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선고 앞둔 이석기의원 항소심, 내란음모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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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10 13:5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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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선고 앞둔 이석기의원 항소심, 내란음모 인정될까?
최지현 기자 cjh@vop.co.kr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항소심이 11일 선고만을 앞두고 있다.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지난 4월 29일 첫 공판을 시작해 결심공판까지 13회의 공판을 열어 증인신문과 피고인 신문, 전문가 의견 진술 등을 진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1심 때와 같은 논리를 내세웠고, 결심공판에서 1심과 동일한 형량을 구형했다.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함께 구속된 이상호·홍순석·조양원·김홍열·김근래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0년을, 한동근 피고인에겐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한 것이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의 법정 안팎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된 이번 사건은 정치적 사건으로 분류되는 만큼, 어떤 선고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5.12 강연’ 녹취록 인정되나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 프락치 A씨의 증언과 함께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볼 수 있는 '5.12 강연' 녹취록이 항소심에서는 1심 때와 다르게 받아들여진 점이 주목된다. 1심 재판부는 재판에서 해당 녹음파일을 청취하는 데 그쳤고, 선고 당시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녹취록을 유죄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법정에서 녹음파일을 재생하는 것을 넘어서 잘 들리지 않는 부분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단, 피고인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절차를 가졌다. 그리고 검찰과 변호인측의 주장을 비교적 균형감있게 반영한 녹취록 검증 조서도 작성했다.
그 결과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의 주요 부분이 잘못 녹취됐음이 드러났다. 이 녹취록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400여 군데가 수정된 상태였는데, 항소심에서 500여 군데가 추가로 수정된 셈이다.
그중 주목되는 부분은 이석기 의원이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어떻게 불렀느냐는 점이었다.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지하혁명조직 ‘RO’존재에 대한 핵심 증거가 되는 부분이었다. 검찰은 ‘5.10 모임’ 당시 이 의원이 모임에 늦게 도착한 김 부위원장을 “김근래 지휘원”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지만, 변호인단은 ‘지휘원'으로 부른 적도 없으며 그렇게 부를 이유도 없었다며 “김근래 지금 오나”라고 들린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직접 들어보면 선명히 들린다”, “‘지휘원’이라는 호칭에서 ‘RO’가 고유의 지휘 체계를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모두 별도의 ‘검증조서’에 병기하기로 했다. 사실상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이 외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결전 성지’를 ‘절두산 성지’로 수정했다. 분반토론에서 나온 ‘총기 구입 방법’ 등 다소 과격한 표현에 대해서도 녹취록에선 빠져있던 “농담”이었다는 표현을 살리는 등 맥락을 분명히 해 의미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재판부는 내란음모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겼다. 재판부는 “어떤 단어가 어떻게 들리느냐를 놓고 유무죄가 갈리는 것은 아니”라며 전체적인 맥락 위에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들이 29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첫 항소심 공판에서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내란음모 법적 구성요건 충족되나
1심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내란음모의 법적 구성요건이 항소심에선 비중있게 다뤄진 점도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을 앞두고 별도의 공판을 열어 내란음모와 관련해 검찰과 변호인의 법리를 청취했다. 내란음모 법적 구성요건의 핵심은 주체와 국헌문란의 목적, 합의, 실질적 위험성 등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항소심에서 1심과 사실상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다. 검찰은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이번 사건 피고인들이 주체사상과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추종하는 혁명조직 ‘RO’를 결성해 활동해 왔으며, 따라서 국헌문란의 목적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예비적 주장을 펼치며 검찰의 논리를 공박했다. 일단 변호인단은 내란음모의 주체와 관련 검찰이 ‘RO’를 반국가단체로 기소하지도 않았으면서 각 구성요건의 정황 증거로 ‘RO’를 활용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엄격한 (주체) 증명을 회피하는 편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이 내란죄의 주체는 ‘어느 정도 조직화된 다수인’이라는 점에 대해 ‘2인 이상의 통모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했지만, 변호인단은 폭동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돼야 하는데 검찰이 ‘RO’라고 주장한 ‘5.12 강연’ 참석자들만 보더라도 그럴 영향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북한의 대남혁명론이란 결국 한국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따로 국헌문란의 목적을 따질 이유가 없다는 검찰의 논리에 대해, 변호인단은 “(5.12 강연 때) ‘합의’ 입증을 피하기 위한 궤변”이라고 반박했다. 또 국헌문란의 목적 역시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김재규 내란사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내란음모가 성립되려면 적어도 ‘혁명위원회’를 꾸려 권력을 장악한다거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중요한 시책을 시행하는 정도의 구체적인 계획이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의 수단(폭동)이 검찰이 말하는 목적(국헌문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의 주장대로 피고인들이 국가기간 시설 파괴 등을 모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국가 기본조직’이 아닐뿐더러, 설사 폭동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남침’이라는 상황이 없다면 국헌문란이란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변호인단은 “이러한 경우라면 피고인들의 행위는 내란죄의 방조를 음모한 것으로서 죄가 되지 않거나 (형법상) 여적죄의 음모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변호인단은 피고인들과 북한의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검사가 주장하는 북한과의 공동전선 형성을 전제로 한 게릴라전 형태의 후방교란은 텔레파시류의 공상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실현가능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실질적(구체적) 위험성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란음모의 구체성이 인정되려면 합의의 내용에 범조실행의 장소·대상, 수단·방법, 역할분담, 준비행위 중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돼야 한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이러한 구체적 내용이 검찰의 공소사실엔 없을 뿐더러 “검사가 들고 있는 위험성은 ‘합의’의 위험성이 아니라 ‘폭동실행의 결과’에 따른 위험성(법인침해의 중대성)이므로 합의의 실질적 위험성 요건에서 고려될 바가 못 된다”고 꼬집었다.
‘내란음모’ 사건은 1987년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판례가 거의 없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는 어떤 식으로든 내란음모 부분과 관련해 정교한 법리를 기초로 두고 판결문을 쓸 것으로 전망된다.
달라진 법정 밖 분위기, 재판에 영향 끼치나
달라진 법정 밖 분위기도 항소심 판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기본적으로 형사 사건은 유무죄 판단에서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1심 판결이 내려진 올해 초와 달리 항소심 선고를 앞둔 현재 박근혜 정권의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상태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을 기점으로 박근혜 정권은 정국 주도력을 잃었고,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청와대 책임론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비박’을 표방한 김무성 대표 체제로 바뀐 점도 현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대응도 1심 때보다 활발해졌다. 작년 8월 말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통합진보당이나 이석기 의원과 거리를 두려했던 시민사회는 작년 말을 경과하면서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를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는 양상이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구속자 가족 접견을 시작으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 4대 종단의 최고 성직자들이 한꺼번에 선처를 탄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주목된다.
국제사회도 이번 사건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잉에회거 독일 연방의회 의원은 이석기 의원을 직접 면회한 데 이어 선고 하루 전인 10일 항소심 재판부에 무죄 판결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외 국내 안팎으로 정치·사회 주요 인사들이 계속해서 탄원에 동참하고 있다.
내란음모 인정 여부에 따라 형량 요동칠 듯
항소심 재판부의 내란음모 인정 여부에 따라 피고인들의 형량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마찬가지로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이적동조 혐의를 모두 인정할 경우 피고인들에게는 중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음모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만 규정되어 있을 뿐 상한선이 정해져있지 않다. 유기징역의 상한을 30년으로 볼 때 검찰이 구형한 징역 20년은 법정 최고형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만이라도 무죄로 판단한다면 형량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내란선동 역시 내란음모와 마찬가지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으로 정해져있어 중형이 내려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혐의였던 내란음모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형량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검찰은 내란음모가 입증되면 내란선동 또한 입증되기 때문에 내란선동에 대해서는 별도로 입증하는데 주력하지 않았다. 반면 변호인단은 내란선동은 “선동의 대상자들이 내란행위에 나아갈 수 있는 정도의 실행계획과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선동을 했을 때 성립한다”면서 검찰의 입증 부족을 지적하며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뿐만 아니라 내란선동 역시 무죄로 판단할 경우 집행유예형의 선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동조만 남게 되는데, 최근 들어 법원은 이적동조 혐의에 대해선 집행유예형을 선고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내란음모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에 대한 심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통합진보당에 대한 무리한 ‘종북몰이’ 사건이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며, 따라서 박근혜 정권도 큰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구속자 무죄석방 촉구 민주찾기 대행진'에 참가한 구속자 가족들이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20년을 구형받은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통합진보당이 규탄대회를 열고 이석기 의원과 구속자들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