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일심회 간첩단 사건에 연루,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최기영 씨가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재수감, 노역형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형을 살고 나온 이들이 출소 후에는 '보안관찰법'이라는 또 다른 법에 따라 '잠재적' 범죄자의 처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보안관찰법 대상자는 2천여 명으로 이 중 40여 명이 피보안관찰자로 선정, 국가의 감시 속에 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아우 격인 제2의 악법이라고 불리는 '보안관찰법'은 어떤 내용이고 이들의 삶은 어떠한가.
'사회안전법'의 대를 이은 '보안관찰법'
보안관찰법은 유신시대인 1975년 제정된 사회안전법을 대체해, 1989년 제정됐다. 사회안전법은 크게 보안감호처분, 주거제한처분, 보호관찰처분을 지녔는데, 이 중 인신을 구속하는 보안감호처분과 사실상 기능과 효과 면에서 유명무실했던 주거제한처분을 폐지하는 대신 보호관찰처분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었다.
보안관찰법은 '특정범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건전한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보안관찰처분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특정범죄는 내란목적살인죄 등 내란과 관련한 형법, 쿠데타 등 군형법, 국가보안법 위반을 대상으로 하며, 형기 합계가 3년 이상인 자 혹은 일부 집행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를 '보안관찰처분대상자'로 선정한다.
즉, 내란죄나 국가보안법 등을 어긴 이들은 출소 후 자동으로 보안관찰처분대상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안관찰대상자가 되었다고 모두가 보안관찰법상 피보안관찰자로 집중 관찰 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재범의 방지를 위한 관찰이 필요한 자가 피보안관찰자로 선정된다.
피보안관찰자로 선정되면, 보안관찰처분결정을 고지받은 때에 주거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자신의 위치를 신고해야 한다. 또한, 매 3개월 마다 그리고 주거지를 이전할 경우, 또한 해외여행, 혹은 10일 이산 주거를 이탈해 여행하려면 관련 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심지어 가족, 교우관계, 재산상황, 직업, 학력, 경력, 종교 및 가입한 단체까지 신고항목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관할 경찰서장은 보안관찰부를 작성.비치해 매월 1회 이상 피보안관찰자의 동태를 관찰해 그 결과를 기재해야 한다.
이를 두고, 창살만 없지 감옥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피보안관찰자는 영원히 낙인을 찍히고 살아야 하는가. 법에 따르면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심사를 2년 마다 받아야 한다. 해당 위원회에서 피보안관찰자를 보안관찰대상자로 분류하거나 다시 피보안관찰자로 선정할 수 있다. 2년마다 자신의 신분이 국가에 의해 심의.결정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보안관찰대상자가 다시 피보안관찰자로 분류될 수도 있어, 2천여 명의 보안관찰대상자 모두가 언젠가 피보안관찰자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보안관찰법망을 피해갈 수 없는 이들이 2천여 명이나 된다고 할 수 있다.
'피보안관찰자'가 보안관찰법에서 면제되는 방법이 있다. 법령에 따라 △준법정신이 확립되어있고, △일정한 주거와 생업이 있으며, △대통령령이 정하는 신원보증이 있다면, 보안관찰법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주거와 생업이 있고 신원보증까지 받는다고 하더라도 해당 인물의 준법정신 확립 여부는 사상검증에 해당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국가기관 판단에 맡겨야 하므로 사실상 '보안관찰법'에서의 해방은, 시쳇말로 '죽어야 끝난다'.
'창살 없는 감옥' 피보안관찰자들의 삶
2002년 작성된 국가인권위원회의 '보안관찰대상자 인권 침해 실태'를 통해 피보안관찰대상자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출소 직후부터 경찰들이 1달에 1~3번 정도 담당 경찰관이 집으로 찾아와 신고하라며 "출소신고를 거부하고 검찰의 출석요구에도 불응하는 등 협조적이지 않으면 불리할 줄 알아라. 다른 대상자들은 다 신고했는데 왜 당신만 특별하게 구느냐.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하나 없다"는 등의 고압적인 자세로 대했다. 그래도 출소신고를 하지 않으니까 1차례의 경고장을 보내왔으며, 며칠 후에는 3명의 형사가 타자기를 들고 집으로 찾아와 신고양식서 작성을 요구했다. -7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8년 출소.
출소한 지 1년 1개월이 지난 후, 출소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집 앞에서 11시가 넘은 늦은 밤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작은 체구의 여성인 나 한 사람을 붙잡으려고 형사 두 명이 양팔을 붙들고 이웃들이 다 보는 데서 경찰서로 끌고 갔다.-3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8년 출소.
출소신고를 거부하고 있을 때, 여권신청을 한 적이 있는데 거부당했다. 그래서 외교통상부에 왜 여권신청이 안 되는지 이유를 물으니, 검찰에서 출국금지 신청을 해놓았다고 했다. 검찰에서는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불이행으로 재판 중이라서 불허됐다"고 했다. 그러나 신고의무 불이행의 최고형은 벌금 100만 원 또는 2년 이하의 징역밖에 안 되는데, 이 건으로 출국금지를 하는 것은 결국 정치보복의 성격을 갖는 과잉한 처사라고 생각한다.-4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9년 출소.
출소 후 목장에 가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가량 되었을 때, 담당 형사가 목장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경찰이 목장 주인에게 "이 사람은 사상이 불순하고, 독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서 쫓겨난 적이 있다.-7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85년 출소.
담당 경찰이 내가 출소한 직후에 장인어른을 만나 내 상황을 다 이야기해서 처가댁으로부터 부인과 이혼을 요구받았으며, 결국 부인과 서류상 이혼을 한 적이 있다.-5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86년 출소.
한 번은 담당 경찰이 언니집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 "O동 O호에 보안관찰자가 있으니 주시해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형부와 언니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경찰이 자꾸 찾아와서 내가 거기에 머물기가 곤란했다.-4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7년 출소.
이 뿐만 아니라 피보안관찰자 재심 당시 보안관찰심의위원회에 작성된 내용은 피보안관찰자의 사상을 사전에 재단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음은 보안관찰처분 결정 내용이다.
"현 거주지는 민가와 떨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고 경북 OO소재 OO자연휴양림에서 강원도 OO방면으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간첩 접선 및 침투 간첩 은신, 우회침투, 간첩 거점 화보 등이 용이하고.."-6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8년 출소.
"부 OO이 여순반란 사건에 가담하여 처형당하고, 형이 일본 거주 중 자진 월북하는 등 연고관계도 불량하며.."-50대 초반, 보안법 위반, 1991년 출소.
이는 2002년에 작성된 보고서로 현재 상황과 다소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기영 씨의 사례에서 보면 피보안관찰자들의 삶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기영 씨 부인에 따르면, 최 씨는 출소 후 피보안관찰처분자로 선정, 거주지 신고 등의 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최 씨에게 검찰은 100만 원의 벌금을 내렸고, 이후 소송을 통해 벌금 80만 원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하자, 검찰은 통장계좌를 압류하고 끊임없이 출두명령을 했고, 이후 경찰에 소환, 현재 약 16일의 노역처분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회사 근처에서 강제연행하거나, 강압 속에서 벌금을 내야 했던 사례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피보안관찰자들이 경찰의 감시 속에 살고 있다.
사회안전법의 대표적 희생자이자 보안관찰법 폐지를 주장했던 서준식 씨가 <한겨레>(1989.8.30)에 기고한 글은 '보안관찰법'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득한 옛날 사건을 다시 문제 삼아 그 사람의 속마음을 법관도 아닌 사람이 심판하고 일제시대나 다름없는 형태로 경찰감시 밑에 두는 것이 폐지된 사회안전법상의 보호관찰처분인데 이에 더해 보안관찰법은 새로 번듯한 벌칙규정까지 두어가며 국민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아니 더 기본적인 사람을 만날 권리마저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엄청난 전쟁과 오랜 독재정치를 겪어온 이 불행한 나라에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선량한 사람들 투성이다"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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