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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민플러스] 승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중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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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9-29 20: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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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중미 정상회담


이경렬 전 대사


1520년 영국의 헨리 8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칼레 인근에서 만났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경쟁국이었다. 두 왕이 관계 개선을 위해 만나면서 임시 궁전과 수백 개의 천막을 세우고 연회, 마상시합, 선물 교환을 18일 동안 벌였다. 두 왕은 사람들 앞에서 형제처럼 껴안았다. ‘금란의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규모의 외교적 쇼였다. 그러나 엄청난 환대가 곧 전략적 화해를 뜻하지는 않았다. 두 왕은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경쟁자였다. 행사가 끝나고 얼마 안 가 두 왕국은 다시 세력경쟁을 계속했다.


헨리 8세가 프랑수아 1세를 위해 황금 천막을 세웠다면, 9월 24일과 25일 트럼프는 시진핑 주석을 위해 워싱턴에 레드카펫을 깔았다. 트럼프 내외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나가 중국 특별기의 타랍 밑에서 시진핑 부처를 영접했다. 1959년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를 맞은 바로 그 자리였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식의 목적은 장식이 아니다. 경쟁자를 적으로만 두기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워싱턴에 21세기의 ‘금란의 들판’을 차렸다.




이번 회담에서도 시진핑의 단골 인용이 등장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시진핑은 지난 5월 14일 베이징을 방문한 트럼프에게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설 수 있는가”라 물으며 답으로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를 제시했다. 중국의 부상과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충돌한다 해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자 중국의 자신감이었다. 이번에는 백악관 공식 환영식에서 한 공개 연설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5월에 비해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강화된 자신감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담론은 중국 외교수사에 매우 쓸모가 있다. 첫째, 이 말은 중국을 자동으로 미국과 맞먹는 대국 자리에 올려놓는다. 기존 패권국 미국 대 신흥 강대국 중국이다. 둘째, 책임의 방향을 미국 쪽으로 돌릴 수 있다. 투키디데스 원문에서 전쟁의 결정적 원인은 아테네의 성장이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었던 것처럼, “중국의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두려워하고 봉쇄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위협과 평화 메시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다. “전쟁은 피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미국이 오판하면 진짜 함정에 빠진다”는 경고가 들어 있다.


시진핑은 이번에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에 한층 강한 요구를 제기했다. 트럼프에게 중국의 통일과 영토 보전에 관한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미국이 “대만 독립에 반대(opposing Taiwan independence)”하는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공식 표현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do not support)”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제 미국이 한층 더 분명하게 대만 독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이 그러겠노라고 반응했을 리는 없지만 중국의 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굳이 말한다면 무역전쟁 휴전의 2개월 연장이다. 당초 11월 10일 종료 예정이던 무역 휴전을 2027년 1월 10일까지 연장하기로 합의된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양측이 앞으로 “더 큰 거래(bigger deal)”를 협상할 시간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300억 달러 규모의 비민감품목에 대한 합의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관세를 어느 수준까지 낮출지,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얼마나 완화할지, 중국의 희토류 공급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관한 장기 합의는 다음 협상으로 넘어간 것이다.


AI에서는 “대화와 위험관리 필요성”이라는 큰 원칙은 접근했지만 구체적인 규범이나 통제체계에는 의견이 갈렸다. 시진핑은 미중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다시 언급하면서 군사충돌 방지를 위한 상시 군사대화를 제안했다. 이란 문제에 대한 협의가 있었고 국제수로 통행료 부과에 반대한다는 공동입장은 나왔지만 전쟁에 관한 입장 차이는 그대로 남았다. 시진핑은 미국이 다시 협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를 토대로 협상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한반도 문제도 논의됐지만 내용은 불명이다.


지난 5월의 중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트럼프는 할 말이 많은 승자가 아니었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남미 형제국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데다 중동의 중국 우방 이란을 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중국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 처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위법판정을 받은 상호관세와 글로벌관세를 무기로 세계를 협박해 온 장본인이 입만 열면 거짓말만을 쏟아 내온 불신의 화신이고 보면 과연 트럼프가 무슨 낯으로 시진핑 앞에 설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 미국을 중국이 대만 문제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갑과 을의 자연스러운 이치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처량한 모습이다. 적벽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조조가 화용도에 나 앉아있는 형국하고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조조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은 체면도 병력도 위신도 크게 상한 채 빠져나갈 길을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트럼프도 미국이라는 제국의 물적 힘을 갖고는 있지만, 5월과 이번의 외교적 자세만 놓고 보자면 “내가 중국을 굴복시키겠다”는 식의 허세는 애초에 가당치 않았던 것이고, “시진핑이 체면을 좀 세워주면 그것을 성과라고 포장해야 하는”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함께 나세르의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되찾으려 군사행동을 벌였지만 미국과 소련의 압력 앞에서 물러난다. 영국으로서는 ‘개망신’이었다. 영국이 군사력 부족으로 진 것이 핵심이 아니다. 세계질서를 명령할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요체다. 현재 미국의 처지가 딱 그렇다. 미국은 아직 항공모함, 달러, AI 반도체, 제재권력을 갖고 있지만 세계를 향해 “질서”를 말할 때 아무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뒤 유럽의 거대한 제국 러시아 역시 포츠머스 조약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동아시아에서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다. 백인 제국이 아시아 신흥강국 앞에서 체면을 구긴 장면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러시아처럼 군사적으로 패전한 것도 아니고 중국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장면은 비슷하다. 한때 중국을 개방시켜 세계질서에 편입시킬 대상으로 보던 미국이 이제는 중국에게 미국산 물건을 사 달라, 희토류를 풀어 달라, AI와 핵 문제를 관리하자고 요청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결론은 ‘큰 타결’보다는 양국 간 수면 아래에서 전개되는 보이지 전쟁의 관리였다. 양국은 2025년 10월 30일 부산 회담 이후의 불안정한 휴전을 관리하면서 국내정치용 성과를 챙기고 있다. 전체적으로 당장 중미 신냉전의 해빙은 없다. 충돌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래가 전부다. 트럼프는 “내가 얻어냈다”는 성과가 필요하고,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위상을 인정했다”는 장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외형은 화려하고 발표는 긍정적이었지만, 이란, 대만, 반도체, AI, 희토류를 둘러싼 본질적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수에즈 이후의 영국처럼 신뢰를 잃었고, 포츠머스의 러시아처럼 아시아 강국의 상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화용도의 조조처럼 시진핑이 열어준 길로 체면을 건져 돌아가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조조는 화용도 뒤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세력을 수습했다. 영국은 수에즈 뒤에도 핵보유국과 금융 강국으로 남았다. 러시아도 1905년 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끌던 시대는 영영 종말을 고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어질 중미 정상회담의 의미다. 끝.


[출처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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