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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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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5-15 10:1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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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팽목항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 하나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현수막에는 “5.18엄마가 4.16엄마에게 /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세월호 참사에서 ‘광주사태’가 연상된다고 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은 세월호 참사가 정부가 일으킨 사건이냐며 열을 내지만,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무책임과 진상규명의 요구를 축소·왜곡하려는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사회의 충격적인 실상을 대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5월 광주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게 된다.

 

 

우리사회 민낯을 보다

 

 

80년 5월 광주를 통해 국민들은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았다.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의 학살만행을 보면서 당시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음을 몸소 체감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절심함을 피로서 확인해야 했다. 80년 5월 한국에는 진실된 언론, 광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한 언론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언론사란 이름의 정권의 나팔수들은 광주시민들을 빨갱이, 폭도로 몰아갔다.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며, 우리 국민들의 생존을 끝까지 지켜줄 것으로 알았던 미국의 민낯도 드러났다. 미국에게 있어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경계하고,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5월 광주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것에 그친 것이 아니다. 5월 광주는 그 민낯을 확인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들로 인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80년 5월 광주 이후 전국적으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향한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각 지역의 미 문화원들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불탔다. 그 결과 80년 5월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는 달라졌다. 대통령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고, 미국과 평화통일에 대한 인신도 급속히 성장했다.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들이 모조리 드러난 것이 세월호 참사였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구조할 마음이 있었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우리는 청해진해운과 언딘의 유착 등 숱한 부정부패로 얼룩진 한국 자본주의와 모습과 대면해야 했고, 비정규직 확산과 규제완화 등 경제효율성 논리에 갇힌 사회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언론은 전원구조 오보를 낸 것도 모자라 왜곡된 정보와 잘못된 사실들을 전달했고, 진상규명에 힘쓰기보다는 정부를 감싸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80년 5월 광주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아가 국민들 속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인식들이 커지고 있다. 기득권 세력과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이 커져가고 있다. 국민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국가는 필요없다고 외치고 있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효율성만이 아닌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고,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구도 공감대가 크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사회가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80년 광주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군부세력에 맞서 싸웠고, 그로인해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질서가 확립됐던 것처럼, 더불어 미국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났던 것처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았다

 

 

80년 5월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은 아직 완결되지 못했다. 누가 광주시민들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다. 당시 군을 통솔하던 책임자들은 각종 청문회에서 아무도 자신이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광주 외곽에 있던 공수부대들이 시위를 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왜 무차별 학살했는지, 당시 군대의 지휘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었기에 군대끼리 총을 쏴 서로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지 숱한 의혹들이 남아있다. 몇 명의 광주시민들이 학살되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 관련한 문제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1980년 5월 7일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한국 군부는 13공수여단을 5월8일 서울 동남쪽으로 이동시킨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군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특전사를 동원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1980년 5월 9일 미 국무부 차관 크리스토퍼는 주한미대사관에 보내는 비밀 전문을 통해 “군대를 동원해 경찰력을 보강하려는 한국 정부의 비상계획을 반대해서는 안된다는데 동의한다.”고 했으며, 미군의 승인없이는 투입할 수 없었던 전방부대의 20사단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는 신군부에 이양하기도 했다. 이희성 당시 5.18계엄사령관이 청문회에 나와 한 발언에 따르면 5월27일 군부가 도청진압작전을 펼 때도 미국은 작전개시일정을 군부와 함께 논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5월 광주학살과 관련해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진상규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5월 광주는 보여주고 있다. 물론 5.18과 관련한 진상규명이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빨갱이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알려진 광주민중항쟁은 6월항쟁의 성과로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에는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다. 1995년에 '5.18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들의 투쟁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수많은 국민들은 거리에서 전두환, 노태우 학살자 처벌과 민주주의를 외쳤고, 목숨을 내던진 학생들도 많았다. 그 결과 15년이 지나서야 5.18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어떤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왜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숱한 의혹들이 쌓여있지만 진상규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천만에 가까운 국민들의 서명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정부는 특별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숱한 국민들의 피와 땀이 있었던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수많은 국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으로 인해 무언가 큰 타격을 받을 기득권 세력들이 있다면 더더욱 국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5월 정신'을 되살려 정부의 쓰레기 시행령을 폐기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전 국민이 힘을 모을 때다.

 

 

학살과 만행은 계속된다

 

 

밝혀지지 않은 문제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문제와 더불어 역사를 왜곡하려는 극우보수세력들과의 투쟁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5월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려는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극우보수세력들은 여전히 광주민중항쟁이 북한의 공작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5.18 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폐기되어야 한다고 악을 쓰고 있다. ‘일베’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군부세력의 무차별 학살로 인해 죽어간 광주시민들을 ‘홍어’라 부르는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이 돌아다닌다. 제2의 학살만행이다.

 

 

비단 직접적인 왜곡과 폄하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등 어떻게든 5월 정신을 폄하,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맞서 싸워야 한다. 5.18을 단순히 기념한다고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5월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지 35년이 흘렀지만, 5월 정신을 되살리고 지켜내기 위해선 5.18을 폄하하고 왜곡하려는 세력들과의 지속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극우보수세력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반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느니, 유가족들이 세금 도둑이니 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대못을 박고 있다. 극우보수세력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종북’이라는 올가미에 옭아매려고 애를 쓴다. 이들은 광주시민들을 빨갱이, 폭도로 매도한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들을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몰아간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훈을 새기고, 우리 사회를 세월호 참사 이전보다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선 진실을 왜곡하고, 유신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힌 세력들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5월 광주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전 국민이 나서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5월 광주는, 그래야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사회가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5월, 전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떨쳐나서야 한다. 

 

[출처: 민권연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0:17:1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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