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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기고] 긴장고조 속에 발생한 지뢰사건 ― 8월부터 달라진 전방작전과 국방부·유엔사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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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9-30 18: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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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고조 속에 발생한 지뢰사건 ― 8월부터 달라진 전방작전과 국방부·유엔사의 움직임


윤현일 (자유기고가)


9월 21일 서부전선 25사단 관할 비무장지대(DMZ)에서 새로운 수색로를 개척하던 한국군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 작전에는 18명이 투입됐고 두 차례의 폭발로 3명이 다쳤다. 합참은 9월 28일 중간조사에서 조선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29일에는 폭발지점 가까이에서 땅에 묻혀 있던 조선 수지반보병지뢰 한 발이 추가로 발견됐다.

30일에는 합참과 유엔사가 조선 지뢰가 군사분계선(MDL) 남쪽에 매설돼 있었다며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공식 판단했다. 유엔사는 한국군과의 합동조사에서 발견된 조선 대인지뢰뿐 아니라 두 곳의 폭발 화구도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다고 확인했다. 조선은 김여정부장 담화를 통해 이를 전면 부인했다.

이번 사건은 지뢰의 출처만 밝힌다고 끝나지 않는다. 왜 한국군은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곳에서 군사분계선 바로 앞까지 새로운 통로를 만들고 있었는가. 왜 사고가 발생한 25사단과 멀리 떨어진 양구 21사단을 김여정부장이 구체적으로 지목했는가. 무엇보다 조선의 국경강화공사는 오래전부터 진행됐는데 왜 8월부터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갑자기 늘어났는가. 

지뢰가 터진 것은 9월 21일이다. 사건의 시작을 9월 21일로 잡으면 그 이전부터 군사분계선에서 진행되고 있던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그 변화가 지뢰사건을 만들었다. 물론 변화의 현장에는 유엔사도 있었다. 


1. 지뢰폭발 이전부터 군사분계선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합참에 따르면 9월 21일 작전의 목적은 조선군이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형변화를 유엔사와 현장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병들은 기존 수색로를 따라 이동한 뒤 지뢰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면서 군사분계선 방향으로 약 200m의 새로운 수색로를 개척했다. 수색대대장은 군사분계선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해 작전을 종료하고 철수를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합참은 폭발지점을 군사분계선 남쪽 10여m라고 밝혔다.

합참이 조선군 지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근거도 구체적이다. 사고지역에는 한국군의 지뢰매설 기록이 없었고 장병들의 장구류에서는 TNT와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한국군 지뢰에서 예상되는 철제 파편도 발견되지 않았다. 폭발 화구와 화염, 장병들의 부상 형태와 현장 진술도 판단근거에 포함됐다.

29일 발견된 조선 수지반보병지뢰는 이러한 판단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군 당국은 이 지뢰가 유실된 것이 아니라 매설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현장 전문가들은 매설된 지 최소 1년 이상 지난 것으로 평가했고, 2025년 9월 군이 위성으로 지뢰매설 흔적을 식별한 시점보다 더 오래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고지역에 조선 지뢰가 매설돼 있었다는 근거는 매우 강해졌다. 하지만 29일 발견된 지뢰와 21일 실제 폭발한 두 발이 언제 함께 매설됐는지, 조선군이 최근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지뢰를 매설했는지까지 밝혀진 것은 아니다. 유엔사도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조선 대인지뢰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했지만 매설시기까지 발표하지는 않았다.

군사분계선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정전협정 직후 1,292개의 표지판이 설치됐지만 현재 식별 가능한 것은 약 200개에 불과하다. 한국군 군사지도와 유엔사가 사용하는 기준선도 약 60%가 일치하지 않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수십m의 차이가 난다. 한국군은 표지판을 우선 적용하되 기준이 불분명하고 한국군 지도와 유엔사 기준이 다를 경우 더 남쪽에 있는 선을 기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한국군과 유엔사가 모두 폭발 화구와 추가 지뢰 발견지점을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군사분계선 기준은 동부전선에서 반복되고 있는 월선 판정으로 가면 다시 중요한 문제가 된다.


2. 김여정부장은 25사단이 아니라 21사단을 말했다


김여정부장은 9월 30일 공개된 담화에서 이번 지뢰사건을 ‘자작광대극’이라고 주장하고 조선군이 국경선을 넘어간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이것은 조선측 주장이다. 그런데 군사적 대응을 경고하면서 구체적으로 지목한 곳은 사고가 발생한 서부전선 25사단이 아니었다. 동부전선 3군단 21보병사단 정면이었다.

김여정부장은 8월부터 한국군이 조선군의 국경강화공사에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군이 경고사격을 넘어 조선군을 향해 실제 사격을 하면 즉각 보복하겠다고 밝혔다. 대응행동지침이 국경선방어구분대들에 내려간 상태라며 최근 충돌이 잦은 21사단 비무장지대 방향에는 전술적반격수단을 증강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군 자료에서도 최근 월선 판정은 21사단 지역에 집중됐다. 25사단의 지뢰폭발에 대응하면서 김여정부장이 21사단을 지목한 것은 조선이 이번 사건을 지뢰 하나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이 문제 삼은 것은 8월 이후 군사분계선에서 반복되고 있는 월선 판정과 경고방송, 실탄 경고사격이었다.


3. 양구의 긴장은 8월부터 높아졌다


국방정보본부가 9월 30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조선군의 군사분계선 월선 판정은 8월 20여 차례, 9월 30여 차례로 두 달 동안 50여 차례에 이르렀다. 최근 사례는 21사단 관할지역에 집중됐다.

21사단이 담당하는 양구는 고지와 깊은 계곡이 이어지는 산악지역이다. 수풀이 우거지고 안개까지 겹치면 대부분 사라진 군사분계선 표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한국군과 유엔사가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기준도 일부 지역에서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지형과 불완전한 군사분계선은 8월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조선의 국경강화공사 역시 2024년부터 계속됐다.

달라진 것은 8월 이후 월선 판정과 경고사격의 빈도다. 한국군은 조선군이 이전에 작업하지 않던 구간까지 국경강화공사를 확대하면서 월선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조선은 자기 군인들이 국경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설명을 가르려면 실제 월선 판정이 내려진 좌표와 당시 적용한 군사분계선 기준이 중요하다.

9월 9일 진영승합참의장과 제이비어 브런슨유엔군사령관은 동부전선 최전방소초(GP)와 일반전초(GOP)를 함께 방문했다. 두 사람은 조선군의 군사분계선 근접작업과 비무장지대 작전상황, 한국군의 경계작전태세를 점검했다. 당시 한국군과 유엔사의 군사분계선 기준 불일치 문제도 현안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8월부터 양구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단순히 ‘조선군이 자꾸 넘어왔다’는 설명으로 끝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군의 작업구간 확대, 한국군의 경계작전 변화, 군사분계선 기준의 차이가 각각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실제 좌표와 작전기록을 통해 가려질 수 있다.


4. 7월 말부터 전방 경계작전도 달라졌다


양구에서 월선 판정이 증가하기 직전 한국군의 전방 경계작전에도 변화가 있었다. 7월 말 서부전선 1군단이 GP·GOP 경계작전에서 K6 중기관총과 K4 고속유탄발사기 등 공용화기에 실탄을 장착하지 않고 운용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육군지상작전사령부는 7월 30일 전방 군단에 공용화기의 실탄 장착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5개 전방 군단의 경계작전을 점검했다.

8월 13일 안규백국방부장관은 5사단 GP와 GOP를 찾아 공용화기와 개인화기 운용상태를 점검했다. 안장관은 상황이 발생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전방부대의 실탄운용과 즉각대응이 다시 강조된 직후 동부전선에서는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적으로 이어지지만 이것만으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말할 수는 없다.

9월 9일 진영승합참의장과 브런슨유엔군사령관은 월선 판정이 집중된 동부전선을 함께 찾았다. 일주일 뒤 브런슨사령관은 연합합동전영역작전(CJADO·Combined Joint All-Domain Operations)을 강조하며 실시간 정보공유와 센서·타격수단의 연결, 연합 지휘통제체계의 통합을 요구했다. 위협을 탐지하면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 브런슨사령관은 한국을 미국의 지역적 ‘집단방위의 결정적 중심’으로 표현했다. 조선 대적연구원 강철수실장은 이를 문제 삼아 한국이 ‘집단적응징의 결정적목표’가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브런슨의 발언과 21사단의 경고사격 사이에 직접적인 지휘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9월 들어 미한연합군 차원에서는 탐지와 대응의 시간을 줄이는 작전체계가 강조됐고 군사분계선에서는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반복되고 있었다.

군 내부에서도 12·3 비상계엄 이후 방첩사령부 해체와 기능분산 등 큰 조직개편이 진행됐다. 국방부는 정치개입 차단과 군 정보기관의 재구조화를 개편 이유로 제시했다. 조직을 바꾸는 것과 전방작전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판단과 대응방식이 바뀌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8월 이후 실탄 경고사격이 크게 늘어난 만큼 전방 경계작전의 판단과 대응절차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별도로 살펴볼 수 있다.


5. 25사단은 군사분계선으로 새 통로를 만들었다


9월 21일 25사단은 평소 사람이 다니지 않던 지역으로 들어가 군사분계선 방향의 새로운 수색로를 만들고 있었다. 합참은 조선군이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형변화를 유엔사와 현장조사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밝혔다.

현장조사를 먼저 요청한 쪽은 한국군이었다. 합참은 2025년 9월 지뢰매설로 의심되는 지형변화를 식별한 뒤 10월부터 유엔사에 현장확인을 요청했다. 2026년 3월에는 유엔사와 현장조사를 시도했지만 유엔사측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이후 한국군이 다시 요청하면서 9월 공동조사가 추진됐다.

공동조사를 앞두고 새로운 수색로를 미리 개척하기로 결정한 것은 25사단이었다. 유엔사가 한국군에 새 통로를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25사단은 수색대대장과 공병요원 등 18명을 투입했고 지뢰탐지와 예초를 반복하면서 군사분계선 방향으로 약 200m를 전진했다.

그러면 3월과 9월 사이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중요해진다. 3월에는 위험하다고 현장조사를 중단했던 지역인데 6개월 뒤에는 18명을 투입해 새로운 통로를 만들었다. 25사단은 어떤 위험평가와 안전대책을 근거로 이 작전을 결정했는가.

새 통로를 현장조사 뒤에도 계속 사용할 계획이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 차례 조사를 위한 임시통로였는지, 이후 수색·감시·경계작전에도 사용할 작전로였는지에 따라 통로의 성격은 달라진다.

유엔사 역시 3월에는 위험하다고 철수했다가 9월에는 다시 공동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9월에는 어떤 조건이 달라졌다고 판단했는지, 25사단이 마련한 접근로와 안전대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지뢰의 출처와 별개로 한국군 18명이 왜 그날 그 위험지역에 들어갔는가는 여전히 남아 있다.


6. 국방부와 유엔사의 이견은 6월부터 시작됐다


조선의 국경강화공사에 대해 국방부·합참과 유엔사의 판단은 지뢰사건보다 앞선 6월부터 달랐다. 합참은 6월 22일 조선군의 군사분계선 일대 장애물 설치를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날 국방부대변인은 비무장지대를 완충지대로 설정해 적대행위 재발을 방지한다는 정전협정 1조 1항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유엔사는 같은 사안을 다르게 봤다. 건설·요새화와 같은 방어적 조치 자체가 자동적으로 정전협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며 정전협정과 후속합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같은 조선의 국경강화공사를 놓고 국방부·합참과 유엔사가 서로 다른 판단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관할을 둘러싼 이견도 있었다. 국방부는 비무장지대 남측구역 가운데 한국군 철책 이남 지역은 한국군이 관할하는 이른바 ‘분할 관할’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엔사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한국 정부는 실제 한국군이 관리하는 현실을 관할에도 반영하려 했고 유엔사는 기존 정전협정 관리체계를 유지하려 했다.

지뢰사건 이전부터 국방부와 유엔사는 비무장지대 관리와 정전협정 적용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었다. 이 차이는 8월 유엔사 조직개편 문제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7. 유엔사 조직개편 논란 속에 지뢰사건이 발생했다


8월에는 유엔사 조직개편 문제가 불거졌다. 유엔사는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를 중심으로 정전협정 이행 감시와 비무장지대 출입승인 등을 담당하는 군사정전위원회 기능 등을 통합한 가칭 ‘경비·정전집행여단’ 창설을 추진했다. 유엔사는 병력이나 전력을 늘리거나 새로운 권한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직을 재편해 지휘통제와 협조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며 우려를 전달했다. 8월 14일 안규백국방부장관은 브런슨유엔군사령관과 이 문제를 논의해 여단을 만들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창설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유엔사는 같은 날 여단 창설 구상이 철회되지 않았으며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 측에는 조직개편 검토 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내용을 알려 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안규백장관은 큰 틀에서 서로 합의돼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알려 왔다’는 것과 ‘협의하고 합의했다’는 것은 다르다. 한국 정부는 협의 부족을 문제 삼았고 안규백장관은 창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계속 추진한다고 했다. 공개된 설명만으로는 양측의 협의가 실제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8월부터 동부전선의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크게 늘었다. 9월 9일에는 진영승합참의장과 브런슨유엔군사령관이 동부전선을 함께 찾았고, 12일 뒤 25사단은 유엔사와 현장조사를 하기 위한 새로운 수색로를 개척하다 지뢰사고를 당했다.

사고 뒤 한국군과 유엔사는 27일부터 합동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29일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작동 가능한 조선 수지반보병지뢰가 발견됐고 30일 유엔사는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비무장지대 관리와 정전협정 집행조직을 둘러싼 국방부와 유엔사의 이견이 계속되던 시기에 25사단이 유엔사와 현장조사를 위한 통로를 만들다 사고를 당했다. 당시 조직개편 협의와 25사단 현장조사에서 유엔사가 맡은 역할은 사건의 제도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8. 지뢰사건의 중심에는 국방부와 유엔사가 있다


이번 지뢰사건의 중심에는 국방부와 유엔사가 있다. 이것은 두 기관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8월 이후 군사분계선의 경계작전 변화에서부터 25사단의 새로운 수색로 개척, 사고 이후 현장조사와 정전협정 위반 판단까지 두 기관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합참에는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 8월부터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급증한 이유, 양구에서 월선을 판정할 때 적용한 군사분계선, 3월에 중단했던 현장조사를 9월에 다시 추진하면서 달라진 위험평가와 안전대책이다. 25사단이 만들던 약 200m의 새로운 통로를 현장조사 뒤에도 사용할 계획이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안에서의 한국군 활동이 유엔사의 허가사항인지 암묵적 합의인지도 밝혀야 한다. 

유엔사의 경우에는 8월 조직개편을 한국 정부와 어느 수준까지 협의했는지가 남는다. 안규백장관은 브런슨사령관과 여단을 만들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유엔사는 계속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3월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해 현장조사에서 철수했다가 9월에는 다시 조사에 나선 과정과 25사단의 새로운 수색로 개척에서 맡은 역할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했다. 국방부의 설명만으로 사건 전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전협정과 비무장지대 출입·조사에 직접 관여한 유엔사의 설명도 함께 들어야 한다.


결론 ― 군사분계선에서 총성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1950년 코리아전쟁 직전에도 38선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됐다. 1949년 6월 11일 주한국 미국대사 존 무초는 미국 국무부에 38선에서 사건이 매일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대부분은 작은 사건이었지만 개성과 옹진에서는 비교적 큰 충돌도 발생했다. 무초는 앞으로도 이러한 국경충돌이 계속되거나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현재 상황을 1949년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적대적인 군대가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겨누고 작은 충돌을 반복하는 상황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9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지뢰사건에 대한 현안질의를 실시했다. 30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지뢰사건 등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를 위한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정부와 여당이 불참해 정부를 상대로 한 질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지뢰사건의 조사결과뿐 아니라 8월 이후 군사분계선의 상황, 국방부·합참과 유엔사의 판단과 역할을 국회 차원에서 함께 점검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월선 판정과 실탄 경고사격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 실제 적용된 군사분계선, 25사단이 이 시점에 새로운 통로를 만든 이유, 그 과정에서 유엔사가 맡은 역할은 아직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끝난 뒤의 사후보고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중간점검이 중요하다. 반복되는 충돌은 전쟁위험을 키운다. 총을 쏘면서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작은 오판 하나가 실제 교전으로 번지기 전에 군사분계선에서 반복되는 긴장고조부터 멈춰야 한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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