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조국해방과 우리 인민의 운명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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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8-15 08:1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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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해방과 우리 인민의 운명전환
편집국
8월 15일 【로동신문】은 “조국해방과 우리 인민의 운명전환”이란 제목으로 조국해방절의 아침을 축하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기사는 해방의 감격과 기쁨에 넘쳐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서로서로 얼싸안고 울고웃던 잊지 못할 력사의 그날로부터 근 8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지만 새 인간을 탄생시킨 해방의 환호성은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세차게 울려퍼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공화국은 국위와 국력의 최상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우리 인민의 존엄과 지위가 지난 시기에 비할바없이 높아졌다며 오늘의 이 영광, 이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우리 인민은 주체조선의 존엄과 국력을 세계최고의 높이에 우뚝 올려세워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충성의 맹세를 다지는것과 함께 강국인민의 위상을 만방에 떨칠수 있는 력사의 시원을 열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드리고있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수천년민족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새긴 뜻깊은 조국해방절의 아침이 환희롭게 밝아왔다.
해방의 감격과 기쁨에 넘쳐
이 땅의 남녀로소가 얼마나 피타게 바라고 간절히 숙원해온 조국의 해방이였던가.
일제의 학정밑에 신음마저 삼가해야 했고 자주적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무참히 빼앗겨야 했던 암담한 그 세월에도 백두산을 바라보며 일일천추로 갈망해온 해방의 날,
정녕 이날은 우리 조국이 일제에게 찬탈당하였던 국권을 되찾은 대경사의 날, 우리 인민이 식민지노예의 쇠사슬에서 벗어난 력사에 특기할 날이였다.
지금도 건국의 첫 기슭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느라면 우리의 가슴은 격정과 환희로 뿌듯해진다.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의 해방은 단지 민족재생만을 의미한것이 아니였다.
8.15해방은 우리 인민에게 력사와 정치의 대상으로부터 주인으로 극적인 운명전환을 마련해준 거대한 사변이였다.
하기에 주체34(1945)년 10월 14일 그처럼 뵙고싶었던
이날에 터져올랐던 만세의 환호, 이날에 쏟았던 격정의 눈물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는 환희의 폭발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자주적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안겨주시고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여주신 절세의 애국자를 우러러 터친 만민의 다함없는 흠모의 열기였다.
8.15해방은 우리 인민에게 기대했던것보다, 열렬히 갈망하던것보다 더 크고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과연 그 누가 수천년력사의 흐름속에서도 이룰수 없었던 농민들의 소망을 헤아려주었던가.
땅!
정녕 이 나라의 땅에는 얼마나 하많은 곡절과 눈물겨운 만단사연이 슴배여있던가.
씨앗을 뿌릴 한뙈기의 땅이 없어 온 가족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어 도탄속에서 신음해야만 했던 우리 인민이였다.이렇듯 불행과 고통만을 안겨주던 원한의 이 땅이 8.15해방과 더불어 농민들의 소유로 되였고 수수천년 땅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농민들이 당당히 토지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운명을 전환하게 되였다.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여 우리 농민들은 력사상 처음으로 제땅에 자기의 이름이 새겨진 표말을 자기의 손으로 억세게 박았다.그 땅이 너무도 소중하였기에 이 나라 농민들은 밤을 새워가며 소를 몰아 땅을 갈아엎고 풍년을 맞이하였으며 처음으로 수확한 귀중한 낟알을 저저마다 나라에 아낌없이 바친것이리라.
착취와 압박, 기아와 빈궁속에 허덕이던 근로인민대중의 극적인 운명전환은 농촌에서만 일어난것이 아니였다.
지옥이나 다름없던 공장들에서 일제와 자본가놈들의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피와 기름을 빨리워야만 했던 로동자들이 나라의 주인, 공장의 주인으로 된것도 다름아닌 조국해방의 덕이였다.
해방직후 조국에 개선하신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 로동계급이 높이 울린 우렁찬 마치소리, 그것은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강제로동에 시달리던 고용로동자들이 울리던것과는 판이한 음향이였다.공장의 참다운 주인이 되여 인민의 재부를 마음껏 창조해가는 근로자들의 보람찬 로동의 노래소리였다.
해방의 감격과 더불어 보람찬 일터의 주인으로 다시 태여난 참된 로동계급속에는 철도운행을 보장하는데서 걸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돌격대를 조직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한 정주기관구의 김회일동지도 있고 수풍발전소에서 로동생활을 하다가
우리 인민의 기억속에 성실하고 근면한 로동계급의 모습으로 깊이 새겨진 신창탄광(당시)의 박원술동지, 해방전 7살때부터 신물나는 뜨내기생활로 잔뼈를 굳혀왔으며 16살에는 사자밥을 지고 막장마구리에 곡괭이를 박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는 악몽같은 세월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상처입은 몸으로 온종일 십장놈에게 끌려다녀야 했고 나중엔 그 일자리에서마저 쫓겨나 정처없이 헤매야만 했다.
그러던 그는
주체36(1947)년 4월말
이처럼 온 나라 강산을 환희와 희열에 잠기게 한 8.15해방은 식민지적노예로동과 봉건적착취와 압박속에 신음하던 근로인민대중에게 광활한 앞길을 열어주었다.
나라없던 그 세월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의 채찍밑에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면서도 남자로임의 절반도 못되는 품삯을 받으며 사람으로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물건처럼 팔리워다녀야만 했던 우리 녀성들에게는 오직 봉건적예속과 온갖 착취에 얽매여 복종만 해야 하는 의무밖에 없었다.
주체35(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포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여지없이 유린당하고 이중삼중의 착취와 압박을 받으며 살아오던 우리 녀성들이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되였다.
《나는 세상에 태여나면서부터
이것은 어제날의 부엌데기로부터 나라의 대의원으로 극적인 운명전환을 한 김득란녀성이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이였다.
불행을 타고난것으로 여겼던 그에게 행복한 삶과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신분은 바로 우리
해방후 나라에서는 그에게 땅을 분여해주었으며 가난과 멸시속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게 해주었다.그 은덕이 너무 고마와 그는 무엇이든 하고싶은 욕망으로 밤낮없이 뛰여다녔다.그 과정에 그는 조선로동당원으로, 면녀맹위원장으로 되였으며 공화국의 첫 녀성대의원으로까지 선거되였다.
부엌데기로부터 나라의 대의원으로, 이것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끝장내고 새 조선의 주인으로 새롭게 태여난 우리 인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축도였다.
진정 조국해방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개척은 물론 매 인간의 운명에서도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사변이였다.
근 8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지만 새 인간을 탄생시킨 해방의 환호성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세차게 울려퍼지고있다.
지금 우리 공화국의 국위와 국력은 최상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우리 인민의 존엄과 지위는 지난 시기에 비할바없이 높아졌다.
하기에 오늘의 이 영광, 이 행복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우리 인민은 주체조선의 존엄과 국력을 세계최고의 높이에 우뚝 올려세워주신
본사기자 안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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