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거짓 프레임 - 수탈을 덮고, 자주를 포기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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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1-03 19:4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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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거짓 프레임 – 수탈을 덮고, 자주를 포기한 나라
윤현일(재미동포)
1.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 – 통제의 언어가 된 민주주의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 이 말은 원래 비생산적 논쟁을 줄이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변질되었다. 이제 이 말은 권력의 실패를 가리는 방패, 비판을 봉쇄하는 통제 언어로 쓰인다. 비판은 국민의 권리이고, 대안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는 이 관계가 뒤바뀌었다. 정부는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국민에게 박사급 해법을 요구한다.
“대안이 없으면 비판하지 마라”는 말은 곧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이 반복될수록 정부는 점점 무능력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안주한다. 국민은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다. 비판 없는 사회에서 대안도, 자주적 정치자각도 자라지 않는다.
2. ‘대안’ 프레임의 정치적 기능 – 종속구조의 내부 방어막
이 문장은 언제나 특정한 시점에 등장한다. 미국이 관세를 요구할 때, 방위비를 인상할 때, 대규모 투자를 강요할 때마다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 질문은 단순한 논법이 아니다. 한미종속구조를 무비판적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기술이다.
“대안이 없다”는 말은 사실상 ‘미국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겠다’는 선언이다. 대안보다 미국의 심기를 더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눈치를 본다. 스스로 미국의 틀 안에서 한국을 조정하려 한다. 과연 이 방법이 맞는가? 아니다. ‘대안 없는 비판’이란 말은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비판하지 말라”는 굴욕적인 복종의 언어다.
3. 정부는 심부름꾼이다 – 책임의 주체가 바뀌었다
정부는 국민이 세운 심부름꾼이다. 표를 주고, 세금을 내고, 일을 맡긴 존재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었다. 정부는 대안을 만들고, 그 대안에 대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국민은 정책의 고용주이지 설계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무능을 감추기 위해 국민에게 전문가의 책임을 떠넘긴다. 정부가 대안을 만들기 싫다면, 혹은 만들 능력이 없다면 솔직히 고백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대안은 정부가 내고 국민이 평가한다. 국민이 대안을 만들고 정부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대안을 내라”는 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라”는 명령이다. 비판을 억누른 정권은 실패를 예비한다.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말은 이제는 변질되어 민주주의를 침묵시키는 통제의 언어가 되었다.
4. 협상 초기의 실패 – 감추기, 시간끌기, 포장하기
한미관세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문제의 본질은 명확했다. 미국은 ① 에너지 수입 확대, ② 조선•반도체•배터리 대미투자, ③ 현지 고용창출을 요구했다. 이는 명백히 ‘산업보조금 대납형 수탈 구조’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협상 초기에 이 심각성을 감추었다. 협상을 위해 말을 아낀다며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4월부터 관세협상 내용에 대해 정부와 민간 합동의 제대로 된 대책 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모든 논의는 밀실에서만 오갔다. 그것도 대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한국민을 달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틀렸다.
정부가 할 일은 한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협상의 주체가 아니라 결과 통보의 대상이 되었다. 협상은 이미 그 순간 실패를 예고한다.
5. ‘분할납부’는 수탈의 완화가 아니라 수탈의 연장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정부는 여론을 달래기 위해 ‘일시불 대신 분할납부’라는 형식적 완충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 돈은 그대로 들어오고 일정도 보장되며, 한국 내부의 반발만 줄어든다. 조건은 그대로 수용하되 국민의 분노만 관리한 협상이었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라 수탈의 절차적 연장, 즉 ‘즉시납 대신 분할납’의 포장일 뿐이다.
누구를 위해 협상했는가? 말로는 한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한국은 없었다. 미국과, 미국의 하수인이 함께 한 협상이었다. 만약 정부가 하수인이 아니라면, 왜 3,500억 달러에서 한 푼도 줄지 않았는가? 조삼모사도 아니다. 일시불이 분할로 바뀌었다고 해서 돈이 줄어드는가? 아니다. 분할한 것을 성과라 평가한다면, 그것은 진실로 무능력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6. 국제비교 – 한국만이 완전수용한 나라
중국은 ‘관세 대 관세’로 맞섰고, 일본은 자체 보조금으로 손실을 상쇄했다. 유럽은 미국식 보조금 경쟁에 대응해 자체 산업보호 제도를 만들었다. 남미국가들은 시간지연•자원교환으로 맞섰다.
그러나 한국은 유일하게 미국의 요구안을 조건•금액•일정 그대로 수용한 나라다. ‘분할납부’라는 포장만 씌웠을 뿐이다. 이 협상은 한국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명세서였다.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중국, 일본, 브라질, 칠레, 유럽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이런 예는 없다. 남미국가들도 대안을 만든다. 그런데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은 대안도 없이 분할납부를 자화자찬한다. 그 무능은 남미 정부보다 못하다.
7. 정권은 바뀌었지만, 종속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도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했다면 큰일이라고 했을 일을, 문재인 정부가 하면 “그나마 잘했다”고 했다. “기다리면 다 알아서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야말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가장 충실히 봉사한 정부였다.
이재명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와 비교하며 “그래도 선방했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또다시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러나 냉철히 보자. 윤석열 정부가 협상했든, 이재명 정부가 협상했든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두 정부의 차이는 크다 해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다.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 세 정부의 차이는 강온의 차이일 뿐, 대미종속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문재인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벗어나지 못했고, 윤석열정부는 충성하지 못해 안달이며, 이재명정부는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한다.
8. “남미는 대안을 만들었다, 한국은 변명을 만들었다”
브라질•칠레 같은 남미국가들은 미국의 압박에도 시간을 벌고 자원을 바꾸며 조건을 조정했다. 그들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율영역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지능을 보였다. 그 결과, 미국의 틀 안에서도 최소한의 주권공간을 지켜냈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현실적 대처’, ‘선방’이라는 말로 실패를 포장했다. 남미는 대안을 만들었고, 한국은 변명을 만들었다.
“남미는 자원을 내세워 시간을 벌었고, 한국은 시간을 내세워 자주를 잃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핑계로 굴복을 정당화하면 역사는 냉정하게 기록한다. 그 굴복은 선택이었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종속은 교체되지 않았다. 남미는 대안을 만들었고, 한국은 변명을 만들었다.
9. 결론 – 자주 없는 선진국은 허상이다
아무리 경제규모가 크고 기술력이 앞서도 자주권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그것은 허상이다. 곳간의 열쇠가 국민에게 있지 않다면 그 부(富)는 실체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곳간 열쇠는 국민이 아니라 미국이 쥐고 있다.
반면,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자주권이 있으면 없는 살림이라도 함께 나눈다. 자주권이 없으면 나눌 것도, 지킬 것도 없다.
대안을 만들지 못하는 국민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자주권을 잃은 정부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심부름꾼이지 심판자가 아니다. 국민은 이미 표로 대안을 제시했다. 그 표를 받고도 대안을 만들지 못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10. 대안 – 자주적 구조의 회복이 유일한 길이다
이재명 정부는 정권의 안위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광장의 힘으로 태어난 것을 인정한다면, 광장이 거부하면 물러나야 한다는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 광장은 필요에 따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광장은 하늘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관세협상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국가 주권의 문제다. 자주적 입장에서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미움받지 않으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에서 출발한다면 그 어떤 협상도 주권을 지킬 수 없다.
이 정권은 광장의 힘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국가의 중대사는 광장과 함께해야 한다. 협상의 내용과 절차를 국민에게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공개한 뒤 국민과 함께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정부의 자세다.
지금의 구조에서 미국의 압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시장 의존의 굴레’다. 미국은 자국의 재정과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의 자본과 시장을 흡수하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이 틀에서 벗어나려면 감정적 반미나 단순한 자립 구호가 아니라 구조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은 세 가지 방향에서 시작된다.
① 수출의 다극화: 대미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중동•남미 등 비(非)미국권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중국•러시아 등 대륙 중심국가들과의 실질적 협력 복원, 그리고 브릭스(BRICS)•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다자기구와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② 국가 내부의 산업순환 복원: 외국 투자 유치보다 내수•기술•노동의 선순환을 강화해야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기초 체력이 생긴다.
③ 외교의 자주화: 군사•경제•외교 모든 분야에서 ‘동맹’이 아니라 ‘협력’의 언어를 회복해야 굴복이 아닌 공존이 가능하다.
3500억 달러를 내수를 위해 투자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대미 관세협상이 끝났다고 볼 수 없다. 이제 국회 통과를 거쳐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이재명 정부는 그동안 제기된 수많은 민간 전문가 집단의 대안을 종합 검토해 새로운 협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관세협상을 마무리했지만 국민이 거부한다면, 다시 만들 용기를 가져야 한다. 국가의 생사가 걸린 중대사인데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선방이라고 포장된 관세협상의 결과를 보고도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가 아니라, “정부는 조속히 국민이 납득하는 대안을 만들라”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엉뚱한 데 힘쓰지 말고 한국민을 위해, 광장을 위해 다시 힘을 내야 한다.지금 필요한 것은 자주권 찾기다. 이재명 정부는 자주 민주정부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끊으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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