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방북기 "인간애", "혁명정신" 유지하는 북쪽 나라 방문1 -김정숙 평양방직공장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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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1-16 02:1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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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북을 방문하여 돌아온 서은정 재미동포의 북 방문기를 소개합니다. 서은정 재미동포의 북 방문기는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방문기를 보내주신 서은정 재미동포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북 일상 생활의 생생한 소식을 잘 알 수 있는 방문기입니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추진하는 "북바로알기운동"의 좋은 글이라 여겨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먼저 방북기 1편인 <인간애>, <혁명정신> 유지하는 북쪽 나라 방문1 를 소개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국
<인간애>, <혁명정신> 유지하는 북쪽 나라 방문1
-김정숙 평양방직공장 견학-
서은정 (재미동포, 위신칸신 거주)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진리의 말이 있다. 북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눈이 조금씩 더 넓게 뜨이며 내가 사는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이 나라에 대해서 조금씩 더 많이 보이게 된다. 내가 북쪽에 대해서 아는 만큼 북쪽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북을 방문하기 전 매일 접하는 미국이 일으키고 있는 전쟁 등을 보면서 미국에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물음을 가질 때가 많다. 미국이 민주주의라는 정의의 선한 가면을 쓰고서, 약소국가에 들어가서 무자비한 횡포를 저지르고, 국익이 되면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민들에게는 언제나 그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있다.
미국 나라 자체는 1000개가 넘는 핵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는 아무리 핵을 가져도 눈감아주면서, 미국과 대적 관계에 있는 북이 주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으로 가진 핵을 가지고 협박하고 북을 <악마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강자 독식, 철저한 강자중심의 정의를 외치고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익과 자본의 철저한 이득을 추구하는 이러한 세상에 나의 자손들이 뿌리를 내리도록 한 내가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나 나 또한 이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으면서 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번 방문은 이러한 자본주의와는 철저하게 다른 집체적인 나라, 개인 중심의 삶이 아니라 전체이익을 추구하는 북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우리와는 다른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북쪽 나라가 그렇게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면서 지키고자 하였던 주체 정신은 무엇일까? 이러한 것을 다시 마음속에 담아보기로 하였다.
무엇보다도 북쪽이 경제와 국가안보를 병행한다는 병진정책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에 의해서 망가지고 있는 <인간애>, <혁명정신> 이러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북쪽 나라를 방문하고 나 자신이 북쪽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여행길에 올랐다.
70년 역사의 분단은 북쪽을 방문하는 나의 여행길을 한없이 불편하게 한다. 북쪽과 미국의 외교가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북쪽 비자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꼭 중국에 들어서 그곳에서 북쪽비자를 받고 중국 북경이나 심양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나 이틀을 지나야만 한다. 그래서 중국에 무수한 돈을 뿌리게 한다. 물론 작은 불편함이지만 이러한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을 분단 때문에 겪어내어야 한다면 그 불합리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북쪽을 가느냐? 이산가족이냐? 북쪽에 누가 사는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분단 70년 동안 헤어진 나라에 사는 모든 우리 조국의 사람들 모두가 나의 헤어진 이산가족이라고 외친다? 꼭 피붙이가 있어야 이산가족일까? 그렇게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는데, 모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할아버지요 할머니며 나의 가슴에 품고 사는 헤어져 있는 그리운 식구들이다.
그래서 나는 북쪽을 방문할 때마다 꼭 그들을 위하며 무엇인가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을 설레며 그들을 위해서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가진다.
설렘과 기대, 이 나라에 대해서 좀 더 알고자 하는 나의 호기심, 무엇보다도 이렇게 불합리한 분단을 70년째 그대로 계속하고 있다는 이 비극에 분노하면서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처음 이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감격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들의 인간미, 순수하게 빛나던 정신, 통일에 대한 열망, 이런 것을 다시 내 마음에 담아보고 싶었다. 또 하나의 잃어버린 내 조국의 흙냄새와 그곳의 사람냄새, 그곳 강산을 내 눈에 다시 익히고 담기 위해서 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그 순수한 마음을 담고 그곳에서 지향하는 혁명정신과 따뜻한 인간애를 내 가슴에 다시 담고 싶었다.
얼마나 변했을까? 어떻게 변했을까? 핵보유국으로서 당당하게 세계 속에 우뚝 선 북에 대한 자긍심과 이제 경제발전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는데 경제는 얼마나 발전하였을까? 몹시 궁금했다. 나는 이번 방문 길에 인상 깊은 곳에 대해서 테마 별로 세 번에 걸쳐서 나의 방문 경험을 써보고자 한다.
첫 주제 방문: 김정숙평양방직공장 (옛 평양방직공장) 견학
이번 방문 길에는 평양 방직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북쪽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체험할 수가 있었다. 이 직물공장은 1948년 북부 조선이 단독정부를 세우자마자 10월 10일에 준공을 했다. 북쪽에 최초로 세우진 역사적 직물공장이다. 그런데 이 공장이 최신식으로 재건축되어 평양시 북쪽에 세워져 있었다. 직물공장 옆에는 직공들이 합숙하는 합숙소가 초현대적 건물로 서 있었다. 경제발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북쪽의 역사적인 건물에는 하나같이 기록관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인 증거들을 보관하고 그것을 설명해준다. 살아있는 역사 기록관이다. 이 기록관에 먼저 들어서니 직물공장에 관한 여러 가지 역사적인 기록이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숙 여사가 말한 어록을 적은 현판이었다. 현판에는 “여기에 방직공장을 지어 헐벗고 살아온 우리 인민들이 옷을 마음대로 해 입을 수 있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적혀있다. 김정숙 여사의 인민에 대해 따뜻한 마음과 그 배려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민족의 어머니로서 김정숙 여사는 일제 압박에 시달리면서 가난과 궁핍, 그리고 핍박 속에서 지내던 인민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서 그 차가왔던 몸에 옷을 입어서 따뜻한 훈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김정숙 여사의 마음이 김주석의 가슴을 적셔서 이곳에서 최초로 옷을 만드는 천을 짜내는 방직공작을 세우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공장은 시공이 되자마자 곧 전쟁을 겪게 되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서도 지하에서 방직공장을 돌렸다고 전한다. 한국전쟁과 동시에 전쟁의 참혹함을 함께 경험한 공장이기도 하다.
이 공장의 또 하나의 수난은 1965년 북쪽에 들이닥친 대 홍수로 인해 이 공장이 완전히 파손되었다가 1967년 9월 8일에 완전히 복구되었다고 한다. 파손과 복구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 공장도 어김없이 겪었구나 생각하니, 이곳에서 일하던 직공들의 수난사가 그대로 가슴에 전해진다.
이 직물공장이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담겨져 있어 중요한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간주하였으며 김주석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는가를 기록으로 보여준다. 기록 속에서는 그동안 김일성 주석은 이곳을 48차례 다녀갔으며, 김정일 장군은 43차, 김정숙 여사는 1차(아마도 젊은 날에 돌아가셔서 처음 지은 후 한번 밖에 와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원수께서는 1차 방문을 하였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 평양 방직공장이 새로운 이름인 “김정숙 방직공장”으로 새롭게 불리게 된 역사기록도 전해진다. 2010년 12월 21일에 순방 길에 들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이곳을 들르셨다. 이때 이 공장을 처음 지었을 당시의 어머님의 인민을 배려하였던 마음을 기억하면서, 어머니를 회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하고 현대적으로 잘 완비된 공장을 보면서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기뻐하시면서 앞으로 이 공장을 “김정숙방직공장”이라고 새롭게 부르기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에든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는 김주석의 인민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주석이 이곳 식당에서 직공들에게 제공하는 국 맛까지도 손수 먹어 보시고 이 국 맛이 일꾼들의 입맛에 맞는지 직접 시음한 사진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김주석의 인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잘알 수 있다.
여러 기록 사진 중에서도 이씨 성을 가진 한 여성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전쟁 중에 양쪽 부모를 잃고 죽음의 시체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던 9살 소녀를 인민군이 발견하고 이곳 방직공장에 데려와서 합숙소에서 길렀다고 한다. 총명하고 부지런하게 자란 소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자기가 자라났던 방직공장에 들어와 일하게 되었다. 이 소녀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으며 지도력도 겸비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25년 동안 일을 하게 되고,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여 방직공장 당비서를 거쳐서 대의원(국회의원)까지 지냈다. 그리고 “영웅 직포공”이라는 영웅칭호까지 받아서 자랑스러운 방직공장의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방직공장이 길러낸 인물이었다.
그 이외에 여러 영웅칭호를 받은 인물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현재 8000명의 직공이 일을 하고 있는데 주로 다 처녀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국가에서 처녀들이 시집을 가더라도 이곳에서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길 건너 맞은편에 “남자방직기기공장”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기기공장 총각들과 방직공장 처녀들이 자연적으로 짝을 지어서 미래를 설계하고 결혼하여 부부가 합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려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장을 운영하니 가능한 것이다.
8,000명의 직공들은 8시간 일하며 하루에 3교대로 시간을 정하여 작업한다고 한다. 전시 장안에서는 이 공장에서 생산해온 직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실들도 전시되어 있다. 해설가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서 나온 천을(직물을) 1973년 5월 8일에 남쪽으로 대량으로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보냈던 직물들을 우리 전시관에 보관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직물공장 안으로 돌아가서 어가서 여러 가지 실과 직물 기기를 관람했다. 현재 72대의 직물 기기가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안에서는 내년에 북쪽에 있는 전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복을 나누어 주기로 하였기 때문에 72대의 직물기기를 완전 가동해서 직물들을 짜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전국학생들에게 2년에 한 번씩 무상으로 교복을 국가에서 공급한다고 한다. 돈과 자본이라는 논리에 익숙한 나에게는 국가에서 전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이 말이 귀에 익숙하게 들어오지 않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국가에서 모여 운영한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고 마음에 새겼다. 생각해보니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국가에 대해 고마움과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되었다. 그러니 학생들이 돈과 자본에 의해서 지배되는 삶을 생각하지 않고 민족과 주체 정신, 혁명정신에 투철하게 교육받으며 정신이 빛나는 삶을 추구하게 되겠구나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나에게 새겨졌다.
역시 우리들의 가장 눈을 끈 것은 최근에 완공한 직공들이 사는 현대식 여성합숙소였다. 건물은 아주 현대식으로 지어졌고 초록색으로 건물 중앙을 선으로 둘려서 더욱 색깔이 있는 밝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이 합숙소는 1, 2 그리고 3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건물 안에는 모두 330개의 방이 있으며, 한 방에는 7명이 합숙하며 지낸다. 이 건물 안에는 현재 2300명의 산다고 한다. 합숙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처녀들이지만 그러나 결혼 한 사람들도 함께 산다고 한다. 결혼한 사람들은 살림은 따로 하되 식사는 합숙소 식당에서 함께 한다고 했다.
건물로 들어가서 그들이 합숙하는 방을 구경하였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천장은 낮았고 벽은 분홍색으로 페인트칠을 하였다. 이곳 책임자가 나와서 설명하기를, 이 낮은 천장과 분홍 벽 색깔은 여성들의 분위기에 맞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에는 침대와 옷장, 그리고 TV, 전화들이 놓여있고 각 개인에게는 자기들의 물건을 넣어놓을 수 있는 큰 붙박이장이 있었다.
일층 매장에서는 온갖 일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처녀들이라 여러 가지 여성화장품, 여성 크림, 비누, 샴푸, 브래지어, 신발, 옷들, 등등 간단한 과자 와 음료도 팔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파는 화려한 여성 장식용 머리핀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이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머리핀이 평양처녀들의이 즐겨서 사용하고 있는 유행하는 미리 핀인 모양이다.
내가 평양에 있는 식당이나 다른 곳에서 만나본 본 머리가 긴 여성들은 아름답게 땋은 머리끈에 반짝거리는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예뻤다. 나도 머리가 길다면 한번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합숙소에서는 밤마다 모든 직공에게 꽈배기 과자와 탄산 음료가 제공된다고 한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우리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한 것은 최신 현대적인 목욕시설이었다. 가장 현대적으로 만들어진 목욕실에는 사우나, 온도가 다른 목욕물이 담긴 색깔이 다른 목욕탕이 있었다. 푸르고 흰색 타일로 반짝반짝 빛나는 현대식 목욕탕에는 뜨거운 물, 찬물, 사우나 시설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의 노동의 피로를 풀고 깔깔거리며 장난치며 수다를 떨면서 목욕하는 이곳 직물공장 처녀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마음이 참 따뜻하고 흐뭇했다.
이 합숙소는 김정일 장군 시대에 지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아마도 2011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정확한 연도는 잘 모르겠다). 합숙소 책임자는 이 건물에 얽힌 감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언제나처럼 북쪽에서는 이 합숙소를 짓는데 6개월 만에 완공을 하였다고 한다. 속도전을 하였다고 한다. 집중적으로 합심하여 전체가 힘을 합쳐서 모여 이루어냈다는 이야기이다.
건물을 짓는 동안 겨울을 나게 되었는데, 겨울에 건물이 얼까 봐 건물보호 천으로 건물을 감싸서 추위로부터 건물의 파손을 막았다고 한다. 건물을 짓는 동안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안이 어떨까 상상하고 궁금해 했다고 한다. 6개월 만에 완공된 그 날 5.2일 노동절을 맞이하여 완공된 건물 안에서 모든 직공들을 초청하여 큰 연회를 베풀었다.
6개월 만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 모든 직공은 그 현대적 시설과 따뜻한 배려에 놀라고 감격하여 서로 껴안고 환호와 감격의 눈물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날 1인당 20kg의 물고기가 제공되었으며, 7식구에는 140kg의 물고기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고기가 몇 마리가 될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때 물론 푸짐한 음식과 가무도 함께 제공하고 기쁨과 감사의 축하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받고 숙식에 대한 무료 제공받으며 국가 전체 학생들을 위해서 직물을 짜는 이곳 직공들을 생각해보니, 그들이 왜 행복하면서 국가를 신뢰하는지 그 마음에 가슴에 와 닿았다. 모든 것이 집체적 이익과 인민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새삼 느꼈다.
다음엔 마식령 스키장(북쪽에서 말하는 조선 속도전은 무엇을 말하는가? 늘 이야기하고자 한다.(1부 끝)
.▲김주석, 김정일장군, 김정은 원수의 방문횟수를 기록한 현판
▲건물 단 안에 서 있는 폿말
▲직물공장단지 안에 전시된 영웅들의 사진들
▲직물장 안의 실을 짜는 직물기들
▲초 현재식 건물의 여성 합숙소
▲여성합숙소 안의 일용품매장
▲현재 유행하는 머리핀 판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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