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로동신문】이 땅 어디에나 이런 애국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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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28 19:1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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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어디에나 이런 애국자들이 있다
편집국
8월 29일부 [로동신문]은 ‘이 땅 어디에나 이런 애국자들이 있다’ 글에서 대를 이어 일터를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는 가정들을 소개하였다.
글은 당의 뜻을 받드는 길에 땀과 지혜, 정열을 바치고 한생도 고이는것을 둘도 없는 가풍으로, 륜리로 간주하고 사는 이런 로동가정들이 많아 내 조국이 굳건한 것이라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땅 어디에나 이런 애국자들이 있다
아버지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함남지구탄광련합기업소 수동탄광에는 대를 이어 탄전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는 탄부가정들이 많다.그들중에는 덕사갱 채탄4중대 2소대 채탄공 렴철남동무의 가정도 있다.
어린시절부터 그의 맑은 눈동자에 비낀것은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매일과 같이 수천척지하막장길을 걸으며 한줌의 석탄이라도 더 캐내기 위하여 성실한 땀을 바쳐가는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언제나 맡은 일을 잘하여 로력혁신자로 떠받들린 아버지처럼 탄광이 자랑하는 진짜배기탄부가 되겠다는 마음을 안고 그는 탄전에 사회생활의 첫발을 찍었다.
채탄공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맡은 일에 하루빨리 정통하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오랜 탄부들에게서 경험을 열심히 터득하였고 소대앞에 어렵고 힘든 일이 제기되면 앞장에서 해제꼈다.
그 과정에 그는 아버지처럼 집단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혁신자로 자라났다.
지난 6월 불리한 막장조건으로 하여 소대가 월계획을 미달할수 있는 긴박한 정황이 조성되였을 때에도 그는 당세포비서인 자기의 위치를 자각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 솔선 어깨를 들이밀면서 소대원들을 혁신창조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석탄증산으로써 조국의 번영에 이바지하겠다는 불같은 일념을 안고 수천척지하막장길에 애국의 자욱을 새겨가고있는 렴철남동무, 지금 그의 곁에는 탄전에 진출하여 전차운전공으로 일하고있는 딸이 함께 서있다.
리수연
로동가정의 륜리
룡연군농기계작업소에는 대를 이어 일터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작업소부원 박성찬동무와 부속가공작업반 당세포비서 송경선동무도 그렇고 같은 작업반의 로동자 최충혁동무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작업소에서 일하고있다.
아버지들을 추억할 때 그들의 눈앞에 제일먼저 어려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십년전 몸소 군을 찾아오시여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할데 대하여 주신 간곡한 가르치심을 관철해야 한다면서 오직 직장일밖에 모르고 살던 전세대들의 불같은 모습이다.
고난의 시기에도 일터를 꿋꿋이 지킨 오랜 로동계급인 송경선동무는 언제인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바 있다.
그 어렵던 시기 나도 마음이 나약해진적이 없지 않았다.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는데서 작업소가 큰 몫을 맡고있다고, 작업소가 제구실을 해야 전야마다 기계화의 동음이 높이 울려퍼지게 된다고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했다.그래서 일터를 떠날수 없었다.…
최충혁동무 역시 당초급일군이였던 아버지가 늘 사람이 일을 잘하려면 성실할뿐 아니라 아는것이 많아야 한다고, 높은 기술과 기능으로써 일터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제일이라고 하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집단에 없어서는 안되는 보배로 준비하기 위해 애쓰고있다.
당의 뜻을 받드는 길에 땀과 지혜, 정열을 바치고 한생도 고이는것을 둘도 없는 가풍으로, 륜리로 간주하고 사는 이런 로동가정들이 많아 내 조국이 굳건한것이다.
본사기자 김송이
산중초소에 뿌리를 내리고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조국이 맡겨준 일터를 량심적으로 지켜가고있는 근로자들속에는 삼지연시체신소의 부부중계공인 홍승민, 리순정동무도 있다.
그들의 일터는 바람세찬 산정에 위치한 중계소이다.더우기 그곳은 홍승민동무의 아버지, 어머니가 수십년간 지켜온 초소이기도 하다.
8년전 부모의 한생이 슴배인 초소를 지켜갈 결심을 품고 그들부부는 자진하여 중계공이 되였다.하지만 그 결심을 변함없이 지켜간다는것이 결코 헐한것이 아니였다.
바람소리밖에 들리는것이 없는 일터에서 고독할 때도 있었고 비바람이 세게 불거나 많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순회길에서 한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설비의 고장원인을 빨리 찾지 못해 애를 태운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부부에게 힘을 준것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활동소식과 당의 목소리를 인민들에게 한시도 중단함이 없이 전해주어야 한다고 하던 부모의 절절한 목소리였다.그 당부를 항상 마음속에 안고 살았기에 그들은 어려운 속에서도 중계소를 묵묵히 지켜왔다.늘 산중초소에서 살다나니 그들부부는 언제한번 온 집안이 모여앉는 단란한 분위기를 맛볼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이제라도 편안한 직업을 택하지 않겠는가고 묻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그들부부는 자기들이 없으면 산중초소를 누가 지키겠는가고 하면서 이제는 습관이 되여 집보다 중계소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군 한다.
부모가 섰던 산중의 중계소를 성실하게 지켜가는 길에 삶의 보람도, 가정의 진정한 행복도 있다는 고결한 인생관을 지니고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가고있기에 사람들은 그들부부를 두고 우리 중계공들이라고 정담아 부르고있다.
본사기자 안정철
2026.08.29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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