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광복 80주년 기념: 전후 80년, 세계 그리고 한국 국제심포지움(2)-다극화 세계질서 : 현황과 전망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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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통일시대] 광복 80주년 기념: 전후 80년, 세계 그리고 한국 국제심포지움(2)-다극화 세계질서 :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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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08-18 17:3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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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전후 80년, 세계 그리고 한국 국제심포지움(2)-다극화 세계질서 : 현황과 전망 

통일시대

 

 

지난 14일 [전후 80년, 세계 그리고 한국] 국제 심포지움이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6개국의 해외 저명 연구자들이 같이 참석한 이번 심포지움은 다극화포럼(이사장 이해영 교수)과 코리아국제평화포럼(이사장 류경완), 통일시대연구원(원장 한충목), 자주통일평화연대(상임대표의장 이홍정)이 공동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김영호·이용선·민병덕·박희승·부승찬·이재강 국회의원과 진보당 윤종오·정혜경 국회의원, 소나무당 송영길 대표 등 정치권과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자주연합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최하였다.

국제 심포지엄은 △1세션-전후 80년 체제 : 회고와 성찰 △2세션-다극화 세계질서 : 현황과 전망 △3세션-한국, 어디로 갈 것인가? △4세션-종합 토론 순서로 진행되었다. 통일타임즈는 이번 발표된 논문 전체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독자들은 이 발표문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한국 주권실현의 절박함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전후 80년 국제 심포지엄

한국 : 번영하는 다극 세계는 평화와 주권으로 이어진다

-피터 쾨니히_스위스, 세계은행과 WHO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광복 80주년  1945년 8월 15일, 36년간의 일본 식민 통치 종식

이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 8월 15일에 끝난 36년 간의 일본 식민 통치로부터 조선이 해방된 지 8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합니다.

지난 125년 이상의 세월 동안 한국은 억압과 식민지화, 그리고 의존 상태를 오늘날까지 거의 끊임없이 겪어왔습니다.

이제는 모든 형태의 식민 지배를 멈추고, 한국이 마침내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다극 세계 속에서 번영하는 주권 독립국가가 될 때입니다. 이것이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날에는 꿈처럼 보일지라도 1948년 8월 15일까지 그랬던 것처럼 남북이 통일된 중립적이고 민주적 한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중립이 핵심입니다. 중립은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자 필수 요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들은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했습니다. 38선 이남은 미국의 통제를 받는 대한민국으로, 38선 이북은 1948년 9월 9일 당시 소련의 통제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으로 나뉘었습니다.

간략한 역사

한국의 역사는 약 5,000년으로, 중국의 역사와 많은 부분을 함께 해 왔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때 주권국가였던 나라가 인위적으로 분단되기 전에 겪었던 억압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 분단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식민지화입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일본은 '동양의 강국'으로 여겨졌습니다. 제2차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은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의 일부, 만주(현재 중국 북부와 러시아 극동 일부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그리고 중국 본토의 일부를 통제했습니다. 이 지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후 특히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했습니다. 이는 조선 주권의 점진적인 침식으로 이어졌습니다.

1905년, 일본은 조선에 이른바 '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여 일본의 통제 하에 두었습니다.

일본은 1910년에 조선을 기술적으로 ‘침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910년 8월 22일에 체결된 '병합조약'을 통해 조선을 합병했습니다. 이 조약은 강압과 불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 관리들은 대한제국 황제를 위협하고 친일 성향의 조선 관리들을 조종하여 조약에 서명하게 했습니다.

이 조약은 1910년 8월에 선포되었고, 같은 해 8월 29일에 대중에게 공표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치를 공식화 했습니다. 일본은 합병에 앞서 수년 동안 조선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독립과 주권을 사실상 종식시켰습니다. 조약은 "조선 전체에 대한 모든 주권의 권리를 폐하인 일본 천황에게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양도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제국이 붕괴했을 때, 한국은 마땅히 독립을 쟁취해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은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었습니다. 한국을 분할하자는 제안은 미국이 했고, 소련이 이를 수용하면서 38선이 분단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까지 분단 상태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연합국 지도자들은 분단이 일시적인 것이며,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이 자치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될 때까지 국제 신탁통치 하에 두기로 합의했었습니다.

국제 신탁통치란 무엇인가?  

한 국가가 자치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 누가 결정하는가?

1945년 유엔이 만든 '국제 신탁통치 제도'는 아직 자치 능력이 없는 영토를 관리하고 감독하기 위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영토들은 종종 국제연맹의 이전 위임 통치령이거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부터 빼앗은 영토였습니다. 목표는 이 영토들이 자치나 독립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유엔의 주요 기관 중 하나인 신탁통치이사회가 이 시스템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결정의 모순은 처음부터 명백했습니다.

한 국가와 국민의 자치 능력을 누가 결정합니까? 유엔입니까?

새로운 기구인 유엔은 1945년 10월 24일에야 공식적으로 출범했으며, 51개 회원국 대부분은 서방, 즉 미국에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한 국가가 자치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 결정했다는 뜻입니까? 불행히도, 193개 유엔 회원국이 있는 오늘날에도 이는 변함이 없습니다. 유엔은 워싱턴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고 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외무장관 회의는 한국의 신탁통치를 미국, 소련, 영국, 중국 4개 강대국의 통제 하에 두기로 결정하면서, 한국이 독립을 달성하기 전까지 최대 5년의 4개국 신탁통치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포함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좌파와 우파 모두 이 신탁통치 계획에 반대하며, 이 계획이 한국을 4개 강대국의 속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46년 1월 초, 한국의 좌파는 신탁통치로 선회했습니다. 그들은 두 서방 신탁통치 파트너인 미국과 영국보다 소련 및 중국과 더 가까운 동맹을 맺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좌파가 반신탁 운동에서 이탈하면서 좌우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결국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로, 다수의 좌파를 지지하는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았고, 남한은 미국과 유엔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엔은 51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서방, 즉 미국에 의해 크게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극동의 동맹국인 한국이 공산주의 러시아와 중국의 통제에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워싱턴은 최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고 살인적인 전쟁 중 하나인 한국전쟁(1950-53)에 개입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약 400만 명 (이 중 절반은 민간인으로, 1950년 당시 남북 전체 인구 약 3,100만 명의 약 13%에 해당)이 사망했습니다. 한국은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워싱턴의 제안으로 한국은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두 한국 사이에는 휴전만 있을 뿐, 평화 협정은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마도 정의되지 않은 수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복잡한 배경이 왜 중요한가?

한국이 지난 125년 이상 동안 겪은 일을 알아야만, 분단되어 아직 자유롭지 못한 한국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만 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세계주의(Globalism) 또는 단극(Unipolar) vs. 다극(Multipolar) – 서방 vs. 글로벌 사우스

세계화의 진정한 목표와 글로벌 사우스 및 다극 세계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 세계화에 맞서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 즉 다극 세계에 속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떻게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계화주의자들의 지배에서 우크라이나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파악해야 합니다.

유명한 미국 지정학 전략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ński)는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1997)에서 서방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통제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브레진스키는 "유라시아 체스판의 새롭고 중요한 장소인 우크라이나는 독립 국가로서의 존재 자체가 러시아의 변혁에 기여하기 때문에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를 작게 만들거나 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 단극 세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중국과 대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국제적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두 주요 기사에서도 이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사람들, 특히 서방 정치인들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계주의 개념에 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도록 하기 위해 브레진스키는 크림반도에서 반복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갈등을 예로 들어 그의 주장을 설명하면서, 크림반도가 항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에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크림반도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54년 2월 19일,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소련의 지도자였을 때, 그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주었습니다. 양도는 1954년 2월 27일 법령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양도의 주요 이유는 현재로서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결정은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연합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 제스처로 포장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 크림반도와 관련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크림반도는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요구했습니다. 키예프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부터 진행된 서방의 공작으로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준비가 되자, 크림반도는 점점 더 러시아 쪽으로 돌아섰고, 이는 2014년 주민투표로 이어져 크림반도 주민의 96%가 러시아 연방에 합류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서방은 프로파간다를 통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서방이 브레진스키의 '체스판 이론'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분리되어 두 국가 간 지속적인 전쟁과 갈등을 유지함으로써 러시아가 군사적, 도덕적, 전략적으로 약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러시아의 동맹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실제로 '형제 국가'입니다. 두 '형제'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300년의 공통된 역사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중세 키예프 루스*(9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 동유럽에 존재했던 동슬라브족의 초기 국가를 지칭하며,  현재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기원이 되는 나라. 역자 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언어에도 유사성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2년,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에 의해 소련 내에서 공화국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토지로 인한 농업뿐만 아니라 중공업 및 국방 산업에서도 소련 내에서 중요한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서방의 전략은 나중에 브레진스키가 설명한 것과 같은 목적, 즉 소련을 약화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소련으로부터 분

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지배라는 아이디어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미 서방/미국의 생각이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는 국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찬성으로 러시아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국가가 되는 데 투표했습니다. 이 국민투표에서 서방의 프로파간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브레진스키의 아이디어는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1997)에 묘사되기 훨씬 전부터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체스판』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습니다. 이는 서방이 완강하게 추구하는 동서 분단의 청사진으로, 이를 통해 서방의 세계주의 제국이 전 세계로 촉수를 뻗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출되지 않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말 그대로 1조 유로의 군사 예산을 편성할 예정입니다.

이것은 서방의 꿈 또는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방은 미국과 그 서방 속국들의 자칭 세계주의 황제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제국주의적 아이디어는 아마도 200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지만, 9/11 사태로 인해 크게 강조되고 심화되었습니다. 세계 지배를 향한 미국/서방의 공격성은 2006년 중국과 러시아가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를 창설하도록 부추겼고, 이는 신흥 글로벌 사우스의 지도 원리가 되었습니다.

2024년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BRICS 정상회담에서는 6개의 새로운 국가[이집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BRICS에 추가되었습니다. 같은 회의에서 13개의 새로운 ‘BRICS 파트너’ 또는 준회원국이 이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여기에는 벨라루스, 볼리비아, 카자흐스탄, 쿠바, 말레이시아, 태국,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가 포함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형성된 다극 글로벌 사우스의 견고한 기반이며, 세계주의 서방에 대한 진지한 경쟁자이자 균형추입니다. 글로벌 사우스는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며, 사회경제적 발전과 복지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27개의 비서방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비전은 자유무역입니다. 이는 다극 글로벌 사우스 구조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이 구조는 회원국 내에서 자유무역지대로 기능하며, 제재에 취약한 미국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나 회원국의 통화로 거래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한국의 미래에 왜 중요한가?

미래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이며 민주적인 대한민국, 가능하다면 재결합된 남북 대한민국은 글로벌 사우스 경제 내에서 여러 면으로 급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는 세계 인구의 약 85%, 전 세계 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자칭, 비선출 서방 G7을 능가합니다.

게다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Belt\and Road)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이 막강한 구상은 공동 투자와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평화로운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합니다. 일대일로는 현재 여러 대륙을 가로지르는 약 6~7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육상 기반(철도 및 도로 운송), 일부는 해상로이며, 일부는 육상 및 해상 결합입니다.

일대일로는 이미 150개 이상의 회원국 및 국제기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국가들은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회경제적 이점과 그 이상의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차원으로 문화적 관계, 무역 파트너, 우정을 만들어 갑니다. 

일대일로는 최고의 외교입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 있습니다. 이 기구는 경제 성장, 사회 발전, 문화 발전을 가속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1967년 8월 방콕(태국)에서 창설되었습니다.

관련 자유무역기구로는 15개 아시아 태평양 국가를 포함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가 있습니다. RCEP는 역내 무역 장벽을 줄이고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대한민국은 호주, 중국, 일본, 뉴질랜드와 함께 준회원국입니다.

또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는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습니다. CPTPP는 관세, 서비스, 투자, 전자상거래, 지적재산권, 국영기업과 같은 분야를 포괄하며 상품 및 서비스 무역 자유화를 심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공급망, 청정에너지, 공정 경제 등 다양한 핵심 분야에 초점을 맞춘 더 넓은 경제 프레임워크입니다.

이러한 모든 협정들은 회원국 간의 경제적 안정과 번영의 균형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독립적이고 주권적이며 중립적이고 민주적이며 통일된 한국이 이 역동적이고 독립적인 다극 글로벌 사우스 발전 계획의 일부가 되는 것을!

평화의 토대인 중립은 중국, 러시아, 미국과 특별하거나 독점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다극화 세계에서 여러 축들과 동등한 우정과 무역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의 2023년 경제 성장률은 1.4%였고, 2024년에는 2.0% 성장이 예상되지만 2025년에는 1.7%로 더욱 둔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인프라, 교육, 보건 등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건설적인 투자 대신, 군비 증강이라는 파괴적인 투자에 자원을 쏟는 국가들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서방 성장패턴'입니다.

이것을 중립적인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 예를 들어 베트남(7%), 말레이시아(5.1%) , 인도네시아(5%), 필리핀(5.6%)의 2024년 경제 성장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들 국가는 전쟁이나 분쟁에 휘말리지 않았으며, 다시 미국 쪽으로 강하게 기울고 있는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초강대국과 묶여있지 않습니다. 

이들 중 어느 나라도 생산적인 자원을 전쟁 산업에 쏟아붓지 않습니다.

평화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마음에도 평화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에 만족하고 생산적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

125년 이상의 억압, 식민지화, 그리고 미국의 신식민지화 이후, 한국은 휴식과 새로운 번영, 독자적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번영하는 한국의 미래는 단기 및 중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휴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고 자율적이며 완전한 주권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남한과 북한을 중립적인 민주 국가로 통일하는 것입니다. 중립이 항구적인 평화의 기본이자 '알파와 오메가'이기 때문입니다.

번영하고, 주권적이며, 통일되고, 중립적인 한국으로 가는 정치적, 경제적 길은 바로 다극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여전히 가지고 있는 단극, 또는 세계주의적 세계, 혹은 동서 분단과 같은 이중 극성이라는 개념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브레진스키 이론에서 설명했듯이, 세계주의적 세계는 세계를 통제하는 일종의 황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전략은 현재 워싱턴과 런던의 주도 하에,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앵글로스피어' 또는 영국 연방의 핵심 국가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자칭 신흥 제국은 '파이브 아이즈'라는 공통 정보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습니다.

냉전이 시작된 이래 지난 70년 간, 성장하는 군사력으로서의 NATO와 함께, 그러한 세계주의적 세계는 결코 평화롭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과 분쟁은 그들의 상표이자, 말 그대로 그들의 생명줄입니다. 전쟁, 파괴, 살인은 또한 그들의 경제 성장 모델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NATO가 시작하거나 주도한 분쟁과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3천만에서 4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수조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와 생계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의 오웰식 세계에서 NATO와 전쟁은 대중에게 평화를 위한 도구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과 자가 유발된 분쟁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분할하여 정복하라'는 전략의 일부입니다. '새로운' 사고를 가진 동방 및 글로벌 사우스의 지도자들은 소수의 이익, 특히 서방 전쟁 산업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기보다는 평화협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협력과 협업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 즉 '함께'라는 개념은 평화, 번영, 그리고 사람 중심의 균형 잡힌 경제 성장을 성공적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항구적인 평화를 원합니다.

다극성은 세계의 평화와 만인의 번영을 위한 최종 해결책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의 역동적인 세계에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확장적인 수단입니다.

새로운 주권 -중립적인-의 통일된 한국은, 강대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연합에서 벗어나, 일대일로, 글로벌 사우스, 다양한 ASEAN 국제 무역협정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평화와 국가 간 협력은 사회경제적 발전과 사람들의 복지를 가져옵니다. 이는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전쟁은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전쟁은 필요한 경제 및 사회적 투자(인프라, 교육, 건강)으로부터 자원을 앗아갑니다.

다극 세계 속의 통일되고, 중립적이며, 민주적인 한국은 전쟁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주권적 자부심과, 인류의 연대와 공유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각주:  *피터 쾨니히는 지정학 분석가이자 글로벌 리서치(Global Research)의 정기 필진입니다. 그는 이전에는 세계은행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30년 이상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며 전 세계에서 활동했습니다.  『붕괴(Implosion) – 전쟁, 환경 파괴, 기업의 탐욕에 대한 경제 스릴러』와 신시아 맥키니(Cynthia McKinney)의 저서 『중국이 재채기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봉쇄부터 세계 정치경제 위기까지』(When China Sneezes: rom the Coronavirus Lockdown to the Global Politico-Economic Crisis, Clarity Press – 2020년 11월 1일)의 공동 저자입니다. 

현재는 세계화연구센터(CRG)의 연구원이자 베이징 런민대학교 충양금융연구원(Chongyang Institute of Renmin University)의 비상주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다극화 세계 속의 현대 아프리카 : 새로운 전략적 서사의 출현

이브라히마 P.L. 지루_세네갈 생루이가스통베르제대학교 연구원

 

냉전이 끝난 한참 후에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옛 식민지배 국가들에 의해 그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제, 외교, 지정학은 서방 국가들의 방향과 이익에 완전히 맞춰져 있었습니다. 서구의 서사를 지배적으로 유지하고 모든 형태의 정치적, 이념적 반대 의견을 억누르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는 영향력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양성되었습니다. 감히 다른 서사를 제시하려 했던 아프리카 지식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운이 좋으면 악마화되거나 투옥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암살당했습니다. 1963년부터 그 비극적인 희생자 명단은 다음과 같이 길고 참혹합니다.

●1963년 : 실바누스 올림피오, 토고 공화국 대통령

●1966년 : 존 아기이 이른시, 나이지리아 공화국 대통령

●1969년 : 압디라시드 알리 셰르마케, 소말리아 공화국 대통령 

●1972년 : 아베이드 아마니 카루메, 잔지바르 공화국 대통령 

●1975년 : 리샤르 라치만드라바, 마다가스카르 공화국 대통령 

●1975년 : 프랑수아 응가르타 톰발바예, 차드 공화국 대통령 

●1976년 : 무르탈라 라마트 모하메드, 나이지리아 공화국 대통령 

●1977년 : 마리앙 은구아비, 콩고 공화국 대통령 (브라자빌) 

●1977년 : 테페리 반테, 에티오피아 공화국 대통령 

●1981년 :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공화국 대통령 

●1981년 : 윌리엄 리처드 톨버트, 라이베리아 공화국 대통령 

●1987년 : 토마스 상카라, 부르키나파소 공화국 대통령 

●1989년 : 아메드 압달라, 코모로 공화국 대통령 

●1989년 : 사무엘 캐니언 도, 라이베리아 공화국 대통령 

●1992년 : 모하메드 부디아프, 알제리 공화국 대통령 

●1993년 : 멜키오르 은다다예, 부룬디 공화국 대통령 

●1994년 : 시프리앙 은타랴미라, 부룬디 공화국 대통령 

●1994년 :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르완다 공화국 대통령 

●1999년 : 이브라힘 바레 마이나사라, 니제르 공화국 대통령 

●2001년 : 로랑 데지레 카빌라, 콩고 공화국 대통령 (킨샤사) 

●2009년 :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기니비사우 대통령 

●2011년 :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공화국 대통령 (프랑스 국가과도위원회가 암살) 

넬슨 만델라의 이름이 전 세계에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바로 서구 세력이 암살하는 데 실패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암살들과 함께, 서구 세력은 종종 자국민에게 잔인한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습니다. 그 중 가장 해로운 체제는 프랑스-아프리카(프랑사프리크, Françafrique)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의 천연자원, 무형자원, 경제 및 지정학적 자원을 약탈하는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소위 민주주의를 도구 삼아 '착한 아프리카인(순종적인 사람들)'과 '나쁜 아프리카인(주권주의자들)'을 구분하고, 군사 개입과 기지 유지,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전략적 차원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여전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엔 시스템 자체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유엔 기관에서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통해 서구의 서사를 유지하고 정당화합니다. IMF와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경제에 최악의 구조조정을 강요하여 빈곤과 의존성을 심화시킵니다.

한편,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부에서는 아프리카 부흥의 선구자들이 남긴 말이 큰 회복력을 가지고 새로운 유형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국민에게 충성하고, 영성에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주권을 주장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이들이었습니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서구의 감시망을 피해, 때로는 서구 정치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쿠데타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지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세력이 국제 테러리즘을 이용하여 사헬 지역의 국가들(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등)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전략적 자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의 분노는 갑자기 그들의 유명한 보호자들을 향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화산 폭발처럼, 대중 봉기는 신식민주의의 모든 도구들을 파괴했습니다. 꼭두각시 정부, 대사관, 군사 기지, 경제적 이익, 문화적 표상, 언론, 그리고 전략적 안보 협정까지 말입니다. 이처럼 흑암주의를 이용하여 아프리카인들의 눈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던 서구 세력은 새로운 아프리카의 새벽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파트너십 다각화와 서구 독점의 종식

2000년대 이후 아프리카는 파트너십을 다각화하고, 서구의 명령과 서사를 거부하며,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전략적 재정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 다자간 경제 파트너십

주요 지정학적 변화 덕분에 아프리카에 새로운 현실이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1) 중국의 부상 (인프라, 광업에 대한 투자, 일대일로 구상 등)

 (2) 러시아의 아프리카 회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말리 등에서 군사협정 및 천연자원 협력 강화

 (3) 트럼프의 반발

 (4) 걸프 국가들의 부상과 역할 확대 (농업, 항만 투자, 온건한 정치 이슬람 확산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금까지도 프랑스와의 협력 결과에 의문을 품고 있는 반면, 중국과의 협력은 도로, 항만, 공항, 철도, 5G 기술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와 국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아프리카 도시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국은 무역 분야에서 옛 식민지배 국가들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매력적인 파트너의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협력에서 빠르고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자, 아프리카 여론은 친서방 관계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중국 및 BRICS 국가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특히 서방이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FOCAC1)이 출범하며 다극화 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탄화수소, 지르코늄, 우라늄, 금, 다이아몬드 등 전략적 천연자원의 발견은 국제 사회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은 서방과의 관계에 대한 아프리카의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며, 서구 일극 체제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2025년에 출범한 세네갈 신정부의 총리는 대륙 밖 첫 순방지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의제는 중국과 아프리카2 간의 경제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두 번째 순방은 2025년 8월 7일부터 터키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아프리카 대통령들은 세계 지도자들을 자신들의 관저로 맞이하고 있으며, 그들의 대기실은 항상 가득 차 있습니다. 

 2. 외교적 지각변동 또는 자동적 동맹 거부

현재의 글로벌 지정학적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단연코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며, 정치 및 경제 생활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18차 제재 패키지를 시행하는 동안,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례 없이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2022-2023년 유엔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권은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의 시작을 알립니다.

따라서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BRICS(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에티오피아)에 가입하거나 가입 의사를 표명했습니다(세네갈, 나이지리아).

유엔 총회에서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토고, 세네갈은 기존 질서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서방 국가들의 간섭 없이 파트너를 선택할 아프리카 국민들의 주권을 명확히 주장했습니다. 유엔 주재 말리 및 부르키나파소 대사들은 프랑스와 특정 서방 국가들이 (i) 모집, (ii) 자금 조달, (iii) 훈련, (iv) 무기 제공, (v) 물류, (vi) 정보, (vii) 작전 계획 및 실행, (viii) 통신, (ix) 사헬 지역 내 테러 단체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지원 등에서 역할을 해왔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3,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적 행동을 주도하며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이스라엘을 규탄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과 군인들의 면책에 익숙해져 있던 세계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울려 퍼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단호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외교관들은 공개적인 모욕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의 완전한 관계단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5,6,7,

서구 군대여, 떠나라! 아프리카가 서구 제국주의의 손을 자르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국민들이 돌을 던져 서구 군대를 자국 영토에서 쫓아내는 강렬한 이미지를 모두가 기억할 것입니다. 유럽 및 유엔군이 사헬 지역의 안보를 회복하는 데 실패한 것은 주민들에게 배신이자, 이들이 역내 지하드 및 테러 단체와 공모했다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말리 당국은 프랑스가 요청한 유럽 군대가 말리에 주둔하는 것을 거부하고,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사헬 지역에서 진행 중인 서구의 신식민주의 프로젝트에 종지부를 찍고 있습니다. 니제르에서는 국민과 군대의 단호한 의지 앞에 미국과 프랑스가 군사 기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9, 10  2025년 6월에는 프랑스의 전통적 우방국인 세네갈과 차드가 자국 영토에서 프랑스군의 철수를 확정했습니다. 이러한 충격파는 전통적인 방식을 통한 아프리카 재정복 계획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스스로의 위대함을 자각하기 시작하자,  서구 군대의 진정한 왜소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러시아 장비와 바그너그룹 같은 특수부대의 성과는 군비 및 안보와 관련하여 아프리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서구의 악마화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와 러시아의 관계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헬 지역은 사헬국가연합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친서방 정치 그룹들은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11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서아프리카경제 공동체(ECOWAS)에서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의 탈퇴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기관을 선호합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튀르키예와 아프리카연합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등장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위한 남남(South-South)-안보 대안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서사의 등장

아프리카를 더 잘 알아가기 : 수 세기 동안 세계 질서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역사나 미래가 없고, 과학, 역사, 그리고 그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는 것처럼 작동했습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듯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서구의 서사조차 감내해야 할 운명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2021년, 저는 뉴욕에 있는 유니세프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대다수가 서구인들인 유엔 기관장들의 중세적 행동(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우월감을 가진 태도를 비유-역자 주)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좌절감을 표명했습니다. '다카르의 호소'라 이름 붙인 12페이지짜리 메시지에서, 저는 아프리카인들이 더 이상 서구 문명이나 다른 어떤 문명의 지배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유엔 최고당국자들에게 아프리카와의 협력 방식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이, 자신의 눈과 자신만의 이익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말입니다. 그 때가 2021년이었고, 뉴욕본부의 유일한 반응은 저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해고 이유를 명시한 어떠한 문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일화를 회고하며, 구세계의 보수주의자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바를 더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세계가 서구 세계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찬란했던 과거와 다시 연결되었으며,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자신들의 조상이지 유럽인이나 아랍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에 대한 서구의 경멸은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를 낳고 있으며, 아프리카는 서구의 서사로부터 단호하게 돌아섰습니다. 아프리카는 이 서사를 미성숙하다고 간주합니다.

아프리카의 자원과 새로운 다극화 세계

아프리카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바로 젊은 인구입니다. 아프리카 인구는 약 14억 명에 달하며, 그중 약 60%가 35세 미만입니다. 현재로서는 인구가 도전 과제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회복력이 이를 전략적 기회로 바꾸고 있습니다. 예상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아프리카 인구는 약 20억 명에 이를 것입니다. 이 거대한 인구의 바다 속에서 젊은이들은 신기술, 로봇 공학,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학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교육 시스템은 식민지 역사의 족쇄에서 벗어나 전면적인 개편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안에 아프리카가 이러한 대대적인 개혁을 얼마나 빠르게 추진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와의 파트너십은 전략적인 문제입니다. 아프리카가 글로벌 지정학적·경제적 판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아프리카는 면적이 3,0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이는 중국과 미국을 합치고도 다른 나라들을 넣을 공간이 남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아프리카는 전략적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대륙입니다. 매년 세계적 수준의 매장량들이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헬 지역에 집권 중인 범아프리카주의자들의 용기 있는 담론, 소셜 미디어 활동가들, RT와 알자지라 같은 대안 채널들, 그리고 세네갈과 같은 시민혁명은 새로운 다극화 세계에서 아프리카의 기반이자 전략적 전환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프리카식 거버넌스 모델은 아프리카 민족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전통적 뿌리를 통해 스스로를 재창조함으로써 서구식 민주주의의 순환적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기존의 세계질서 시스템은 아프리카의 중대한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프로그램이나 대규모 사회공학적 기획도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궤도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론

아프리카는 더 이상 과거 억압자들의 뜻에 따르지 않고, 이제는 자신의 엄격한 이익에 따라 파트너를 선택하는 다극화 게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부패한 권력의 잔재는 아프리카 민중의 끊임없는 주권 물결에 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아프리카든 흑아프리카(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역자주)든 이제는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아프리카는 새로운 종속 관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동맹과 특정 분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주요 쟁점이며, 아프리카는 팔레스타인 편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글로벌 다수(Global Majority)와의 보다 균형 잡힌 파트너십에 더 자연스럽게 공감합니다. 그러나 서구가 성숙함과 인간성을 보여준다면, 그들을 거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물은 결코 자신의 길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자연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있으며 그 흐름을 막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우리 세기인 이번 세기는 아프리카 없이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깊은 확신입니다.

 

*각주  1.https://www.fmprc.gov.cn/fra/wjdt/zyjh/202111/t20211129_10458612.htm

2.https://primature.sn/publications/actualites/visite-officielle-du-premier-ministre-ousmane-sonko-enrepublique populaire

3.https://www.youtube.com/watch?v=yjg2zqLR-sA 

4.http://https://www.youtube.com/watch?v=gqU3BPXNBlI 

5.https://www.voaafrique.com/a/s%C3%A9n%C3%A9gal-manifestation-%C3%A0-dakar-contre-l-offensiveisra%C3%A9lienne-au-liban/7828666.html 

6.http://https://www.rfi.fr/fr/afrique/20240831-s%C3%A9n%C3%A9gal-le-premier-ministre-ousmane-sonko-participe%C3%A0- une-mobilisation-de-soutien-aux-palestiniens

7.http://https://www.youtube.com/shorts/YLuUAqx-BhQ 

8.http://https://www.exclusif.net/L-ambassadeur-d-Israel-hue-et-chasse-de-l-UCAD-tente-un-contre-feu-avec-un-don-demoutons_a56430.html

 9. https://www.lemonde.fr/afrique/article/2024/09/16/niger-l-armee-americaine-annonce-avoir-acheve-sonretrait_6320475_3212.html 

10.http://https://www.lexpress.fr/monde/afrique/apres-la-france-les-etats-unis-chasses-du-niger-quelles-forces-occidentalesencore-sur-place-TPHLLO7NQFB23MZHUQV6CXQDEI/?cmp_redirect=true 

11.https://aes.ml/declaration-du-college-des-chefs-detats-de-la-confederation-des-etats-du-sahel/ 

 

80년 전 8.15해방에 대한 21세기 다극시대 재해석

정기열_(PhD) 조선대학교(도쿄), 21세기연구원 원장, 제4미디어(21cir.com) 발행인/편집인

초록

본 논문은 1945년 해방의 경험이 남북한에서 날카롭게 엇갈렸다는 점을 주장하며, '8.15 해방'의 의미와 유산을 재조명합니다. 북한은 항일 세력과 소련군의 지원 아래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 반면, 남한은 미군 점령군의 도착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신식민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본 논문은 이 이중적 유산이 지난 80년간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정치 및 문화 시스템을 낳았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외부 세력과의 관계가 이 두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 군사화, 경제적 불평등, 미국화, 신식민주의적 종속 및 '전방위 지배' 측면에서의 주인-하인 관계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탐구하며, 21세기 다극화된 세계의 도래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이 대통령이 선포한 '국민주권정부'의 의미를 평가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한국 내에 주둔한 미군의 복잡한 역할, 이 대통령 하에서 역사적인 재편 가능성,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이 가져올 지정학적 함의를 탐구합니다.

1. '8.15 해방'이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 방식과 이유

1945년 '8.15 해방'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남과 북에서 극적으로 갈렸습니다. 북한에서 해방은 수십 년간 일본의 식민지배의  잔혹함을 견뎌온 모든 주민이 기뻐하며 축하하는 국가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관동군을 격파한 항일 무장 세력들이 소련군과 함께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입성했습니다. 그들은 정복자로서가 아니라 조력자로서 한국인들이 독립적인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단 3년 뒤인 1948년 말, 소련군은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면, 남한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경험했습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군'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신속하게 자리를 잡고 주둔을 제도화하며 남한을 통제 구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철수할 준비를 하기는커녕, 워싱턴은 80년간 수만 명의 군대를 한국 땅에 계속 주둔시키며 남한에 대한 미국의 통제가 영구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2. 미군과 소련군의 대조적인 역할,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결과

소련군과 미군의 대조적인 역할은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항일 무장 세력들과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권위 있는 자리에 올라 국가 재건 임무를 맡았습니다. 1946년 시행된 역사적인 '토지개혁'은 이전 식민지 엘리트들의 토지를 대다수 농민에게 극적으로 재분배하여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습니다

남한에서 미군정청(USAMGIK)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미군이 도착한 지 하루 만인 9월 9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 제1호는 해방 후 통치를 위해 조직 중이었던 전국적인 풀뿌리 조직인 '건국준비위원회(건준: 建準)'를 해산시켰습니다. 그 대신 미국은 - '민족 반역자'로 오랫동안 간주되어 온 - 악명 높은 친일 협력자들 다수에게  통치를 맡겼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수만 명의 해방 투사, 독립운동 지도자, 노동 운동가, 민족주의자, 지식인들이 투옥, 고문, 암살당하거나 대규모로 학살당했습니다. 이는 종종 점령군의 졸개 또는 '대리인'으로 고용된 부역자들의 손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은 남한의 소위 '해방'은 식민지 주인의 교체일 뿐이라고 느꼈습니다.

3. 새로운 지배층이 된 친일 협력자들

워싱턴이 임명한 친일 협력자들은 새로운 엘리트 계층의 토대가 되었으며, '토착왜구(土着倭寇)'라는 신랄한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워싱턴의 대리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종속 상태로 통치했습니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8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 군사 문제, 자결권, 남북 관계, 외교 정책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라기보다는 워싱턴의 고객(정치 및 외교 관계에서 고객 국가(client state)는 강대국(후원자)에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의존하며, 그 강대국의 이익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를 뜻함-역자주)처럼 기능해왔습니다.

4. 남북한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이유

이러한 1945년 이후 분화는 남북한의 근본적으로 다른 궤적을 설명해 줍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반제국주의적이고 자결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부상한 반면, 대한민국(ROK)은 세계에서 가장 신식민화되고 '미국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로 찬양받는 반면, 북한이 '스탈린주의 독재국가'로 악마화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프레임은 '분할 통치(divide\and conquer=분열시켜 지배하라)'라는 지속적인 식민지 전략을 반영하며, 분단, 증오, 적대감, 불신, 대립이 한반도 전역에 지속되도록 보장하고 외세의 지배를 연장시킵니다.

5.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자 5위 군사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자 5위 군사 강국으로 자주 칭송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은 깊은 구조적 위기를 가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50만 명이 넘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은 군대에 대한 완전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시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미국 4성 장군의 손에 있습니다. 1945년부터 지속된 이 종속관계는 한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위기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OECD에서 24년 연속 가장 높은 자살률(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산업재해 사망자 수, 평균 노동 시간, 저임금 고용률, 가계 부채, 사교육 지출률1위  

●노인 빈곤율1위

또한 출산율, 사회보장 제도, 의료 만족도는 최하위입니다. 

이러한 문제들 중 다수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종속적인(또는 신식민지적) 지정학적 위치와 구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12월 3일 계엄 사건'이었습니다. 이 국가적 위기는 한국과 미국의 ‘고객 관계’가 가진 더 깊은 역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6.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 (LPSA)

새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국민주권정부' (LPSA) 즉, '국민 우선' 정부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80년간 지속된 워싱턴의 지배 아래에서 과연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 우선'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요? 국내 개혁은 가능할지 모르나, 남북 관계, 군사 주권, 외교 정책 문제에서는  한미 관계에 뿌리 깊게 박힌 식민지적 구조와 직접 충돌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7. 다극화된 세계와 '국민주권정부' (LPSA)

이재명 정부는 21세기 다극화된 세계, 즉 미국의 일방적 패권을 거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본질적으로 LPSA의 '국민 우선' 철학은 상호 존중, 평화적 공존, 공동 번영, 내정 불간섭, 주권이라는 다극화의 원칙과 일치합니다. 이를 진지하게 추구한다면, LPSA는 미국의 종속성이라는 한계를 넘어 한국이 보다 균형 잡히고 독립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 것입니다. 

8. 트럼프의 외교 정책: 돈인가, 아니면 미군 철수인가?

이 지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국 기득권층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나토는 쓸모없다'는 발언이나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해외 군대 주둔을 포함한 미국 제국의 요소들을 해체하려는 잠재적인 의지를 시사합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트럼프가 미국 '고객 국가'들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는 위협이 돈보다는 미군을 철수시킬 정치적 명분을 만들려는 목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움직임입니다.

 9. 한국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만약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의 의제를 활용해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다면, 이는 한국 정치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에 버금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미래를 바꾸고, 역내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며, 세계 질서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본 논문은 이 심포지엄 참가자들이 이러한 가능성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이 해석이나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긴급한 질문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지금 형성되고 있는 다극화된 세계를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출처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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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80년, 세계 그리고 한국 (1) -전후 80년 체제 : 회고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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