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내나라특집】빨치산의 아들 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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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02-16 10:4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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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라특집】빨치산의 아들 외 2
편집국
2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나라】 웹사이트는 광명성절특집 기사로 빨치산의 아들, 백두산밀영, 량강도 솜장화 등 다수의 기사를 게재하였다.
김정일위원장 탄생 83돐을 맞으며 올린 기사들에서는 빨치산의 아들로 백두산에서 탄생했던 백두산밀영고향집에 대해 소개하였고,원상대로 꾸려진 이곳은 해마다 수많은 근로자, 청년학생들 , 인민군군인들이 답사하며 불멸의 혁명업적을 전하고 항일의 션렬들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혁명신념을 새겨주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현지답사의 일화로 언제나 우리 인민들의 지향과 요구를 공급해주시려 애쓰시며 기뻐하셨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기사 3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빨찌산의 아들
눈보라와 칼바람, 항일대전의 총포성이 울부짖는 천고의 밀림에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여 두차례의 혁명전쟁과 새 조국건설, 전후복구건설을 체험하시며 성장하신
그이의 심오하고 독창적인 사상리론은 우리식 사회주의가 나아갈 자주의 항로를 휘황히 밝혀주고 비범한 통찰력과 조직적수완은 세기적변혁을 창조하게 하였으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과 헌신은 자력으로 사회주의승리의 길을 개척할수 있는 힘과 토대를 천백배로 다져놓게 하였다.
항시적으로 적들과 맞서 혁명을 전진시켜야 하는것으로 하여, 인민의 리상을 실현하려는 높은 투쟁목표를 내세운것으로 하여 고난과 시련의 가시덤불을 더 많이 헤쳐야 했던것이 조선혁명이였다.
하지만 우리 조국과 인민이 그처럼 간고한 혁명의 머나먼 길을 승리로 이어올수 있은것은 그 모든 시련과 난관을 앞장에서 헤쳐나가신 백두산의 억센 기상과 담력, 배짱을 그대로 체현하신
새 세기의 첫해에 너무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절절히 말씀올리는 일군들에게 자신에게는 야전식이 제일이라고, 야전식생활은 자신의 몸에 완전히 푹 배였다고 하시였다.
여기에 조국과 혁명앞에 가로놓인 난관과 시련을 진두에서 헤쳐오신
양련희
백두산밀영
백두산밀영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1912. 4. 15-1994. 7. 8.)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조선혁명의 령도거점으로 꾸리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활동중심지로 리용하신 비밀근거지이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1942. 2. 16-2011. 12. 17.)께서 탄생하신 혁명의 성지이다.
백두산밀영은 백두산기슭 소백수골안의 수림지대에 자리잡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후반기 백두산지구에 전반적조선혁명의 령도거점을 꾸릴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우수한 군사정치일군들에게 그와 관련한 임무를 주시여 파견하시였다.
1936년 9월하순에는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밀영건설사업을 지도하시였다.
이렇게 건설된 백두산밀영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활동중심지로서 1930년대후반기부터 조국이 해방(1945. 8. 15.)될 때까지 적에게 로출되지 않은 비밀근거지였으며 백두산지구와 국내각지에 꾸려진 밀영망가운데서 중심을 이룬 밀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을 전략적기지로 삼으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을 빛나는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백두산밀영에는 사령부귀틀집과 사령부천막자리, 백두산밀영고향집과 대원실 그리고 구호나무들이 있다.
사령부귀틀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던 책상과 걸상, 쇠난로가 있다. 책상우에는 군용지도, 색연필 등이 있으며 벽에는 조선지도와 세계지도가 걸려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탄생하신 백두산밀영고향집은 정일봉기슭에 있다.
고향집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린시절에 애용하시던 나무권총을 비롯한 놀이감들과 키낮은 책상, 쪽무이포단과 모포들이 얹혀있는 자그마한 궤 그리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쓰시던 군용밥통과 물초롱을 비롯한 부엌세간 등이 보존되여있다.
우리 인민은 백두산밀영에 깃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백두산밀영을 원상대로 꾸리고 1987년 2월에 개영식을 하였다.
백두의 태고연한 밀림속에 자리잡은 때로부터 어느덧 세월은 많이도 흘렀지만 백두산밀영은 오늘도 옛 모습그대로 보존되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성스러운 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전하며, 항일의 선렬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혁명신념을 새겨주며 천만인민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해마다 수많은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 인민군군인들이 이곳을 답사하고있다.
김 혁
량강도솜장화
2010년 5월 어느날
겉 볼 안이라고 공장밖은 공원처럼, 공장안은 궁전처럼 꾸려놓고 증산의 동음을 높이 울리고있는 작업현장들을 돌아보시면서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지향과 요구수준에 맞는 현대적이고 신기도 편리한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콤퓨터에 의한 생산지휘체계에 따라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생산흐름선에 따르는 현장들을 돌아보시고 공장에서 생산하고있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그이께서는 여러가지 형태의 솜신발들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중에서도 두텁게 솜을 넣고 맵시있게 끈을 조여매게 만든 솜신발은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신발을 손에 드시고 세심히 보시던
현장을 다 돌아보신
든든하면서도 맵시있고 따스한감을 주는 신발의 모양과 특성이 함축되면서도 제품산지와 리용대상까지 대번에 알수 있는 명쾌한 이름이였다.
크지 않은 지방산업공장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모양곱고 질좋은 솜신발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해주고있는 사실이 너무도 장하고 기특하시여 그이의 기쁨은 그리도 큰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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