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 미국은 왜 5.16 쿠데타를 기획했나/5.16쿠테타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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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5-16 07:2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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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5.16 쿠데타를 기획했나
기자명 장창준 객원기자
5.16 쿠데타와 미국 ①
5.16 쿠데타는 한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냉전 시대의 국제 정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CIA 국장을 지낸 앨런 덜레스가 1964년 5월 BBC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해외 비밀공작”의 사례로 5.16을 꼽았을 정도로 미국은 5.16 쿠데타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구체적 공작 과정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국 정부의 외교문서집 등은 5.16 군사쿠데타를 앞두고 한 달이 넘는 기간의 기록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61년 4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외교문서에 대한 비밀은 지금도 해제되지 않은 상태다.
본 글에서는 미국이 5.16 구테타를 기획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정치적 이유와 미국의 개입 공작 과정 그리고 5.16 쿠데타가 현시점에 주는 교훈을 정리한다.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통일 열기와 반미자주 운동
장면 정부는 4.19 혁명 이후 등장했으나 집권 기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면 정부가 보이는 불안정한 모습은 안정적인 정부를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를 봉쇄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장면 정부가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통일 열기와 반미감정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4.19 혁명 이후 통일운동은 혁신세력을 중심으로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전국의 많은 대학교와 고등학교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어 중립화통일을 주장하거나 남북교류를 촉구하는 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조직적 반미운동이었다.
이와 더불어 반미 감정도 확산하고 있었다. 1961년 2월 8일 체결된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은 한미 관계의 경제적 종속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진보적 정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 협정이 한국의 경제적 예속을 제도화하며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간섭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불평등조약이라면서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이 협정의 철회와 비준 거부를 요구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 최초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미운동이었다.
장면 정부에게서 불안감을 느낀 미국
미국은 한국 상황을 대단히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CIA는 장면 정부의 정치 갈등과 경제적 문제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안정화를 위한 조치”를 권고한다. 미 국무부 역시 한국에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안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미 국무부는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면 공산주의가 한국 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고까지 우려했으며, “한국의 불안정성 해소는 소련 봉쇄를 목표로 하는 미국 전략의 일부”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이 느낀 불안감의 실체는 4.19 혁명 이후 고양되는 통일과 반미자주의 기운이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하지 못하는 장면정부의 ‘무능력’을 목도한 미국은 군부라는 새로운 세력을 한국 정치에 등장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30년 넘게 진행된 군부독재 시대는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자주통일 열망에 대한 미국의 위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 쿠데타가는 주는 교훈
기자명 장창준 객원기자
5.16 쿠데타와 미국 ②
미국, “정치 안정화”를 위해 한국군의 쿠데타 움직임을 알고서도 방치
1편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5.16 쿠데타 직전 한 달(1961년 4월 12일 ~ 5월 15일)의 상황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1961년 6월 26일 박정희가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유엔군총사령부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데, 그 성명 1항은 아래와 같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유엔군총사령관에게 한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복귀시켰음을 이에 성명하며, 유엔군총사령관은 공산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함에 있어서만 이 작전지휘권을 행사한다."
이 성명은 한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을 박정희 세력이 유엔군에 복귀시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5.16 쿠데타 기간 일부 한국군이 유엔군의 작전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성명은 5.16 쿠데타 기간 사실상 유엔군이 한국군의 쿠데타 움직임을 방치 혹은 주도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쿠데타 성공 한 달 후 다시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귀속시킴으로써 정상화한 것이다.
당시 CIA 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미국의) 점진적인 지원은 상세한 정보 평가와 전략적 필요성의 결과였다. 한국의 군 지도자들과의 즉각적인 의사소통이 그들의 충성도와 군사력에 대한 통제를 평가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CIA가 박정희 군부 세력의 미국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했다는 것이며, 그 결과 박정희 쿠데타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과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필요성은 바로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통일과 반미자주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 후 미국은 박정희 쿠데타 세력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정치적 안정과 반공 활동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8월 미국은 박정희 군부 세력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 및 군사 원조를 지속할 방침을 천명한다. 이렇게 미국은 4.19 이후 ‘정치적 혼란함’을 딛고 ‘안정적 정치상황’을 만들어낸다.
당시 주한미대사 역시 “박정희 군부 세력의 장악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무모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박정희와 지속해서 연락을 취했다”라고 회고록에서 토로한 바 있다.
이렇게 1960년 CIA가 권고한 “안정화를 위한 조치”는 성공적으로 결속된다.
5.16 쿠데타가 현 정세에 주는 교훈: 정치적 불안정과 미국 정치 개입의 함수 관계
미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표면적 이유는 정치적 불안정이다. 4.19 혁명 당시 이승만의 무조건 하야를 촉구한 것도, 5.16 쿠데타를 기획한 것도 한국 정치가 갖는 정치적 불안정성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내세우는 ‘정치적 불안정성’은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정치 상황이 충돌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4.19 혁명 당시 미국은 이승만 정권으로는 미국의 전략이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승만을 직접 만나 즉각 하야를 압박했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부가 분출하는 통일과 반미자주의 열기를 진압하지 못하자 장면정부로는 한반도에서 냉전 전략의 정상적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박정희 군부 쿠데타 세력에게 눈을 돌렸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신냉전 국제전략을 추진하는 데서 돌격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22대 총선 결과는 민생 위기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미국의 돌격대 역할을 해왔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윤석열 정부와 미국 전략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이번 총선은 미국의 전략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 시기 미국의 대한국 정책은 미국의 신냉전 전략에 부합하는 정치지형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미국의 경제 이익에 부합할 수 있어야 하며,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게 있어서 윤석열 정부는 최적의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정권이 총선에서 심판을 받고 참패를 당했으니 미국으로서는 여간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윤석열 정권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이 정책을 바꾼다면 미국의 신냉전 전략 추진에 차질이 생긴다. 22대 총선 이후 한국 정치 지형은 윤석열 정부에게도, 미국에게도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22대 총선 이후의 한국 정치 상황은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즉 한국의 정치 상황이 미국의 전략 추진에 부합하지 않는, 오히려 미국의 전략 추진에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정치적 불안정’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은 직접적으로 한국 정치에 개입해왔다. 이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움직임을 그 어느 때보다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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