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루이제 린저의 방북기/ '북한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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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1-15 06:5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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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북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이북 정권을 심하게 자극하고 있는지금 1981년에 ‘형성사’가 발행한 루이제 린저(1911-2002)의 <북한이야기>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국가사회주의정권 <나찌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인하여 집필금지조치, 구금, 그리고 사형선고까지 받은 적이 있다. 지난 10월 유엔총회 인권토론회에서 증언한 탈북자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루이제 린저가 본 북 수용소의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국
<북한이야기> 1981년 형성사 발행
북한의 감옥
전체주의 국가는 반대자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나는 작년에 이러한 질문을 던져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은 바 있다. 정치범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을 위한 감옥도 없다.
굳이 들자면 재교육을 위한 감화원이 있을 따름이다 나는 첫번째 여행기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다가 서구인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스스로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즉 <감화원이란 무엇인가?> 북한 사람들은 <수용소>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다음번 여행때는 이에 대해 정확한 말을 듣고
또 그러한 감화원을 방문하리라 마음 먹었다. 이러한 방문이 내게 허용될까?
내가 바아로와 같이 있을 때는 북한당국자들이 내 간청을 건성으로 흘려 들었다. 나는 이러한 것은 해명없이 거절하는 방식이라고 서구적인 태도로 의심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다. 즉 나는 서방의 모든 방문객들, 특히 안목이 좁은 저널리스트들이 저지르는 기다리지 못하는 잘못에 빠졌을 따름이었다.
나는 북한 당국이 바아로에게는 어렵지만 내게는 이러한 소망을 실현시켜 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바아로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아무튼 바아로는 소련과 동맹국인 동독 출신이면서도 망명한 인물이었다.그가 독일로 되돌아 가자마자 감화원 가운데 한 곳을 방문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일행은 평양북쪽에 있는 감화원에 들렀다. 우리 일행은 김선생과 통역자인 리틀 김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두 세 명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이 감화원에 와 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내가 감옥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최초의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우리는 숲과 들로 둘러싸여진 2층 집에 도착했다. 김선생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집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는 마치 젊은이들의 숙박소(=유스호스텔) 같았다.
담장이나 감시탑, 가시철조망 그리고 쇠창살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진입로에서 여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벼를 말리기 위해 삽으로 이리저리로 옮겨놓고 있었다.
결코 중노동은 아니었다. 그들은 수자가 세겨진 웃옷을 입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죄수인 셈이었다. 그들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간수로 보이는 한 여자가 다가왔는데, 그녀는 친절했고, 서구와 같은 류의 간수는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의 방문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원장을 불러왔는데, 그 역시도 우리의 방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이미 나는 <아, 이들이 나를 속이려 드는구나>하고 여느 서구인들과 또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크게 빗나갔다. 즉 법무부의 허가가 아직 내려지지 않았었다. 평양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허가가 내려졌다. 그때야 나는 이곳 사람들이 놀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방문객을 위해 아무것도 꾸밀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았다. 이것이 감옥인가?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이곳이 감옥인 것은 사람들이 구금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감옥이 아닌 것은 이곳이 내가 아는 다른 나라의 감옥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독방은 없었고 한 침실에서 10명 내지는 12명씩 잠을 잤다. 죄수들은 여느 한국인들처럼 온돌식 방바닥에 깔린 요위에서 잠을 잤다.
창문에는 쇠창살이 없었고 복도에는 격자문이 달려있지 않았다. 남자 구역과 여자 구역 사이에도 차단시키는 격자나 밀폐시킬 수 있는 문이 없었다.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아버지 같은 타입의 푸근하고 친절하며 마음을 터놓는 원장과 장시간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외국인 방문객을 처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마음을 터놓았다. 그는 나의 모든 질문에 사심없이 대답했다.
*죄수들은 어떤 죄로 이곳에 갇혀 있습니까?*
*절도, 부주의한 잘못으로 작업에 손해를 끼친 행위, 지속적인 태만,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된 결근 등의 죄입니다.*
*살인죄는 없습니까?*
*살인죄라고요? 그러한 범행은 발생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한 살인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형도 없겠군요?*
그는 깜짝 놀라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무슨 말이십니까!*(내가 아는 한 사형은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집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종신형은요?*
*오, 말도 되지 않습니다. 법률상 제일 긴 형벌기간은 1년입니다. 하지만 모든 죄수들은 자신들이 직접 석방시기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는 죄수들이 낮에 거처하는 방에서 그래프가 그려진 벽보판을 보았다. 죄수들 모두가 각기 자신들의 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 표는 작업달성도와 학습(주체사상의 습득과 이해)의 진도, 그리고 자비심이 가장 중요성을 갖는 좋은 품행 등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색깔의 막대눈금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의 눈금을 다 채워 올린 자는 재교육된 것으로 간주되어 석방된다. 이렇게 석방된 자는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 가는데, 이곳에서는 형벌을 받았다고 해서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다.
즉 전과자라도 차별 대우을 받지 않는다. 죄를 지으면 속죄하는 것으로 모든 게 매듭지어진다.
그런데 이곳에 갇혀 있는 자들은 어떠한 계층 출신들입니까?*
*다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입니다.*
*그리곤, 경영자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파면되어 다른 직장, 대개는 잘못을 저지른 곳과는 동떨어진 직장에서 노동자로 밑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한 형벌이죠.*
(나는 계속해서 과감하게 질문해 나갔다.) *고위직 간부일 경우는요?*
*그런 사람들은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의식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치범은요?*
*정치범이라고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김일성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 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이에 대해 아는 바 없습니다. 하지만 체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고 해서 구금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들은 자기자신과 부합되지 않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민회의가 있습니다.*
나는 이쯤 해두었지만, 다음번 여행때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거론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내가 이번에 알게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즉 북한감옥에서는 격리구금이 없고,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고문이 없었다. 또한 면회금지, 서신검열, 구타, 기합, 업신여김 등이 없었다.
나는 히틀러 치하에서 겪은 내 자신의 감옥시절뿐만 아니라 서독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 그리고 쉬탐하임을 생각해 보았다.
이럴진대, 서방언론이 북한에 대해 암흑의 독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북한 당국은 죄수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몹시 신경쓴다. 이 때문에 투옥 기간은 짦고 인간적이며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
아울러 편지쓰기가 권장되고 있고 우편물은 검열하지 않으며, 면회는 감시받지 않는다. 죄수라 할지라도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 되며, 가능한 바르게 다시 정상적인 직장생활로 복귀되어져야 한다.
*죄수들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됩니까?*
*정원이나 들 그리고 가축우리에서 8시간 작업을 하고, 2시간 학습을 받은 후에, 낮에 거처하는 방에서 텔레비젼을 보거나 운동을 하며 자유시간을 보냅니다.*
원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위대하신 지도자 김일성 수령님께서는 형벌을 통해 사람의 기를 꺽지 말고 토론과 모법적인 태로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포는 가장 나쁜 교육수단입니다. 억압은 증오와 저항을 낳기 마련입니다.*
나는 간수나 원장이 총을 차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다 총을 사용한단 말입니까?*
*죄수가 달아날 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달아나는 죄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들의 죄를 잘 알고서 속죄합니다.
그들이 어디로 달아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총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총은 오직 전쟁터에서만 사용될 따름입니다.
우리는 총을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때가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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