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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이제 판문점에는 통일의 함성이 울려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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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27 15: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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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판문점에는 통일의 함성이 울려퍼질 것입니다. 

 

윤현일 기자

 

비전향장기수 이공순은 김정일 위원장의 판문점 시찰에 대한 글을 조선의 오늘에 기고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19년전인 1996년 11월 24일 판문점을 시찰한 것은 "겨레에게는 통일의 밝은 서광을 비쳐주고 적들에게는 무서운 공포를 안겨준 력사적인 장거"라고 하였다. 이공순 장기수는 자신에게는 판문점이 "원한의 분계선, 분렬의 상징"인데 위원장의 판문점 시찰로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공순 장기수는 코리아전쟁 전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섰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수십년간 옥중에서 전향을 강요하는 온갖 고문과 회유공갈에 굴하지 않고 혁명적 신념과 의리를 지켜 용감하게 싸워온 이공순 장기수는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그 해 9월 남측에 있던 비전향 장기수 62명과 함께 북으로 송환되었다. 

 

이공순 장기수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통일의 메아리로 영원히 울려퍼질것입니다

- 비전향장기수 리공순 -

 

내 나이 이제는 80고개를 넘어섰다.

 

무릇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추억속에 산다고들 이야기한다.

 

흘러온 그 나날을 돌이켜보느라니 먼저 떠오르는것은 주체85(1996)년 11월 24일이다.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단행하신 판문점시찰은 겨레에게는 통일의 밝은 서광을 비쳐주고 적들에게는 무서운 공포를 안겨준 력사적인 장거였다.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불멸의 금문자로 아로새겨진 11월 24일, 그 민족사적의미를 다시금 새겨본다.

 

※     ※

 

충청남도 서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난 나는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한 마을에서 살다가 개성으로 이주한 친구를 찾아여러번 판문교를 건느군 하였다.

 

개성–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은 사천강을 건느기 위해 통나무와 널판자로 이곳에 다리를 놓고 그 다리의 이름을 판문교라고 불렀다. 판문교는 점차 개성, 장단, 서울사람들의 관심의 다리로 되였다. 물이 불어나 건느지 못하면 다리목에서 막을 치고 다리를 놓을 때까지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그러한 판문점이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북과 남으로 갈라지게 되였으며 서로 오도가도 못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속에는 판문점이 원한의 분계선, 분렬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였다.

 

그러한 판문점이 19년전 11월 24일과 함께 나에게 통일의 상징으로 새 년륜을 새겨주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겨레에게 통일의 굳은 신념을 안겨준 민족사적쾌거였다.

 

돌이켜보면 당시 정세는 참으로 복잡다단하였다.

 

우리 겨레가 하늘처럼 믿고 살던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애의 눈물은 강물처럼 흐르고 미제를 괴수로 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은 《북조선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떠들며 압살의 칼을 빼들고 무엄하게 덤벼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공화국에는 전례없는 자연재해까지 겹쳐들었다.

 

남조선의 친미사대매국세력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떠들며 《남북페쇄정책》과 광란적인 북침전쟁도발책동에 매달리면서 우리들에 대한 전향공작을 더욱 악착하게 들이댔다. 15척의 높은 담장의 0. 75평 독감방에서 인간세상과 격페되여있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마음은 참으로 찹찹하였다.

 

옥중생활 30여년동안 그때처럼 생각이 깊었던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일인지 그전날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해서 못되게 굴던 교도관들이 기가 죽어 다니는것이였다. 간수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우리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시였다고 하면서 지금 청와대가 야단법석이라는것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절로 힘이 생기고 용기가 솟아올랐다.

 

나는 감방벽에 《통일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손끝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평양과 주요 도시들의 이름, 북남으로 련결된 철길과 도로들을 새겨놓고 그 우에 《조선》이라고 썼다. 그리고 평양하늘을 우러러 《위대한 장군님. 장군님의 전사 리공순은 끝까지 혁명가의 신념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마음속결의를 다지고 파쑈교형리들과 맞서 싸웠다.

 

나만이 아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모두가 이렇게 맹세다지며 당원의 깨끗한 량심과 지조를 지키였다. 남조선의 각계각층은 통일에 대한 굳은 확신으로 끝없이 설레이였다.

 

감방에 찾아온 한 청년대학생은 《국방위원장님의 걸음은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만드시려는 위대한 걸음이였습니다. 그 거룩한 자욱에서 이남민중은 김일성주석형의 위인, 또 한분의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신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기상과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 거룩하신 모습은 민족의 마음속에 통일의 확신을 심어주고 온 겨레를 통일성전에로 부르는 승리의 상징이였습니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조국통일의 기치, 가장 현실적인 투쟁강령으로 겨레에게 자주통일의 밝은 서강을 안겨준 거룩한 민족사적행보였다.

 

경비병들의 발자국소리에도 살기가 뻗치고 가랑잎 날리는 바람소리에도 긴장이 감도는 곳이 바로 판문점이다. 더우기 당시 판문점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차거운 랭기만 감돌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곳을 우리 장군님께서 찾아가시였던것이다.

 

조국의 품에 안겨 들은데 의하면 그때 일군들은 그이께 판문점만은 절대로 가실수 없다고 막아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위대한장군님께서는 판문점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고 한다.

 

무엇때문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조국통일때문이라는것을 감옥에 찾아온 운동권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였다.

 

이날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시고 판문점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친필비부터 찾으시였다고 한다.

 

주체83(1994)년 7월 7일, 아침 산책시간까지 바치시며 통일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낄 조국통일관계 문건을 검토하시고 표지상단에 활달한 필체로 김일성  1994. 7. 7.》이라고 수표하고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은 내가 우리 인민들에게 줄수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맞이할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자고 힘주어 이르시였다.

 

 

 

깊은 추억속에 그날을 되새겨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념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가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리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비문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것이라고 하시며 친필비가 담고있는 거대한 의미를 일깨워주시였다. 이어 위대한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접하고보니 조국통일3대헌장의 조항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기면 새길수록 조국통일3대헌장이야말로 조국통일의 기치이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현실적인 투쟁강령이였다.

 

조국통일의 초석인 3대원칙과 조국통일의 정치강령인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가 명시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있었기에 우리 겨레는 뚜렷한 목표와 방향,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조국통일운동을 순간도 멈춤이없이 전진시켜올수 있지 않았는가.

 

나는 통방신호를 통해 동지들에게 《조국통일3대헌장인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높이 들고 자주통일을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자》라고 호소하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통방으로 조국통일3대헌장에대한 학습을 하면서 그 방향과 방도를 토의하군 하였다.

 

출옥후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만남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국통일3대헌장에 대해 해설해주면서 그 실현에로적극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매해 11월 24일이 오면 통일운동단체들과 군사분계선가까이에서 위대한 장군님께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글을 써서 풍선에 실어 북녘으로 날려보내군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적들에게 무서운 공포와 전률을 안겨준 민족사적사변이였다.

 

어린시절부터 자연지리에 취미를 가지고있는 나는 조선력사와 지리를 서술한 책들을 수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판문점일대에11월에 안개가 낀적이 있다는 자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9년전 11월 2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실 당시 판문점에는 흰 안개가 덮여있었다.

 

더욱 신비한것은 그이께서 판문점을 떠나시는 순간과 함께 흰 안개가 걷히였다는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남조선인민들은 한결같이 《과시 장군님은 하늘이 낸 위인이시다. 하늘이 낸 위인이시기에 그분의 안녕을 위해 흰 안개를 내려보낸것이다.》라고 격찬했다.

 

조국에서 판문점시찰보도를 내보낸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된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와 남조선군부는 《당시 안개가 껴 10m앞도 볼수 없었기때문에 김정일비서인지의 여부를 파악할수 없었다.》고 실토했으며 판문점경비를 맡은 미군헌병들도 그 시간에승용차 한대와 소형뻐스 한대가 왔던 관측이 있을뿐 안개로 하여 록화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토설했다.

 

미국정계와 군부는 《김정일장군의 판문점시찰은 우리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당장 북조선의 원자탄이 발밑에서 터지는것 같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판문점시찰로 북조선은 행운의 열쇠를, 미국은 지옥의 열쇠를 쥐게 되였다》라고 아우성쳤다. 현실적으로 그해말에 미국은 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완화와 식량제공조치를 취하고 경수로제공협상에 따르는 여러 의정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되였다.

 

1950년 11월 24일 《크리스마스총공세》가 38°선이남으로 패주의 막을 내렸다면 그때로부터 46년이 지난 그 11월 24일을기점으로 미국은 또다시 쓰디쓴 참패의 고배를 마셨던것이다.

소문도 없이 판문점에 나오시여 조국통일의 의지를 더욱 굳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넓으신 도량과 인품으로 분렬 55년만에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조국통일3대헌장을 구현한 6. 15북남공동선언을 탄생시키시였다.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 15북남공동선언과 함께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통일시대가 펼쳐졌으며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꿈결에도 안기고싶은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주체89(2000)년 9월 2일 오전 10시,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63명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판문점분리선을넘어섰다.

 

판문점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판문각을 경건히 우러렀다. 어버이장군님께서 저 로대에 서시여 우리들에게 두팔 벌려 어서 오라 정답게 불러주시는것만 같았다.

 

아,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시찰의 그날 온 세상을 격동시킬 이 귀환의 화폭도 다 내다보고계시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력사에는 위인들의 행보에 대한 일화들이 수없이 전해지고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시찰로 온 세계를 끓게 한 그런 시찰은 전무후무하다.

 

진정 위대한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겨레에게는 통일에 대한 굳은 확신과 밝은 앞날을 열어주고 적들에게는 무서운 공포를 안겨준 민족사적사변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기록되여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해 원쑤들에게는 멸적의 공포를 주고 겨레에게는 필승의 신심을 주는 영원한 통일메아리로 끝없이 울려퍼지고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 3월, 온 겨레는 16년전의 판문점충격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적들의 무모한 도발책동으로 하여 당장이라도 총포성이 울릴수 있는 최대의 열점지대에 위치한 판문점을 시찰하시였던것이다.

 

《로동신문》을 통해 그 불멸의 화폭을 접하면서 나는 주체85(1996)년 11월 24일, 판문점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의거룩하신 영상을 다시 뵈웠다.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어버이장군님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의 글발을 한글자, 한글자 주의깊게 바라보시며수령님의 영구불멸할 업적을 추억깊이 회고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 무려 4차례나 나오시였다고,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문건에 생애의 마지막친필존함을 남기신 수령님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판문점에 친필비를 모시도록 하시였다고 절절히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필생의 념원을 기어이 실현하여 후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줄 철석의 의지를 다지신것도어버이장군님 그대로였다.

 

이날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판문각로대에 오르시여 적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통일각, 정전담판회의장, 정전협정조인장을 비롯한 판문점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 미제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놀래운 영웅조선의 전승업적을 대대로 빛내여나가야 한다!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원쑤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할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19년전에 울렸던 멸적의 기상인 자주적근위병이 되겠는가, 노예로 살겠는가와 뜻을 같이하는 장엄한뢰성이다.

 

나는 그 선언에서 조선을 넘겨다보는자들을 1950년대처럼 단호히 징벌하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승전사가 아로새겨진 대미전을 최후승리로 결속지으시려는 경애하는 그이의 단호한 결심과 철석의 의지를 읽었다.

 

지난 8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취하신 조치를 직접 목격하면서 그이이시야말로 위대한 장군님의뜻대로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만드실 조국통일의 찬란한 구성이시라는것을 다시금 페부로 절감하였다.

 

당시 미국의 사촉을 받은 남조선괴뢰들은 의문의 《지뢰폭발》과 《북포탄발사》사건을 조작해내고 그것을 구실로 신성한우리 령토를 향하여 수십발의 포탄을 란사하는 무모한 군사적망동을 저질렀다. 조성된 사태와 관련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시고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들이 불의작전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명령을 받아안고 전투진지를 차지한 인민군장병들과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물려주신 사회주의조국을 목숨바쳐 사수할 멸적의 기상을 안고 산악같이 일떠선 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는 이겼다!》라고 환성을 올렸다.

 

정말 그랬다. 조국앞에 닥쳐왔던 위기는 우리의 발밑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판문점에서는 북남고위급긴급접촉이 진행되였으며 마침내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이어나가기 위한 공도보도문이 발표되게 되였다.

 

판문점에서 발표된 북남공동보도문, 나는 그것이 우리 당의 애국애족의 위대한 선군정치, 조국통일의 확고한 신념이 낳은 화폭이라고 생각한다.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겨레앞에 세워주려는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철석의 의지이다.

 

그 의지에 떠받들려 판문점에서는 북남적십자회담을 비롯한 회담들이 진행되였으며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북남로동자축구대회》,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북남종교인들의모임》 등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군중시위의 높은 연단에서 우리 당은 오늘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으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는것을 당당히 선언할수 있다고 언명하시였다.

 

조선로동당창건 70돐 경축대표로 참가하여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몸가까이에서 직접 들으면서 나는 천하제일의 위인을모시여 미제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풍지박산나고 이 땅우에는 통일강성국가가 반드시 일떠서리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게되였다.

 

위인이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의 만세소리만 울리는 법이다.

 

천하제일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19년전 11월 24일, 판문점에서 울려퍼진 메아리는 반드시 통일의 함성으로 삼천리를 진감할것이다. 멀지 않아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은 통일의 상징으로 솟아오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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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위원장의 판문점시찰은 민족사적 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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