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로동신문】도덕적으로 준비된 일군이라야 당과 혁명에 충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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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12 21:1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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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준비된 일군이라야 당과 혁명에 충실할 수 있다
편집국
8월 13일부 [로동신문]은 혁명가의 중요한 징표인 도덕품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일군들은 혁명의 개척세대들처럼 숭고한 도덕의리의 체현자, 최고의 인격자가 되여 대중을 이끌고 당과 혁명에 이바지하는 참된 지휘성원, 공산주의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글은 죽음앞에서 도덕의리를 지킨 여러 혁명가들의 모범을 언급하면서, 도덕적으로 준비된 일군이라야 당과 혁명에 충실할 수 있으며, 도덕이 혁명가가 군중의 마음문을 여는 열쇠의 하나이며, 도덕적으로 준비될 때라야 더 많은 군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를 인민 위에 있는 특수한 존재로 여기고 도덕적으로 저열하게 행동하면 결국 군중의 버림을 받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나중에는 배신과 변절의 나락에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심각한 교훈이라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도덕적으로 준비된 일군이라야 당과 혁명에 충실할수 있다
세월은 멀리도 흘러왔지만 우리 혁명의 개척세대들의 고귀한 넋은 이 땅의 모든 계승세대들을 참된 투사로, 공산주의자로 육성하는 진함없는 자양으로 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만고의 항쟁사와 성스러운 창당사를 빛나게 아로새긴 혁명의 개척세대들!
그들이 지니였던 숭고한 정신도덕적풍모의 높이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오늘 우리 일군들에게 무엇을 깨우쳐주고있는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상과 리념이 조국과 인민을 위한 위대하고 숭고한 투쟁의 기치로 굳건하자면 반드시 도덕과 결합되여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계승세대들이 삶의 귀감, 인생의 교사로 높이 떠받드는 창당세대의 혁명가적품성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해왔다.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투철하고 강의한 신념과 의지, 용감하고 대바른 기질…
이와 함께 혁명가의 진모습을 깨우쳐주는 중요한 징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도덕품성이다.
도덕적으로 준비된 혁명가라야 장구하고 간고한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수 있으며 당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할수 있음을 1세대 혁명가들은 책자의 글줄로가 아니라 산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한생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였지만 아래일군들이나 인민들앞에서 자그마한 틀도 차리지 않고 언제나 소탈하고 례절바르게 행동한 김일동지의 인간상은 어디에 기초하고있었던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사령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김책동지와 함께 교대없는 호위병이 되여 밤을 지새울 때 눈을 좀 붙이라고 이야기하는 호위군관에게 김일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들이 알아둘것은 지금 우리는 전선사령관이나 군사위원이 아니라 장군님의 보초병이요.우리는 백두산에서부터 장군님을 지켜온 보초병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장군님의 보초병이란 말이요.》
누가 보건말건 변심없이, 가식없이 령도자를 받든 1세대 혁명가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혁명가의 도덕품성의 기초는 수령에 대한 깊은 의리이며 바로 이것이 혁명의 길을 끝까지 갈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고 활력소임을 명백히 가르쳐주고있다.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던 머슴군, 막벌이군들에게 혁명의 군복을 입혀주시고 가갸거겨로부터 혁명의 심원한 진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배워주시며 품들여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덕에 보답하는것을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로, 혁명전사의 의리로 여기였기에 항일혁명투사들은 절해고도에서도 철창속에서도 단두대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불은 철을 시험하고 고난은 인간을 시험한다는 말이 있다.도덕의리의 진가는 어려울 때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 인민이 오늘도 항일의 불사조로 추억하는 리두수동지,
부상당한 몸으로 깊은 밀림속에 홀로 남은 투사, 령하 30℃를 오르내리는 엄혹한 추위와 적들의 《토벌》에 동지들도 다 잃고 한알의 낟알도 없었던 그때 살아있다는것자체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극악한 조건, 절해고도와 같은 산중에서 그는 생눈을 삼키고 속새풀을 우려먹으며 석달 스무날이나 싸워 끝끝내 동지들의 품에 안겼다.
그 엄혹한 나날 과연 무엇이 그에게 불사조와도 같은 생명력을 안겨주었던가.
그는 완치된 다음 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한다는 당부가 담긴 위대한 수령님의 편지를 자신에게 안겨준 크나큰 믿음으로, 혁명과업으로 간주하였다.수령과 맺은 의리를 저버리고 쉽게 죽음의 길을 택할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무수한 죽음의 고비들을 이겨냈다.
죽음앞에서도 단두대에서도 철창속에서도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바라며 혁명적량심과 의리를 지킨 투사들은 그 얼마였던가.
위대한 수령님과 맺은 정을 절대로 저버릴수 없었기에 철창속에서도, 모진 고문과 악형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박달동지며 스스로 혀를 끊어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낸 마동희동지…
혁명이 언제 승리하겠는지 누구도 확언할수 없었던 그때, 잠간 딴마음을 먹으면 어느때든 원쑤들의 편으로 쉽게 넘어갈수 있었던 그 준엄한 세월에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 모든것을 의탁하고 만난을 기꺼이 헤쳐나간 투사들은 하나같이 의리를 베고죽을줄 아는 진짜배기인간들이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키는것이 곧 혁명에 끝까지 충실하는 길이였다.
정녕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항일혈전의 나날 투사들이 자그마한 동요나 변심도 없이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도덕의리심을 신념으로 간직했기때문이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지난날 항일유격대공작원들이 적들의 악선전에 속아 곁을 주지 않던 사람들도 하루이틀사이에 돌려세울수 있은것은 그들이 자기 부모형제를 대하듯이 진심으로 위해주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1세들이 지니였던 도덕적풍모가 어떤 경지에 있었는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는 간곡한 가르치심이다.
혁명가가 군중과의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자면 군중속에 들어가 호흡을 같이하는것이 중요하다.바로 그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의 하나가 도덕이다.
도덕적으로 준비될 때라야 더 많은 군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울수 있다는 철리를 깊이 새기였기에 투사들은 언제나 군중공작에서 특유의 인민성을 발휘할수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어느한 지방에 공작임무를 받고나갔던 권영벽동지는 좌상로인을 쟁취하는것이 전투장에서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는것만치나 힘든 일로 되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마을을 혁명화하는것은 그 로인을 쟁취하는데 달려있다고 할수 있었다.권영벽동지는 로인앞에 나타나자마자 조선례법대로 정중하게 절을 하면서 자기는 생활이 넉넉치 못해서 떠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이 마을 인심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잘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권영벽동지의 남다른 례절과 인품에 기분이 흐뭇해진 좌상로인은 례절지키는걸 보니 속이 익었다고 하면서 그가 마을에 발붙일수 있게 해주었다.권영벽동지는 이렇게 인민들앞에서 도덕을 잘 지킨것으로 하여 이 마을을 쉽게 혁명화할수 있었다.
항일혁명투사 박록금동지가 정치공작을 나가 장백현 상강구일대의 녀성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묶어세울수 있은것도 그가 그 지방녀성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갔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지적능력은 있어도 도덕이 결여된 사람은 목숨을 내대야 할 시각이 오면 반사적으로 뒤걸음을 치고 절해고도에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쉽게 붕괴되고만다.
변절자 림수산은 입대전에 중학교도 다니고 교원도 하여 일정하게 리론도 있었지만 지하공작을 나가서는 올방자를 틀고앉아 하루 세끼씩 차려주는 밥이나 축내고 집주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지시만 하였다.어쩌다가 문밖을 나서는 경우에도 뒤짐을 지고 마을사람들에게 그 무엇인가를 검토하는듯한 질문을 련거퍼 들이댐으로써 상대방은 물론이거니와 곁에서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불쾌감을 느끼게 하였다.결국 군중속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되돌아오게 되였다.
항일무장투쟁사를 돌이켜보면 평시에 거짓말을 잘하고 도덕적으로 준비되지 못한자들이 혁명대오에서 도주하거나 변절자로 전락되였다.
자기를 인민우에 있는 특수한 존재로 여기고 도덕적으로 저렬하게 행동하면 결국 군중의 버림을 받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나중에는 배신과 변절의 나락에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는것이 력사가 보여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세월이 흘러도 도덕적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직위가 높아져도 특혜를 바라지 않는것, 여기에 바로 1세대 혁명가들이 지녔던 혁명가적풍모의 견인력과 감화력이 있다.
우리 혁명의 원로인 오백룡동지는 원래 과묵한 편이여서 평소에 말을 적게 하였지만 군중속에 들어가서는 포전머리에서, 간석지제방뚝에서 쉴참이면 항일유격대식으로 살며 일하도록 대중을 불러일으켰다.
오백룡동지는 자기도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집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무들과 꼭같은 전사라고 하면서 현지에 내려오면 군려관과 로동자합숙의 수수한 방에서 그들과 한가마밥을 먹으며 궂은일, 어려운 일 가리지 않았다.
례년에 없던 대풍작이 마련되였던 1970년대의 어느해 가을 황해북도의 낟알털기를 책임지고 나간 오백룡동지는 가마니짜는기계를 다 동원해도 포장용기가 모자란다는것을 알고 즉시 벼짚을 실어와 웃옷을 벗어걸고 려관방에서 운전사와 함께 새끼를 꼬았다고 한다.
어찌 오백룡동지뿐이였던가.언제나 대중과 어울려 수수하고 검박하게 생활하였고 그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었던 투사들의 모습은 한모양, 한본새였다.
혁명의 개척기로부터 오늘까지 시대는 달라졌지만 수령께 충성다하고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혁명가들의 투쟁방식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도덕적으로 준비된 일군이라야 당과 혁명에 충실할수 있다.이것은 창당세대가 이 땅의 계승세대에 남긴 또 하나의 정신적유산이다.
모든 일군들은 혁명의 개척세대들처럼 숭고한 도덕의리의 체현자, 최고의 인격자가 되여 대중을 이끌고 당과 혁명에 이바지하는 참된 지휘성원, 공산주의혁명가가 되여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강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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