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16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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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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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1 03: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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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16

 

해방전에 수영이가 리화녀전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의 생활반경은 학교와 가정뿐이였고 따라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에는 시야가 너무 좁았었다. 온실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수영에게 그때 제일 고민스러운것은 그 시절에 누구나 홍역처럼 경과하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것이였다. 그것이 인생의 풀기 어려운 숙제로 생각된데는 부모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서울에서 크지 않은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수영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아준다고 동대문구에 첩살림을 두고있었다. 아버지가 작은댁에 간다면서 뻐젓이 집을 나갈 때면 어머니는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아 퇴마루아래 놓아주고 개화장을 쥐여주면서 대문밖에까지 나가 공손히 바래주군 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언젠가 그걸 목격한 수영은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우정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 버리고 가시는 아버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년아!》

 

외동딸에게 큰소리 한번 안 치던 어머니였건만 그때만은 진정으로 노했었다. 어머니는 노기를 띠고 엄하게 오금을 박았다.

 

《그럼 못 쓴다. 아버지는 아버지야.》

 

평생을 삼강오륜의 바오래기에 묶이워 살아온 어머니에게 있어서 남편은 무슨 죄를 지어도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던것이다. 자기의 절대적인 하늘이고 땅이였다. 수영은 어머니의 노예적인 순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만 자존심도 없는가? 아버지가 의로운 길을 가는것도 아닌데 《잘 다녀오십시오.》… 대문을 막아서서 행악질은 못해도 그렇게까지 비굴할거야 있는가, 아들을 못 낳은게 엄마죄인가?

 

복잡한 인간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만 백포처럼 순결하기만 했던 처녀에게는 부모들의 생활태도가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현상으로 인찍혀졌던것이다. 하기야 신식문명을 배우고 《해연의 노래》를 열독하며 자유와 참된 사랑을 갈망하는 수영이가 봉건유교도덕의 옹호자이고 희생자이기도 한 어머니를 어떻게 리해할수 있으랴.

 

수영은 가시같은 말마디들이 막 쏟아져나오려고 입술이 떨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수영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 조용조용 말했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단다. 녀자의 행복이란 생각하기에 달린거야.》

 

어머니가 정말로 자기 인생에 만족을 느끼고있었는지 아니면 다 자란 자식앞에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주고 자기를 변호하느라고 그랬는지는 수영이도 알수 없었다. 수영은 묻고싶은것이 많았지만 공연히 어머니의 가슴을 더 허빌것 같아 잠자코있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여서 수영은 일요일례배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로 갔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수영은 여느때는 례배에 참가해서도 앞에 선 아이의 머리꽁지를 장난질하며 캐드득거리군 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쓸쓸해서 학교전임목사의 설교를 묵묵히 들었다.

 

《오늘은 구약성서를 학습하겠습니다. 이스라엘왕 솔로몬의 잠언 제5장을 펼치십시오.》

 

목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같은 제 안해를 배반해서는 안된다고 알쏭달쏭한 말로 설교를 늘어놓았다.

 

성서에서도 저렇게 남자들의 방탕을 타이르는걸 보면 남자란 믿고 의지할만 한 존재가 못되는게 틀림없었다. 그 주제에 녀자의 존재를 기껏 암사슴이나 암노루로 취급하고있다.

 

녀자는 정말 이렇게밖에 살수 없단 말인가? 과연 녀자는 어떤 존재인가? 녀자인 수영으로서는 녀자의 본질, 녀자의 정체성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자기의 생활방식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방금전에 목사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가는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가?

 

한평생 행복의 길로만 곡절없이 걷고싶은데 지금 수영이에게는 길이 너무 많고 갈래가 복잡했다.

 

어느 길로 가야 행복할수 있겠는지 인생의 출발점에서 미리 알고 떠났으면 좋으련만…

 

자기가 가는 길의 종착점에 분명 행복이 기다리고있다는 담보만 있으면 부지런히 그 길로만 걷겠는데 모든게 안개속에 묻혀있으니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두렵기만 했다. 이 길로 가면 너무 에돌지 않을가. 저 길로 가면 낭떠러지나 가시덤불이 기다리지 않을가…

 

례배가 끝난 뒤에도 텅 빈 례배당에 혼자 앉아있던 수영은 때각때각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례배당을 돌아보던 수영의 담임교원이였다.

 

하느님의 품에 자기를 의탁하고 산다는 그리스도교인 이 녀자는 40대에 이르도록 시집을 가지 않은 로처녀였다.

 

그 녀자는 수영이가 하느님이 계시해준 진리의 무아경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는줄 알고 독실한 신자를 사뭇 기특하게 여기며 앞의자에 앉았다.

 

《왜 아직 안 가고있지요?》

 

《선생님, 전… 무섭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데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녀교원은 애티를 벗지 못한 녀학생의 얼굴에서 하도 짙은 고민을 보았던지 수영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그래요, 그건 응당한거예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한 어린 양이라고 하시는거예요. 양들에게는 혼자서 제집으로 돌아오는 능력이 없거던요. 하느님께서는 갈길 몰라 헤매이는 불쌍한 우리들을 행복한 세계에로 안내하라고 목사님들을 보내주신거예요.》

 

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녀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녀자는 꼭 시집을 가야 합니까?》

 

그 녀자에게는 천진하고 또 천진한 《어린 양》에게 행복의 길을 가르쳐줄 능력도, 한생의 신조로 간직한 참된 진리도 없었다.

 

대답이 궁해진 그는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수영에게 나직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글쎄… 예수의 품이 아무리 자애롭다해두 녀자들에겐 사내의 품이 더 좋은 법이지.》

 

중년나이가 되도록 결혼이란걸 해보지 못하고 따라서 가정생활의 재미라는걸 맛보지 못한 독신녀성이 사내품이 좋다고 경험자답게 말하는걸 보면 그의 사생활을 가히 짐작할만 하련만 천진한 수영은 그것도 느끼지 못하고 또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시집가지 않고 혼자 사십니까?》

 

《사랑할만 한 사내가 있어야지.》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십니까?》

 

《난 예수를 사랑하는게 아니예요. 그저 믿을뿐이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위안을 얻을수가 없거던. 살아보면 인생이란 공허한거예요.》

 

8. 15해방은 자기라는 존재에 집착해있던 수영에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해방후에도 서울에는 달라진것이 별로 없었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총독부 지붕우에서 날리던 히노마루가 성조기로 바뀌우고 초밥이나 우메보시를 좋아하던 난쟁이들대신 껌을 질근거리면서 주머니에 꼬냐크병을 넣고다니는 우멍눈의 꺽다리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바뀐것뿐이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미군용기로 수입된 리승만이 자기가 리씨왕조의 후손이라면서 옥좌를 탐내여 좌익세력은 물론이고 림정인물들과도 자리다툼을 하고있었고 《해방자》의 탈을 쓰고 기여든 미군도 맥아더포고 제1호와 제2호로써 자기들이 남조선땅의 새 《주인》이라는것을 명백히 선포하였다. 그런데 주인노릇을 하겠다고 부랴부랴 남조선에 날아든 미군정청관계자들중 그 누구도 조선말을 몰랐고 조선인민에 대해 몰랐으며 조선이 지구의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던 놈들이였다.

 

《주인》으로서 그들이 할 일이란 점령지역 인민들에 대한 통치와 남조선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를 구축하는것뿐이였다.

 

리화녀전을 졸업하고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수영은 미군이 《해방자》가 아니라 강도이며 야만이라는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였다.

 

어느날 병원으로 머리가 터진 한 미군병사가 실려왔었다. 거리에서 폭도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부상당했다는데 사실은 백주에 보석상점을 털다가 얻어맞은 놈이라는것을 수영은 알수 없었다.

 

설사 알았다 해도 천성이 착하고 의술로 인간을 구원해볼 꿈을 지녔던 수영이로서는 그 미군병사를 치료하는데 정성을 다했을것이다. 더구나 미군은 조선민족을 해방시켜준 《은인》이 아닌가. 그 미군병사가 중환자는 아니였지만 《은인》을 일반환자취급할수 없다는 병원측의 요구에 따라 수영은 담당의사로서 꼬박 이틀밤을 밝혔다. 사흘째되는 날 밤도 간호원과 교대로 환자를 지키던 수영은 책상에 엎디여 깜박 졸았다.

 

그는 문득 자기 어깨너머로 누군가의 손이 와닿는 느낌에 머리를 들다가 그만 《악!》소리를 질렀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구척장신의 미군병사가 두툼한 입술새로 흰 이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고있었던것이다. 다른 인종에게서 풍기는 불쾌한 냄새, 짐승의 앞발같은 털부숭이 손…

 

수영은 입원실에서 어떻게 뛰쳐나왔는지 몰랐다. 몸에 배인 습관대로 의무실에서 위생복을 벗어버리고는 무작정 병원을 나섰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이 막혔다. 어쩌면 자기를 성의껏 치료해준 의사에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게 사람인가. 그도 사람이라면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제 생각에 옴해있던 수영은 째는듯 한 호각소리에 아차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격분한김에 뛰쳐나오다보니 통금시간을 까맣게 잊고있었던것이다. 말이 통하면 집이 코앞이라고 설명이라도 해보련만 꺽다리 미군순찰병은 카빙총을 겨누고 몸수색부터 했다. 수영은 난생처음 당해보는 일이여서 총구앞에 서있다는 공포심보다 전신을 태우는 수치감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 밤 처녀는 류치장에서 한밤을 새웠다.

 

너무 기가 차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상이 왜 이렇게 괴이하게 되여가는가. 제땅에서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게 하니 도대체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침에 류치장에서 풀려나온 수영에게는 뜻밖에도 해고장이 기다리고있었다. 그 미군병사가 병원측에 항의했고 병원측에서는 비굴하게도 수영이가 환자에게 무책임했다는 딱지를 붙였던것이다.

 

수영은 기막힌 현실앞에서 자기에 대한 변호를 포기하고 말없이 병원을 나오고말았다. 진실이 우롱당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말할수 있단 말인가.

 

그 다음날 석간신문에는 미군병사가 보석방에 뛰여들어 주인을 쏴죽이고 보석을 다 털어갔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수영이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그 미군병사가 병원을 나서는길로 《복수》를 단행한것이였다.

 

그래도 미군정청은 그 병사가 《폭도》들에게 뇌타박을 받았기때문에 정신분렬증으로 인한 과실이라고 변호해나섰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다. 주객이 전도된 세상이라 누구도 감히 미군정청에 시비를 가르자고 나서지 못했던것이다.

 

과연 넓고넓은 이 천지에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 착하게 살고싶은 마음을 보석처럼 귀중히 여겨주는 그런 세상은 없을가, 생활은 자기만의 좁은 울타리안에시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고싶어하던 수영에게 허다한 난문제들을 덧쌓아놓는듯싶었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아버지네 공장은 남조선전역을 휩쓴 통화팽창의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어 파산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심보나쁜 일본놈들이 조선의 산업을 질식시키려고 수십억원의 《조선은행권》을 람발한 후과로 숱한 중소기업들이 넘어졌던것이다.

 

가뜩이나 고혈압병으로 신고하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영은 정신없이 뛰여다녔다. 발병초기에 좋은 약을 쓴 덕분인지 어머니는 다음날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의식을 차린 어머니가 제일먼저 찾은것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수영은 어머니병구완에 제정신이 아니여서 아버지에게 미처 알리지도 못했다. 더구나 어머니가 생사기로에서 헤매는줄도 모르고 작은댁에 가있을 아버지가 미웠던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를 노엽힐줄이야.

 

어머니는 실망어린 눈길로 철없는 딸을 서글프게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주름잡힌 어머니의 눈귀로 한줄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그제서야 수영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했다는것을 분명히 알았었다. 어머니가 죽음의 문어구에서 마지막으로 보고싶었던 사람이 친딸인 자기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 해온 남편이였음을 깨닫는 순간에 수영은 어른이 된듯 한 기분을 느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수영은 황황히 병원을 뛰쳐나와 아버지를 찾아 떠났다.

 

아버지는 공장에 있었다. 텅 빈 작업장 한가운데 퍼더버리고앉아 한숨을 쉬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몹시도 처량해보였다. 며칠동안에 아버지는 흰머리칼이 더 많아진것 같았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게 변했었다. 아버지는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병원에 달려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졸아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것을 수영은 처음 보았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재차 강한 대출혈로 손쓸새없이 사망했을 때 아버지는 극도의 슬픔으로 침식을 전페하다싶이 했다. 어머니 수의도 제손으로 입혀주었다.

 

《여보, 평생 고생만 시키다 먼저 보내는구려. 래세에 태여나면 나처럼 신의없는 놈을 만나지 마오.》

 

그때 수영은 만약 어머니가 그 말을 들었다면 다음세상에서도 꼭 당신한테 시집오겠다고 말했을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어머니를 잃고 공장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빚때문에 집까지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해방이 수영이네 집에 가져다준 《혜택》이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에도 며칠동안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만 퍼마시던 아버지는 수영을 불러앉혔다.

 

《이 애비를 원망해라, 앞으로는 어쨌으면 좋겠느냐?》

 

《…》

 

《이 서울바닥에서는 살아갈 길이 막혔으니 난 네가 얼마동안이라도 평양에 있는 외삼촌을 찾아갔으면 한다.》

 

수영이도 진작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조선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정사를 보신다는데 아무렴 여기처럼 무법천지야 아니겠지. 그럼 아버지는? …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함께 가요.》

 

아버지는 머리를 저었다.

 

《내 걱정은 말아라. 네 에미를 먼저 보내구 집안을 이 꼴로 만들어놓은 주제에 무슨 낯으로 처남앞에 나서겠느냐. 혼자 가거라, 난 불가에 의탁해보련다.》

 

《예?》

 

수영은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겠단 말인가. 아버지는 허탈감에 빠진듯 한 어조로 뒤를 달았다.

 

《속세에서 아득바득하며 살아오느라 내 별로 공덕을 쌓지도 못한 주제에 극락왕생이 가당하겠냐만 그래도 악한 일은 안하고 늙어왔으니 늦게나마 찾아가보련다. 부처님은 자비하시다는데 설사 극락세계가 비좁다 해도 나 하나쯤이야 받아주시겠지.》

 

바람벽에 기대앉아 천정을 올려다보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뿌연 눈물이 고여있었다.

 

수영은 아버지가 가엾어보였다. 아버지는 단란하던 가정을 풍지박산내버린 잔인한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무력감을 인정하기때문에 황황히 속세를 떠나 부처님한테서 안식을 찾으려 하고있다.

 

반대로 수영이 자기는 아직도 행복에 미련을 가지고 공산정권이 서있다는 북조선에 가려고 한다. 이 극적인 작별의 마당에서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은것일가.

 

아버지는 수영의 생각을 알아맞히기라도 한듯싶었다.

 

《자고로 신통한 세상이란 있어본적이 없다. 네가 아무리 안데르쎈의 동화를 좋아해도 인류사에 동화의 세계와 같은 곳은 없었다. 이북의 공산세상이라고 다르겠느냐. 하지만…》

 

아버지는 바람벽에서 등을 떼고 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혹시 알겠느냐, 지금 북조선에선 김일성장군이 인민이 잘 사는 나라를 세우신다는데 그분이 극락세계는 아니더라도 선한것이 악한것을 이기고 백성이 마음편히 사는 새 나라의 표본을 이 땅에 세우신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비록 꿈같은 소리이긴 하다만 착한 마음씨 하나만 가지고 인생살이를 시작하려는 너한테 이런 미련까지 없으면 세상이 지겨워서 어떻게 살겠느냐. 내 부처님앞에서 네 앞길에 구름이 끼지 않게 해달라고 일구월심 빌것이니 어서 떠나도록 해라.》

 

아버지는 포목상을 하는 친구가 밀선을 타고 북반부에 드나든다면서 그를 수영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수영은 해방후 석달만에 평양으로 들어왔었다. 아직은 자기의 선택이 옳았다는 절대적인 확신은 가질수 없지만 수영은 여기 평양에 와서부터 마음속깊이 얼어붙었던 행복에 대한 갈망이 조심조심 싹을 틔우고 아지를 펼치면서 자기의 가슴을 부풀게 한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수영은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병원을 나섰다.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면서 수영은 저도 모르게 운상을 생각했다.

 

오성재농민의 일로 모욕을 당한 순간부터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았던 청년이였다. 못할짓을 하다 들킨 사람이 후날에도 그 목격자를 만나면 어쩔수없이 느끼게 되는 창피감때문이랄가.…

 

그런데 오늘 그가 장군님을 만나뵈온 사연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자기는 그에게 의자까지 권했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이건 분명 환자들외에는 누구에게도 친절을 보인적 없었던 수영이 자기가 그 사람에게 공감되였다는 증거가 아닐가.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의 호의를 무시하고 훌쩍 가버렸다. 그래도 모욕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인 일인가.

 

운상을 미워한다고는 하면서도 수영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믿을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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