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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기고] 패전 뒤에도 조선을 겨눈 일본 - 식민지배를 위해 만든 군사자료와 정보가 코리아전쟁에서 다시 이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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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08 18:5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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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뒤에도 조선을 겨눈 일본 - 식민지배를 위해 만든 군사자료와 정보가 코리아전쟁에서 다시 이용됐다


윤현일 (자유기고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수도 한복판까지 전쟁대비 체계에 들어간다. 8월 8일 《재팬 타임스》는 도쿄역 인근 지하주차장을 미사일 공격 등에 대비한 대피시설로 바꿀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밖으로는 장거리 타격능력을 키우면서 안으로는 미사일이 날아올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피시설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도 한복판에 미사일 공격을 상정한 대피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전쟁 가능성을 먼 가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코리아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일본의 군사력 확대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본의 과거다. 일본은 조선을 36년 동안 식민지로 강점하고 아시아를 침략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넣은 전범국가였다. 1945년 패전은 그 범죄를 반성하고 다시는 전쟁국가가 되지 않겠다는 단절의 출발점이 됐어야 했다. 그러나 불과 5년 뒤 일본은 코리아전쟁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70여 년 전 일본과 오늘의 일본이 똑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코리아전쟁 참여의 역사를 충분히 청산하지 않은 국가가 다시 전쟁할 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일본이 코리아전쟁 당시 미군의 후방기지가 되어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조선특수’를 누렸다고 주로 알고 있지만 일본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8월 1일 조선중앙통신은 「력사를 통해 본 천년숙적 일본의 죄악-조선전쟁준비에 협력해온 극악한 공범자」에서 일본이 전쟁계획 작성과 대조선 첩보활동, 한국군 훈련, 전 일본군 출신 부대의 출동준비, 세균전 계획에까지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 내용을 따라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코리아전쟁 속 일본의 모습보다 훨씬 많은 사실들이 나타났다.


1. 식민지배를 위해 만든 군사자료가 다시 조선을 겨누다.


1936년 일본 육지측량부는 인천지역 지도를 만들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은 산과 들뿐 아니라 도로와 철도, 항만과 산업시설, 수로와 조석까지 세밀하게 조사했다. 조선을 지배하고 병력과 물자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자료들이었다.

14년 뒤 그 지도가 다시 등장했다. 1950년 미군이 만든 인천지역 1대 2만5천 작전지도는 일본 육지측량부의 인천 지도를 기초로 했다. 일본이 남긴 수로와 조석자료도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는 데 이용됐다.

일본이 제공한 것은 오래된 지도와 정보만이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미군이 높은 방벽을 넘어가기 위해 사용한 알루미늄 사다리도 일본 고베에서 제작됐다. 식민지배가 끝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본의 자료와 생산시설은 다시 코리아반도의 전쟁에 이용되고 있었다.

패전 뒤 일본의 전직 군인들도 미국과 접촉했다. 전 일본군 육군참모본부 작전부장을 지낸 핫토리 다쿠시로를 비롯한 옛 일본군 핵심인사들은 미 극동군 정보책임자 찰스 윌로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활동했다. 패전으로 군복은 벗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코리아반도의 지리와 군사정보, 작전경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들이 일본군 자료를 다시 검토해 미국의 조선침략전쟁계획 작성에 협력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군 자료와 전직 군인들의 지식이 실제 미군에 이용됐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식민지배를 위해 만든 군사자료가 불과 몇 년 뒤 코리아전쟁에서 다시 이용됐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지도가 다시 조선에서 전쟁하기 위한 지도로 사용된 것이다.


2. 전 일본군 정보망은 패전 뒤에도 살아남았다.


패전했다고 일본군의 정보망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미 극동군 정보부 G-2는 가와베 도라시로와 아리스에 세이조 같은 전 일본군 고위인사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미국에 필요했던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련과 중국, 조선에 관한 정보와 인맥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다케마쓰 계획’이다. 전 일본군 정보인력을 이용해 조선을 비롯한 주변지역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려는 계획이었다. 일본인 공작원을 한국으로 보낸 뒤 38선을 넘어 조선 내부로 침투시키는 방안도 검토됐다.

전 일본군의 인맥은 여러 정보조직과 비밀조직으로 다시 묶였다. 가와베를 비롯한 일본군 출신 인사들은 미군 정보기관과 연결됐고, 핫토리 그룹 역시 윌로비의 보호 아래 활동했다. 일본이 식민지배 시기에 조선인을 감시하고 독립운동을 추적하며 만들어 놓은 정보와 경험이 새로운 냉전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일본의 패전은 군사정보망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지 않았다. 미국은 소련과 사회주의권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일본군 인력과 정보망을 다시 이용했다. 군복은 벗었지만 사람과 정보는 그대로 남았다.


3. 해방 뒤에도 일본군의 인맥은 남아 있었다.


해방 뒤 새로 만들어진 한국군에서도 일본군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초기 한국군 장교단에는 일본군과 만주군에서 복무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군대의 조직과 교육, 지휘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일제의 군사체계에서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코리아전쟁을 불과 두 달여 앞둔 1950년 4월에는 한국군 장교 33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미 제8군의 군사행정과 훈련체계를 참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시기 전 일본군 장교들이 한국군 조직과 훈련을 돕고 암살방법까지 교육했다고 밝혔다.

패전 뒤 전 일본군의 정보인력과 군사인력이 미국의 지휘 아래 다시 조직되고 있었던 사실을 보면 이러한 움직임 역시 당시의 전체 흐름과 떨어져 있지 않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끝났지만 일본군에서 훈련받은 사람과 군사경험은 한국군 조직 속에도 이어졌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군대라는 간판은 내려갔다. 그러나 사람과 교육, 정보와 조직경험까지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4. 일본은 후방기지가 아니라 실제 전쟁참여자였다.


1950년 10월 일본의 기뢰제거선들이 코리아반도 전쟁해역으로 들어왔다. 미국 극동해군이 일본에 파견을 요구했고 요시다 시게루 정부가 이를 승인했다.

기뢰제거선 43척과 순찰선 10척 등을 포함한 일본 선박과 약 1,200명의 일본인이 원산·진남포·해주·인천·군산 등 코리아반도 해역에 투입됐다. 원산 앞바다에서는 일본 기뢰제거선 한 척이 기뢰폭발로 침몰해 일본인 사망자와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기뢰제거는 단순히 바다를 청소하는 일이 아니다. 바다에 설치된 기뢰를 제거해 군함과 수송선, 상륙부대가 지나갈 길을 여는 군사작전이다. 패전한 지 불과 5년 뒤 일본인이 다시 코리아반도 전쟁터에서 죽은 것이다.

이 파견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일본 정부 역시 패전 뒤 해외 군사작전에 일본인이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의 사람과 선박이 전쟁해역에 들어가 미군의 군사작전을 지원했다.

기뢰제거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군 부대를 따라 코리아전쟁 지역에 들어간 일본인들을 조사한 미군 기록을 보면 상당수가 군복을 입었고 일부는 카빈총 같은 무기를 지급받았다. 실제 적을 향해 무기를 사용했다고 진술한 일본인도 있었다.

기뢰제거와 해상수송, 상륙지원, 항만과 군수지원 등에 코리아전쟁 기간 동원된 일본인은 약 8천 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일본을 단순한 ‘미군 후방기지’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일본은 군수물자를 팔아 전쟁특수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선박을 실제 전쟁지역에 보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 일본군 해군중장 곤도 에이이찌로와 육군대좌 사와이 데쯔비의 부대가 미군으로부터 특수훈련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곤도 에이이찌로는 실제 일본 해군중장이었고, 사와이와 관련된 인물 역시 일본의 반공조직 활동에서 확인된다. 패전 뒤 전 일본군의 정보망과 군사인력이 미국의 반공전략 속에서 다시 조직됐던 당시 상황을 보면 이 보도 역시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을 36년 동안 강점했던 전범국가가 패전한 지 불과 5년 만에 다시 코리아반도의 실제 군사작전에 들어왔다. 일본은 후방에만 있지 않았다.


5. 731부대의 세균전 자료는 미국으로 넘어갔다.


731부대의 범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군은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과 러시아인 등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아 페스트와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병원균을 실험하고 세균무기를 개발했다. 중국의 민간인 거주지역에서는 실제 세균무기 실험까지 벌였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명백한 전쟁범죄였다.

그러나 패전 뒤 미국이 먼저 주목한 것은 이들을 처벌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 관계자들이 사람을 대상으로 얻어낸 세균전 자료였다. 미국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그런 실험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731부대 관계자들을 조사하면서 그 자료를 넘겨받았고, 전범재판에서 이들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 고문해 얻어낸 자료가 범죄의 증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생물전 연구에 이용됐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코리아전쟁이 일어났다. 이 시기 미국의 생물전 연구와 생산체계는 확대됐다. 조선과 중국은 미군이 페스트와 콜레라 등을 이용한 세균전을 실시했다고 발표했고, 1952년 국제과학조사단도 현장조사를 거쳐 세균전이 실시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군 포로 가운데 세균무기 투하 임무를 진술한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군이 인간을 희생시켜 만든 세균전 자료는 미국으로 넘어갔고 미국의 생물전 연구에 이용됐다. 그리고 몇 년 뒤 코리아전쟁에서 세균전 사용을 뒷받침하는 현장조사와 증언이 잇따랐다. 이 사실들을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건으로 떼어놓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패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 얻은 자료마저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지식이 됐다.


6. 일본은 다시 전쟁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과거의 일본을 살펴본 이유는 오늘의 일본 때문이다. 일본은 장거리에서 공격할 능력, 해외에서 다른 나라 군대와 함께 작전할 능력, 다국적군을 지휘할 능력을 동시에 키우고 있다.

최근 끝난 림팩 2026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장성은 미국이 지휘하는 다국적 연합기동부대의 부지휘관을 맡았다. 상륙작전과 미사일 사격, 대잠전, 방공작전 등 실제 전쟁을 상정한 훈련이 실시됐다. 일본은 단순한 참가자를 넘어 다국적군 지휘체계 안에서 연합전 수행경험을 쌓고 있다.

장거리 공격능력도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초카이’는 토마호크 장거리순항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추고 실제 발사훈련까지 실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반격능력’의 일부로 규정한다. 계획서 속 미래전력이 실제 운용전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미일한·미일필 군사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과 상호접근협정을 발효시키고 미일필 연합훈련을 늘렸으며 자위대는 필리핀 영토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훈련에도 참가했다. 일본의 해외 연합작전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도쿄역 인근 지하주차장은 미사일 공격 대피시설로 바뀐다. 밖에서는 장거리 타격과 해외 연합작전을 준비하고, 안에서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에 대비한다. 하나씩 떼어볼 것이 아니라 전체 방향을 보아야 한다. 일본은 다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


7. 일본에 책임을 묻고 한국은 군사협력을 멈춰야 한다.

 

일본 정부는 코리아전쟁에서 일본이 수행한 역할부터 제대로 밝혀야 한다. 기뢰제거부대 파견과 일본인 수송·상륙지원 인력, 미군복과 무기를 지급받고 전쟁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전 일본군 정보인력의 대조선 활동, 일본 정부의 승인 과정까지 조사하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확인된 사실에는 인정과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의 역사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일본을 코리아전쟁으로 경제적 특수를 누린 나라, 미군의 후방기지였던 나라 정도로만 가르쳐서는 부족하다. 일본의 기뢰제거부대가 실제 전쟁해역에 들어왔고 일본인들이 전쟁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축적한 지도와 군사정보, 전 일본군 인력이 다시 코리아반도의 전쟁에 이용됐다는 사실도 알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과거의 책임을 충분히 청산하지 않은 일본과 군사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코리아반도의 실제 군사작전에 참가했던 일본을 다시 코리아반도의 군사적 행위자로 끌어들이는 연합훈련과 전투·작전 중심의 군사협력은 중단해야 한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경계하고 군축과 평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금도 욱일 문양의 자위함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전통적인 군기라고 주장하지만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침략전쟁 피해지역에서 욱일 문양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침략전쟁의 기억과 결부돼 있다.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피해국이 왜 그 상징을 거부하는지부터 직시해야 한다.


8. 일본은 비무장 평화국가가 되어야 한다.


일본에 비무장 평화국가의 길을 요구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상론이 아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고 아시아에서 침략전쟁을 벌였으며, 패전 뒤에도 코리아전쟁의 실제 군사작전에 참여했던 국가가 다시 전쟁수행 능력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요구다.

일본이 진정 과거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반성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 출발은 재무장이 아니라 무장해제여야 한다. 장거리 공격능력과 해외 전쟁수행 능력을 포기하고 비무장 평화국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과거 군국주의와 결별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사죄를 말하면서 토마호크를 배치하고, 반성을 말하면서 해외에서 다국적 연합전을 훈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역시 일본을 다시 코리아반도의 군사적 행위자로 끌어들이는 군사협력을 중단해야 한다. 일본의 재무장이 아니라 비무장과 평화를 요구해야 한다.

조선을 강점했던 일본은 패전 뒤에도 코리아전쟁의 실제 군사작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전쟁할 능력을 키우고 있다. 다시는 일본이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의 참가자나 군사적 긴장 확대의 한 축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식민지배를 위해 만든 군사자료와 인력은 패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936년 일본 육지측량부 지도에서 코리아전쟁의 해상 군사활동, 오늘의 일본 군함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형상화했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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