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의 최초의 역사적 합의인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도 벌써 42년. 그러나 이산가족의 눈물은 아직도 닦여지지 않았다. 아니, 이산의 고통과 아픔은 나날이 더해만 가고 고령의 1세대들이 한을 품은 채 한분두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에 눈길을 돌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고통과 아픔이야말로 분단사회의 비인간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만 있으라"는 기성세대의 폭력이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60여년을 "기다리라"는 한마디에 짓눌려 천형을 살다 끝내 눈을 감는 이산 1세대들의 서글픈 현실에 이제라도 우리사회가 눈을 돌려야 한다.
기막힌 분단의 고통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속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편집자 주
(1)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는 말하련다"
(2) '완전한 만남'을 기다리며
(3) "한 밥상에 같이 둘러앉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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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 이산가족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안고 있다. 1천만 이산가족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19차례 이산가족 상봉행사로 만난 가족은 1만 8천799명에 불과하다.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들의 사연을 듣고 싶었지만, 하나같이 '단장'의 고통을 꺼내기가 힘들어 만남을 주저했다.
지난 설계기 이산가족 상봉 1차 상봉단 중 최고령자로 북녘의 아들 강정국 씨와 누님의 딸인 홍순화 씨를 만난 강능환 할아버지(93세)를 겨우 설득해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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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계기 이산가족상봉행사 1차 상봉단 중 최고령자였던 강능환 할아버지(93세).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인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1921년 '구월산 호랑이'로 유명한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난 강능환 할아버지는 다복한 유지의 집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을 하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임신 4개월의 아내와 3~4일 뒤면 만날 생각에 헤어졌다. 하지만 북녘의 아내와 배 속의 아이를 만나지 못한 단장의 세월은 60여 년이 흘렀다.
생이별할 수밖에 없던 할아버지는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알 수 없었고, 남쪽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뤘지만,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설계기 이산가족상봉 대상자로 선정,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결혼하고 설라무네 4개월 만에 나왔는데, 아들인지 뭔지도 몰랐지. 결혼하고 나온 해에 임신했으니까. 말하자면 첫째아들이지. 뭐 소감을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내 고향이 황해도 신천군인데. 거기서 농사짓고 산다더라고. 아들이. 제 고향 땅에서 그대로 농사를 짓고 사는 거죠. 거기서 결혼해서 지금 1남 1녀를 뒀데. 얼마나 기쁜지 몰라"
얼굴도 모르던 아비의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아들. 60여 년 만에 만난 강능환, 정국 부자의 모습은 똑 닮아 있었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구나. 피는 같은 흐름이 분명하더라고. 인상도 비슷하고. 그래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죠. 100%보다는 80% 알아보겠더라고. 내 혈 속이 분명하다"며 자신과 닮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강 할아버지는 연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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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능환 할아버지가 북녘의 아들 정국 씨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아비 없다고 손가락질받았을까 걱정하던 할아버지는 처음 만난 62살의 아들에게 밥을 떠먹여 줬다. 자식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모습이 세상 최고의 행복이라는 이 땅 아버지의 심정이 그러하지 않을까. 아들의 오물거리는 입을 유심히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만나니까 반갑고 소감은 이루말 할 수 없는 기분인데 잠깐 만났가다 헤어지니까 서운한 마음이야. 며칠이라도 만나서 그랬으면 좋을 텐데. 영원히 만나서 아들이랑 한 밥상에 둘러앉았으면 좋겠어. 이제까지 못다 한 아비 노릇도 해보고. 밥도 더 먹여주고 싶고.."라고 아쉬움을 보인 강능환 할아버지는 2박 3일의 짧은 만남이 야속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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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 만난 북녘의 아들을 가리키는 할아버지의 손.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그래서 강 할아버지의 꿈은 통일이다. 그리고 고향 땅에 살고 있는 아들과 영원히 함께 지내고자 한다.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사는 방법이 없을까. 강능환 할아버지는 남북이 서로 양보하길 원한다. 그래야 통일이 온다고 믿는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해야죠. 저만 위주로 자기만 살겠다는 사상은 싹 없어지고. 같은 민족이고 형제 아니냐. 같은 민족끼리 빨리 통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형제와 다름없는 그런 의지에서 다 이해하고 서로 그래야 통일이 온다. 서로 어깃장 놓고 자기만 잘났다고 주장하면 안돼. 서로 양해하고 의지하고 화합하고 단합해야 통일이 된다. 언제 되겠느냐. 언젠가는 되겠죠. 함께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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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능환 할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당시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양보와 이해. 이산가족으로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온 할아버지의 신념이 정답이 아닐까. 하지만 7.4공동성명 발표 42년이 된 지금의 현실은 통일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북한 국방위원회가 지난달 4일 0시부터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하자고 특별제안을 내놨지만, 정부는 '얼토당토 않다'는 표현으로 묵살해 버렸다. 할아버지의 작은 꿈은 언제 이뤄질 것인가.
강능환 할아버지는 밥 한술을 받아먹는 북녘 아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밥 한 번 더 먹여봤으면..."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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