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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미국의 통상 압박, 정면으로 받아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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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18 21:1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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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상 압박, 정면으로 받아쳐라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한번 호구로 찍히면 평생 뜯기는 법이다. 국제관계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한국은 늘 그 모양이었다. 한미FTA 때 우리는 미국과의 FTA는 그 자체로 무조건 이득이라고 국민을 기만하면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모조리 퍼주었다. 지난해 관세협상도 다르지 않았다. 관세를 낮췄다고 성공을 자축했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결과에 비하면 미국에게는 완벽한 대박 ‘손님’을 받은 격이다. 미국은 속으로 경멸의 미소를 머금고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에게 한국이란 밀면 물러서는 존재다. 나라도 아니다. 뭐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밀어붙일 것.


그 결과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2,000억 달러 강제투자의 1호 사업을 놓고 정부는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등 에너지 사업을 우선 검토해왔다.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8월 18일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메모리 생산시설 투자를 요구해 내부 논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미국이 메모리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7월 9일 두 회사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자세다. 미국이 관세 인상을 입에 올릴 때마다 우리는 ‘그러면 수출이 죽는다’며 지레 겁을 집어먹고 사색이 되어 미국 앞에 엎어지고 만다. 그러나 대미 전략투자는 미국이 마음대로 명령하는 조공이 아니다. 미국 투자위원회는 한국 측 협의위원회와 사전에 협의해야 하고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만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메모리 전공정 공장(팹)의 미국 이전이 구축효과(crowding-out)를 통해 한국내 투자와 첨단 제조생태계를 훼손한다면 한국은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합의문에 적힌 우리의 권리부터 행사할 일이다.

여기서 밀리면 이른바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기 전에 공중분해될 수 있다. 미국에 내주는 팹 1개는 공장 하나가 아니라 ‘산업생태계의 닻(anchor)’이다. 그리고 그 생태계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다. 한국은 동맹을 위해 골수까지 내주는 봉신국이 되려하는가. 핵심 산업의 생산기지까지 내놓을 것인가. 골수를 내준 다음에는 식인 닥터 한니발을 위해 뇌수를 바칠 것인가. 관세라는 몽둥이만 휘두르면 한국이 별 수 있겠냐면서 비웃고 있는 미국에 언제까지 굽실거릴 것인가. 한 번 봉은 영원한 봉이다. 그러니까 처음에 당당히 버텼어야 하는 것이다.

디지털 통상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7월 1일 미 하원 법사위 공화당 측이 낸 보고서는 한국이 오래전부터 미국계 기업을 규제와 표준, 경쟁법 집행으로 차별해 왔다면서, 온라인 플랫폼법 등 한국의 디지털 규제가 미국 기업의 한국 시장 경쟁을 막는 도구로 쓰이고 있으며, 쿠팡이 대표적인 표적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이 쿠팡에 압박을 가했다고도 비난하고 있다. 이에 한국 외무부와 청와대는 보고서가 쿠팡 측 입장만을 과도하게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하원 공화당 의원들 54명은 지난 4월 공개서한으로 한국을 공격한 바도 있다.

만만한 게 한국이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난 관세협상에서 물러터지게 대처한 결과다. 미국은 물러서면 날뛴다. 구글맵의 지도 데이터 반출, 망 사용료 갈등, 디지털 규제와 온라인 플랫폼법, 그리고 쿠팡 문제까지다. 미국은 이들 별개의 사안들을 하나의 줄기로 엮어서 본다. 한국이 디지털 경제의 틀을 새로 짜는 과정에서 자국 기업에 불리한 판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입장에서 위치정보 반출 제한이나 개인정보 국경 간 이전 규제, 플랫폼 지배력 견제 입법은 모두 ‘비관세장벽’이다. 쿠팡 문제 역시 미국 업체에 대한 ‘차별적 대우’다.

우리의 입법·규제 주권을 미국은 국내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통상 의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 수단이 한미FTA와 무역법 301조다. 미국은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FTA를 들이밀고, 불리할 때는 자국법을 앞세워 협정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미국은 지난 2월 24일부터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대부분의 수입품에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이 조치는 법정 한도인 150일이 끝난 7월 24일 종료되면서 바로 301조에 근거한 ‘강제노동 관세’가 시행됐다. 한국에는 12.5%가 부과됐다. 미국은 법적 수단만 바꿔 광범위한 관세 협박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미국의 협박에 굴복하고만 있을 것인가.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를 145%까지 올리자 125%로 맞대응했고 결국 미국은 제네바 협상에서 대중 관세를 30%로 낮췄다. 인도도 한때 총 50%에 달한 관세 압박을 견뎠고 미국은 올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붙였던 25% 징벌관세를 철회했다. 그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브라질은 지금도 미국의 새 관세에 굴복하기보다 ‘상호주의법’에 따른 대응 절차에 들어갔다. 버틴다고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무릎 꿇으면 반드시 지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협상 무기가 있다. 미국이 3,500억 달러의 한국 투자를 원하는 것은 그 돈과 한국 기업의 기술, 시공, 제조 역량이 미국의 재산업화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2,000억 달러 전략투자의 이행을 중단하고 1,500억 달러 조선협력까지 재검토한다면 미국 역시 대규모 투자와 산업협력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다. 대미투자는 미국이 한국에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미국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른 거래였음을 기억할 일이다. 상대의 필요를 협상력으로 바꾸지 못하고 우리 약점만 보면서 떨고 있다면 처음부터 협상은 접어야 한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하겠다면 대미투자 압박은 정면으로 받아쳐야 한다. 투자사업은 한미 간 협의를 거쳐 선정하고 상업적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못 박아야 한다. 한국의 첨단 메모리 제조기반을 훼손하는 사업이라면 논의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에너지·인프라처럼 한국에도 이익이 되고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사업을 우리가 당당하게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이를 무시하고 관세를 무기로 압박한다면 “투자 패키지 전체를 다시 협상하자”고 말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의 레드라인을 알아야 비로소 협상이 시작된다.

디지털 통상 압박에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구글맵 지도 데이터 반출이든 망 사용료든 온라인 플랫폼법이든 쿠팡에 대한 법 집행이든, 비차별적이고 합리적인 국내법에 근거한 것이라면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301조 관세에는 부당한 한미FTA라도 활용해서 공동위원회 협의, 필요하다면 분쟁절차로 맞서야 한다.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주는 순간 국내법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법으로 전락한다. 그것은 통상 양보가 아니라 입법주권의 포기다. 그런 존재라면 일류 주권국가는커녕 허접스런 나라 축에도 못 낀다.

협의는 하되 한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이 공동 팩트시트와 전략투자 MOU를 한국의 산업정책과 입법권을 좌우하는 백지수표로 끝내 사용하려 한다면 투자 약속의 이행 중단과 공동 팩트시트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 미국만 권리를 누리는 한미FTA 역시 당장 폐기할 일이다. 우리는 미국의 밥이 아니다. 동맹은 굴종이 아니며 통상협상은 충성심을 시험하는 자리도 아니다. ‘숭미의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의심받는 이재명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협상장에서 통상주권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끝.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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