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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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7-24 10: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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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편집국
[로동신문]이 24일 ‘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라는 제목아래 두 개의 글을 게재하였다.
첫째 글 ‘《상승사단》의 《영예》가 십자가밑에 묻혔다’는 스미스 사단장이 이끈 《상승사단》2만 3 215명 중 3 918명의 시체와, 7 313명의 동상자 등 많은 부상자를 낸 장진호반전투에서의 대참패를 언급하였다. 십자가 밑에 묻힌 《상승사단》의 《영예》는 곧 미국의 치욕이었으며, 떼죽음당한 부하들의 무덤 앞에 머리숙인 ‘스미스의 초췌한 몰골은 조선전쟁에 뛰여든 미호전광들의 비참한 말로이고 미제의 패배상의 축소판’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두번째 글 ‘미군장성들의 비참한 말로’는 전쟁에서 생포된 미24보병사단의 사단장 띤의 수모에 이어 맥아더, 릿지웨이, 클라크, 밴플리트 등 3년간의 전쟁에서 여러 명의 《유엔군》사령관과 미8군사령관이 교체되었고, 마지막에는 조선전쟁에 더는 들이밀 장군이 없다고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상승사단》의 《영예》가 십자가밑에 묻혔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미제의 패배관을 돌아보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군대를 타승함으로써 영웅적조선인민의 불패의 위력을 남김없이 시위하였으며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았습니다.》
얼마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았던 우리는 미제의 패배관에 있는 침략자놈의 랍상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후줄근하여 끝간데없이 십자가가 박혀져있는 제 졸개들의 무덤앞에서 공포와 수심에 잠겨 서있는 놈은 무덤장군으로 널리 알려진 미1해병사단장 스미스이다.
스미스는 일찌기 제1차 세계대전시기에는 괌도에서,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남태평양일대에서 련이어 《무공》을 세워왔다고 한다.한때는 해골같은 깊은 눈확속에서 날카로운 눈알을 굴리며 극도의 오만성과 잔인성에 사로잡혀있던 놈이였지만 총포탄에 맞아 짜개진 나무우에서 청승맞게 울어대는 까마귀를 벗삼아 무덤앞에 쓸쓸하게 서있는 초췌한 몰골은 참관자들로 하여금 조소를 금할수 없게 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스미스의 미1해병사단으로 말하면 태평양전쟁기간에 1만 8 300여개의 하트훈장을 수여받아 미제침략군내의 표창력사에서 최고기록을 세워 《무훈》사단의 《전통》을 자랑하는 악명높은 살인귀부대였다.
18세기중엽에 조직된 이 사단은 메히꼬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제의 침략의 돌격대로, 《해병대의 꽃》으로 《자랑》을 떨쳤다.당시 사단의 장교들은 평균나이가 35~40살이였다.병사들인 경우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로병》들이 대부분이였고 신대원이라고 해도 군무년한이 모두 2년이 넘었다.
바로 이러한 《상승사단》을 끌고 스미스는 맥아더의 《크리스마스총공세》명령을 《승리》적으로 실천하여 부대의 《영예》와 제놈의 이름을 세상에 떨쳐보려고 1950년 11월 장진호반에 기여들었다.적들은 기고만장하여 전투시작전부터 승전가를 부르며 앞으로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활주로까지 닦았다.
그러나 적들은 상대를 너무도 몰랐다.영용한 인민군군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습격전과 매복전을 기묘하게 벌리면서 적집단을 여러개로 토막내고 발악하는 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사단의 5련대 2중대만 보더라도 장진호반에서 170명중 120명이 황천객이 되였으며 7련대 2중대를 비롯한 다른 중대들도 개죽음을 당했다.
미1해병사단은 장진호반전투에서 2만 3 215명중 3 918명의 시체와 전상자, 7 313명의 동상자 등 많은 부상자를 냄으로써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말았다.그 처참상이 얼마나 컸던지 사단의 전투결과를 보도하기 위해 장진호반에 들어왔던 미국기자들은 섬멸된 사단의 몰골을 보도하면서 《해병대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퇴각》이라고 야유하였다.
한 기자는 신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얻어맞은 장병들을 보았다.그때 그들의 옷은 누데기처럼 해지고 얼굴은 찌르는듯한 설한풍에 부어올랐고 피가 흐르고있었다.장갑도 해지고…모자도 없어 귀가 얼어 보라색으로 된자들도 있었다.또한 동상을 입은 발이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아 맨발로…걸어온자들도 있었다.》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과 략탈의 돌격대가 되여 가는 곳마다에서 《승리자》로 자처해오던 《상승사단》의 《영예》는 이렇게 조선전쟁에서 십자가밑에 묻혔다.
언땅을 폭파시켜 파헤치고 중상자와 시체들을 한꺼번에 매장해버린 무덤장군 스미스는 얼마 안되는 패잔병들을 실은 배우에서 《그렇듯 많은 부하의 시체를 버리고 지휘관이 떠나가는 일이란 175년간의 해병대력사에 없는 일이다.》라고 개탄하며 쓰디쓴 눈물을 떨구었다고 한다.
십자가밑에 묻힌 《상승사단》의 《영예》는 곧 미국의 치욕이였다.
우리는 침략자의 가련한 몰골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패전장군에 무덤장군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스미스의 초췌한 몰골, 이것이야말로 조선전쟁에 뛰여든 미호전광들의 비참한 말로이고 미제의 패배상의 축소판이 아니겠는가.
글 본사기자 신철
사진 본사기자 정철훈
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미군장성들의 비참한 말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오늘까지 우리에게서 된매를 맞고 녹아나기만 한것이 미제의 수치스러운 전통이라면 비대한 힘을 믿고 설쳐대는 미국을 걸음마다 통쾌하게 족쳐대기만 한것은 영웅조선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미국의 《명장》들이 제일 많이 철직된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전쟁을 도발하고 공화국을 단시일내에 집어삼킬것처럼 날뛰던 미제는 전쟁 첫시작부터 련전련패를 거듭하게 되자 한다하는 미군장성들을 모조리 동원하였다.그들은 일찌기 침략전쟁의 처절한 피바다속에서 살륙과 략탈의 전법을 익혀왔으며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고 하는 살인장군들이였다.
하지만 조선전쟁에서 살인장군들의 작전들은 련이어 파탄되였다.미제는 불리하게 번져지는 전쟁형세를 역전시켜보려고 《상승사단》으로 불리우던 미24보병사단을 투입하였다.
사단장 띤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풍부한 전쟁경험을 자랑하는자였다.그런데 패전을 모른다고 호언장담하던 띤도 조선에서는 파멸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자기 사단을 전멸시키고 저 하나만 살겠다고 졸병의 옷을 갈아입은채 도망치다가 인민군병사에게 포로되여 미국의 위신을 흙탕속에 구겨박았다.
띤의 운명은 그래도 나은것이다.미8군사령관 워커의 운명은 더욱 비참하였다.살륙만행에 미쳐날뛰던 워커는 인민군대의 매복에 걸려 저승길로 가고말았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미제의 살인장군들은 련속 파면되였다.
1950년말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완전실패하자 전쟁형세는 미국에 더욱 불리하게 번져졌다.
미국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패배의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였다.백악관은 군부에, 공화당은 민주당에, 트루맨은 맥아더에게 패배의 책임을 넘겨씌우기 위해 란투를 벌렸다.
결국 칼도마우에 오른것은 맥아더였다.그리하여 조선전쟁은 화약내풍기는 군복을 입고 《동쪽의 나뽈레옹》이라고 자처하던 맥아더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종말을 가져다주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으로 된 릿지웨이도, 그뒤를 이은 클라크도 조선전쟁에서 패전장군으로 락인되고 미8군사령관의 자리에 새로 올라앉았던 밴플리트는 《무능한 지휘관》이라는 혹평을 받고 파면되였다.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 그 어느 지역에서도 패배를 몰랐고 그로 하여 승진의 일로만 걸어온 미군장성들 누구나 조선전쟁에서는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수많은 미군장성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수치스러운 종말을 고하였는데 3년간의 전쟁에서 여러명의 《유엔군》사령관과 미8군사령관이 교체되였다.
하여 마지막에는 조선전쟁에 더는 들이밀 장군이 없었다고 적들도 비명을 질렀다.
본사기자 김현철
[련속참관기] 전승의 력사 영원하리 -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 장진호반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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