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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기고] 이란이 원하는 것은 패권이 아니라 주체국가다 - 호르무즈에서 드러나는 전쟁 이후 이란과 새로운 중동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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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10 20: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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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란이 원하는 것은 패권이 아니라 주체국가다 - 호르무즈에서 드러나는 전쟁 이후 이란과 새로운 중동질서


윤현일 (자유기고가)


이란과 오만의 호르무즈 해협 협상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협상장에 앉아 있는 국가는 이란과 오만 두 나라지만, 그 결과는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동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에너지시장까지 영향을 받는다. 향후 국제유가의 안정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가 이 협상을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만큼 협상은 쉽지 않다. 이란과 오만의 협상은 새로운 안전항로와 통행방식을 마련하는 데 상당 부분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은 이것만으로 호르무즈가 완전히 재개방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란은 미국에 군사적 위협과 공격의 중단, 주변 해·공군 전력 철수와 봉쇄 해제, 전쟁피해 배상,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호르무즈에서는 두 개의 협상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하나는 이란과 오만이 만드는 새로운 통항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해협의 완전한 재개방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협상이다. 오만과의 합의가 배가 지나갈 길을 만드는 문제라면, 미국과의 협상은 그 길을 어떤 정치적 조건 아래 완전히 열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이란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선박의 통항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다. 누가 호르무즈의 질서를 정할 것인가, 전쟁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앞으로 중동의 안보질서는 누가 결정할 것인가가 함께 걸려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향후 중동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미리 보여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 호르무즈에서 시작해 전쟁 이후 이란의 변화와 그들이 그리고 있는 중동의 미래를 따라가보자.


1. 새로운 중동질서는 호르무즈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란과 오만이 협상하는 것은 새로운 안전항로와 그 운영방식이다. 그러나 이란은 오만과의 합의와 호르무즈의 완전한 재개방을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안전한 통항규칙은 해협을 마주한 이란과 오만이 만들되, 해협을 완전히 정상화하는 문제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제재, 전쟁배상 문제까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해협의 운영질서는 이란과 오만이 만들고, 재개방의 정치적 조건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이중구조다. 미국은 전쟁과 제재의 당사자로서 재개방 조건을 둘러싼 협상에서는 핵심 당사자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군사력을 앞세워 해협의 운영규칙까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위치와는 다른 문제다.

호르무즈의 새로운 질서, 미국 없이 열리는 해협은 이란이 전쟁 이후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다. 여기서 ‘미국 없이’라는 말은 미국과의 외교나 협상까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을 요구할 수 있고 미국 역시 그 통항의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킬로미터 밖의 강대국이 항공모함과 제재를 앞세워 해협의 규칙까지 결정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에 중요하다는 사실이 미국의 관리권을 뜻하지도 않는다. 같은 논리라면 세계 무역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운하도 강대국들이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수에즈운하의 관리주체는 이집트다. ‘미국 없이 열리는 호르무즈’란 국제사회를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과 제재가 해협의 질서를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란과 오만이 우선 규칙을 만들고 국제사회가 그 틀 안에서 안전하게 통항하는 것, 그것이 호르무즈에서 시작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제재·배상 문제를 협상할 수 있지만 해협의 운영주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통해 줄이려 했던 이란의 영향력이 호르무즈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제도화될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2. 2월 28일, 이란은 무엇을 배웠는가


어쩌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감행한 2월 28일의 전면적 공격은 이란에게 하나의 결정적인 교훈을 남겼을지 모른다. 자주와 독립, 외세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원칙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원칙은 실제 전쟁에서 작동하는 군사력과 제도, 지휘체계로 뒷받침되어야 했다.

8월 9일과 10일 나타난 대규모 인사와 개편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일에는 최고국가안보회의 지도부가 새롭게 정비됐고, 10일에는 총참모장과 부총참모장, 혁명수비대 총사령관과 부사령관, 혁명수비대 해군사령관, 바시즈 책임자 등 6개 핵심 군사보직의 새로운 인사가 발표됐다.

중요한 것은 사람 몇 명을 바꿨다는 사실이 아니다. 군과 외교, 국가안보정책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전쟁에서 확인된 취약점을 국가운영의 변화로 연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지휘부에도 더욱 높은 억지력과 군사적 대응태세가 요구되고 있다. 자주와 독립은 이제 실제로 국가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체계로 구현돼야 한다.

주변국의 영토가 다시 이란 공격의 통로가 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의 질서 역시 외부세력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군사력 강화와 국가안보체계 개편, 주변국 외교와 호르무즈의 새로운 질서는 각각 별개의 움직임이라기보다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번에 제시된 호르무즈 재개방 조건 역시 이러한 흐름과 떨어져 있지 않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 중단, 이란 주변의 미 해·공군 전력 철수와 봉쇄 해제, 전쟁피해 배상,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을 요구한 것은 호르무즈 하나를 얻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전쟁 이후 이란이 요구하는 새로운 대미관계의 윤곽에 가깝다. 해협을 전략적 지렛대로 이용해 군사와 경제, 외교의 조건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는 것이다.

2월 28일의 공격은 이란의 기존 국가원칙을 없앤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자주와 독립이라는 원칙 사이에 남아 있던 빈 공간을 구체적인 국가운영의 틀로 채우도록 만든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란은 전쟁에서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쉽게 걸어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갖춘 국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3. 트럼프가 찾는 것은 패배로 보이지 않는 출구다


미국은 여전히 이란을 공격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격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공격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이다. 공습과 경제압박, 군사적 위협을 반복했지만 이란의 굴복을 얻지 못했고 장거리 정밀무기와 방어미사일의 소모도 커졌다. 그렇다고 대규모 지상전을 선택하기에는 미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인명피해가 너무 크다.

이란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필요도 없다. 중동 곳곳의 미군기지와 해운, 에너지시설을 동시에 위험에 노출시키면 미국이 공격을 확대할수록 미국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커진다. 국제유가가 오르고 미군기지가 공격받으며 무기소모까지 커지는 구조다. 미국에는 공격수단은 많지만 이란을 굴복시키면서 미국 자신도 감당할 수 있는 군사적 선택지는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전쟁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전면전은 피하면서 공습과 경제압박, 군사적 위협을 반복해 이란이 약해질 때까지 압박하려 한다. 그러나 공격을 예고했다가 보류하고 협상을 말하다 다시 공격을 거론하는 일이 반복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협박은 상대가 실행될 것이라고 믿을 때 힘을 가진다. 반복되는 예고와 보류는 미국의 위협을 점차 ‘거짓말하는 소년’의 경고처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역설이 나타난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미국의 선택이었지만, 전쟁을 어떤 조건으로 마무리할 것인지는 점점 이란의 선택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은 폭격을 멈출 수는 있지만 이란의 동의 없이 호르무즈를 완전히 정상화할 수 없고, 이란이 받아들이지 않는 조건을 일방적으로 종전조건으로 만들 수도 없다.

밴스 부통령이 미국이 이란과 협상 중이며 현재 상황을 “게임의 한가운데”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상선 통행과 기뢰 제거, 해상교통 정상화를 원하지만 이란은 그보다 훨씬 넓은 조건을 협상장에 올리고 있다. 결국 미국은 호르무즈를 열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시작한 전쟁의 결과를 이란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의 중간선거가 들어온다. 전쟁이 계속되면 국제유가와 휘발유가격, 전쟁비용이 선거까지 따라가지만 이란의 요구를 크게 받아들이면 미국이 전쟁에서 물러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요구를 높이면 협상이 깨지고, 낮추면 패배로 보인다. 트럼프가 찾는 것은 승리의 방법이라기보다 패배로 보이지 않는 출구다.

8월 10일 트럼프가 이란의 전쟁배상 요구에 맞서 이란 때문에 죽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협상구조에서 나왔다. 서로의 배상 요구를 상쇄하려는 계산일 수 있지만, 이란이 자국의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책임까지 구체적으로 제기한다면 오히려 누가 전쟁을 시작했고 누가 피해를 만들었는지를 따지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문제마저 선거의 유불리로 계산된다면 그 대가는 결국 사람들이 치른다.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미국인과 이란인,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희생까지 정치적 손익계산 속에서는 하나의 숫자로 바뀐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스스로 전쟁을 시작하고도 그 전쟁이 어떻게, 언제 끝날 것인지를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미국이 처한 가장 큰 곤경이다.


4. 이스라엘은 왜 전쟁을 끝내기 어려운가


미국이 출구를 찾는다고 이란전쟁이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이해가 미국과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제유가와 무기재고, 중동주둔 비용과 중간선거를 함께 생각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전쟁 이후에도 강한 이란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안보문제가 된다.

최근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선택을 계속 열어두기를 원하지만 트럼프에게는 정치적 출구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전쟁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다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완전히 멈추면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란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군과 국가안보체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호르무즈에서는 오히려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약하고 고립된 이란과는 다른 결과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언제든 다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이라는 독자적인 전쟁변수가 남아 있다면 이란에게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결국 이란은 미국의 공격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새로운 전쟁을 쉽게 시작할 수 없는 환경까지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안보를 이유로 주변에 대한 군사행동을 반복하는 구조를 끝내려면 그것을 실제로 제약할 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힘이 반드시 또 하나의 군사동맹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리와 지역의 공동규범, 그리고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의 주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집단적인 대응도 힘이다.

첫 번째 출발점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다. 팔레스타인 독립은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국가와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의 문제다. 동시에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가 존재하고 가자 주민의 실질적인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면, 이스라엘이 안보를 명분으로 점령과 봉쇄, 반복되는 군사공격을 통해 주변질서를 일방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자동으로 끝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국가와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이스라엘 역시 군사력만으로 안보를 정의하고 그 비용을 주변에 떠넘기는 방식을 계속하기 어려워진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이스라엘의 무제한적인 군사행동을 정치적으로 제약하고, 중동의 안보를 군사력보다 상호주권의 원칙 위에 놓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두 번째는 종교와 정치체제를 넘어서는 중동국가들의 공동행동규범이다. 이란이든 사우디든 튀르키예든 이스라엘이든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군사력으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한다면 중동국가들이 외교적·경제적 수단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미국의 군사력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뒷받침하면서 중동의 전쟁과 평화까지 좌우하는 구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끌어들여 자신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중동국가들의 선택까지 제한하는 구조가 문제다.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고 점령하며 그 국민과 자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국제사회는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열린 국제사회란 강대국이 다른 지역에 들어가 군사력으로 질서를 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국가가 자신의 주권을 가진 채 존중과 공존, 평등의 원칙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제는 미국이 중동에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미국이 중동의 국가들과 하나의 국가로 관계를 맺는 것과, 항공모함과 군사기지·제재를 앞세워 그 지역의 전쟁과 평화, 국가들의 선택까지 좌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미국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뒷받침하면서 중동질서를 자신의 전략적 이해에 맞춰 움직이려 한다면 그것을 정상적인 국가관계라고 하기 어렵다.

중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지만, 어느 강대국의 소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미국도 이스라엘도 중동국가들의 운명을 대신 결정하는 특별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5. 강해진 이란은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인가


이란을 일방적으로 승리한 국가로만 바라보면 현실을 놓치게 된다.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확인된 미사일과 무인기, 방공과 지휘통제의 약점을 보완하고 더욱 강한 억지력을 갖추려 할 것이다. 8월 9일과 10일의 국가안보 및 군 지휘부 개편도 그러한 변화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주변국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사우디와 UAE를 비롯한 국가들이 강해진 이란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본다면 새로운 군비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다고 자동적으로 중동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란이 강해진 힘을 어디에 사용하는가이다. 주변국을 압박하고 자신의 영향권을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면 또 다른 패권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반대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지력으로 사용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독자적인 국가운영을 인정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강한 이란이 반드시 주변국의 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국이 그것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군사력만으로 할 수 없다. 이란은 자신의 힘이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억지와 공존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제 국가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6. 이란이 원하는 것은 패권인가, 공존인가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다고 그 빈자리를 이란이 그대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에는 자본과 아랍·이슬람권의 영향력이 있고 튀르키예는 강한 군사력과 독자적인 지정학적 목표를 갖고 있다. UAE와 카타르 역시 경제와 에너지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이집트와 이라크도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약해진다고 이들이 이란의 지도력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중동은 새로운 하나의 패권국가가 미국의 자리를 대신하는 질서보다 여러 국가가 자신의 힘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다극적 중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다극화가 갈등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란과 사우디가 모든 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가질 수도 없고 튀르키예와 이란의 국가이익도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 UAE와 이란 사이에도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여러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 많은 경쟁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쟁과 전쟁은 다른 문제다. 사우디는 이란을 없앨 수 없고 이란 역시 사우디를 굴복시킬 수 없다. 튀르키예도 이들 국가를 지배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 역시 군사력만으로 중동 전체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서로 제거할 수 없다면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란과 주변국이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이 나온다. 이란의 힘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중동국가들이 외부의 지배 없이 자신의 국가를 스스로 운영한다는 원칙이다. 사우디는 사우디의 길을 가고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의 길을 가면 된다. 이집트와 UAE도 자신의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이란 역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자주와 독립, 자율과 주체성에 의한 국가운영이다.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더라도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고, 역외세력이 군사력을 이용해 중동국가들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 질서다. 이란이 원하는 것은 중동의 새로운 패권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중동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국가가 되는 것일 수 있다.


결론: 패권이 아니라 주체국가로


미국은 이란의 핵능력과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드러난 것은 미국 군사력의 압도성만이 아니라 그 한계이기도 했다. 많은 무기를 사용했지만 이란을 굴복시키지 못했고, 공격을 확대할수록 미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군사적·경제적 비용도 커졌다.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도 어려워졌다.

이번 전쟁은 이란에도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보여줬다. 자주와 독립이라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했고 그것을 지켜낼 군사력과 국가체계가 필요했다. 주변국이 외부세력의 공격기지가 되지 않는 환경과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의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갈 능력도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 이란이 하는 일을 단순한 전후복구라고 보기 어렵다. 전쟁에서 드러난 군사적·제도적 약점을 보완하고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존의 원칙을 군사력과 제도, 외교와 지역질서라는 구체적인 국가운영의 틀로 옮기고 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버티는 국가를 넘어, 다른 국가가 애초에 쉽게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호르무즈에서 제시한 조건도 같은 방향에 놓여 있다. 이란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선박 통행료나 항로의 운영권만이 아니다. 군사적 위협과 봉쇄를 줄이고 제재와 동결자산, 전쟁배상 문제까지 협상하면서 외부세력이 다시 이란의 국가운영을 압박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려 하고 있다. 호르무즈는 그래서 하나의 해협을 넘어 이란이 어떤 국가로 살아갈 것인가를 둘러싼 협상장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란이 미국을 대신해 새로운 중동의 지배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우디와 튀르키예, 이집트와 UAE가 각자의 판단으로 움직이고 이란 역시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면 된다. 강한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더라도 그 경쟁을 전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다극적 공존은 가능하다.

중동은 국제사회와 단절될 필요가 없다. 미국도 유럽도 중국도 러시아도 중동국가들과 교역하고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협력과 지배는 다른 문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중동과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중동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란이 보여주려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다. 다른 국가를 지배하는 패권국가가 되지 않아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강한 국가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란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대신해 중동을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다. 누구도 이란의 운명을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자리다.

그리고 이란의 이러한 선택은 우리에게도 하나의 불편한 물음을 던진다. 동맹을 맺는 것과 자신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판단까지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외부 동맹에 의존하면서도 국가가 자신의 판단 능력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이 문제는 한국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이란이 외세의 결정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가가 되려 애쓰는 지금, 정작 한국은 자신의 전쟁과 평화를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전쟁전략 속에 자신의 운명을 점점 더 깊이 맡기고 있는가.

주체국가란 누구의 대리인도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다. 이란의 선택은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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