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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로동신문 】[이경렬의 주권외교] 주한 미국 총독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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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4-16 20: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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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렬의 주권외교] 주한 미국 총독은 이제 그만

 

기자명 이경렬 자주연합 자문위원(전 외교관, 작가)  

 

 


출처:AI 생성 이미지

 

(장면 #1) 1976년 박동선 사건으로 한미관계가 송두리째 뒤집히던 무렵, 박동진 외무장관은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확산되지 않도록 언론 보도를 미국 측이 공식 부인해달라고 통사정한다. 일국의 외교 사령탑이 주권 침해라는 중차대한 사안 앞에서 미국의 청와대 도청에 항의하기는커녕 거꾸로 미국에 불을 꺼달라며 매달린 것이다. 그러는 박장관을 지그시 바라보던 스나이더 대사의 눈에는 한국에 대한 경멸감이 번지고 있었다.

 

(장면 #2)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남북협력 구상을 밝히자 해리 해리스 대사는 “나중에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게 낫다”면서 “그 낙관론을 행동으로 옮길 때는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시기 그는 국회의원들을 관저로 불러들여 방위비 분담금을 압박하기도 한다. 당시 이혜훈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50억 달러 요구를 스무 번 가까이 되풀이하며 몰아붙였다.

 

(장면 #3) 2007년 3월 30일 워싱턴에서의 일이다. 서울에서는 한미 FTA 마지막 협상이 이루어지던 시점이다. 이태식 주미대사는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데니스 와일더를 만났다.

 

... ★(와일더) (이대사가 말을 하려는 것을 자르고, 손가락질과 함께 고함을 치면서) 이제 한국은 영영 중국의 손아귀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잘 해 보소! (벽에 걸린 북한 여성 투사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우리가 너희들 구해주지 않았으면 지금 저 여자 후손들이 다 되었을 거고.

 

   ☆(이대사) 지나치구먼!

 

   ★ (이대사 말을 자르며 여전히 고성으로) 한국은 친구가 누구인지 몰라. 문제는 노 정권이야. 미국이 세계에서 전쟁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하는 외교장관이 있는 정부가 문제야! ...

 

세 장면은 시공간을 달리하지만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 박동진의 치욕, 해리스의 질책, 와일더의 안하무인은 한미관계가 대등한 동맹이 아니라 철저히 위계화된 관계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이를 오랫동안 ‘특수한 관계’, ‘비대칭적인 관계’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였을 뿐, 그 실상은 사실상의 식민 구조다. 서울에서 미국대사의 발언은 상부의 훈령처럼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그의 행보는 국내 정치의 중대 변수로 취급된다. 서울에서 미국대사가 정치를 흔들고 있을 때 워싱턴에서 한국대사는 장관 한 번 만나는 데 진땀을 뺀다.

 

한심한 점은 이 상하질서를 우리 스스로 공고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총독 행세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실은 우리가 그를 총독으로 대우하며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 사안의 본질이다. 숭미주의자들이 미국을 하느님으로 우러러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서울에 부임한 미국대사는 청와대부터 정부 부처, 여야 지도부, 재계와 언론까지 무소불위로 드나든다. 서울로 오는 인물은 기껏해야 국장급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총리나 외무장관을 지낸 거물급 인사를 주미대사로 보내고도 차관보급 접촉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처지다. 그 기저에는 미국대사를 상전처럼 모시는 한국 정치권의 뿌리 깊은 사대 습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굴욕은 국회와 관료사회, 언론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대사가 입을 열면 국회의원들이 관저로 달려가고, 정부는 몸을 낮추며,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한다. 본래 외교관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대사는 메시지 전달을 넘어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려는 존재처럼 군다. 우리 사회가 그런 방자함을 허용해왔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고압적인 자세나 박동진의 구걸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그걸 습득한 주한 중국대사들의 유쾌하지 못한 사례 역시 궤를 같이 하는 문제다.

 

그러하기에 4월 13일 트럼프의 미셸 스틸 주한 대사 지명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스틸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감되어 있는 자와 밀접하고,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꼭두각시라고 불렀으며, 미국의 종전선언 추진에 반대하면서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해온 인물이다. 중국에 대한 그녀의 극단적인 반중색채 또한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이런 인물을 서울로 보내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방위비를 더 뜯어내고 대미 투자를 압박하며, 남북관계를 워싱턴의 통제 아래 묶어두고 대중국 견제에 한국을 돌격대로 세우겠다는 포석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기계적으로 아그레망을 부여할 것 같다. 트럼프의 지명 직후 청와대는 내정자가 “한미관계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인물이 어떤 목적을 띠고 오는지, 그 인선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어떻게 침해할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했다. 남북관계와 방위비, 산업 정책 등 중대 현안에서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 정부를 길들이는 역할을 자처하려 한다면, 이를 사전에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의 길이다. 미국이 보내는 인사는 무조건 수용한다는 식의 관성적인 복종은 진작 끝냈어야 한다.

 

그러나 아그레망의 거부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따로 있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오래된 구차한 태도다. 주한 미국대사를 총독으로 모시는 우리의 의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대사의 발언을 상부 지시처럼 받드는 우리 정부의 자세부터 버려야 하고, 미국대사 관저로 줄 서듯 달려가는 정치인들의 행태도 멈춰야 한다. 대사는 그저 대사일 뿐이다. 그를 그 이상의 존재로 키워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진정한 자주외교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울에 온 일개 외국대사를 평범한 외교관으로 대우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국에서 받는 대우만큼만 상대에게 돌려주면 된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 대사에 대해서는 과도한 의전과 특혜를 거두고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총독의 환영을 몰아내지 못하면 과거의 굴욕적인 장면들은 언제든 되풀이될 것이다. 자주외교의 해법은 워싱턴이나 베이징이 아닌 서울에 있고, 우리 안에 깊게 박힌 굴종의 습성을 씻어내는 데 있다. 끝.

 

2026.04.16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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