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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동포전국연합회 12차 임총 전야제에서 일본 당국의 잔인성을 폭로하는 박문재 박사의 특별순서가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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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지향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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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재 박사가 특별순서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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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재 박사는 이날 1부에서 일본 당국과 일부 민간단체에서는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시기에 북일 당국간에 이미 국교정상화 관계를 전재하고 북측 당국이 일본인 납치(13명)문제에 관련하여 사과하고 북일평양선언을 통해 평화관계를 약속하였으나 일본당국은 이를 배신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과거에 엄청난 납치국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이미 사과된 북의 납치문제를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테러 지향국가는 어느나라인가?"라고 질문하고 이에 대해 일본 당국이 지난 시기에 저질러 온 엄청난 납치사건들과 반인륜 사건들을 고발하면서 누가 누구보고 납치국 운운하느냐는 식으로 꼬집었다.
그는 신문광고용 규격의 전면선전물(영문)을 작성하고 여기에 일본 당국이 과거에 저질렀던 엄청난 납치사건들과 반인륜 사건들(3.1운동관련 집단납치 살해, 관동대지진 사건에서 저지른 범죄, 민영환 사건, 재일총련 탄압사건, 안중근 의사 시체 쓰레기 처리사건, 일본군 위안부 20만명 납치강간사건, 민비살해사건, 강제징용 및 탄광 바다밑 작업장 조선인 강제모집살해사건, 신사참배, 살육사건 등)의 사진들을 하나 하나 설명하며 일본 정부가 과거에 이렇게 엄청난 범죄들을 저지르며 납치 및 강제연행, 집단살육행위를 자행하였는데 북측이 행한 13명의 납치문제를 가지고 온 세상에 떠들면서 북이 마치 납치의 나라로 몰고 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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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길상 회장이 전야제 특별순서 취지를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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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재 박사는 특별순서 2부에서는 남녘의 방송(KBS)에서 제작한 이수광의 <조완벽> 선비에 대한 일대기 기획물을 영상물로 소개하며 17세기에도 일본이 저지른 조선인들 납치행위는 엄청났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내용들이었다.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이 일어난 7년기간에만도 10만여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에 납치되어 갔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광해군 일기중>에는 조선인들 3만7백여명이 일본 사찌마에 끌려간 이야기 등 이미 4백년 전에 선비 조완벽에 의하여 밝혀진 실화, 일본인들의 조선인 납치는 10만여명이 넘었고, 그 중에 조완벽과 같은 선비들이 납치된 우리 조상들을 구출하는 이야기들로 편집되어 있는 영상물이었다.
이 특별순서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20만명의 성노예를 끌려간 정신대 할머지 문제마저 제대로 사과도 그리고 보상도 하지 않은 나라가 일본이라고 분노하며 이러한 일본 당국이 이제는 북의 13명 납치 문제를 가지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것은 기초적인 상식도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분노하며 이에 대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그들의 잔인성을 온 세상에 알려서 그런 행위를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앞장서자고 강조하면서 모금운동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박문재 박사가 영상으로 소개한 선전물 내용을 아래와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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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재 박사가 만든 우리말과 영문으로 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선전물 제작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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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재 박사가 일당국 만행을 행설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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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6자회담은 지난 3년동안 많은 협상을 벌려오던 중 금년 2월 13일을 기해서 북미간 서로 만족할만한 합의를 드디어 이루었으며 합의서에 거론된 여러가지 미묘한 안건들을 하나 하나 해결함에 따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하고 있다.
2.13합의는 미국측의 유연한 협상 태도와 이북측의 자긍심에 바탕을 둔 협상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이북의 핵무기 보유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난 60여년간 항상 미국의 침략에 대비하여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방어용이었다. 이것을 드디어 인정한 미국의 인식 변화와 대미 국제관계의 개선을 통해 국가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이북측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북미간의 국교정상화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첫 단계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금수조치 철회, 휴전에서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으로의 전환, 그리고 국교정상화의 관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과 민족이 그토록 바라는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120만 재미동포들은 부시 행정부가 하루 바삐 이북을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삭제하여 민족의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방해가 아니라 협조하는 미국 정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우리와 가까운 선린우방으로 생각하는 일본이 여야 정당을 막론하고 미국의 이러한 평화 정책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즉 이북을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을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만일 미국이 이북을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삭제한다면 미일간의 동맹에 금이 가게 된다는 등 위협하는 언행을 감행하고 미국 의회에 호소운동을 벌리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재미동포들은 놀라움과 분개함을 금할 수 없으며 이 일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정착 조치를 위해 먼저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 삭제를 하려고 하는데에 대해 일본이 무엇때문에 반대를 하고 나서는지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없이 이북을 태러 지원 국가명단에서 삭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일본 시민 납치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지만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 우리 120만 재미동포는 하나같이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 조선 민족의 인권을 유린하는 등 얼마나 많은 비인륜적인 일을 자행하였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우선 북한에 의한 일본 시민 납치문제를 살펴보자.
1970년대에 일본 당국은 16명의 시민이 행방 불명이 되었으며 이들이 이북의 정보원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9월 조일정상 회담 때 고이즈미는 이를 제기했고, 당시 북한 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놀랍게도 인정하였으며 13명 중 8명은 이미 사망하였고 5명은 생존하여 북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관련자의 엄중처벌을 약속과 동시에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얼마 후 생존자 5명은 일본으로 귀환 하였으며 그 가족들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처 북일 양국 대표단이 조사를 하였으나 결국 북이 밝힌 13명 이외의 피납자는 더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북은 계속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여러번 사과를 하였다.
일부 재미동포들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볼때 이북 정부를 공공연히 그리고 직접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북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책임문제를 순순히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한 것에 대해서 참으로 잘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일간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납치, 인권 침해, 침략, 공공연한 학살 사건 등의 거의가 다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 의해 자행된 추악하고도 악독한 범죄였으며, 일본인 납치 문제보다 더 엄청나고도 참혹한 사실에 단 한번도 일본 정부가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일본이 우리 민족에 대해 범한 참혹사를 살펴보자.
일본이 우리 민족에 대해 범한 참혹한 인권 범죄의 역사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였다. 일본정부는 오랫동안 한반도를 침략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30만 대군을 한반도에 보내 순식간에 점령하였으며 조선 인민을 무차별 살육전을 전개하는 것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를 약탈하고 시설물들을 파괴하는 등 많은 도시를 초토화하였다. 조선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이유없는 참혹한 침략로 인해 그 후 조선인들의 마음 속에 지울수 없는 반일 감정을 심어주었다. 결국 이들은 수년 만에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로 보급로가 막혀 물러가고 말았다.
그러나 5년 후 1597년 정유재란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일본은 다시 방대한 정복군을 보내 한반도를 침략하였으며 또다시 우리의 강토를 초토화시켰으나 이번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혜스런 전략으로 일본 정복군을 패퇴시켰다. 일본은 퇴각하면서 민간인 7,000여명을 강제 납치해갔다. 무참히 끌려간 민간인들은 일본에서 농경 노예, 성 노예 그리고 무보수의 머슴살이를 강요당했으며 그 일부는 도공으로서 일본의 도예공업을 일구는데 공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 그 후예들이 살고 있다. 수 년후 한국 조정은 이들 피납자들의 비참한 생에 대해 깊은 관심과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일본 정부와 교섭하여 많은 문화재를 갖다주는 대가로 이들을 구해내려고 했으나 일본인들의 간계에 의해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약 1200명만을 구해오는데 그쳤다.
1919년 3월1일은 우리 조선 사람은 그누구도 잊을 수 없는 기미년 독립운동일이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조선인들은 독립선언문을 채택 선포하였다. 그리고 무저항 평화적 시위를 벌려 일본인의 혹독한 식민지 정책을 반대해 들고 일어났다. 무저항 평화적 시위는 일본 정부의 유례없는 참혹한 탄압으로 인해 결국 7,500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다.
1923년9월1일 일본 수도 동경을 포함한 관동지대에 유례없는 대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에 대비하여 재해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일본은 심한 화재와 건물 붕괴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조선인에게 전가시켰다. 즉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약탈했다.” 등 각종 유언비어를 퍼트려 지진 피해의 원인을 재일동포들의 탓으로 돌렸다. 일본 당국의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총 6,000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했다. 조선인들 또한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인명의 사상과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일본은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어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조선인은 억울하게 총에 맞아 죽고, 매맞아 죽고, 불에 태워져 죽었으며 유아, 부녀자를 포함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은 극심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징용제도”를 만들어 많은 조선인 청년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일본에 있는 군수공장, 탄광, 조선소, 수력발전소에 보내어 강제노동을 시켰다. 종전이 되자 이들 강제 노무자들을 그들의 조국, 조선으로 귀향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고 수수방관하였다.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선인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돌아왔으나 대부분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일본 땅에 주저 앉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오늘날까지 인종차별이 심한 일본사회에서 인종적, 경제적, 교육적, 인격적인 모든 면에서 말할 수 없는 수모와 고통을 받아 왔었다.현재 재일교포들인 이들은 그간의 차별에 못 견디어 일부 귀화하였으며 한때 100만이 넘던 이들은 오늘날에 와서 약 45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오늘날 일본 정부는 이들에 대해서 견딜수 없는 여러 가지 수모와 압박을 가하며, 경제적 압력, 인종 차별, 교육적 차별, 취업상에서의 차별등을 부끄럼 없이 공공연히 자행 하고있다.
또 특기할 만한 사건은 제2차 전쟁당시 조선인 36,000여명을 당시 일본영토였던 사할린에 강제 이주시켜 그곳 탄광에서 일하게 하였는데, 종전이 되어 소련군이 밀물같이 처들어오자 일본은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광부들을 모두 버리고 자국 국민들만 데리고 급히 배로 빠져나오고만 사건이다. 이후 조선인들은 하는 수 없이 사할린에서 지금까지 소련 국적으로 살고 있는데 그 수 가 40,000명이 넘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가족과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크게 재론된 종군위안부의 피눈물 나는 삶이다. 태평양 전쟁 중 총 20만여명의 조선인, 중국인, 필리핀인의 젊은 소녀들을 일본 정부가 토끼사냥 하듯이 잡아다 자기네 군인들을 위해 강제 성 노예로 쓰다가 종전 후 현지에 모두 버리고 떠나버린 것이다.그 중 일부 한국으로 귀국한 생존자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원통함과 분한 마음을 달랠길 없이 외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으며, 대부분은 비참하게 사망하였다. 그러나 귀국하지 못한 조선인 여성들의 영혼은 눈바람 몰아치는 만주벌판에서, 찌는듯 더운 남양의 정글에서 일본을 원망하며 방황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전적으로 자기들이 책임져야할 위안부 문제를 뻔뻔스럽게도 그 여성들이 돈 벌이를 위해 일선에 갔지 강제 연행이 아니였다고 책임 전가를 하는 파렴치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오늘날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그간 일본의 무분별한 침략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민족에 대한 슬픈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인권유린 등 무자비한 만행에 대해 일본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후 손에 손을 잡고 화해를 해야한다. 일본은 그간의 조선 사람들에게 행한 반 인륜적이고 파렴치한 만행은 역사가 증명하는 확고한 사실이다. 이와같은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테러 행위와 같은 것이며 일본이 바로 테러국가와 같은 것이다.
우리 재미동포들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파렴치한 역사적 만행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이 도리어 일본이 13명의 납치자 문제를 들어 북미간의 관계개선을 방해하며, 나아가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적 통일로 전진하는 길을 방해 하는데에 대해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KANCC]는 재미동포들을 대표하여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에게 엄중하게 요구한다. 북미관의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노력에 대해 무례한 방해를 즉각 중지하고,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역사적 만행을 반성하고 아시아의 일원으로 올바른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120만의 미국 시민으로서 워싱턴에 있는 우리 정부에게 그리고 동포로서 미국시민들에게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평화 정책 방향을 흐트러짐 없이 확고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을 것을 기대한다.
2007년 12월
재미동포전국연합회(KANCC)
A Terrorist State; Which Country?
On February 13, 2007, after three years, the Six-Party Talks produced an Agreement, leading to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improved relationships among involved countries. Recently, the implementation of the Agreement has gained momentum primarily due to diplomatic finesse employed by the US, as well as to North Korea’s willingness to negotiate away their nuclear weapons system for an improved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Essential toward an improved relationship must be the removal by US of North Korea from the “List of States Sponsoring Terrorist Activities”. This is prerequisite for lifting “The Trading with the Enemy Act”, embargo, conversion of the current Armistice to a “Peace Treaty” and finally the establishment of full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is process is being anxiously and hopefully watched by 1.2 million Korean-Americans, praying for the eventua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refore, Korean-Americans have been stunned and outraged to learn that the Japanese are lobbying the US government and Congress against removing North Korea from the Terrorist List citing the 37-year old issue of abduction of 16 Japanese citizens by the North Korean intelligence agency. They had been used as Japanese language instructors and /or providers of Japanese identities for North Korean Agents.
Abduction of Japanese Citizens by North Korea:
In September, 2002, at the Japan-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summit meeting, North Korea admitted the abduction of 13 individuals and offered an official apology with a pledge to punish the involved personnel. Later that year, five abduction survivors were returned to Japan, other eight were deceased. Numerous investigations and joint meetings between the representatives of the two countries revealed no further abductees. Apologies had been issued repeatedly by North Korea.
Many Korean-Americans openly denounce the government of North Korea for this violation of human rights. However they take pride in the fact that North Korea has been forthright in admitting the abduction and had formally offered apologies. Indeed when one reviews the history of the two countries, there clearly have been atrocities committed by the Japanese on the Koreans in an incomparably greater scale, however the Japanese have never once apologized for their actions.
Atrocities Committed by the Japanese on the Korean People:
• In 1592 Japan invaded Korea without any provocation with an army of 300,000. The immediate result was complete devastation of the peninsula, pain and suffering on the people, and pilfering of cultural artifacts, flattening of cities. The occupation lasted for three years, when a Korean naval force led by Admiral Lee. Soon-shin successfully destroyed Japanese navy, choking off their supply line. In 1597, the Japanese returned with equal ferocity and savagery and again were chased away by the legendary Admiral Lee. This time however they abducted over 7,000 Korean civilians to Japan to work agricultural slaves, concubines, laborers, and artisans producing ceramics and pottery.
• After defeating Chinese and Russian influence on the Korean peninsula, Japan in 1910 formally annexed Korea, thus began 36 years of harsh colonial rule until 1945 when Korea was liberated by the Allies. On March 1, 1919, a nonviolent and peaceful demonstration by Korean people was held demanding independence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This was encouraged by US President Wilson’s “Self-Determination Principle”. The movement was met by an unprecedently fierce Japanese oppression that resulted in 7,500 Korean civilian deaths.
• On September 1, 1923, a severe earthquake hit Tokyo area causing great damage, fire and casualties. There was unfound rumor spread deliberately among the Japanese that Korean residents were responsible for the fire and looting. Indiscriminate killings of Koreans ensued, resulting in over 6,000 Korean deaths officially estimated by the Japanese authority.
• During World War II, untold numbers of Korean young men were conscripted to work in Japanese war factories, mines and shipyards as uncompensated laborers. After the war, many returned to Korea but there was never an organized effort by the Japanese government to repatriate them. The majority of current Korean residents of Japan lives under a highly ethnically discriminatory society. They are the descendants of these former Korean conscripts.
• About 38,000 Korean young men were sent Sakhalin during the WW II to work as forced laborers in coal mines. When the war ended, the Japanese made a hasty retreat to their homeland leaving the Koreans to the mercy of advancing Soviet Army. Today, they are still there as Russians numbering about 40,000, some still yearning to return to Korea, their homeland.
• Finally, there is the sad story of 200,000 so called “Comfort Women” a euphemism given to forced sex-slaves Japan conscripted from the country-side of Korea during World War II to “service” their soldiers in front lines. There are a handful of surviving women, now in their twilight, living in a government provided facility in Seoul. They are a living witness to the deceit of the Japanese who still deny that it ever happened.
Clearly and undeniably Japan owes much more to Korea than vice versa. Therefore, most Korean-Americans view the current Japanese attempt to negatively influence the developing détente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as deeply deplorable, chauvinistic, and utterly counter to the spirit of resolution between the two neighbor countries, Japan and Korea.
We urge the Japanese government and people to cease this interference.
We urge our government in Washington and our people, the American public to steadfastly proceed with the current diplomatic process of détente with North Korea.
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KANCC)
(December,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