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 회장 팔순 산수연 성황리에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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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9-14 21:4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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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 회장 팔순 산수연 성황리에 열려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 회장의 팔순 산수연이 9월 12일(토) 오후 4시, 로스앤젤레스 나눔마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LA지역 진보단체 활동가와 오랜 지인 등 30여 명이 참석해 김현환 회장의 80년 삶과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행사는 김현환 회장의 80평생을 사진으로 돌아보는 슬라이드쇼 상영으로 막을 올렸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현환 회장께서 걸어오신 삶과 활동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지자 참석자들은 지나온 세월과 추억을 되새겼다.
이정수 부회장 부부는 색소폰 연주로 분위기를 돋웠고, 우리문화나눔회 노래패는 노래를 선사하며 잔치의 흥을 더했다.
오랜 세월 김현환 회장과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은 각자의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덕담을 전했다. 참석자들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김현환 회장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김현환 회장께서는 답사에서 행사를 마련하고 함께해준 동지와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현환 회장의 답사에 이어 김영순 부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영순 님은 오랜 세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남편의 삶을 되돌아보며, 활동가 김현환이 아닌 ‘인간 김현환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밖에서는 쉽게 알기 어려운 그의 일상과 성품, 그리고 배우자로서 함께해온 소회를 담담하게 전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식 순서를 마친 뒤에는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연회가 진행됐다. 식사 후에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노래와 웃음이 어우러진 흥겨운 뒤풀이를 즐겼다.
이번 산수연은 단순한 생일잔치를 넘어 김현환 회장께서 걸어오신 80년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오랜 세월 뜻과 정을 나눈 동지와 지인들이 서로의 인연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덕담과 공연, 음식과 노래가 어우러진 가운데 김현환 회장의 팔순 산수연은 막을 내렸다.
다음은 김현환 회장의 부인 김영순 님의 이야기이다.
김현환 회장님 산수연에 부쳐
운동권 동지들이 마련한 산수연이라니,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리가 또 있을까요. 오늘의 산수연은 단순히 한 사람의 여든 살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가치와 함께 걸어온 세월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과 반세기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니 한마디 하라는 부탁을 받고, 저는 오늘 조직의 회장이 아니라 제가 발견한 한 특별한 인간 김현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뛰어나게 총명하여 주위사람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습니다. 철부지 막내로 자라서 천방지축이던 저와는 달리, 전쟁 피난민으로 7남매의 장남이었던 남편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잡고, 첫해 월급과 과외로 번 돈을 모아 부모님께 논을 사드릴 정도였지요.
남편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면 끝까지 파고드는 놀라운 지구력, 엄청난 부지런함과 검소함, 그리고 몸에 배인 철저한 자기관리, 뭔가를 결정하면 몇 년 동안이고 실천하여 습관으로 만들어버리는 성품을 지녔습니다. 가르치기를 좋아해서 신혼 때는 저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지금도 새로 나온 건강체조나 노래를 가르쳐줍니다.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20달러 주고 산 구두를 구멍이 날 때까지 신으면서, 신을 때마다 "이 구두 정말 좋다"며 아끼며 고마워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운동과 음악을 좋아합니다. 오래 자란 나무나 바위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대어 눈을 감고 우주의 기운을 느끼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토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매일 걷는 한 시간 거리의 산책길에 깨진 유리나 개똥이 하나라도 눈에 띄면 뒷 사람을 생각해서 꼭 치우고 가야 마음이 편한 사람입니다. 정말로 법 없이도 이웃과 화목하게 잘 살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고향마을의 자랑이었고, 경북고 교사시절에는 영어 일타강사로 소문이 나서 하숙집 앞에 학생들이 과외시간을 얻기 위해 줄을 서던 때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돈 벌 기회를 마다하고 진리를 찾아 지금껏 죽어라 달려왔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에 이를 때마다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기독교와 해방신학을 거쳐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에 이르기까지, 남편의 뜨거운 깨달음은 오래동안 저의 자장가였습니다. 제 코고는 소리에 멈추어지곤 하던 그의 설명은 가랑비에 옷 젖듯 제 마음을 적셨고, 시대의 불의에 결코 눈감지 않고 목소리를 내던 그의 치열함이 마침내 저를 그의 동지로 만들었습니다.
타고난 탐구심과 통일된 조국,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출발한 남편의 학문이 깊어질수록, 학문을 실천할 기회는 멀어져갔습니다.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님의 임종도, 장례도 지키지 못하여 가슴을 쳤고, 고향친구의 외면에 마음아파했습니다. 외국여행 할 때면 늘 당국의 특별감시를 신경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 길을 걸어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동지들과 함께 미주에서 진보 운동의 물길을 키우며 조국의 민주와 통일, 자주와 평화를 향해 달려온 삶을 무척 보람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자주 말합니다.
남편이 제 머릿속에 깊이 각인 시켜준 것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 동지 한 분 한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회원을 볼 때 개인적인 약점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지향하는 생각과 역사에 기여하는 역할을 보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이것은 조직 생활을 하는 우리가 평생 유념해야 할 가르침 같습니다.
오래동안 때로는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때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늘 곧은 소리를 내며 함께 걸어온 동지 여러분, 나이가 든다는 것은 권위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연대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오늘날에도 여러분과 같은 젊은 피와 숨결을 함께하며 여전히 뜨겁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지만, 앞으로도 우리 후배들의 든든한 나무가 되어 때로는 그늘을 내어주고 때로는 비바람을 같이 맞으며 걸어주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남편의 곁을 지키며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이 뜻깊은 산수연을 마련해 주신 여러 동지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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