일본, 중국, 러시아도 음으로 양으 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이들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온 인류 의 상살을 초월, 흑인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해 역사적 대통령이 됐고 우리 민족에게 지 대한 기 대와 희망을 안겨줬다. 일본에서는 지난 8월에 반세기 이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정권 을 독점 해오던 자민당 정권이 몰락하고 하도야마 민주당 정권이 탄생해서 우리 민족문제 해결 에 퍽 고무 적이라는 믿음을 줬다. 중국은 마침내 G2로 성장해, 앞으로는 중국의 협조와 협력 없이는 어떤 국제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위치에 올라갔다. 러시아도 쏘련이 해체된 이후 꾸준 히 경제성장과 더부러 국제적 위상도 상승해서 러시아의 입김을 아무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서 특히 중국이 북핵 및 우리 민족문제를 풀어가는데 어 떤 역할을 할 것인 가를 검토해보는 것이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1. 미국의 대한반도정책

미국의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분단고정> 내지는 <현상유지>라고 할 수 있으나 좀 더 풀어서 생각하면 *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 (한미동맹강화), * 분단체제 유지관리 (전쟁 상인을 위해), *북한체제 붕괴 (제거의 대상)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적 색체의 학자들은 냉전 시대나 냉전 이후나 남한을 중,러를 견제키 위한 미국의 전초기지로 보기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 의 분단 제거 보다는 오히려 이를 공고히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주 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분단>으로 가장 재미를 보는 사람은 미국의 무기장사 라는 사실 을 부인 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정치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미국의 대외정책은 금세 군수산업의 이익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적이 없으면 적 을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쏘련이 해체됐을 때 가장 실의에 찬 한숨을 내쉰 사람 이 바로 미국의 군 수산업체였다는 사실은 실로 웃지 못할 비극이라 하겠다.

북미 간에는 1968, 미국의 뿌에불로호 간첩선 나포사건에 이어 69, 청진부근에서 미 해군정찰기 (EC-121 스파이 비행기) 격추 등으로 닉슨은 대북침략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북미 간에는 첨예한 대결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 후 70년대 중반에도 휴전선을 넘어 월경한 미군 핼리콥터 격추사건과 버드나무 절단사건으로 북미 간에는 전쟁 일보직전으로 치닫게 됐다. 당시 미국은 육,,공 입체공격체제로 돌입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무대응, 부반응> 정책을 구사해 전면전쟁은 모면됐다. 85년에 핵비확산조약 (NPT)에 가입한 북한이 IAEA 사찰 방법 에 항의를 하며 93년에 탈퇴하자 클링턴은 북침준비를 완료했다. 이것을 소위 1차 핵위기라고 한다. 카터의 전격 방북으로 문제가 풀려서 끝내 <북미제네바기본합의서> 94 10월에 발표됐다. 2000년 말, 김 위원장이 보낸 조명록 특사가 백악관을 예방해 <북미공동콤뮤니케> 가 발표됐고 클링턴의 방북을 준비코자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새로 당선된 부시의 네오콘 세력이 완강하게 클링턴의 방북을 저지하는 바람에 그의 북행이 좌절돼고 말았 다. 2003년에 완성키로 한 신포경수로는 겨우 1/3공정을 해놓고 중단됐으며 중유제공도 중단 됐다. 이렇게 해서 클링턴의 업적은 부시에 의해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부시 1기는 호전광의 극치를 이룬 시기로 북한과 같이 <악의 축>으로 몰린 이라크 침략이 있었고, 다음은 북한이 <선제타격> 대상으로 지목됐다. 실제 이라크에서 미국의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면 북침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역사적 <9.19공동성명> 05년에 발표 됐으나 이 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미국은 BDA문제를 들고나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가고 말았다. 07년엔 <2.13합의>가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증거제시도 없는 시리아-북한 핵거 래 구실에 걸려 진통을 격다가 결국 2단계 조차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6자회담이 정지되고 말 았다. ,,일의 정권교체 마다 쓴잔을 마시고 발목만 쥐고 넘어져야 했던 북한에게 정권교체 시에도 합의가 보장돼야 한다는요구를 새삼 강조하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부시 행정부는 사실상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두루 거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햇볓정책>에 한번도 지지를 보내지 않았던 부시는 북핵을 가지고 다리를 질질끌며 고비마다 암초를 만들어 북핵해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북미관계를 대결국면으로 이끌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었다. 총선과 대선에 임하는 한국 진보세력의 유일한 카드가 있다면 <햇볓정책> 을 통한 민족의 평화번영이었다. 부시는 <속도조절>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의 밀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심지어 노 대통령의 방북에 파란신호가 떨어진 것도 임기 3개월을 남겨두고서였다. 서울의 양대선거에서 친미보수우익 세력으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점령케 하는데 부시는 커다란 기여를 한 결과로 나타났다. 연이어 2번에 걸쳐 진보적 색체의 대통령이 탄생된데 대해 미국 정보 당국에서는 지극히 당황했다고 하며, 지난 2008년엔 친미보수우익 세력의 집권을 위해 미국이 북핵문제를 최대한으로 이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이 대통령 의 탄생은 결국 부시의 작품 이라는 사람도 있다. 부시가 사실상 북핵을 꽃놀이패로 사용한 덕 분에 서울에서 <>을 잡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의 가장 총애를 받아 아소 일본 총리 다음으로 <부시의 아세아 푸들 #2>라는 직함을 얻었다는 입소문 까지도 있을 지경이었다.

2. 한반도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의 태도

1) .중은 순치의 관계: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을 논하려면 먼저 역사적 측면에서 북중관계 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49년에 탄생하자 모택동 정권을 가장 먼저 승 인 하고 축하했던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북중관계를 한마디로 <순치의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실로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고 특히 3.1운동 으로 일제 의 탄압이 절정에 이르자 많은 조선인이 나라를 찾고자 혹은 생활터전을 찾아 중국의 동북 3성과 쏘련의 극동 연해주로 들어갔다. 중국 손중산의 <반제반봉건혁명>을 조선의 해방, 독립과 동일 선상에 있다는 판단아래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 혁명에 참가하게 됐다. 27년에 국 공합작이 실패 하면서 국민당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은 대부분의 조선동포들을 중국공산당 으로 떠밀어 넣고 말 았다. 모택동의 만리장정에 참여한 우리 동포들이 뿌린 피와 땀은 모택동 혁명 성공에 지대한 기 여를 한데 대해 모택동과 주은래는 자주 기회있을 때마다 언급하곤 했었다. 국민당 군대와 치열 한 전투를 벌렸던 <광주무장봉기>에서만도 우리 동포들의 회생이 수백명 에 달했다. 님 웨일스의 대표적 걸작인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도 통역을 하면서 바로 이 전투에 참가 했었다. ‘황포 군관학교교관으로 이 치열했던 전투에 참가했던 최용건은 후일 북한으로 귀국해 인민회의 위 원장이 됐다. 63, 최용건 인민위원장의 주은래 총리 방문을 계기로 광주봉기열사능원에 조선 인 혁명가들을 기념하는 <중조혈의정>이라는 기념비가 세 워졌다. 이 비에는 중조 두 나라 인민 의 전투적 우의는 만고에 길이 푸르리라!”라는 글발이 세겨져 있다.

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을 위해 참전한 것도 중국혁명에 공헌한 조선인들에 대한 보답이라 는 말도 무리한 말은 아닐성 싶다. 모택동과 주은래의 생존시 가장 북중관계가 황금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냉전시기 중.쏘 분쟁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던 북한은 <주체사상>에 따라 독자적 노선을 걸으면서 북중관계가 껄끄러울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이 미국 주도 유엔 대북제재 에 비록 수동적이긴 하지만 동참함으로서 북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오히려 북한이 배 신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것을 단적으로 증명할 수 있 는 대목은 안보 리 1718호에 찬성표를 던진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당시 북한의 박길연 대사 (현 외무성 부상)깡패의 왕초인 미국의 똘마니들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국제무대를 향해 외침으로서 북중관계 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6자회담의장국인 중국이 북한 에 할 수 있는 영향력 (특 히 경제제재)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미국측으로 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09, 2단계도 마무 리 짓지 못한체 ’6자회담이 중단되자 의장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 었다. 그러나 방북한 다이빙궈 국무위원의 김 위원장 면담으로 어떤 형태로건 북한의 회담 참가 의향이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8, 클링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앞으로 전개될 회담의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할 정도로 커다란 성과를 가져왔다. 곧 이어서 10월 초,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은 북중 관계를 원상회복했을 뿐 아니 라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마오안잉 (모택동의 아들)의 부활: 중국은 북중관계를 복원하는데 북한에 묻힌 마오안잉 현명하게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마오안잉은 어머니와 같이 국민당에 의해 수감생활을 하다 가 어머니는 처형되고 8살 나이에 길거리에 버려져 거지생활을 했다. 15살때에 이 사실이 알 려져 모스크바로 보내진 모택동의 장남은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2차대전에 참가했다. 지휘관으로 폴랜드, 독일을 해방하고 연합군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쏘련으로 돌아갔다. 그의 모국인 중국은 아직도 아버지인 모택동의 피비린내 나는혁명이 개속되고 있었다. 마오안잉은 스탈린이 선물로 준 쏘제권총 한 자루를 달랑 허리에 차고서 귀국했다. 혁명을 완수 한 아버지와 20년 만에 해후를 한 그는 결혼식을 올린지 1년도 못돼서 다시 한국전쟁에 몸을 던졌다. 펭데휘 중국 인민지원군 총 사령관 보좌관으로 참전했다. 미군폭격으로 전사한 그의 유해는 평북 운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에 아직도 묻혀있다. 이 중국군 열사묘를 찾은 원 총리는 마오안잉의 비석에 꽃다발을 증정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감정에 복바친 목소리로 안잉 동지, 이제 조국은 강해졌습니다. 인민은 행복해 졌습니다. 편히 쉬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원 총리가 한 위로의 말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됐다. 원 총리가 중국 지원군묘를 찾은 것은 북중우호관계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국의 국제위상을 과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최근에 마오안잉의 부인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대거 이 중국 열사묘를 찾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못보면 죽어도 한이 된다 <아리랑집단체조>와 김 위원 장 자신이 총 감독했다는 중국 고전 명작 <홍루몽>을 김 위원장과 원 총리가 나란히 앉아 관람 했다는 것은 북중 친선우의가 다져졌음을 재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중우호60주년>이라는 명분의 원 초리 방북은 삐걱거리던 북중관계를 복원하는 동시에 실리외교에도 촛점이 맞췄진 것이라 보인다. 원 총리의 평양 발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대 목은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던 북중관계는 변함없이 발전 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중국 만큼 북한을 잘 알고,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볼 때, 중국은 북한이 관련된 제반문제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단호한 정책으로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원 총리의 발언에 담겨있다고 보인다. 김 위원장과 원 총리는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고, 여기서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고 김 주석의 유훈이다>라는 말도 했다고 알려졌다. 바로 위의 두 핵심 사항이 중국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북한의 주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군사적 측면에서 중국의 학자들 이나 정객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북미전략적동맹>>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떠면 이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대규모 원조와 경제협력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60년대 초, 큐바미사일 사태와 작년 말, 러시아의 앞마당인 동구 미사일방어체계 (MD) 설치 계획이 철회된 전예를 거울삼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를 중국이 분명 조용하게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경주할 것임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게다. 물론 실추된 ‘6자회담의장국의 명예를 회복해 국제사회에 중국의 위신을 과시하고 동시에 중국의 안보를 지켜내는 일석이조 수확을 마다할 리가 중국으로선 없을 것이다.

3) 중국이 보는 한국: 한국은 중국의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라는 점에서 중국이 무시할 수 없 는 상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제적 경쟁자이다. 국제정치의 입장에서 중국은 한국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라 생각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좋은 예로 이 대통령이 취임과 더부러 주요 우방을 순방함에 있어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차례로 방문했을때 중국 정부 대변인이 한미동맹은 낡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말을해서 서울을 아주 당황하게 했던 일도 있다. 최근 문정인 연대교수 (베이징 국제관계대학 초빙교수) 가 영향력 있는 베이징대, 칭화대, 그리고 인민대 교수들과의 대화내용을 작년에 발표했다. 중국의 석학들은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던가 ,,일 긴밀협력등을 재 천명 하고도 서울 정부는 불균형 외교를 펼친다고 불만을 토해냈다고 한다. *한미동맹이나 한-- 3국 공조에 매달려 중국을 배제하고 있다는 혹평도 했다. *5자회담으로 6자회담의 판을 깨는 이유 는 뭔가? *유엔대북제재는 북을 회담에 끌어드리기 위한 것이지 서울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북을 고립, 봉쇄, 체제전환을 위한 압력이 아니지 않는가. *6자회담 주요 당사국과 상의도 없이 불쑥 그렌드 바겐을 내놓을 수 있는가? *최근 서울이 MD체제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데 그 저의가 무엇인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외교정책을 급격히 선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같은 항의성 중국 학자들의 질문에 대해 문정인 교수는 비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사항들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북한의 급변사태를 논의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중국은 단연 거부했다. 서울 정부가 제의한 5자회담이나 그렌드 바겐에도 중국은 물론이지만, 미국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에 환멸을 느낀 일본의 하도야마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다. 이것은 6자회담의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인 동북아안보공동체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EU와 같은 것이라 한반도 주변국들의 과심꺼리다. 이것도 한반도 평화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기에 북일수교도 불가피한 문제로 등장한다. 하도야마가 대미대등외교와 아시아 중시 외교 (특히 중국)를 제창한 데에는 중국의 위상을 여과없이 인정한 것이다. 중국에 의해 가장 먼저 단행된 대북제재국제공조 파기는 6자회담 참가국 전체에 대북정책 전환을 유도하는 멧세 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성 싶다. 일본 정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오자와 이찌로 민주 당 간사장은 지난 11/12,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동경에서 만나 개인입장임을 전제하고 납치 문제에 구애받지 말고 북일관계 개선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때를 같이해 아사 이주간이 북한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하도야마 총리가 곧 방북길에 오른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신빙성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일간에 최근 긴밀한 물밑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한 수동적 방관자의 입장에서 멍청하게 미국의 뒤를 쫓아가는 좌세를 취해 북한에게 매우 실망을 안겨왔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미국이 지고, 중국 이 뜬다>는 사실을 확인한 중국은 원 총리의 방북을 통해 자신의 역할과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보란 듯이 해댔다. 이제 대북제재는 물건너 갔다는 데는 일치한 견해를 보이나, 이것이 중국의 독자적 행위냐 아니면 미국과 사전 묵계하에 단행된 조치냐에서는 엇갈린 주장들을 한다. 나는 후자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오바마의 처지를 이해하고 미국 네오콘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먼저 총대를 메고 대북제재를 부셨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중.미가 짜고 치는 고스톱일지도 모른다. 서울 정부는 중국이 안보리 1874를 위반했다고 미국이 떠 들어 주기를 고대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사전 묵계 가 있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0월 베이징에 모인 한,일 정상에게 평양에서 막 돌아 온 원 총리는 이번 기회를 꽉 틀어쥐지 못하면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으며 김 위원장 의 한,일과의 관계정상화 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원 총리가 두 정상에게 한 훈시에 가까운 말 은 앞으로 한,일도 중국과 같이 파격적 대북정책을 취하라는 강력한 멧세지라고 풀이된다.

3. G2, 중국: 한반도문제 해결의 변수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이 빠른 중국의 외환 보유량은 2조 달라이고, 미국이 중국에 진 빚은 무려 1조 달라에 육박하고 있다. 10여년을 독점하던 남한이 조선수주 1위 자리를 작 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이제는 미국이 희잡고 있던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도 중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는 일본경제를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1/12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1/9, 중국이 연간 수백만 달라를 투입해 의회로비를 하고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미국 의원들이 중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로 돌아서기 시작 했다는 보도를 했다. 친대만파들이 대거 친중국파로 전환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대만에 최신예 미제무기를 팔아먹기가 어렵게 됐다. 중국의 대외정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실리외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종교, 정치사상, 민주화, 인권 등의 잣대를 즐겨 사용하는데, 미국에 우호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것이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 마치 엿장사와 같다는 말이다. 미국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외교라면, 중국 은 조건 없이 경제원조와 협력을 하는게 특징이다.좋은 예로 중국의 대아프리카 정책이 본격 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06년 아프리카 제국의 정상들을 베이징에 초청하고 부터다. 불과 2년 후, 08년 부터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아프리카와의 무역량이 세계 1위를 차지 했다. 50, 60년대 부터 중국과 아프리카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함께 해왔다며 아프리카에 매우 우호적, 동정적 접근을 하고 무상원조와 차관을 대규모로 제공 하고 있다. 자원전쟁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평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특히 농업, 건설 분야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 칭화대학 초빙교수인 정기열 박사의 모택동에 대한 작년 논문에 의하면, 60년대 부터 중국이 미국의 봉쇄와 국제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핵개발을 시작 했다고 한다. 중국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서방의 온갖 규탄과 방해공작에 사회주의 형제 국가인 쏘련의 가담은 중국에 큰 배신감을 안겨줬을 것으로 정 교수는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60년대 중반에 핵보유국이 됐고, 이어서 불란서가 중국과 수교를 했고, 72년에 닉슨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약삭빠른 일본은 중미 수교 이전에 먼저 중국과 수교를 했다. 이를 지켜본 모택동은 핵개발은 미국/서방의 문을 여는데 최고의 방법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고 한다. 정 교수 주장에 의하면 현 중국의 집권 세력들이 이런 과거의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북핵보유에 대해서도 이해와 동정을 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모택동의 말과 우연의 일치인 지는 몰라도 북한은 자신의 핵보유를 <생존수단>이라 표현하고, 북핵이 미국으로 하여금 힘에서 대화로 정책을 바꾸게 했다고 말한다.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다.

.미가 다 같이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고수하고자 한다. 중국은 북한의 안정을 바라지만, 미국은 북한을 체제전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중국은 북한이 친서방으로 기우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작년 10월 말, ‘동북아협력대화에 참석했던 리근 미국 국장의 발언 중에는 북미 상호 이익을 위한 공동협력이라는 전략적 동맹에 가까운 표현이 있었고, 미국의 대조선 투자를 환영한다는 언급도 있었다. 심지어 북미관계가 성숙되면 주한 미군 주둔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 있는 학자들 간에는 <북미 전략적 동맹>관계가 현실로 드러날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미가 한반도 비핵 화를 다같이 지지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적용된다는 데에 대해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주한 미군이 끼고 있는 핵무기나 한,일의 핵우산이 미국에겐 약점이기 때문이다. 08년 말, 모스크바에서 열린 6자 동북아안보회의 (러시아가 의장)에서 이명박 정부는 < 9.19 공 동 성명>에 들어있는 한반도비핵화북한비핵화로 수정돼야 한다고 한 대목에 대해 미국 이 지지를 표명했던 것은 좋은 본보기다. 반세기에 걸친 총성없는 전쟁, 바로 이 휴전 상태가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는 근본 원인이고, 그것이 대북적대정책으로 연결돼 결국 북핵을 부체 질 한다고 믿는 북한의 주장에 중국이 공개적이진 않지만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궁극적 관심사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핵우산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바마가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내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금년 상반기에 6자회담 이 재개되고 곧 북미 간에 연락사무소 같은 것이 개설될 수 있을 것이라는고 알려졌다. 또한 회담과 병행해서 평화포럼 (한반도)이 가동되고 북미관계정상화 푸로세스가 개시 된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오바마의 친서가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서울 정부가 펄쩍뛰고, 미국 네 오콘의 사전 공세를 막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기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남한에 배치된 주한미군, 미군기지 그리고 전략무기들에 대해 중국이 우려하고 있음을 오바마가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터져나온 <일미핵밀약>이 북한은 물론이지만, 중국과 쏘련을 겨냥하기 위한 일,미간 핵뒷거래라는 사실이 폭로됨으로서 중국의 주한미군문제에 대한 우려를 증가시켰을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남한이 미국의 MD계획에 흥미를 갖고 있 다는 보도에 대해 이미 중국의 학계에서는 대단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앞으로 있을 ‘6자회담에서는 ‘9.19공동성명이행이 주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북핵폐기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북미관계정상화]가 주요 내용이다. 아무튼 우연인지는 몰라도 북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반도평화체제를 미국이 회담의 중요한 의제로 들고 나온 자체가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4월에 핵 보유국 정상회의가 있고, 5월에는 NPT 점검회의를 앞두고 북핵문제를 괘도에 올려놓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시점에 서있다. 국내외적으로도 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2개의 전쟁 위에 이란 핵문제와 테러와의 전쟁까지 치뤄야 하는 오바마는 정작 낭비할 시간도 없다. <핵없는 세계>라는 것을 부르짖고 노벨평화상을 획득한 오바마는 북핵문제만은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도달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성 싶다. 이미 북핵문제는 타 결됐던 전예가 있어 다른 어떤 국제문제 보다도 미국이 맘만 먹으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물론 북한도 강성대국의 문을 2012년에 열어제쳐야 하는 부담 뿐 아 니라 미국과의 끝없는 대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제는 북핵문제는 풀려 도 좋고, 안풀려도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떻게던 끝장을 내야 하는 숙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한한 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 걸려있는 데다 과거와는 달리 중국 이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 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한반도문제 해결에 생산적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G2로 껑충뛰어 오른 중국, 자신의 이해관계가 직접 걸려있는 한반도 비 핵화와 평화번영 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균형있는 회담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가 국제적 난제 중의 하나인 북핵 및 한반도 정전체제 를 공동해결함으로서 역사를 새로 쓰는 기적을 만들었다는 치하를 국제사회로 부터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6자회담의 전망은 그 어느때 보다도 밝다고 하겠다.

 


Copyright ⓒ 2004-2006 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475 Riverside Drive Room 1369, New York NY 10115 USA    Tel 212-870-2162    Fax 212-531-0995   E-mail to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