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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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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04 01:2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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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나니!
김상일(전한신대학교 교수)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내편이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 없구나

백성 사랑 올바른 길이 무슨 허물이더냐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녹두 장군 전봉준이 처형 직전 남기 한토막의 시이다. 120년 전 갑오년 온 나라 안에는 이런 노래가 퍼져 나갔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나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네 무엇 하러 나왔느냐

솔잎 대잎 푸룻 푸룻 

하절인가 하였더니

백설이 훨훨 휘날리니

청송녹죽이 날 속인다.

파랑새는 팔왕八王인 全봉준(1854~1895년)을 가리키고 청송녹죽은 동학 정신을 이른 것이다. 꽃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나 나와야 할 파랑새가 흰 눈이 날리는 엄동설한에 솔잎 대잎 푸른 것을 보고 봄여름인 줄 알고 나와 청송녹죽에 속고 말았다는 것이다.

갑오년 다음은 을미년(2015), 을미년 다음에는 병신년(2016)이다. 이어지는 세 삼년에 운을 부쳐 120년 전에 민중들은 노래 지어 불렀는가 보다. 2016년이면 병신되고 말다. 그래서 갑오년에 들어 일어나 해치워야 한다는 노래이다. 

120년 동안 우리 역사, 무엇이 달라지고 변한 것이 있는가. 그 때 그 노래 그 민요가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마음에 다가 오니 우리 역사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주변 국제 정세는 그 때 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전봉준의 죽음과 함께 청일 전쟁이 잇따르고 외세는 막혔던 수문이 터지듯이 밀려 닥쳐 들어 반만년 역사 동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전봉준의 죽음 다음 겪었던 질고의 역사를 찬양하고 미화시키는 역사 교과서가 공공연하게 버젓이 교단에 등장하고 그러한 역사 교과서를 추동하는 세력이 지금 나라의 주인이 되어 안 방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는 수레바퀴 자체인가 아니면 수레가 가는 길인가. 

올해 2014년이 두 갑자 전 1894년과 그 끝자리 수 4가 같다. 제 2의 전봉준 같은 비운이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이 번 갑오년에는 미완의 혁명을 성취할 것인가?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만약에 동학 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물론 청일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가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검증하는 방법은 귀류법을 사용해 보면 안다. 귀류법이란 그렇지 않다는 가정해 놓고 그렇다를 증명하는 방법이다. 

동학 농민혁명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후과들을 보면 그것이 성공했을 때를 가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을 참패시킨 왜군들은 서울로 돌아오자 말자 자기들을 불러 드린 명성왕후 민비를 시해하고 궁을 무력으로 포위하고 만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고종은 외세를 불러 드린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왕실은 피보호 세력이 되고 만다.

이것이 문제이다. 외세를 끌어드린 후과가 이렇게 엄청나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 국민들과 정치지도자가 다수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란 말이다.

만약에 농민 혁명이 성공하여 전봉준이 제시한 "합의법에 의한 정치"(<전봉준 공초>)가 들어섰다면, 다시 말해서 입헌민주제가 수립되었더라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다운 공화국이 수립되어 지금까지 뿌리를 박고 내려와 잎과 열매가 무성한 말 그대로 민주공화국인 이상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동학 혁명군이 창설한 집강소 제도와 포접 제도는 모든 인간을 수평적 관계로 엮는 제도로서 오늘날 네티즌 시대를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혁명 실패 후 불과 4년 후에 폭발적으로 열린 만민공동회가 지속되었더라면 이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뺨칠 정도로 진화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진 나라치고 외세 앞에 그렇게 호락 호락 무너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1905년의 대한제국처럼 그렇게 쉽게 일제에 굴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학혁명의 성공은 우리 민초들의 승리 그 자체였을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전체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일제도 감히 우릴 넘나다 보질 못했을 것이고 남북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중대한 동학 농민 혁명이 고종과 민비라는 수구 세력들이 달려 붙어 망쳐 놓고 말았으며 결국 자기들도 자기 들이 불러 드린 외세의 총검 앞에 쓸어져 가고 말았다. 세조 이후 생긴 훈구파들은 국가나 민족에는 안중에는 없는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세력들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 기간 중에도 자기들 눈앞에 이익이 무엇인가만 챙기는 세력들이다.

이 역사의 괴물 같은 세력들이 남한의 수구 보수 세력들이라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 국민들 가운데 다수가 어리석게도 이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이들 세력들은 지금 언론과 군과 경찰과 같은 하드와 소프트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생존 전략은 철저하게 외세 의존적 사대주의라는 것이 특징 가운데 특징이다. 자기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면 물불 안 가리고 외세를 끌어 드린다. 나라의 속 알갱이를 다 빼다 바치면서 죽자 살자 외세에 매달리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이승만이 미국에 매어 달리었어도 일본에는 거리를 두었으나, 박정희와 그 일당들은 저 흉악무도한 일본마저도 우방이라고 끌어 드리고 말았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어디 까지 왔는가를 지금 정부는 숨겨 놓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자기들의 역사에서 지은 죄를 모두 감추기 위해 역사 교과서마저 조작 고쳐 쓰고 있다.

그럼 청송녹죽 동학정신이 죽고 말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동학이 없었다면 삼일운동도 419도 518도 없었다. 그리고 이 추운 한겨울에 서울 광장에 10만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도 없다. 이 모든 저력은 동학정신이 아직 우리 속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청송녹죽 같은 동학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반외세 반봉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 진보 진영마저도 반외세와 반봉건의 접촉점을 찾지 못하고 사분오열돼 있다. 서구의 잘 못된 진보 정신을 받아 드려 맹목적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은 회곡록에서 총검보더 더 무서운 적이 사대주의라고 했다. 그래서 북은 정치에서 주체, 역사의 주체, 외교에서의 주체 그리고 사상의 주체를 내세우며 지금까지 외세의 간섭 없는 한반도 청소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우방이라고 하는 중국으로 부터도 간섭 없는 자주 국가 건설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만약의 경우 중국도 적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이 번 장성택 숙청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외세 척결 앞에 일가 친척도 안가린다는 본을 보인 것이라면 흐뭇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김일성 주석은 10대에 화성의숙에서 동학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유격활동 기간 중에는 박인진 같은 천도교 교도들의 혁혁 공로를 높이 인정하여 지금 북에서 인정하는 종교 단체는 오직 청우당 뿐이다. 회고록에서 ‘박인진’이란 이름이 한 장의 이름이 될 정도로 동학의 독립운동을 높이 사고 있다.

남에서는 지금 동학정신은 실종되고 동학 농민 항쟁은 기념 조차 국가에서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름 아닌 외세의 앞잡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 기념식 하는 것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황토현 백산에서 죽창 들고 일어섰던 농민들인들 죽음의 공포가 없었겠는가?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간다. 한 열사가 이 추운 겨울에 자기 몸을 던졌다. 그것도 황토현 정기를 이어 받은 아들이.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이남종 열사가 남긴 마지막 말 한마디가 소한대한이 다가오는 이 때에 왜 이렇게도 원망스럽기만 한가. 우린 지금 너무 배부르고 우리의 실내 온도는 너무 따뜻하다. 나가고 싶지도 않다. 아파트 방구석에서 을미적 을미적 하고 있다. 그래서 병신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를 모두 안고 간 동학 후예의 마지막 남긴 말을 헛되기 하지 말아야 할터인데...

갑오년은 다시 찾아 왔지만 우리 가볼 수 있을까? 병신년 까지는 아니어야 할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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