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어디로 가십니까”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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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18 13:5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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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 어디로 가십니까”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
홍민철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중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시대의 스승’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이 찾았다.
이날 영결식은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고민정 KBS 아나운서·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또 가수 정태춘이 추모곡을 불렀다.
이재정 교육감은 이날 추도사에서 “우리 시대가 점점 어둠 속으로 밀려가고, 권력의 거짓과 폭력이 역사를 되돌리고 있는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라며 “선생은 이 시대의 스승이고, 지성”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탁현민 교수는 “대학교 4학년 때 신 교수는 매주 내가 쓴 글을 읽고 지도해줬다”면서 “수천 명의 조문객들은 어느 위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신체 한 부분이 허물어지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애통해 했다.
가수 정태춘씨는 평소 고인이 즐겨 부르던 ‘떠나가는 배’를 추모곡으로 불렀고 추도객들은 ‘시냇물’을 합창했다. ‘시냇물’ 역시 신 교수가 평소 즐겨 부르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유족과 지인들이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으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참가자들은 교내 피츠버그홀에서 복도까지 가득 메운채 영결식 중계를 지켜봤다. 신 교수 제자들은 ‘시대의 스승으로 진심으로 존경하며 돌아가심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등의 추모 메시지를 엽서에 적어 수백여장을 교정 곳곳에 붙였다.
성공회대측에 따르면 고 신영복 교수의 빈소에는 첫날3천500여명, 둘째 날 4천여명, 이날 350여명 등 모두 7천850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왔다. 조문객 중에는 일반 시민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박원석 의원 등이 포함됐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이 넘게 복역했다. 1988년 5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신 교수는 다음해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지난 2006년 동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한 신 교수는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다양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이어갔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청구회 추억>, <처음처럼>, ,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변방을 찾아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이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고인은 2008년 '제3회 임창순상', 2015년 '제19회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했다.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중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중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중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중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이 성공회대 새천년관 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차량에 탑승 떠나는 모습을 조문객들이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 차량에 탑승 떠나는 모습을 보던 조문객이 끝내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참석 이재정 교육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성공회대 제공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고별예식을 하고 있다.ⓒ성공회대 제공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고별예식을 하고 있다.ⓒ성공회대 제공

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헌화하고 있다.ⓒ성공회대 제공
[사설] 큰 스승 신영복 선생이 남긴 가르침
큰 스승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1941년 일제 강점 말기에 태어나 분단과 전쟁, 4. 19 혁명, 5. 16 군사쿠데타를 겪은 신영복 선생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선생은 27살 나이에 무기수가 되어 20년을 창살 안에 갇혔다. 조국을 사랑한 죄로 청춘을 빼앗겼지만 선생은 조국을 원망하기는커녕 위대한 사상가가 되어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하여 선생의 주옥같은 글들은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이제 신영복 선생의 사색과 글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이다.
신영복 선생이 우리 사회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선생이 이겨내야 했던 삶의 무게에도 있지만 민중 중심의 세계관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학교수로 일하던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감옥에서 만난 평범한 민중에게 끊임없이 배워나간 겸손과 성찰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선생이 출소하던 80년대 말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진보적 세계관이 흔들리던 전환적 시기였다. 많은 이들이 진보적 신념을 포기하거나 동요하고 있을 때 선생이 감옥에서 걸러낸 민중적 세계관은 용기와 지혜를 주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진보적 신념이 흔들리는 지금 또한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잣대로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신영복 선생은 어린 시절에는 해방의 함성 속에 쫓겨났던 친일파가 다시 집권하는 것을 지켜봤고, 청년 시절에는 4. 19 혁명의 푸른 하늘을 군사쿠데타의 먹구름으로 가려버린 현실을 지켜보면서 좌절하지 않고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6월 항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유린당하는 작금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전진하기 위해선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선생은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사회변혁을 도모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실천적 연대와 소통을 통해 희망을 찾아야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헬 조선’과 ‘흙 수저’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 현실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생각과 실천의 지침이 된다.
청년들이 자기 조국을 지옥이라 표현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신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지경인데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정치세력이 없다. 종북 공세 이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집권세력이야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평생 양지만 골라 다니던 70대 노인들이 야당의 총선 사령탑에 앉아 있다. 그들은 이승만 국부론 논쟁으로 밤을 새고 지금도 부족하다며 야당을 더욱 보수화, 우경화하고 있다.
낡은 지역정치에 기대여 금배지만 쫓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흔들림 없이 나갈 정치 세력, 노동자 농민 청년들의 절박한 요구와 소통하고 연대를 통하여 희망을 만들어나갈 새로운 정치세력을 건설하는데서 선생의 가르침은 큰 지혜가 된다.
분단 조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난의 길을 걸었던 신영복 선생. 그 속에서 위대한 사상을 건져 올린 이가 통일 조국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이제 그가 원하던 통일 조국 건설은 오롯이 후세의 몫이 되었다. 못 다 이룬 뜻은 후세에게 맡기시고 감옥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시라.
[출처: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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