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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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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2-16 10:1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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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죄다

 
살아온 이야기-7
 
 
 
 
 
 
이은영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천시흥김포지부 사무차장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천시흥김포지부 사무차장 이은영 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도서출판 작은책 http://www.sbook.co.kr/ 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_ 편집자 주] 

 

 

스팸 문자를 받았다. ‘피고인 출석 통지서’라는 내용이고, 누르면 인터넷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되어 있었다. 사무실 들어가서 확인하니 야동 사이트였다. 얼마 전에는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았다. 서울 서부지검이라며 내 명의로 ㅇㅇ은행의 대포 통장이 개설되어서 수천 만 원을 대출해서 썼단다. 그 몇 달 전에 쌍용자동차 희망 걷기 관련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서울서부지원은 무죄를 주장하는 내게 결국 벌금형을 선고했었다. 그 통화를 할 때 마침 나는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그 은행에 통장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하세요” 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랬더니 다급하게 일당 중 세 명을 검거했는데, 그들의 가방에서 내 신분증이 나왔다며, 그러면 본인도 모르게 통장 개설이며 대출이 될 수 있는 거라며 통화를 이어 가려 했다. 나는 “그래도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하시라구요” 하며 딱 잘라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도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며 한참을 걱정했다. 안 그래도 경찰, 검찰, 법원 드나드는 일이 많은데, 스팸 문자나, 보이스 피싱 전화도 검찰청 혹은 경찰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다 비슷한가?

 

처음 1997년 국가 보안법으로 구속되었을 때 회사는 ‘이은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참고 자료 제출하라’는 요구에 방대한 양의 자료(전국 및 지역 집회 참여 사진과 비디오, 회사 내에서 있었던 집회 사진과 비디오, 온갖 문서 자료 등)를 제출했다. 홍제동에서는 날 보며 찍혀도 정말 단단히 찍혔다면서,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것까지 엄청 많은 자료를 제출했다.

 

사실 난 초기에는 구속 대상이었지만 조사하고, 미행하다 포기했다고 했다. 그 단체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노조 간부이고, 결정적으로 3교대 근무여서 미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데다 그마저도 출, 퇴근이 들쭉날쭉이어서 미행을 포기한 거란다. 그런데 난 지지리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관재수가 있어서인지 구속 집행 전날 밤 연행 대상에 있던 친구 집에서 술 한잔하고 잤고, 다음 날 아침 그 친구를 잡으려 온 사복들에 의해 함께 연행되었다. 

 

그렇게 구속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가 연행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5개월 26일인가를 살고 나왔다. 나중에 그 단체의 대표는 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단체 대표의 재판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여 항소를 포기했는데, 회원은 유죄를,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은 거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쉽게 항소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뒤로 회사에선 해고되고 여러 가지 문제로 해고 싸움을 포기하고 민주노총 상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 집회든 중앙 집회든 빠지지 않고 가게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집회만 갔다 하면 연행되어 매립지나 허허벌판에 버려지기 일쑤이거나 정부가 벌금을 물리는 정책으로 바꿔서인지 버려지지 않고 툭하면 경찰서 유치장을 드나들게 되었다. 맨날 벌금 맞고 재판하고 이제 전문 시위꾼으로 잡혀 있는 건지 어쩐 건지 연행되지 않아도 나중에 출석요구서가 날아오고 재판을 하고 벌금을 두들겨 맞고 있다. 나 정말 재수가 없는 걸까? 

 

아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강동냉장 앞 광우병소고기 반출 저지 투쟁에서 연행되어 시흥경찰서에서 조사받고 나와 벌금을 250만 원 선고받아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당시 총연맹 부위원장도 100에서 150만 원, 산별 임원도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지역 본부도 아니고 지역 지부 사무차장인 나한테 250만 원이나 때렸다며 분개했다.

 

사람들은 분개하는 날 보며 괘씸죄가 추가된 거라고 했다. 사지가 들려 연행될 때 다수는 그냥 순순히 연행되는데 끝까지 사지를 뒤 틀고 소리소리 지르며 저항하고, 최소한 이름이라도 말하라는데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한 게 괘씸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아무튼 그 재판에서 대부분은 벌금의 감액을 주장했고, 나는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은 3년 가까이 진행되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법정에 올라가기 전에 가방을 검사하는 일로 실랑이를 벌여야 했는데, 한번쯤은 검사를 안 해도 될 듯한데, 한 번도 빠짐없이 검사하면서, 늘 문제되는 여성은 배치하지 않아 대기하고 검사할 여성 담당자를 기다려서 확인받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징글징글하다.

 

어쨌든 그 길고 긴 재판에서 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죄 판결을 받고 내가 긴 시간 고통 받고 재판받으러 다녔으니 국가에 손배소를 청구를 해 보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정신 차리라고 했다. 내가 무죄 판결을 받은 데는 여러 사람의 진술도 있었지만 한 기자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도 판사가 조금은 객관적인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운이 좋았다. 

 

다른 한번은 전국적으로 고소 고발당했던 뉴코아, 이랜드 투쟁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매장 앞 집회나 매장 안 집회를 진행하며 손해 배상 청구는 물론 고소, 고발을 대거 당해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고소 고발을 안 당한 지역이 없었다. 경기 지역도 집중적으로 지원 연대했고 우리 지역에서도 매장 앞 집회 매장 안 집회를 하며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경찰은 그때마다 ‘불법, 연행, 공무집행방해, 현행범’ 등등을 운운하며 협박했다. 그런데 맨날 그 집회를 조직하고 준비하며 사회를 본 나를 포함해서 지역 간부나 활동가들이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대충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했지만, 그건 확실히 아니다. 평소에 결합하지 못했던 단위노조나 단체까지 광범위하게 결합해서 지역에서 모일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이 모여서 연대했으니까.

 

그때 2005년 산재 사망 사건도 있다. 두산위브더스테이트 건설 현장에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회사는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말끔히 치우고 3일이나 지나서 늑장 신고했고, 노동부는 제대로 조사조차 나가지 않았다. 관련해서 노동청 앞 규탄 집회를 하고 고발장인가를 접수하러 들어가려는 대오를 틀어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은 다쳐서 쓰러지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법 질서 운운하는 관료들의 태도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주 강력히 항의하던 한 동지가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우린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에도 노동청에서 노동자만 연행하는 작태에 분노하면서. 그때 정문을 틀어막고 있는 전경들과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고, 단위노조 대표자 중 한 명인 여성 동지가 부상을 입었다. 면회 투쟁이 잘 안 되면서 지역에선 긴급하게 경찰서 앞 규탄 집회를 진행했고, 경찰서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집회에 참가했던 동지들의 분노가 엄청났기 때문에 경찰은 우릴 막지 못했다. 경찰서 앞 천막에서 연대 단위인 노점상에서 밥과 국을 해 와서 나눠 먹으면서 연행 동지 석방을 촉구하며, 면회 투쟁을 이어 갔다. 그때 거제에서 올라온 동지는 지역 대오를 보며 “대오도 얼마 안 되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여성 동지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잘 싸워요? 야! 어떻게 경찰서 정문 앞에 떡하니 천막을 쳐요? 대단해요” 하면서 감탄했다. 그때도 경찰은 온갖 협박을 일삼았다. 그 속에서도 천막을 잘 지켰다. 그런데도 노동부에서 연행된 동지 말고는 경찰서 앞 투쟁 관련해서 처벌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때 여성 동지가 부상을 입은 것 관련해서 사과도 받고 치료비도 받았다. 그땐 그랬다.

 

반면에 올해 초 받은 2012년 쌍용자동차 희망 걷기 관련 재판은 정말 대박이었다. 연행당한 것도 아닌데, 기소되어 한 1년은 경찰서로 검찰로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올해 1월 벌금 고지서를 받아서 재판까지 갔다. 그 재판에서 나는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최후 진술을 짧게 하라는 변호사의 충고가 있었지만, 변호사가 아무런 변호를 하지 않았기에 할 말이 많아 길게 했다. 무죄의 근거로 첫째, 헌법 제21조 집회결사의자유와 유엔 ‘집단살해방지협약’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행동이었기 때

 

문이라고 했다. 2,646명이 해고되고,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더 이상의 죽음을, 살인을 막기 위한 절박하고 처절한 행동이었다고, 더불어 그때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형법 제 835조 일반교통방해죄 적용 관련하여 위헌성이 문제되어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 심판이 제기되어 심리 중에 있는 것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그날 희망걷기는 국회의원들이 경찰서까지 방문해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미신고 불법 집회가 아니고, 그날 참여한 유명 인사, 사회 원로, 방송인 등은 제쳐두고 일반 참가자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형평성, 공정성, 정당성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참가자가 대부분 인도로 행진했고, 교통 정체의 실질적 책임은 경찰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네 번째 이유로 참가자들을 인도로 내몬 건 경찰이고, 그날 집회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경찰은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날 교통 방송에서도 도심 집회를 거론하며 우회를 안내했고 그렇다면 무조건 틀어막으려 하기보다 제대로 안내해서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책임은 경찰이라고, 그런데도 내게 죄를 묻는 건 경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더불어서 교통 정체의 주범은 수도 없이 세워 둔 전경차이고, 경찰 병력이라면서 난 완전 억울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도대체 왜? 집회 행진을 통한 이동의 자유보다 차량을 통한 이동의 자유가 우선이라고 죄를 묻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평등하고 공정한 법집행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죄를 물으려 하기보다 그들이 왜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현명하게 판단해 달라고 했다.  -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출처: 자주민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16 10:15:21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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