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그리며 옛 노래를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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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14 11:5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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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그리며 옛 노래를 불러봅니다
개돼지 – 전라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록두밭에 앉지 말아
록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아이적 할머니한테서 배웠던 이 짧고 애절한 노래가 어째서 머리에 흰서리 내린 오늘날에 다시금 떠오르는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얼마전에 들은 《가장 솔직한 공무원》의 고백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국의 가장 솔직한 공무원》으로 치켜세우고 싶은 사람은 교육부의 라향욱 정책기획관이다. 얼마전 그가 한 일간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내뱉은 말이란다.
《민중은 개, 돼지나 같아. 그저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돼. 지금 <한국>은 신분제사회야. 이 신분제도를 허물지 말고 공고화해야 해.》
이런 땐 뭐라고 해야 할가. 경악? 분노? 절망? 허무?
나는 경악과 분노전에 듣던 중 《제일 솔직한 고백》을 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띠고 폭정을 하는 《대통령》이나 말끝마다 《민중을 섬긴다》면서 민중을 죽음에로 내모는 당국자들에 비하면야 그가 얼마나 《솔직》한가.
그의 말을 들으며 절망과 허무 이전에 먼저 드는 느낌은 긍정이다.
그래 그의 말을 부정할 사람이 있는가. 이 사회는 이미 전부터 신분제사회였다. 가진자는 더욱더 부유해지고 없는자는 더욱더 빈궁해지는 사회, 그래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나오고 저저마다 고향을 떠나고 《탈남자》대열에 합세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이 《헬조선》이 아닌가.
우리는 분명 신분제도에서 살고 있다. 재벌들은 노동자를 생산도구로 여기고 부자들은 서민들을 머슴으로 대하며 당국은 민중을 개, 돼지로 취급한다. 우리 언론의 지면에는 늘 신분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뉴스들로 차 있다. 세상을 놀라게한 재벌3세의 《땅콩회항》사건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백화점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혼을 내는 모녀가 이슈가 됐고 다음에는 대형마트에서 휴대폰을 바꿔주지 않는다며 직원을 폭행하고 행패를 부리는 아주머니가 등장하더니 오늘은 드디어 민중을 개, 돼지로, 이 사회를 신분세습제도로 인정하는 《솔직담대》한 공무원이 등장했다.
이러한 갑질논란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민중이 분노해도 그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억울해 하고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이제 와서 보면 그들은 개, 돼지나 같은 하층족속들이 감히 자신들과 같은 상류계층 앞에서 사리를 따지고 정의를 논한다는 사실에 억울하고 화났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왕》으로, 《귀족》으로 믿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21세기의 문명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옳긴 옳은가.
그래도 애써 이 사회의 《발전상》을 찾아본다면 신분제가 보다 세밀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세봉건사회에서는 신분이 사, 농, 공, 상의 네 가지로 《아주 단순하게》 구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10등급 쯤으로 촘촘히 잘 나뉘여져 있다. 이를 두고 아마 《신분제도의 발전적 분화》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내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한국》의 부자들이 모여산다는 강남구, 서울의 한 개 지역구에 불과한 이 비좁은 곳에서도 테혜란로를 경계로 갑부들이 사는 《테북》과 중간급 부자들이 사는 《테남》으로 갈라져 있다. 테혜란로의 이북에 사는 갑부들은 저들이 사는 곳을 《테북공화국》이라 부르며 최상층으로서의 권위와 자부심을 누리고 있다. 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보다 못한 《테남》마저 대치동을 경계로 《대북》과 《대남》으로, 즉 강남안의 2등시민이 사는 곳과 3등시민이 사는 곳으로 구별짓는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강남구만의 일이 아니며 이 땅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1세기 신분제도의 진풍경이다.
그럼 이토록 잘 째여진 신분제도에서 나는 대체 어느 급에 속하는 것인가. 어려서부터 피나게 이를 악물고 뜀박질해온 나의 인생이 과연 신분의 상승을 위한 모지름이 아니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돼지》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자가 어찌 나 하나뿐이랴. 이 땅의 절대다수 민중이 모두 나와 같이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존엄 가진 인간으로 착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는 다만 자신이 《짐승》인 줄 몰랐을 뿐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학문을 닦아 신분의 상승을 이루고 근면과 성실로 인생의 행복을 성취해보겠다는 것은 허황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였구나. 이 땅의 많은 이들이 오늘도 녹두장군 전봉준을 잊지 못해 하는 것은. 폭정이 의적을 부른다 하였다. 봉건왕조의 학정이 없었다면, 인간을 《귀한》 씨와 《천한》 씨로 나눈 반인륜적 신분제도가 없었다면 어찌 갑오년의 농민전쟁이 있었을 것인가.
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하리!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리!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오색기치를 휘날리며 억눌리고 천대받던 민중의 원한을 속시원히 풀어주었던 전봉준, 온갖 악을 쓸어버린 민초들의 나라를 꿈꾸며 천지를 뒤흔들었던 녹두장군이 그립다.
세상 보기 부끄러운 이 땅의 신분제도를 새로운 역사의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버릴 오늘의 녹두장군이 정녕 그립구나.
아, 우리는 언제까지 개, 돼지로 살아야 할 것인가.
[출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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