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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의혹] 세월호의 수상한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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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19 01: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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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의혹] 세월호의 수상한 선원들

2014년 7월 18일 글쓴이 : 곽동기 상임연구원 | 

 

4월 16일 아침,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우리 국민들이 제일 먼저 성토하였던 대상은 세월호의 승무원들이었다. 고 박지영씨를 비롯한 여객실 승무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구조에 나섰지만 선장과 항해사 등 조타실 선원들과 기관실 선원들 15명은 승객대피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 세월호에서 탈출하기 바빴다. 그 결과 300여명의 생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세월호가 기울어져 정상 항해가 불가능해 진 것이 8시 48분이며 해경 고무보트로 기관실 선원들이 탈출한 것이 9시 35분이다. 이후 해경 123정이 조타실에 접안해 선장과 1등 항해사 등이 탈출한 시각이 9시 46분이다. 배가 기울고 선장이 탈출하기까지 무려 58분의 시간이 있었다는 셈이다. 이 58분 동안, 15명의 선원들 중 그 누구도 470명의 “탑승객 대피”를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선원들은 “승객대피”를 생각했지만, 대피조치를 할 수 없었던가, 아니면 애당초 대피조치를 안 하기로 작정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세월호 선원들을 살펴보자

 

허겁지겁 빠져나간 이준석 선장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책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선장은 배 운항의 모든 책임을 지며 승객과 선원에 대해 퇴선을 명령할 권한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세월호의 본 선장이 아니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이 휴가를 간 사이 대체인력으로 선장일을 보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준석 선장은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승객들이 남아 있는데도 왜 먼저 탈출했느냐”는 추궁에 “구명선이 왔고, 배가 기울어져 있는 상태여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관련 영상자료를 보면 세월호가 이미 많이 기운 상황에서도 해경이 조타실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배가 기울어서 선내방송을 할 수 없었다는 선장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준석 선장은 사전구속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승객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신은 대피명령을 했으니 명령을 집행하지 않은 선원들이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승객대피명령을 내렸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준석 선장은 출항 이전부터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고발뉴스>는 세월호가 출항하기 직전, 세월호 선원들이 출항하지 말자고 선장에게 애걸복걸하였다는 청해진해운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하였다. “가지 말자. 우리. 저기 저 3등 항해사하고 또 3등 기관사인가 있죠? 그분들 위시해가지고 몇 명이 가지 말자고 그렇게 애걸복걸 했는데.”라고 했는데 이준석 선장이 “가야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고발뉴스> 취재에 응한 청해진 해운 관계자는 “출발 때부터 해가지고 이준석 선장이 이상하게 평소에 하지 않는 그런 행동거지가 몇 가지가 있거든 지금”이라고 하며 “나도 그래서 그 사람이, 나는 그래서 뭔가를 이 양반이 약을 먹었나? 아니면 술을 엄청 마셨거나”라고 하였다.

 

대형 여객선이 출항을 앞둔 시점에서 이준석 선장이 운항 전에 청해진 해운으로부터 이번 항해를 잘 부탁한다는 식의 술자리 향응을 제공받았다면, 선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가야한다고 말했을 수 있다. 그가 만취한 상황이었다면 선장의 미심쩍은 언행과 선원들의 애걸복걸 정황이 상당부분 설명된다.

 

하지만 이준석 선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 가운데 결정적 의혹은, 선장이 어떻게 승객에 앞서 제일 먼저 탈출할 수 있었나 하는 점이다. 이준석 선장과 1등 항해사들은 해경123정이 직접 배를 접안시켜서 탈출시켰다. 해경 123정은 왜 선미의 승객 출입구가 아닌 선체 가운데의 조타실로 배를 접안시켰는지, 그래서 왜 승객이 아닌 선원들을 먼저 구조하였는지 밝혀져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준석 선장은 바지도 입지 않은 채로 탈출해 구설수에 올랐다. 사고당시 선장이 침실에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상황이었는지 파악되어야 한다.

 

탈출 이후에도 이준석 선장의 행방은 미심쩍기만 하다. 선장은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이전에 목포 박모 경사의 자택에 거주하였는데 이 또한 석연치 않다. 초대형 참사의 유력한 피의자가 경찰서 유치장이 아니라 경찰의 자택에서 숙식을 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이준석 선장이 기거하던 시각대에 목포 박모경사의 아파트 CCTV가 두 시간 가량 삭제되었다는 소식이 퍼져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누군가 그 시간대에 아파트를 찾아왔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CCTV를 지웠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KBS>가 인터뷰한 전 청해진해운 직원은 이준석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 90%가 대한예수교침례회(구원파)라고 하였다. "90% 이상이 (신도라고) 볼 수 있다. 구원파 신도가 아니더라도 교육 등을 통해서 신도로 만든다"며 "이준석 선장 같은 경우는 원래는 부인이 신도였다. (본인은) 절실하지 않았는데, 해운사 들어와서 집회도 참석하고 좀 신실해졌다"라고 밝혔다.

 

정체불명의 1등 항해사

 

또한 세월호의 운항을 책임지는 1등 항해사도 의혹투성이긴 마찬가지다.

 

1등 항해사 신정훈은 사고 전날, 세월호에 입사하였으며 34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사 당일에 1등 항해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소지한 항해사 자격증은 애당초 '3급항해사'에 불과한 것이어서 7천톤급 세월호의 1등 항해사가 될 수 없는 자격 미달이었다. 

 

 

 


입사 첫날이면 업무 파악도 힘들텐데 그에게 맡겨진 보직은 '세월호의 화물 탑재와 운항을 관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조치이다.

 

게다가 항해사 신씨는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초기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언론발언을 하였다. 4월 22일 승객을 방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 씨는 "(세월호는) 복원력이 없는 배였다"며 "불법증축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복원력은 선박이 한쪽 방향으로 기울었을 때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을 말한다.

 

이어 그는 "항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조타기가 고장났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입사한 지 하루밖에 안 된 항해사가 어떻게 배의 고질적 결함을 알고 있었을까? 특히나 1등 항해사가 사고원인을 항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사고초기, 검찰이 언급한 세월호 침몰원인을 한 마디로 정리해 준 것이다.

 

그러한 공적을 인정받아서였을까, 그는 선원 가운데 지도적 직책인 1등 항해사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되는 “화물탑재와 운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씨는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다.

 

1등 항해사가 살인죄 기소를 면하자, 인터넷에는 이와 관련한 무수한 가설이 떠돌았다. 가장 대표적 의혹이 신 씨가 국정원 소속 요원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신 씨와 관련한 어떠한 신상정보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선박운항과 관련된 경력이 전무한 인물이라는데 주목했다. 심지어 그의 주소지 또한 매우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1등 항해사 강씨 역시 납득이 안 가기는 매 한가지이다. 세월호 침몰 당시, 그는 해경123정이 도착해 선원들이 탈출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통화하는 모습이 수 차례에 걸쳐 영상에 찍혔다. 심지어 그는 해경123정으로 옮겨 탄 뒤에도 승객의 구조는 돕지 않은 채 핸드폰 통화를 하기에 바빴다. 이들은 세월호 사고 이후, 청해진 해운 측과 전화통화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통화대상이 해운사 이외에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정홍원 국무총리는 5월 20일, 국회 질의에서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선원으로부터 사고보고를 받았다고 언급하였다.

 

내부 폭발설을 불러일으켰던 오렌지맨

 

세월호에서 가장 커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은 바로 오렌지색의 방화복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고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였던 선원이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일명 “오렌지맨”이란 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 자는 입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는 비니모자를 착용해 얼굴이 누군지 쉽게 알아보기 힘든 채로 구조되었다. 

 

 

 

해경 123정이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시도한 엉뚱한 일이 고무보트를 보내 세월호 중간지점에서 기관실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구조영상을 보면 난간 한 쪽에,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렌지색 리본이 묶여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해경 고무보트는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접안해서 기관실 선원들을 구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경은 오렌지색 복장의 남성이 구조되는 장면만 삭제한 채 그 앞부분과 뒷부분 영상만을 공개해 의혹을 부채질 하였다.

 

이 남성은 이후 해경 배에서 내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공개되었다. 이 자는 세월호 조기장이었던 전영준씨였다. <jtbc>는 조기장을 두고 선박의 사고와 안전, 선내문제를 책임적으로 처리하는 직위로 기관실의 기관원과 조기수를 관리·감독하며 선박에 생긴 문제를 1등 기관사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도하였다.

 

이 전영준 씨 역시 신정훈 1등 항해사와 마찬가지로 사고 전날 청해진 해운에 입사해 세월호에 처음으로 탑승한 인물이다. 전영준 씨는 심지어 고용계약서를 세월호를 타고 제주에 내려가서 작성하기로 하고 세월호에 탑승해 청해진 해운과는 정식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선박의 사고와 안전, 선내문제를 책임지는 조기장이 오렌지색의 내화복처럼 생긴 작업복을 입고 제일 먼저 구조되었는데 해경의 고무보트가 마치도 이를 기다렸다가 데리고 나온 듯 하자 수많은 누리꾼들이 조기장이 세월호 선내에서 폭발작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분명한 사실은 세월호 선원들은 선장이 대체인력이었고 1등 항해사와 조기장이 사고 전날 입사한 인물로 채워진 매우 미심쩍은 인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세월호가 이상이 생긴 이후 침몰하는 58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승객을 대피시킬 수 있는 어떠한 책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내방송에는 “가만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되었다.

 

선장은 조류가 빨라 승객들이 바다에 표류할 수 있어서 퇴선 명령을 주저하였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60세가 넘도록 여객선을 운항했던 뱃사람이, 자신은 바지도 채 갖춰입지 못한 채 급하게 배에서 도망치면서도 배 안에 남아있는 승객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선원들은 승객 대피명령을 깜빡 잊고 못한 것인가, 아예 작정하고 안 한 것인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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