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임진강역에서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전쟁포로 안학섭노병 즉각 송환하라!>1차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어 <전쟁포로 안학섭노병 즉각 송환하라!>행진을 시작했다.
통일대교남단검문소앞에 도착한 안학섭선생은 인공기를 들고 조선을 향해 전진했다. 검문소에서 가로막자 10분간 조선을 향해 <한국>식민지에서 당한 모욕과 고통에 대해 발언했다.
이후 2차결의대회를 진행했다.
1차결의대회에서 성명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즉각 송환하라!>를 발표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성명]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즉각 송환하라!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의 즉각 송환은 도리며 정의다. 올해 96세의 전쟁노병이자 현존세계최장의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선생은 72년전 고국인 북녘으로 귀환됐어야 했다. 한국전쟁시기 인민군정복을 하고 60일동안 설악산에서 싸우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포됐던 안학섭선생은 지금까지도 전쟁포로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3협약의 3조와 109조·118조는 각각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 전후 전쟁포로의 석방과 본국송환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3조는 협정효력발생후 60일내 직접송환을 명문화했다. 그럼에도 남측은 군법회의재판에서 안학섭선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 1995년까지 무려 42년4개월간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공작을 해대면서 인권을 말살시키고, 출소후 지금까지도 감시하면서 인권유린을 해대고 있다.
지금 안학섭선생에게는 시간이 없다. 안선생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설움을 딛고 조국의 자주와 해방을 위해 헌신분투하는 삶을 선택했다. 2000년 북으로의 송환을 마다한 이유는 남녘조국에 제국주의침략군대 미군이 주둔해있어서였다. 안선생은 <내가 안방을 내주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내의도와는 전혀 다르기때문에> 남았다고 언급하며 정치적 생명이 있는 사람의 양심에 대해 말했다. 고령의 선생은 <감옥에서 생사를 같이 하던 동지들이 묻혀있는> 조국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뜻을 밝히며 투쟁하고 있다. 현재 폐부종으로 건강의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민족자주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이 뜻을 외면하고 저버린다면 양심과 천륜을 저버리는 것이다. 한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다바친 노투사의 마지막 요구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이재명정권에게 재차 촉구한다. 안학섭선생을 지금당장 송환하라. 우리는 앞서 오늘 판문점을 통해 송환할 뜻을 밝히며 판문점남북연락소에 연락해 송환 날짜와 방식을 조율할 것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오늘 안학섭선생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판문점표지시점으로 북측호송팀이 합류할 것을 북측에 요구하고, 판문점송환시 유엔사와 협의할 것과 우리의 요구사항을 공식발표할 것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우리의 요구는 법리적으로나 인권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평화를 공언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는 이재명정권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96세의 전쟁노병, 통일애국투사 안학섭선생의 송환에 태만하다가 최악의 경우 그때를 영영 놓치게 된다면 이재명정권은 조국과 민족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인권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즉시 안학섭선생을 송환해야 한다.
우리는 안학섭선생의 필생의 과업을 계승해 반드시 실현할 것이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했지만 9월 조국남녘이 미군군홧발에 짓밟히면서 이땅, 우리민족의 수난과 민족과 운명을 함께한 안학섭선생의 비극이 시작됐다. 1953년 안선생이 귀대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정전협정당사자면서 이를 철저히 위반한 제국주의미국에게 있다. 42년4개월의 수감생활과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창살 없는 감옥살이>는 반민족·반통일파쇼악법 국가보안법에 의한 것이다. 우리민족·민중의 자주권을 위협·유린해온 미군과 사상의자유를 비롯한 인간존엄을 억압·말살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땅에 진정한 자주와 민주, 평화와 통일은 도래할 수 없다. 안학섭선생의 민족자주의식과 반제투쟁의지를 계승한 우리는 미군철거와 보안법철폐로 민족·민중의 새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2025년 8월20일 임진강역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출처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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