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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 4] 월북시인 김상훈의 장남이 쓴 아버지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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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14 17:1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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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 월북시인 김상훈의 장남이 쓴 아버지에 대한 추억 

 

 

 

   편집국

2015-07-14

 

 

 

광복기 전위시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진 김상훈은 1950년 6.25 동란 때 북행길에 올라 <조쏘친선> 기자로 일하던 류희정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6남매를 두게 되었다.

 

북녘에서는 <풍요선집>, <력대시선집>, <가요집>, <리규보작품집>, <중국고전시선>을 펴냈고 유고시집 <흙>을 남겼다. 금년 초에는 미망인의 노력으로 김상훈 작품집 <통일을 불러>(327쪽)가 평양에서 출판되었다.

 

   한편 남녘 땅에서는 2003년 경남/부산지역 문학회 주선으로 그의 고향인 거창 가조온천단지 시비공원에 김상훈 시비가 건립되어 그의 문학적 자산과 실천적 삶을 기리게 되었고, 때를 같이하여 <김상훈 시 전집>(337쪽)과 <김상훈 시 연구>(650쪽)가 발행되었다.

 

   김상훈 시인은 말한다. "조선은 하나다! 나의 말은 한 평생 이 한마디뿐이다. 왜 사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하리라. 하나의 조국을 찾기 위해 사노라고..."

  

   최근 김상훈의 장남 김종설이 아버지를 기억하며 <통일신보>에 게재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5회에 걸쳐 여기에 연재한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 (4)

 

 

 

김 종 설(김상훈 시인의 맏아들)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34년간을 함께 사셨다.

 

어머니의 고향은 지금 군사분계선장벽너머로 보이는 경기도 파주군 림진면 문산리이다. 어머니는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북에 들어와서 조쏘출판사에 근무하게 되였다.

 

후퇴의 혼잡속에 큰딸만을 데리고 온 어머니는 일생동안 남녘에 두고온 막내딸에게 죄스러워했다.

 

그때 막내딸 하금은 어느 친척네 집에 가서 없었다고 한다. 시간도 없고 또 인차 오겠지 하고 떠난 걸음이 영리별이 되였다. 여든이 퍽 지난 요즈음은 점점 더하다.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맡아보는 해당 기관에도 여러번 찾아가보았는데 남에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가 아버지와 통일이 되는 날까지 함께 살기로 언약을 맺고 림종까지 지켜드렸다. 어머니의 맏딸 하연누나는 내가 장가든 퍽 후까지 아버지가 데리고 온 딸인줄 알았다. 그만큼 누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어머니에겐 원망도 많고 불만도 많았다. 지금은 신의주에서 손자, 손녀들을 한구들 거느린 할머니가 되여 잘산다. 젊었을 때 매형은 화가였고 누나는 의사였다.

 

어머니는 쌍둥이를 포함해서 여섯남매를 낳았다. 줄줄이 아이를 낳다나니 민주선전실장도, 동녀맹위원장도 다 오래하지 못했다. 이러던 어머니가 환갑이 지나서 작가동맹 정맹원이 되였다.

 

 

              ▲ 김상훈선생의 부인(87살)                        

 

 

아버지는 생전에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작품이 얼마 없는것을 매우 가슴아파하시였다. 남에서는 북으로 간 작가라고 출판을 안하니 이 시기 문학사에 공백이 생겼던것이다. 《갈라진 민족의 비극이 이런 아픈 공백을 낳는구나.》 하고 아버지는 자주 괴로와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떻게 그 마음까지 다 헤아리시고 남에서 북으로 온 작가들만이 아니라 해방전의 친일작가라고 영영 매장되였던 작가의 작품까지 모두 발굴하여 수집편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래서 환갑이 지난 어머니가 나섰다. 쉬운 일은 아니였다. 한문도 알아야지, 일본말도 알아야지, 거기에 당시만 쓰던 우리 말 표기나 묘사의 뜻도 알아야 했다. 게다가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 작품들이 어디 정연하게 보관되여있는것도 아니였다. 어떤 집에서는 시인, 작가의 후손들이 자기 아버지 작품을 내놓기도 꺼려했다. 그래도 근 60여권이나 되는 《현대조선문학선집》의 대부분을 어머니가 수집, 편찬, 정리하여 출판하였다.

 

《현대조선문학선집》 해방전편까지를 끝냈을 때 어머니는 조용히 물었다.

 

《이젠 아버지묘소에 이 어미를 함께 묻어줄래?》 착하고 또 착하기만 하신 우리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여든일곱살이 된 오늘에도 줄기차게 해방전작품들을 수집, 편찬, 정리하고계신다. 인민대학습당에는 아직도 특별열람실에 어머니의 자리가 당당히 있고 어머니는 작가동맹강습에도 자주 참가하신다.

 

인간적으로도 끝이 없게 착하기만 한 어머니이다. 아버지에겐 물론이고 너무 착해서 아들딸 여섯을 낳아 키우면서도 자식들에게 욕 한번 못해본 어머니다. 자식이라고는 단 둘뿐인 아들과 딸에게도 언제나 드살군인 내 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번 설에도 우리 부부는 아들딸, 손녀와 함께 세배하러 갔었는데 어머니는 누구도 몰래 여덟살 잡히는 증손녀에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그리고 여든일곱살 난 로인이 선뜻 주기에도 적지 않은 돈을 세배돈으로 주시였다. 경영이(증손녀)는 그날밤 일기에 《증조할머니는 자기 아들도 있는데 나에게만 많은 세배돈을 주시였다. 내가 증조할머니가 되여도 그렇게 할수 있을가?》라고 썼다. 무슨 소리인지 참 재미나는 관계이다.

 

아버지가 사망한지 얼마후 우리 자식들이 좋은 아바이를 하나 얻어달라는가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세상에 너희 아버지만 한 사람이 없어서 못 가겠다고 하였다.

 

이런 어머니가 한생동안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고 그리워하고 지어는 두려워까지 한 녀인이 있다.

 

그 녀인의 이름은 강재화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직도 그 녀인의 앞섶을 가려주지 못하고있다. 말 한마디 다정히 해주지 못하였다. 헤여지면서 머리 한번 쓰다듬어주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 녀인은 나를 사랑하고있다. 나도 그를 사랑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계선에 막혀 만나지조차 못하고있다. 이것이 갈라진 민족의 운명인가? 가랑잎처럼 몰리다가 부스러지는 갈라진 민족의 아픔인가? 얼마나 어리석으면 우리가 이런 운명에 빠져 오랜 세월 비명도 못 지르며 모대기고있는가!

 

잊어버리자. 지나간 추억도 잊어버리고 남몰래 싸두었던 미래의 꿈도 잊어버리고말자. 이제는 잊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뼈아픈 노력을 함에도 나는 무시로 그를 만나보군 한다. 꿈속에서도 만나고 말속에서도 만나고 스쳐가는 대수롭지 않은 생각에서도 만난다.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인간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고향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이런 무서운 질책이 밤에도 날아오고 낮에도 날아오고 벽에서도 날아오고 천정에서도 날아오고 땅에서도 날아오른다.》

 

아버지는 북으로 들어올 때 작은 통을 하나 가지고왔었다. 그속에는 두터운 모직천으로 정성스레 싼 까만 면도기와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우리 나라 도별지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지도수첩이 여백까지 모두 잘려있었다.

 

 

▲작은 지도수첩

 

 

《먼길을 가는 사람에겐 눈섭까지 무겁다.》는 말이 있다.

 

누가 이렇게 알뜰하게 잘라주었을가? 자식들이? 아니 그땐 그들도 모두 어렸다. 부인이?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럼 누가…

 

나는 뜻밖에도 그것을 내 처에게서 알았다. 아버지는 며느리를 무척 고와했다. 처가 아들을 낳았을 때에는 《내 평생에 이렇게 기쁜 날이 얼마 없었는데…》로 시작된 장문의 편지를 보내여 온 병원이 떠들썩하게 했다. 창작실에 나가서도 며느리자랑을 얼마나 하였는지 사람들이 상훈선생 며느리를 한번 보자고 우정 찾아오군 하였다.

 

하지만 자식이나 처에게도 하기 힘든 말을 며느리에게 한것은 결코 고와한다는 리유만은 아니였을것이다.

 

아버지는 일제말기에 징용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백운산에 들어가 무장별동대조직에 관여하였다. 그 부대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끄신 항일유격대에 사람도 보내였는데 아쉽게도 련락이 가닿지 못한가보다. 하지만 백운산절간에 무기며 식량도 모아놓고 조국해방을 맞을 준비를 착실하게 하던중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감으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 무렵에 키도 눈도 다 크고 억실억실한… 웃음소리마저 그리도 크고 맑은 한 녀인을 알게 되였는데 그 녀인이 바로 강재화이다.

 

돈도 많은 녀인이 감옥살이나 하는 아버지를 왜 그리도 사랑하였는지, 그 힘든 옥바라지를 다하면서 아버지고향에 있는 자식들도 다 맡아안았다고 한다. 후퇴때도 다른 사람은 다 리해 못해도 그 녀인만은 아버지를 리해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옷섶도 여미지 못하고 그 크고도 맑은 눈에 눈물이 가득해서 아버지를 바래주던 녀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두가지 부탁을 하였다. 하나는 통일이 되면 잘 자란 자식들을 데리고 상산 김씨 김상훈의 아들임을 소리치며 고향에 가보라는 부탁이고 다른 하나는 그 녀인을 꼭 찾아가서 만약 세상을 떠났으면 묘소에 아버지몫으로 삼가 제주를 붓고 살아있으면 큰절을 올리라는것이였다.

 

한평생을 그리다가 운명의 마지막순간에까지 잊지 못해 다시 불러본 녀인, 이런 사랑도 있을가! 그런데 진짜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여름, 일본에서 총련계의 한 기업가가 왔는데 풍치수려한 보통강반에 있는 한 호텔에서 나를 만나자고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기업가는 몹시 난처해하다가 남조선에 아버지의 전 부인이 있는것을 아는가고 물었다. 나는 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안도의 기색으로 그 녀인이 아버지소식을 물어왔다고, 형님, 누나 다섯을 다 맡아안고 아직도 아버지를 기다리고있다고 전해주었다. 너무 억이 막히면 눈물이 안 나온다고 한다. 대신 심장이 터져온다.

 

세상에 이런 사랑도 있을가! 이런 고귀한 사랑을 나의 아버지와 그 녀인이 했단 말인가! 이런 아름다운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산실에서 태여나고 어느 별빛아래서 무르익는것인가!

 

호텔에서 집까지 가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뜻밖에도 어머니도 그 녀인을 알고있었다. 《삥뽕》인지, 《테니스》인지 한것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보급한 현대판 멋쟁이녀성들중에 한사람이라고 하면서 서울에서도 몇번 본적이 있다고 했다.

 

《네 아버지가 반평생을 그리워한 녀인이다. 내가 미안해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밤마다 조용히 많이 불러본 언니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에 있는 네 형, 누나들하고 맺어진 너의 또 한분의 어머니이시기도 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인편이 아직 있으면 아버지유물중에서 아버지얼굴에 자주 닿군 하던 두터운 모직천에 감싸있는 면도기와 작품을 몇권 보내라고 하였다.

 

《어머니, 그리운 강씨어머니! 이 못난 아들이 어머니를 뵈옵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날은 과연 언제일가요. 부디 통일의 그날까지 장수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버지의 고향과 잇닿은 강씨어머니의 다심한 정도 깃들어있을것만 같은 작은 지도책은 지금도 내가 정히 보관하고있다.

 

 

 

 관련기사

  [연재 3] 월북시인 김상훈의 장남이 쓴 아버지에 대한 추억

►  [연재 2] 월북시인 김상훈의 장남이 쓴 아버지에 대한 추억

►  [연재 1] 월북시인 김상훈의 장남이 쓴 아버지에 대한 추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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