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로동신문】나라의 최북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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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06-18 07:3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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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최북단에서
편집국
6월 18일 【로동신문】은 백두산에서 송악산까지 《 나라의 최북단에서》란 제목의 련속기행문을 게재하였다.
기사는 모든것을 당에 의탁하는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김정은위원장의 의지가 실현되어 나라의 최북단인 라선시 선봉구역 만복동이 달라졌다며 산마루에 내려앉은 백학산의 전경을 기술하였다.
백년래의 대재앙을 입은 라선시인민을위해 하늘길, 바다길, 령길을 헤치고 찾아주신 총비서동지의 사랑으로 세계가 보란듯 조국의 최북단에 사회주의조선의 문주마냥 인민만세의 기념탑이 세워졌다고 하였다,
지역의 이름처럼 오늘 이곳 주민들은 나라의 한끝이 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음속 제일 가까이에서 사는 만복의 주인공들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하였다.
취재단은 나라의 최북단에 대한 기행에서 우리로 하여금 땅우에는 지척과 한끝이 있어도 우리 당의 품에는 가깝고 먼곳이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가슴설레였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백두산에서 송악산까지(4)
나라의 최북단에서
《우리는 당에 모든것을 의탁하고 당과 함께 온갖 시련과 난관을 헤쳐온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세상에 부럼없는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산마루의 흰 바위가 한마리의 백학같다고 하여 그 이름도 백학산, 이 양지바른 기슭에 이르니 라선시 선봉구역 만복동의 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림인들 이보다 더 아름다우랴.
산이름을 낳은 그 백학이 마치도 홍학과 청학이 되여 떼를 지어 이곳에 내려앉은듯 1 300여세대의 아담한 단층살림집들이 황홀하기 그지없이 아득히도 펼쳐져있었다.
만복동,
만단사연을 새겨주는 이 뜻깊은 이름을 마음속으로 뇌이며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먼지바람 이는 건설현장에서 피해복구정형을 료해하시며
백년래의 대재앙을 입은 라선시인민들을 위해 머나먼 하늘길, 바다길, 령길을 달리고달려 여러 차례나 찾으시여 사랑에 사랑을 더해주신
조용히 귀를 기울이느라니 새집들이를 앞둔 이곳을 또다시 찾으시고 새로 건설한 살림집들이 본래집들보다 좋은가, 구들에 불이 잘 드는가, 물은 잘 나오는가를 세심히 알아보시고 인민들이 좋아한다니 자신께서도 기쁘다고, 이런 멋에 혁명을 한다고 하시면서 기쁜 일이면 이처럼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으며 보람이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고 하시던
설레이는 마음 안고 만복동 1인민반의 동구길에 들어선 우리는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하지만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라선배길사업소 로동자 박성철동무가 우리를 반겨맞으며 하는 말이였다.
만복동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이젠 10년전일이지만 어제런듯 생생하다고 격정을 터놓았다.
정녕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는
폭우와 큰물로 라선시가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깊은 밤 라선시당책임일군을 친히 전화로 찾으시여 피해입은 주민들의 살림집을 당창건 일흔돐까지 건설하여 그들이 겨울에는 자기 집에서 안착된 생활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그리하여 나라의 최고중대사인 국방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토의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라선시큰물피해복구대책문제가 토의되고 라선시피해복구를 인민군대가 전적으로 맡아 빠른 기간에 끝낼데 대한
우리는
그는 몇해전 외국인들이 왔다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날 집안의 여기저기를 깐깐히 돌아본 외국인들이 돈은 얼마나 들었는가, 식구는 몇인가고 연해연방 물었다고 한다.그가 당에서 자기와 같은 피해지역 인민들에게 돈 한푼 받지 않고 이미 살던 집보다 더 훌륭한 보금자리를 안겨주었다고 말해주었지만 외국인들은 눈앞의 현실조차 끝내 다 리해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긴 이 집에서 10년째나 살고있는 나자신도 아직 꿈만 같은데 누군들 쉽게 믿을수 있겠습니까.》
한동안 두눈을 슴벅이던 박영철로인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태여난 순간부터 행복의 보금자리에서 살게 된 복동이의 앞날은 의연 만복으로 이어질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절로 뜨거워진다.
오늘 이곳 주민들은 누구나 자기들은 나라의 한끝이 아니라
어머니당의 하늘같은 은덕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는 이런 뜨거움에 넘친 목소리를 우리는 선봉구역 우암동에서도 들을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동북쪽 한끝에 자리잡고있는 이 고장은 옛적엔 사람 못살 곳이였다고 한다.집들만 놓고보아도 《무딘돌집》이라고 부르는 돌무더기움막밖에 없었다지만 지금은 당의 은정속에 새마을과 토리마을, 풍년촌을 비롯하여 그 어디에나 아담한 문화주택들이 즐비하게 솟아났다.
《흥하는 집엔 손님이 많다지 않습니까.며칠전에도 화가들이 와서 좋은 그림들을 많이 그려갔지요.문화주택이 즐비한 마을풍경을 비롯해서 하여간 수십장 잘되게 그렸습니다.우리 우암동을 그림 한폭엔 다 담지 못하겠다나요.왜 안그렇겠습니까.조국의 한끝까지 와닿는 당의 은정속에 나날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되는 우리 고장이니까요.》
주민세대수가 30여세대인 토리마을입구에서 만난 한 녀인의 이야기에는 몰라보게 변모되는 자기 고장에 대한 자랑이 한껏 넘쳐있었다.
이것은 그만의 심정이 아니였다.수도 평양에서 시작된 나라길이 끝나는 마을에서 살고있는 이곳 사람들이여서 자기들에게 와닿는 당의 은정에 대한 고마움을 누구보다 더 가슴뜨겁게 절감하고있었다.
태여난지 몇달밖에 안되는 갓난아이를 비롯해서 단 세명의 토리마을어린이를 위해 젖제품운반차가 매일 100여리길을 오가고 선봉구역 우암고급중학교 토리분교에서 공부하는 20여명의 학생들을 싣고 통학뻐스가 달린다니 어찌 때없이 눈굽을 적시지 않을수 있으랴.
인민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뜨겁게 미치고있는 어머니당의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 나라의 한끝마을에서 듣게 된 우리의 가슴도 달아올랐다.
문득 희한한 새 농촌살림집들이 일떠선 경원군 성내리에 들렸던 일이 떠올랐다.
소박하고 진실한 이곳 인민들의 목소리에는 나라의 북변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일떠세워준 어머니당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신뢰심이 어려있었다.그리고 받아안은 사랑에 한생을 다 바쳐 보답할 열망이 끓어번지고있었다.
멀리 있는 자식일수록 더욱 따뜻이 품어주는 어머니당의 사랑을 우리는 옮기는 걸음마다에서 가슴뜨겁게 절감할수 있었다.
바다가지역에서 살고있는 인민들이 해일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들의 살림집을 안전한 곳에 새로 훌륭히 지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신
진정 돌아보면 볼수록 만복동이라는 지명은 오늘 라선시의 또 다른 이름, 행복의 문패와도 같다는 이곳 사람들의 말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안겨왔다.
나라의 최북단에 대한 기행은 우리로 하여금 땅우에는 지척과 한끝이 있어도 우리 당의 품에는 가깝고 먼곳이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가슴설레이게 하였다.그래서 더더욱 떠나고싶지 않고 보고 또 보아도 끝없이 보고만싶은 고장이였다.
본사기자 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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