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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고노담화 [친절한 통일씨] 고노담화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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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29 10:4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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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고노담화

[친절한 통일씨] 고노담화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일명 고노담화)를 두고 지난 20일 정치적 산'이라는 검증결과를 내놨다.

 

한.일 양국이 고노담화의 일부 문구를 조정했다는 내용으로, 일본정부는 고노담화 자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군대에 의한 강제'이라는 표현이 정치적 협상결과라고 내놓음으로써, 사실상 고노담화를 폄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정부의 고노담호가 문제해결의 단초는 될 수 있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문서로 활용되지 못한 특히, 법적책임이 빠져있는 담화라는 점에서, 미흡한 내용으로 인식한다.

 

그런 고노담화를 일본정부가 최근 공식적으로 폄훼해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노담화는 어떤 배경에서 나왔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고노담화를 계승발전시킬 방안은 없는 것일까.

고노담화 발표의 배경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한 언론에 취재기를 연재하면서이다.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배봉기 할머니가 일본군위안부로 처음 소개됐고, 이어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인 첫 증언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이슈로 떠올랐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한.일협정) 당시 다뤄지지 않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 대일 배상문제로 부각됐지만,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1991년 일본 가이후 도시키 총리, 가토 코이치 관방장관, 다와라 다카시 법무장관 등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정부 관여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정부의 관여를 부인했다. 1992년 미야자와 키이치 총리도 위안부 문제의 관여를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일관했다.

 

하지만 일본 내 정치적 상황 변화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

 

1992년 1월 불거진 자민당 뇌물스캔들, 쌀시장개방 논란 등 정치적 혼란상태와 맞물려 일본군위안부 문제 여론질타에 직면한 당시 1992년 7월, 가토 코이치 관방장관은 '한반도 출신자들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내각 관방장관 발표(가토담화)를 발표했다.

 

가토담화는 "위안소 설치 및 위안부 모집 담당자에 대한 감독, 위안소 경영 및 감독, 위상관리 등에 정부 관여가 있었다"는 확인수준의 내용이었을 뿐,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법적 배상 등 책임소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 한국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4백90명의 신고접수 결과를 발표, 3월 김영삼 대통령은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쪽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며 물질적 보상 문제는 필요하지 않다"라면서, 이른바 도덕적 우위를 가진 새로운 한일관계 접근법을 내놨다.

 

물론, 당시 김영삼 정부의 입장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내리기 전까지 조용한 외교라는 수사로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인식으로 자리잡았다.

 

여론과 한국정부의 발표, 피해자들의 잇다른 소송에 직면한 일본정부는 1993년 7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석을 잃고 사회당이 참패하는 등 연립정권으로 정계개편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와 관계 정상화 목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조기타결을 위해 강제연행 사실 인정 움직임이 일었고, 그 일환으로 공문서 자료에 한정된 실태조사 방법을 바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증언 청취조사 방식을 검토했다.

 

이를 토대로 발표된 것이 바로 1993년 8월 4일 고노담화이다.

 

고노담화 내용과 불완전한 이유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담화의 본래 명칭은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내각 관방장관 담화로, 고노 장관이 발표했다고 해서 고노담화라고 불린다.

 

고노담화는 "소위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왔으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되었으므로 발표하기로 하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고노담화의 핵심 내용은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하여 설치, 운영되었던 것이므로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내지 위안부의 이송에 대하여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아서 업자가 주로 맡아왔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과 강압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한 사례가 많고, 또한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음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위안소의 생활을 강제적인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며, 한반도를 지목,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개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고 인정했다.

 

즉, 이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제도 마련, 모집, 이송 등에 군이 직접 관여했으며, 감언과 강압이라는 강제성이 일부 인정된 내용으로 일본정부의 일본군위안부 범죄 인정이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러면서 "모든 분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한 심정을 우리나라로서는 어떻게 표명할지에 대하여 유식자들의 의견도 들어가며 앞으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과, 역사 연구 및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얼핏 보면 고노담화는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주체를 구 일본군으로 언급,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성을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강제모집은 민간업자로 특정짓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묻는 법적배상 문제는 빠져있다.

 

군의 요청을 받아서 업자가 주로 맡아왔다라는 고노담화의 표현은 피해자들이 당시 헌병, 경찰 등 군이 직접 강제납치했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업자를 민간으로 특정지어, 당시 친일 부역자들이 모집 주체이므로, 제도를 만들고 이송은 군이 개입했지만, 모집은 군이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고노담화로 인해, 일본정부는 위안부 제도 인정 토대 위에서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을 발족, 일본 자국민들의 성금과 일본정부의 일부 예산을 편성, 지급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기금은 재단이 제공하는 위로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쟁범죄에 대한 국가 배상과 다른 차원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징용, 징병 등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책임을 가졌다는 점에 비춰, 국민기금은 성격이 다른 돈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정부의 고노담화 계승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인정일 뿐 공식사죄, 법적배상, 책임자 처벌이라는 전쟁범죄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고노담화, 계승 발전은 불가능한 것인가

 

강한 일본을 주창하는 아베 정권에서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는 일본의 자국내 정치지형과 맞물려있다. 국제사회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형성된 일본의 영광스런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은 막을 수 없어 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고노담화 계승 발전이 절실하다. 고노담화를 계승 발전시켜 완성하는 방법은 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과 궤를 같이 한다.

 

그 첫 번째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수많은 자료 발굴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료들은 이미 많이 발굴됐다. 해당 자료들만 모아도 일본정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피해자와 당시 군인의 증언 외에도, 1944년~1945년 작성된 연합군 문서, 극동군사재판소 제출자료(1946년), 바타비아 임시법정 판결문(1947년), 네덜란드 정부 보고서(1994년), 산시성 재판 도쿄지방재판소 판결(2003년), 하이난 섬 재판 도쿄지방재판소 판결(2006년), 쿠마라스와미(1996년), 맥두걸(1998년) 등 UN보고서 등이다.

 

이 중 바타비아 임시법정 판결문은 1947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열린 네덜란드 임시 군법회의 판결문으로, 당시 네덜란드 여성들을 상대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강요하고, 강제 모집, 연행했다는 혐의가 인정, 일본군 장교 5명과 민간인 4명이 강간죄 등으로 유죄판결, 장교 1명이 사형됐다.

 

이는 일본군이 직접 일본군위안부를 강제모집, 강제연행했다는 핵심 증거로, 민간업자가 모집했다는 식의 고노담화의 표현과 배치된다. 또한 책임자를 직접 처벌한 재판으로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책임성에서 회피할 수 없는 근거이다.

 

두 번째, 한국정부의 한.일 청구권 양자협의를 통한 법적배상 요구이다.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 제2조 1항에 근거, 협정발효 후 10년에 걸쳐 일본이 한국에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제공하는 대신 2차 대전 중 피해를 입은 한국 및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갖는 모든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청구권 협정에는 징용, 징병 등 일제침략의 합법을 전제로 한 보상청구권만 포함, 침략전쟁으로 인한 인도에 반하는 전쟁범죄에 대한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바로 그 핵심인 것이다.

 

이는 맥두걸 UN 보고서가 "한일협정 체결 당시 위안소 설치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간여가 드러나지 않았고 은폐되었다. 한일협정은 경제조약이지 인권을 존중하는 조약이 아니었다"고 지적하며, 당시 보상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잔학행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개인보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법적 해결을 위한 한.일 청구권 양자협의 제안이 필요하다.

 

지난 2011년 헌재 판결 이후, 한국정부는 청구권 협정 3조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에 따라 양자협의를 1차례 제안했다. 하지만 이후 양자협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한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두 차례 열린 한.일 국장급 협의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간 이슈를 다뤘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문제해결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일본 정부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사사에안 식으로 해결될 경우, 피해자들의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사사에안은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주한 일본대사의 사과, △인도적 조치를 위한 자금 지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총리의 편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이는 이미 실패한 국민기금 사례와 유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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