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 사건과 자주민보 폐간 사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3-29 12:31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민족일보 사건과 자주민보 폐간 사건
글쓴이 : 이준영 상임연구원
민족일보 사건과 자주민보 폐간 사건
1961년 쿠데타 직후 일어난 민족일보 폐간사건
독재정권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이나 집단을 용공분자로 몰아 처벌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 풍경이었다. 정권의 정당성이 없는 군사 정권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사법적으로 살해한 것은 당시 활발해자고 있던 혁신계의 통일운동과 민중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은 군부통치에 장애가 되는 저항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력한 처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법적인 장치로 ‘혁명재판’을 도입했다. 혁명재판은 4월혁명 이후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선 혁신계 인사들을 처벌했다. 혁명재판은 혁신정당과 통일운동 단체는 물론, 언론에까지 적용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용소의 민족일보사건이다.
조용수는 언론의 기능이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던 언론인이었다. 그는 4월혁명 이후의 공간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민족통일을 방해하는 장면정권의 사퇴, 평화 통일을 최단 시일 내에 성취할 것 등을 강경하게 주장했다. 또한 민족일보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신문,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이라는 사시(社是)를 들고 민족문제와 노동문제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쿠데타 세력은 1961년 8월 28일 혁명재판을 통해 민족일보 사장이었던 조용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조용수가 일본에 거주하는 간첩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국내 혁신계 인사들과 학생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민족일보를 창간해 각종 논설과 기사 등을 통해 북한과 동일한 주장을 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조용수는 제대로 된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12월 2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민족일보는 폐간되었다.
2015년 자주민보 등록취소 행정심판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를 통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금단의 영역이 되어버린 민족문제에 대해 언론이 사회적인 발언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25일 ‘자주민보 등록취소에 대한 행정심판’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이 자주민보의 등록취소가 적법한 것이라고 최종 판결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재판부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민주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주민보 기사가 국가보안법 상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이적표현물’이라면서 등록취소가 정당한 것이라며 원심의 등록취소 결정을 받아들였다.
자주민보와 각계에서는 이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주민보는 스스로 ‘민족의 통일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언론사’임을 자처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반도와 주변국의 국제정세와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내용의 기사를 발행하는 ‘민족언론’을 자처하고 있다. 자주민보폐간저지범국민대책위는 이번 등록취소 결정이 ‘박근혜 정부의 동족대결성, 반민주성, 반통일성, 반민족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주민보 폐간 규탄 기자회견
자주민보 폐간은 법률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는 판결이다. 폐간의 주요 근거가 된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이라는 판단근거 자체가 매우 모호한 규정이다. ‘이적표현물’은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작성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양태,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을 고려해 전적으로 재판부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문제시 되는 것은 이와 같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법률해석 때문인데, 마찬가지 논리가 이번 판결에도 적용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상 ‘언론의 자유’는 명백히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에만 제약될 수 있다. 그러나 자주민보 폐간의 근거가 된 기사들이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근거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8500여 개의 자주민보 기사들 중 50여 개의 기사만을 가지고 ‘등록취소’ 결정을 내린 것은 과도한 처사다. 문제가 되는 기사들에 대한 정정을 명령하거나, 하다못해 ‘발행정지’와 같은 처분을 내려도 될 일인데 등록자체를 취소해 버린 것은 법률상 비례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자주민보 폐간과 민족일보 사건
자주민보 판결이 민족일보 사건과 비교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법률해석을 바탕으로 헌법 상의 기본권리인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두 신문이 모두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역인 민족문제를 중점적으로 파고들며,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온갖 견해와 주장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왜 유독 민족문제를 이야기하는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만 제약한단 말인가.
자주민보의 기사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사안이지 국가가 나서 기사 몇 개를 가지고 ‘현존하는 체제 전복의 위험’을 운운하며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일은 아니다. 스스로의 정당성이 부족한 정치권력일수록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언론에 극단적인 탄압을 가하게 마련이라는 비판을 박근혜 정권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우리사회연구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