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로동신문】사회주의제도에서 달라진 인민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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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06-11 07:4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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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사회주의제도에서 달라진 인민의 생활
편집국
6월 11일 【로동신문】은 《수난자의 운명》과 《한 전쟁로병이 오늘도 잊지 못하는 이야기》란 제목의 기사를 나란히 게재하였다.
기사는 나라를 빼앗겼던 세월동안 개인과 가정이 겪은 수난이 우리 인민모두의 비참한 운명이었으나 사회주의제도를 통해 인민들의 실생활이 달라지고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방전 쓰라린 생활을 돌이켜보며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대조되는 두 기사의 전문을 소개한다.
수난자의 운명
해방전 한 소년과 그의 가정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소년의 일가는 어머니와 자식 삼형제였는데 어머니는 남편을 일찌기 잃고 홀로 지주집에서 뼈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자식들의 작은 배마저 채워줄수 없었다.어느날 아침일찍 지주집에 일하러 간 어머니를 하루종일 기다리던 소년의 동생들은 배고픔을 참다 못해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동생들을 달래던 소년은 더는 참을수 없어 지주집으로 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버려진 떡 한개가 눈에 띄였다.집에서 배고파 울고있을 동생들의 정상을 생각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나딩굴고있는 떡을 손에 집어들었다.
그 순간 지주아들놈이 덮치듯 달려들어 소년의 손에서 떡을 빼앗아 내동댕이치면서 《도적이야!》 하고 법석 고아대는것이였다.그 소리를 듣고 소년의 어머니가 급히 달려나왔다.
아들로부터 전후사연을 들은 그는 억울함을 참을수 없었다.
개도 먹지 않는 쉰 떡을 철없는 어린것이 주었을뿐인데 어쩌면 도적의 루명을 씌운단 말인가.
어머니는 지주놈에게 항거해나섰다.그러자 지주놈은 다짜고짜 소년의 어머니에게 달려들더니 사정없이 때리고 짓밟았다.
그 어혈로 병석에 누웠던 어머니는 끝내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며 눈을 감고말았다.
하지만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소년의 어머니를 죽음에로 몰아간 지주놈은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소년까지 꼴머슴으로 끌어갔던것이다.
소년과 그의 가정이 겪었던 운명은 나라를 빼앗겼던 그 세월 달리 될수 없었던 우리 인민모두의 비참한 운명이였다.
한 전쟁로병이 오늘도 잊지 못하는 이야기
항구구역 은덕2동에서 살고있는 백신주로인의 생활체험
《우리 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야말로 자기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는것을 확신하고있습니다.》
얼마전 우리는 항구구역 은덕2동 5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전쟁로병 백신주로인이 백번째 생일을 맞아 당의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집을 찾았다.
백신주로인은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며 어느덧 나이 100살에 이르고보니 해방전의 쓰라린 생활이 더욱 가슴아프게 돌이켜진다고 하면서 흘러간 한생의 갈피를 더듬었다.
그는 가난한 빈농의 가정에서 네 남매의 막내딸로 태여났다.그의 일가는 손끝에서 피가 나도록 부대기를 일구어 그시그시 겨우 연명해나갔다.
어느해 그처럼 보잘것없는 땅마저 지주놈에게 떼운 이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러나 나라없던 그 세월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그들에게 차례진것은 천대와 멸시, 추위와 굶주림뿐이였다.
그의 부모는 망국노의 신세를 한탄하며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데리고 살길을 찾아 산설고 물설은 이역으로 떠나게 되였다.
《나는 배고픈 설음도 집없는 설음도 다 겪어보았소.하지만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을 그 무엇에 비길수 있겠소.》
로인은 피맺힌 과거가 스민 이야기를 계속했다.
낯설은 이국땅에 괴나리보짐을 풀었지만 그들의 생활형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째지게 가난한 살림속에서도 어린 신주의 가슴속에 남모르게 움터나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였다.
신주는 때때로 학교에 달려가 창문너머로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몰래 따라외우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신주는 그만에야 왜놈교원에게 봉변을 당하고야말았다.
왜놈교원은 그를 도적이라고 하면서 발로 차고 때리며 마구 짓밟았다.
집으로 돌아온 신주의 마음은 몹시 쓰리였다.돈이 없어 배우고싶어도 배울수가 없고 오히려 도적으로 몰려야 하는 서러움과 억울함때문이였다.
딸애의 정상을 바라보며 그의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막내딸만이라도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모진 천대와 멸시를 참아가며 한푼두푼 돈을 마련하여 학교에 보내였다.
하지만 돈을 내고 학교에 들어갔어도 망국노의 치욕을 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학교에서는 조선학생들이 조선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조선말없애기라는 간판을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조선말을 하는 학생의 목에 걸어놓았다.그리고는 조선말을 하는 학생이 또 나타나면 그것을 넘기게 하였다.하루공부가 끝날 때까지 그것을 넘겨주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뭇매질이 안겨지군 하였다.
언제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어느날 학교에서는 체육경기가 진행되였다.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하던 신주는 선수로 뽑히였다.
달리기주로에 나선 신주의 머리속에는 꼭 1등을 하여 학비를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하지만 왜놈아이들이 살판치는 학교에서 조선처녀애가 1등을 하는것은 도무지 용납될수 없는 일이였다.왜놈교원은 제일먼저 결승선에 들어서는 신주에게 경기규률위반딱지를 붙였으며 벌칙으로 학교운동장을 몇바퀴나 다시 뛰게 하였다.
그날 저녁 그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나라가 없어 당해야 하는 천대와 멸시, 그로 하여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설음이 일시에 터져올랐던것이다.
이렇듯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신세, 눈물로 씻어내기에는 너무도 가슴저린 슬픔과 원한속에서 그의 소녀시절이 지나갔다.
이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20살 나던 해에 드디여 그의 운명은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되였다.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였던것이다.
해방된 조국의 품에 안겨 그는 새 생활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을뿐 아니라 마음껏 배울수 있는 넓은 길도 활짝 열어주었다.
그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두 자식의 어머니가 되여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있을 때 조국앞에는 엄혹한 시련이 닥쳐왔다.전쟁이 일어났던것이다.
놈들의 치떨리는 만행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증오의 피가 끓어번지고 눈앞에는 해방전의 피눈물나는 생활이 생생히 떠오르군 하였다.
망국노의 설음과 조국의 귀중함을 실생활로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그는 두 자식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용약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두 자식을 가진 어머니가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장에 나선다는것이 결코 보통의 각오를 가지고는 내리기 힘든 결심이였지만 또다시 노예의 운명을 강요하려는 원쑤들에 대한 분노로 가슴끓이는 그에게 있어서 결코 다른 선택이란 있을수 없었다.
입대하여 간호원이 된 그는 대전해방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웠으며 그 나날 2개의 군공메달을 수여받았다.
그후 그는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걸었다.
백신주로인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도 흘러간 나의 한생에 대하여 자손들에게 자주 들려주면서 이렇게 당부하군 하오.조국이 있고야 가정의 행복도, 꿈과 희망도 있다, 오늘의 이 행복을 타고난것으로 여기지 말고 고마운 이 제도를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고.》
백신주로인의 수난많고 비참하였던 지난날의 생활과 당의 품속에서 건강과 장수를 누려가는 오늘의 행복한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 인민이 왜 그토록 사회주의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며 몸과 맘 다 바쳐 빛내여가는가를 잘 알수 있다.
본사기자 엄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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