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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세월호 구조, 안 했나 못 했나 2. 군은 구조로부터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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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15 09: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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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세월호 구조, 안 했나 못 했나 2.  

군은 구조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사회연구소 

 

① 본험 리처드호는 무엇을 하였나

 

세월호 구조와 관련해 해경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해경만 문제였을까? 해경과 함께 구조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군, 특히 해군은 과연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한국군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사고 직후 구조 지원에 나섰던 미군부터 살펴보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미군이 본험 리처드호라는 대형 헬기 항공모함을 투입하겠다고 하자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미군은 별다른 구조작업 없이 철수해버리고 말았다. 일부 언론은 한국군의 거부로 미군이 철수했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이번 구조 지원에 나선 본험 리처드호는 어떤 함정인지 살펴보자.

 

본험 리처드호(LHD-6)는 1998년 8월 취역한 미 해군의 와스프(Wasp)급 다목적 상륙강습함이다. 모항은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항이며 오키나와 주둔 미군 제3해병원정군(MEF) 산하 해병대원들을 상륙작전에 투입시키는 게 주 임무다. 헬기 여러 대가 동시에 이착륙할 수 있는 대형 비행갑판을 갖춘 헬기 항공모함으로 수송용 대형헬기 시나이트(CH-46) 42대, 대잠헬기 시호크(MH-60) 6대, 수직이착륙기 해리어(AV-8B) 5대,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MV-22)를 탑재했다. 승조원은 장교 104명, 사병 1004명이며 1894명 해병대원이 탑승 가능하다. 또 의료 시설이 있어 응급환자 긴급 구호도 가능하다.

 

[사진1] 2014 쌍용훈련에 참가해 포항 앞바다에 나타난 본험 리처드호

 

본험 리처드호는 세월호 참사 직후 사건 현장에 출동한 가장 큰 함정으로 헬기도 많이 보유했고 의료시설까지 있어 구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험 리처드호는 세월호 구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본험 리처드호는 왜 거기에 있었나

 

그렇다면 사고 당시 본험 리처드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일단 본험 리처드호는 3월 27일부터 2014 한미연합 쌍용훈련에 참가했다. 제주 남쪽 해상에서 시작해 포항에서 대규모 상륙훈련을 진행하는 게 쌍용훈련의 주요 골자다. 이 훈련은 4월 7일 끝났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사세보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당시 본험 리처드호는 서해에 있었다.

 

사고 당시 본험 리처드호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처음에 “한반도 서해상”에 있었다고 했다가 세월호 참사와 한미연합훈련 관련설이 나오자 20일 “약 155km 떨어진 공해상에 있었다”고 밝혔다. 4월 16일자 라디오코리아도 “사고 지점 북서쪽 155km 해상”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고 지점에서 북서쪽 155km 해상이면 공해상이 맞다.

 

그런데 4월 16일 성조(Stars and Stripes)지는 알로 아브라함슨(Arlo Abrahamson) 주한미해군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본험 리처드호가 사고 당시 100~115해리(약 200km 안팎)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서쪽으로 200km면 대략 군산 앞바다까지의 거리다. 군산 앞바다는 세월호 경로 가운데 유일하게 공해상을 지나는 경로다. 세월호가 군산 앞바다 공해상을 지났을 새벽 2~5시 사이에 본험 리처드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두 배가 서로 만나거나 근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진2] 본험 리처드호 사고 발생 당시 위치

 

그렇다면 본험 리처드호는 서해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민석 대변인은 16일 “정기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성조지도 “일상적인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4월 25일자 아주경제도 “통상적인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모항으로 하며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대형 상륙강습함이 왜 서해에서 순찰을 하는지 의문이다. 본험 리처드호에는 대잠헬기 시호크가 있기에 잠수함 수색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단순 순찰 활동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다. 성조지는 17일자 보도에서 “일상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고 했다. 물론 순찰 활동을 작전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4월 16일 라디오코리아는 “자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여러 언론들도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무슨 훈련이었을까?

 

김민석 대변인은 20일 “사고 해역은 훈련을 위한 항행금지 구역으로 선포되지 않았고 인근 해상에서 어떠한 연합해상훈련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본험 리처드호는 한국군 없이 미군 단독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16일에는 두 개의 한미연합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한미연합 공군훈련 맥스선더(Max Thunder)로 11~25일 한반도 상공 전역에서 진행하였다. 이 훈련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3대의 항공기가 참가했고 미군은 공군과 해병대가 참가했다. 다른 하나는 한미연합 공군 전투탐색구조훈련 퍼시픽선더(Pacific Thunder)로 14~18일 오산기지, 강원도 태백 지역 등에서 진행했다.

 

물론 두 훈련은 공군 위주의 훈련으로 본험 리처드호가 참가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두 훈련에 동원된 전투기, 헬기 가운데 본험 리처드호에 탑재된 기종도 없었다. 하지만 본험 리처드호가 두 훈련을 위한 지원 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은 있다. 특이한 사실은 4월 16일 성조지가 본험 리처드호는 4월 15~18일 서해에서 해상 작전을 실시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한 점이다. 퍼시픽선더 훈련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기간에 어떤 작전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16일 오전 8~9시에는 세월호 이동 경로에서 여러 사격훈련도 예정되어 있었다.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항행경보에 따르면 ▲가덕도부근(R-124) 해군 사격훈련 ▲격렬비열도 남서방(R-80) 공군 사격훈련 ▲안마도 북서근해(R-123) 해군 사격훈련 ▲임자도 서방근해(R-84) 공군 사격훈련 등이 예정되어 있었다. (괄호 안의 코드는 첨부한 ‘한국연안 해상사격훈련 구역도’를 참조하라.)

 

[사진3] 한국연안 해상사격훈련 구역도

 

물론 이 훈련들이 진행되는 구역 인근을 세월호가 통과한 시점은 16일 새벽이었다. 하지만 훈련을 앞두고 미리 적군 잠수함이 침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본험 리처드호가 새벽에 사전 잠수함 수색작업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본험 리처드호가 16일 오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 그것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다.

 

왜 본험 리처드호를 그냥 돌려보냈나

 

이제 본격적으로 본험 리처드호의 수색 과정을 살펴보자.

 

김민석 대변인은 16일 “미국 7함대는 한국 해군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18일에는 “16일 오전 11시 사고해역에서 155km 떨어진 곳에 있던 미군 상륙함 본홈 리처드에 협조를 요청했다”고도 했다. 17일자 성조지 보도에도 아브라함슨 대변인이 “한국의 요청에 따라” 수색 지원을 했다는 발언이 나온다. 따라서 본험 리처드호의 수색 지원은 한국군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7일자 성조지 보도에 따르면 본험 리처드호는 지원 요청을 받고 곧바로 전속력으로 사고 해역으로 향했으며 구명정을 실은 두 대의 시호크 헬기를 띄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 헬기들은 한국군의 요청으로 되돌아갔다.

 

김민석 대변인은 18일 “사고 현장에는 공군의 C-130 수송기를 비롯한 다수의 구조헬기가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서는 미군 헬기의 역할이 많지 않아 일단 복귀하도록 하고 추가로 임무를 주겠다고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16일자 성조지는 “익명을 요구한 한국 해군 관리는 미군의 추가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했다. 아브라함슨 대변인은 “한국과 논의를 했고 요청이 오면 지원하기 위해 대기중이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한국군이 먼저 지원 요청을 하고서 정작 헬기가 도착하자 할 일이 없다며 되돌려 보낸 것이다. 물론 11시 18분 경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면서 시호크 헬기가 할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군 구조헬기를 충분히 운영하고 있었기에 돌려보냈다는 발표와 모순이 된다. 한국군이 수색·구조 작업을 충분히 잘 하고 있었다면 미군의 지원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군은 해경과 함께 세월호 완전히 침몰한 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지 못했다.

 

본험 리처드호는 다음날인 17일 오전에도 시호크 헬기 두 대를 투입해 생존자 수색에 나섰다. 아브라함슨 대변인은 한국의 요청에 따라 사고 지점에서 약 5~15해리(9~28km) 떨어진 구역을 수색했다고 하면서 왜 그 구역 수색을 요청했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아마도 조류에 떠내려간 생존자를 수색한 것으로 보인다. 대잠헬기인 시호크를 동원했다고 해서 잠수함을 수색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결국 본험 리처드호는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세월호 참사 지점에서 약 20~25해리(37~46km) 떨어진 곳에 머물다가 22일 진도 해역을 떠난다. 미 해군 7함대 공보실은 4월 23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이 보유한 선박과 항공기 등 현재 자원을 활용하면 수색 및 구조 작업을 하는데 충분하다는 한국군 지휘부의 결정에 따라 본험 리처드호가 탐색구조 임무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밝혔다. 대체 한국군 지휘부 누가 한국 자체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을까?

 

본험 리처드호 수색 지원 과정에서 드는 의혹의 핵심은 왜 지원 요청을 하고서 그냥 돌려 보냈는지다.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 측은 본험 리처드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해 시간만 보내다가 주변 해역 수색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변 해역 수색도 필요하지만 당시 가장 시급한 것은 침몰하는 세월호에 탑승한 수백 명의 승객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그냥 우왕좌왕하면서 어쩔 줄 몰라 돌려보낸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 날은 공교롭게도 한미연합 공군 전투탐색구조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날이었다. 매년 퍼시픽선더니 사렉스(SAREX:한미일 합동해상구조훈련)니 하는 탐색구조훈련을 하면서 정작 구조를 해야 하는 실제 상황이 되면 아무런 판단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이유가 뭔가. 훈련을 잘못 해서인가, 한국군의 수준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밝혀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출처: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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