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조선신보】전쟁의 상처를 품어주는 인간들의 모습/홍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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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11 20:4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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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우리 나라 2〉전쟁의 상처를 품어주는 인간들의 모습/홍윤실

로정법 작 《우리는 친형제로 자랐다》(1976)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있다. 전쟁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뿐아니라 부모를 잃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수많이 낳는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필자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고아들의 삶을 그린 로정법의 단편 《우리는 친형제로 자랐다》를 펼쳐보았다. 작품은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란다는 내용에로 귀착되는데 작가가 바라본것은 전쟁으로 육친을 잃은 아이들이 사회와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였다.

평양초등학원에 다니는 최영옥이네 4형제(《조선녀성》1962년 4호)
일찍 끝난 어린시절
전쟁중 어린 《나》와 정옥이 두 남매를 키운것은 할머니였다. 아버지는 전선으로, 어머니는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애육원으로 떠났다. 함께 살던 사촌형제 여섯명은 모두 부모를 잃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이 자신보다 이모사촌형제인 광현이와 광옥이에게 더 향한다고 느끼며 서운해한다. 그때 열한살 된 고모사촌형제인 큰형은 뜻밖의 말을 한다. 《엄마도 있고 아버지도 있는 애들은 배가 좀 고파도 서럽지 않은 법이란다.》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이 말을 어린이가 해야 했던 리유는 무엇인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울고나면 눈물을 닦아줄 손이 있지만 고아들에게는 슬픔과 고통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열한살의 고아가 이미 그것을 리해하며 《우리야 다 큰 애들이니까…》 하고 《어리광》을 참을줄 아는 모습은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돌아온 어머니가 친딸이 아니라 광옥이를 먼저 껴안아 입 맞추었고 그에 대해 정옥이 섭섭해 할 때 주인공은 깨닫는다. 부모 있는 아이들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어리광》인것이라고. 전쟁은 아이들에게서 어리광을 들어줄 부모를 빼앗았고 어린시절을 너무도 일찍 끝내버렸다.
아이들을 품어주는 품
그곳은 김일성장군께서 보내주셨다는 과자며 놀이감, 따뜻한 이부자리 등 없는것이 없는 《불밝고 아늑한 집》이였다.
《나》는 장군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것은 물건이 아니라 아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였다. 그곳에는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고아들을 기다리며 몇번이고 밥을 데워놓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보육원들이 있고 뒤산에는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인민군대아저씨들도 있다.
그래서 외국대표단이 애육원을 방문했을 때 다른 나라로 보내질것이라 오해한 아이들은 《안갈래, 안갈래.》 하며 울어댔다. 원장도 보육원들도 《누가 너희들을 보낸다더냐.》고 울었다. 포성이 울리는 전쟁속에서도 그곳은 아이들이 떠나고싶지 않은 품이였다.
그 품은 애육원 밖에도 있었다. 《나》를 포함한 여덟명의 손자들과 할머니를 지켜보는 마을사람들은 적은 물자중 그래도 좋은 옷과 신발, 먹을것을 나누어주며 어린것들이 기죽지 않고 자라도록 마음을 다했다.
할머니는 무섭지만 아이들이 매달리는 《사랑의 품》이였다. 할머니 옆을 다투다 새근새근 잠든 그들이였다.
할머니의 삶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교육이 되였다. 많은 고아들을 돌보느라 힘든 생활속에서 이웃을 돕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위안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로동을 배우고 이웃을 도왔으며 고생 많은 할머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작전을 궁리하기도 하였다. 유년시절은 희생됐지만 서로의 버팀목이 되려고 애쓴 아이들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였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따뜻한 기억은 다 자란 《내》가 알게 된 하나의 사실앞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함께 자란 여덟명은 사촌간이 아니라 남남이였던것이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상처 입을가봐 《사촌은 친형제와 같은 살붙이》라고 말끝마다 일러왔다. 진실을 알게 된 그들은 오히려 할머니를 원망했다.《우리가 왜 남인가고….》 가족은 피줄로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서로의 상처와 고통에 응답하고 함께 견딘 그 시간속에서 그들은 이미 한가족이였다. 후날 《사회주의대가정》이라 불리우는 말도 이런 관계에서 태여난것이 아닐가.
한편 《나》는 자기들에게도 《어리광을 사랑에 겨운 눈매로 너그럽게 받아주는 부모의 품》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 품으로 상징된 수령이 전쟁고아를 몸소 키우는 소설속 형상은 사람들에게 고아를 더 이상 남의 아이가 아니라 함께 책임져야 할 존재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여있다.
소설에는 원쑤에 대한 증오도 복수심도 그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부모 잃은 아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인민들이 더없이 귀중하여 그들에게만 초점을 두었다. 그도그럴것이 작가의 어머니는 육아원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본 사람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작가는 혈연을 넘어 상처를 품어주는 인간들의 모습을 남기고자 했던것이다.
◇◇◇
최근 조국을 방문한 조선대학생들은 해외군사작전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생활하는 원아와 만났다. 그 아이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우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살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픔을 직접 없애줄수는 없어도 지울수 없는 상처를 안고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야 할 당사자가 조국의 존엄을 지켜 살자고 하는 그 목소리만큼은 외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들의 친혈육이 될수 있을가?
(조선대학교 조교)
이 련재글에서는 조선의 소설을 통하여 우리 나리 인민들의 생활과 사회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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