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소식 | 나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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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5-04 00: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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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갔다
사랑하는 남편 윤이상을 잃고 방황하는 마음의 안정을 평양에서 찾았다. 그곳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저주로운 남조선사회를 결별하고 반생을 서방세계에서 살아온 그녀가 생의 말년에 자기삶의 보금자리로 정한 북부조국이 어떤곳이였는지 그의 마음속 독백을 통해 들여다 본다.
나의 독백
인민군목동
넓은 들에 하얀 염소와 양이 100마리가 넘게 퍼져 풀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목동은 그 옆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양들을 몰아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옮기고있다.
여느때 보는 아주머니나 처녀가 아닌 남자이다. 자세히 보니 군복을 입고있다. 내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왜 미소짓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것이다. 내가 자란 한국에서는 목동인 군인을 생각할수 없기때문이다.
저녁 해질무렵에 들에서 풀뜯던 소를 몰고 노래부르며 돌아가는 군인, 소달구지에 풀을 산더미처럼 싣고 앞장서가는 17,8세쯤 돼보이는 군인.
100마리가 넘게 보여 함께 아장아장 걸어가는 거위는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목을 쭉 빼고 옆눈으로 보며《까-까-》소리를 지르며 경각심을 높여 경고하며 지나간다. 그 옆에서 미소지으며 인사하는 목동군인.
거위는 집 지키는 개와 같아, 내가 젊은 시절 서울에서 살 때 언니집 사랑채 넓은 정원에도 거위 두마리가 살았지. 낯선 사람이 지나가거나 흔적이 보이면 굵은 목청을 돋우어《까-까-》하였지.
그 두마리중에 한마리가 죽었다. 한마리 남은 거위는 슬픔에 잠겨《까-까-》하지도 먹지도 않더니 며칠 지나서 따라죽었다. 어쩌면 거위의 부부정이 사람보다 나은것 같다. 아까운 생명은 저나 나나 다 같은것을…….
그 거위가 100마리가 넘게 모여 함께 소리를 지른다. 목동은 거위보고 우리말로 이야기한다.《앞으로 가자.》하니 모두 알아듣고 엉치를 흔들며 아장아장 앞으로 간다. 한참 서서 바라보는 나에게 목동이 깍듯이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거위가 우리말을 알아듣습니까?》
《네, 알아듣습니다.》
《참 용하기도 하지.》
온 국민이 토끼기르기에 열심인 탓에 그 바람이 우리집에까지 불어《토끼 기르자, 토끼 기르자.》하는 나의 말에 영식이가 토끼를 가져왔다. 나는 나라에서 장려하는 털과 고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다만 동물을 좋아하기에 복슬복슬하고 순하고 예쁜 토끼를 쓰다듬으며 노는것을 보고, 자라는것을 보고싶어서이다.
얼마후 영식이가 가져온 토끼가 바로 군인친구에게서 얻어온것임을 알았다.
《거기는 토끼가 몇마리나 있니?》
《새끼 낳을수 있는 토끼만 200마리 있습니다.》
《그래, 거기서는 어떻게 키우고있니?》
《두 사람이 맡아 외부 사람은 접근시키지 않고 철저히 위생적으로 키우고있습니다. 전염병때문에 일년에 두번씩 예방주사를 놓고있습니다.》
《그럼 우리 토끼도 그때 예방주사 좀 맞게 하자꾸나. 근본은 거기서 가져왔으니말이지…….》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우리 토끼 한마리가 죽고말았다. 혹시 전염병같은게 아닐까 해서 걱정하고있는데, 그날로 오후에 군대에서 수의사가 와서 예방주사를 놔주고갔다. 국가에서 장려하니 토끼기르기도 내것 네것이 따로 없다.
《그런데 토끼 한마리가 6마리, 8마리씩 새끼를 낳으니 식구가 빨리 늘겠구나.》
《지금 있는 200마리 종자토끼가 얼마후면 2,000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토끼에게는 다달이 새끼를 낳을수 있는 생리가 있으니 리해가 간다.
《토끼새끼가 너무 예쁘고, 크는것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 정서적으로도 메마르지 않고 얼마나 좋니.》
북의 사람들은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이 없다.
저녁에 텔레비죤을 켜놓으면 노래에서 시작하여 노래에서 끝날 정도로 가수가 많이 나온다. 특히 지방마다, 학교마다, 직장마다 수시로 노래자랑, 노래경연대회가 열리는데, 군인들도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이중 가장 재미있는것은 군인들이 나와서 재담하는것이다.
이렇게 노래소리를 수시로 듣는 나지만 조석으로 대하는, 멀리서 목청껏 독창 혹은 합창하며 일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항상 새롭다.
농사군 인민군
우리집 일대는 밤나무산이다.
군인들이 밤을따기 위해서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어두워질때까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배낭을 걸머지고 떨어진 밤을 줏거나 긴 장대로 밤송이를 털어 모아간다. 몇시간 안가 그들이 짊어진 배낭에는 밤이 가득 찬다.
《군인아저씨, 매일 그렇게 많은 밤을 저장합니까?》
내가 물었다.
《우리는 밤을 한알이라도 더 모아서 유치원과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공급합니다.》
밤은 우리 생활에 귀중한 역할을 한다. 유치원과 탁아소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가.
나는 아침 저녁으로 집앞 호수가를 돌며 산책한다. 조금 더 걸을때는 논밭을 구경한다. 계절에 따라 농사짓는 넓은 밭에는 멀리까지 현대적인 관수시설이 잘 되여있어 기계가 쌩쌩 돌아가며 골고루 물을 준다.
나는 이렇게 감탄한다.
《이밭의 강냉이는 다른 밭보다 참 잘되였구나.》
《이밭 감자는 아주 왕성하게 잘 자랐구나.》
가을 김장때가 되면 배추, 무우, 고추, 파, 생활에 필요한 양념, 콩 등이 들녘을 수놓는데, 이때 다른 밭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잘 자라는 밭들은 군인들이 농사짓는 밭이란다.
한번은 집앞 큰 호수의 물이 자꾸 줄어들어 호수물이 왜 이렇게 줄어드느냐고 묻자 옆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군인들이 산에서 흐르는 개천을 막아 자기들 소유의 땜을 만들어 저장한 뒤 그 물로 관개농사를 짓습니다.》
《그래……?》
여름에 풋강냉이가 익을때면 차지고 잘 여문 강냉이를 군대에서 많이 보내와 매일 포식을 한다. 독일은 풋강냉이를 팔지 않고 또 먹지 않으니 몇십년만에 맛보는 풋강냉이다.
결국 북의 군대는 군사연습만 하는 군대가 아니다. 자급자족원칙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에서 건설업자가 담당하는 임무를 도맡아하고있는것 같다. 게다가 봄에 한창 사람손이 모자랄때에는 물론이고, 가을걷이에도 동원되여 농민의 일손을 돕는다.
그러니 군인과 국민의 생활이 가까울수밖에 없다. 이 나라의 지침대로 《군민일치》의 방침에 부합하게 살고있는것 같다.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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