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기고] 봉인을 택한 미국의 계산 - 6.19 서명은 누구의 승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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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6-15 20:2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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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을 택한 미국의 계산 - 6.19 서명은 누구의 승리인가
윤현일 (자유기고가)
1. 전쟁은 끝났는가
미국의 거듭된 협상 요청 끝에 미국과 이란이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6.19 서명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전쟁종식, 종전, 평화합의안, 전쟁의 마침표라는 표현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전쟁이 끝난 것인가. 아니다. 물리적 전쟁은 잠시 중단될 수 있지만, 본격적인 정치적 대결은 이제 시작된다.
트럼프는 이란과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파키스탄 총리는 스위스에서 서명식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만 놓고 보면 전쟁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리고, 미국의 해상 봉쇄는 풀리며, 이란 자산도 해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서명 자체가 아니다. 무엇에 서명하느냐이다. 이번 문서는 종전합의문도 아니고 평화조약도 아니다. 양해각서(MOU)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종전합의문은 전쟁의 결말을 선언한다. 양해각서는 후속 이행과 협상을 남긴다.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서와 해석과 이행을 둘러싼 새로운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의 과부하는 이미 전장 밖에서도 드러났다. 이란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은 유럽 나토 작전에 제공하던 군사자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일부 유럽국가에 대한 무기 인도 지연 문제도 제기되었다. 중동, 유럽, 우크라이나, 동아시아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미국에게 이란과의 전쟁 장기화는 부담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완전히 끝냈다기보다, 전쟁을 정치적으로 봉인하려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그 봉인이 얼마나 갈 것인가이다.
2. 미국은 왜 양해각서를 택했는가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원했다. 그러나 전쟁은 미국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란은 버텼고,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국제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은 결정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쟁을 계속하기도 어렵고, 패배를 인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미국 내 여론도 문제였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군 손실, 유가 상승, 동맹국 부담, 의회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에게는 11월 중간선거가 있다. 전쟁을 계속 끌고 가다가는 선거판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종전합의문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종전합의문은 전쟁목표의 실패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미국이 이란을 굴복시키지 못했고, 이란 핵문제도 결론내지 못했으며,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이란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문서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양해각서를 택했다. 문구상 후퇴는 받아들이되, 이행 단계에서 해석 여지를 남길 수 있는 형식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전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치적 완충장치다.
미국은 전쟁을 계속하기 어렵고, 패배도 인정할 수 없었다. 양해각서는 그 사이에서 선택한 정치적 형식이었다. 전쟁 부담은 줄이되, 패배 인정은 피하는 형식이었다.
3. 합의안의 핵심은 내용보다 형식이다
이번 합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조항의 내용만이 아니다. 그 조항을 담은 형식이다. 전쟁 중단, 해상 봉쇄 해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이란 자산 해제, 후속 60일 협상이라는 항목만 보면 미국의 후퇴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미국이 전쟁으로 얻고자 했던 목표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문서는 종전합의문이 아니다. 양해각서다. 양해각서는 강한 문구를 담을 수 있지만, 조약이나 종전문서처럼 최종적 구속력을 갖는 형식은 아니다. 미국은 바로 이 틈을 이용할 수 있다. 문구에는 동의하면서도, 이행 단계에서는 순서와 범위와 조건을 다시 따질 수 있다.
60일 협상도 그래서 중요하다. 이 기간은 평화의 완성기간이 아니다. 전쟁 중단과 호르무즈 재개방은 당장 선언할 수 있지만, 핵문제, 제재완화, 자산해제, 해상 봉쇄 해제 방식은 곧바로 결론내기 어렵다. 그래서 60일이라는 시간이 붙었다.
30일은 너무 짧다. 핵문제와 제재완화, 검증과 자산해제를 다루기 어렵다. 90일은 미국에게 너무 길다. 중간선거 전까지 전쟁 부담을 관리해야 하는 트럼프에게는 60일이 정치적으로 유용한 절충선이다.
이 기간 동안 양측은 총을 내려놓은 채 문구와 조건과 순서를 놓고 다시 충돌하게 된다. 전쟁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대결은 협상장으로 옮겨간다.
4. 이란은 왜 받아들였는가
이란이 미국을 신뢰해서가 아니다. 이란이 전쟁에서 밀려 굴복했기 때문도 아니다. 이란은 이 문서를 미국의 전쟁목표 실패를 남기고, 미국의 이행을 검증하는 틀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 이란은 미국의 후퇴 문구를 외교적으로 남길 수 있다. 전쟁 중단, 해상 봉쇄 해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자산해제 문제가 문서에 들어가면 이란은 그것을 전장에서 버티며 얻어낸 성과로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이란은 미국의 선이행을 요구할 명분을 얻는다. 서명 직후 곧바로 60일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미국이 전쟁 중단, 봉쇄해제, 자산해제를 실제로 이행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항복이 아니라 검증이다.
셋째, 이후 파탄의 책임을 미국에게 돌릴 수 있다. 이란이 조건부로 양해각서를 받아들이면, 이후 미국이 약속을 어길 경우 “우리는 서명했지만 미국이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핵문제를 뒤로 미룰 수 있다. 미국은 이란 핵문제를 전쟁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구조에서는 핵문제가 즉각 결론나는 것이 아니라 60일 협상으로 넘어간다.
다섯째, 내부 민심을 설득할 수 있다. 이란 지도부가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이행을 검증하겠다. 우리는 전쟁에서 버텼고, 그 성과를 외교문서로 남겼다”고 설명하면 굴복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이란도 자기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다만 이번 국면에서 이란의 핵심 목표는 미국의 선이행을 확인하고, 미국의 후퇴가 담긴 문구를 외교적으로 남기는 데 있다. 따라서 이란이 받아들인 것은 종전합의가 아니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 아니다. 조건부 검증의 틀이다.
5. 해석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해석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란과 미국은 6월 15일 각각 입장문을 냈다. 이란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 명의로 발표했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소셜 성명으로 발표했다. 같은 합의를 놓고 이란은 선이행 검증을 말했고, 트럼프는 위대한 평화협정을 말했다. 문서는 하나지만, 해석은 이미 갈라졌다.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은 이번 합의를 양해각서로 규정했다. 이란은 이 문서에 따라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전쟁과 군사작전이 즉시, 영구적으로 종료되고,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도 즉시, 완전히 해제된다고 밝혔다. 더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이다. 이란은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은 상대방이 양해각서에 따른 의무를 이행한 뒤에 진행된다고 했다.
이 말은 분명하다. 이란은 이 문서를 종전합의문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이 먼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이행 검증 문서로 본다. 이란에게 핵심은 미국의 약속이 아니라 미국의 실제 행동이다. 전쟁 중단, 해상 봉쇄 해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자산해제가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먼저 보겠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표했다. 그는 이란과의 협상이 완료되었다고 했고, 호르무즈 해협의 무료 개방과 미국 해군의 봉쇄 해제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합의를 위대한 협정이라 부르며, 지역 전체에 평화와 안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선이행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평화를 성사시킨 대통령이라는 장면이다.
여기서 충돌지점이 생긴다. 이란은 양해각서 이후 미국의 이행을 먼저 요구한다. 미국은 협상이 완료되었고 평화가 시작되었다는 정치적 장면을 앞세운다. 이란은 “먼저 이행하라”고 말하고, 트럼프는 “나는 승인했다”고 말한다. 이란은 실제 행동을 보겠다는 것이고, 트럼프는 정치적 선언을 내세우는 것이다.
전쟁 범위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란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전쟁과 군사작전이 끝난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성명은 주로 호르무즈 해협, 해상 봉쇄, 석유 흐름을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선이 실제로 멈추지 않는다면, 이란은 미국이 양해각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그것을 별도 문제로 돌리려 할 수 있다.
승리 서사도 충돌한다. 이란은 미국과 시온주의 적에 대한 우위를 말하며 이번 합의를 이란의 항전 성과로 설명한다. 트럼프는 많은 대통령들이 실패한 일을 자신이 해냈다고 말하며 개인의 외교적 승리로 포장한다. 같은 문서를 놓고 이란은 미국의 후퇴를 말하고, 트럼프는 자신의 승리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양해각서의 본질이다. 이란은 선이행 검증을 말하고, 미국은 평화협정의 장면을 말한다. 이란은 의무 이행을 요구하고, 트럼프는 정치적 성과를 선언한다. 이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양해각서는 이행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충돌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6. 조선의 6자회담이 떠오르는 이유
이번 양해각서를 보며 조선의 6자회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는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에너지 지원, 행동 대 행동 원칙이 담겼다. 문장만 놓고 보면 큰 합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행 단계에서 곧바로 금융제재와 검증문제를 앞세웠다.
2007년에는 행동 대 행동 일정표가 나왔다. 그러나 2008년 검증의정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미국은 문구 해석, 행동 순서, 검증 범위, 제재해제 조건을 놓고 시간을 끌었다. 합의는 있었지만 이행은 계속 미뤄졌다. 회의는 이어졌지만 신뢰는 무너졌다. 결국 6자회담은 파탄났다.
물론 6자회담과 이번 양해각서는 형식도 다르고 국제환경도 다르다. 당사자도 다르다. 그러나 큰 문구와 후속 이행 사이에서 미국이 해석과 검증을 앞세워 시간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합의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행은 계속 뒤로 밀린다. 회의는 이어지고, 해석은 반복되며, 시간은 흐른다.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해결되지 않는다. 조선의 6자회담이 그랬고, 이번 이란 양해각서도 그 길로 들어갈 수 있다.
7. 이스라엘 변수는 남아 있다
아직 모든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6월 19일 서명 전까지도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이스라엘이다.
미국과 이란이 문서에 합의하더라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이나 이란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계속하면 양해각서는 흔들릴 수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이번 합의가 이란에게 유리하고 이스라엘 안보를 약화시킨다는 불만이 커질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전쟁지속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이 이행을 미루거나, 이스라엘이 전장을 다시 열면 협상장은 무력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확정된 평화가 아니라 불안정한 정치적 동결이다.
8. 중간선거까지 시간을 산 트럼프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한 종전이 아니다. 지금 당장 전쟁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장면이다. 합의 보기 어려운 핵문제, 제재완화, 자산해제, 검증 문제는 뒤로 미루고, 우선 전쟁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 내 여론은 갈라져 있고, 동맹국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까지 계속 진행된다면 트럼프의 정치적 부담은 커진다. 그래서 트럼프는 전쟁을 완전히 종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결하고 싶어 한다. 전쟁의 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선거 전까지 번지지 않게 덮어두는 것이다.
6월 19일 이후 미국의 이행을 지켜보는 데 한두 달이 지나간다. 그 다음 60일 협상에 들어가면 9월, 10월, 11월로 넘어간다. 그러면 중간선거까지 전쟁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유가가 안정되고, 시장이 안도하고, 미군 손실이 줄고, 공화당 내부 분열이 폭발하지 않으면 된다.
미국은 이란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전쟁목표를 관철하지 못했다. 이란 정권을 흔들지 못했고, 핵문제도 결론내지 못했으며,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도 이란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패배라고 말하지 않는다. 양해각서라는 형식으로 불리한 문구를 덮어두고, 해석의 시간을 벌려 한다.
결론. 양해각서는 정치대결의 출발점이다
이번 양해각서는 누구의 승리인가. 미국의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란의 완전한 승리라고 단정하기도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애초에 원했던 승리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현재 국면에서 이란의 정치적 승리에 가깝다.
이 문서는 종전합의문이 아니다. 미국이 종전합의문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전쟁목표의 실패와 정치적 패배를 보다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문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그 형식을 피했다. 대신 양해각서, 미국의 선이행 확인, 60일 협상이라는 여러 단계를 만들었다. 패배를 문서 하나에 담지 않고, 절차 속에 나누어 숨긴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조선의 6자회담 때처럼 시간을 끌다가, 끝내 합의를 파탄낼 수도 있다. 이번 양해각서가 실제 이행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파탄의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미국이 얻은 것은 시간이다. 이란이 얻은 것은 미국의 패배가 담긴 문구와 선이행 요구권이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시간은 선거까지 버티게 해줄 수 있지만, 문서에 남은 패배의 흔적은 협상장에 계속 남는다.
6월 19일 이후 정세는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핵심은 분명하다. 이번 양해각서는 전쟁의 마침표가 아니다. 트럼프는 승리한 것이 아니라,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패배를 승리처럼 보이게 할 시간을 산 것이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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