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 [기고]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5-13 06:48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기고]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
김기남 선생님!
선생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민족 화합을 위해 남북을 오가며 헌신해온 실천과 신념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조국은 기억하리라!
선생님의 이름과 걸어온 길을!
저자: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8.15 민족대축전 참가차 서울을 방문중인 김기남 단장 등 북측 대표단 일행을 접견,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 노무현사료관]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
2005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이 한 말이다.
지난 7일, 민족의 화합을 위해 노력해온 김기남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 담당 비서 겸 국무위원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기남 비서는 2005년 서울에서 개최된 광복 60돌 8·15 민족대축전 북측 대표단장을 맡았다.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김기남 단장을 포함한 32인의 북측 대표단은, 처음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14일 참배하고 묵념을 했다. 하지만 이곳은 6·25전쟁 희생자들도 있는 곳이다.
김기남 단장은 참배 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남북 화합을 위해 의미심장한 말과 현충원 참배라는 통 큰 실천을 했다.
그리고 16일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했다.
민족 화합의 길에는 항상 김기남 비서가 있었다.
[사진출처: BBC NEWS 코리아]
▶ 2005년 8·15 민족대축전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
남과 북은 그동안 광복·해방 행사를 따로 치렀다.
그러나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비로소 8·15 광복·해방 행사가 남북이 함께 하는 행사가 됐다.
그리고 2005년 북측의 ‘참배’로 광복·해방 행사는 민족 화합의 진정한 남북 공동 행사로 발전했다.
당시 한겨레 8월 15일 기사이다.
“북쪽의 이날 참배에는 김 단장 외에 림동옥 조평통 부위원장 등 당국 대표단 14명, 민간 대표단에서 단장인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과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 기자 5명을 포함해 모두 32명이 참석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현충원 참배에 앞서 워커힐호텔에서 김기남 북쪽 단장을 맞이하면서 북쪽의 참배 의사를 "새로운 미래로 가자는 충정과 결단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단장은 "대표단이 광복절에 즈음해 방문하니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답하며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피해갔다.
(중략)
정부 관계자는 "북쪽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가 담고 있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한 메시지는 현재 진행 중인 북핵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서울 신라호텔 오찬에서 북측 임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의 '시 낭독'은 남북 화합을 더 고무시켰다.
"우리는 서울을 보았다. 이국의 도시가 아니었다. 평양과 똑같은 민족의 도시였다. 우리는 한강을 보았다. 이국의 강이 아니었다. 대동강과 똑같은 강이었다. 우리는 또한 남산을 보았다. 보고 보아도 모란봉과 똑같은 산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살아있었다. 아! 북과 남은 하나구나. 서울과 평양은,평양과 서울은 똑같은 우리 것 우리민족의 것이로구나. 쭈욱해도 단번에 너무도 쉽게 통하는 우리는 정말 통일로 살아야할 하나로구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한 김기남 비서 [사진출처: 울산함성]
▶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방명록에, 북 최초로 서명한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
2005년은 1905년 11월 17일 일제 강점에 의한 을사늑약 100년 이자, 1910년 8월 22일 한일 강제 병합 95년이 되는 해이고 일제를 물리치고 광복·해방된 지 60년 되는 해였다.
15일 8·15 민족대회를 마친 6·15공동선언실천을위한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6·15공동위) 대표단은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일제의 식민 통치가 우리 민족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라고 말했다.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은 형무소 역사관 방명록에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고귀한 생을 바친 애국선렬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라는 북측 최초의 방문 글을 남겼다.
통일뉴스 8월 15일 기사이다.
“김 단장은 교도소 벽에 설치해 놓은 이육사의 시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유심히 봤으며, 서대문형무소 수용인원과 전쟁으로 처형된 인원 숫자를 정확히 물어보는 등 시종 굳은 표정으로 형무소 내부를 세세히 살폈다.
김 단장은 “돌아보니 분노와 수치심이 교차된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이 곳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분들도 계셨고, 공산주의자 분들도 많이 계셨다. 여기에는 김일성 주석의 삼촌과 친위 전사들도 포함된다”고 말하고 “우리가 선열들의 이루지 못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남과 북이 많은 일을 하고, 전체 조선민족이 공조하여 우리민족끼리라는 6.15공동성명 이념에 따라 마음과 마음을 합하고 투쟁하여야 한다. 이러면 어떠한 외세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북·해외는 패전 60년을 계기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을 규탄하면서 <일제패망 60년에 즈음한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6·15공동위는 <일제패망 60년에 즈음한 특별성명>을 통해서 ▲과거사 왜곡 중단 ▲전범 참배 중단 및 희생자 및 피해 당사국에 대한 국가적 배상과 보상 ▲미사일 방어 체계 등 군사력 배치계획 철회 ▲헌법 9조 개정 시도 및 자위대 해외 파견 등 군사개입 중지 ▲대북제재 중단 및 북일(조일) 평화선언 실천 등을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일관되게 남·북·해외는 2005년 일제 패망 60년을 맞이하여, 대일(對日) 성명을 이번까지 세 번 발표했다. 지난 3월 4일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위 결성식에서 일본의 ‘독도 영주권 주장’을 질타하는 특별성명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공동성명 그리고 이번 <일제패망 60년에 즈음한 특별성명>이다.
▶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조의방문단’ 단장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북쪽의 ‘조의방문단’ 단장 자격으로 서울에 와 조문했다.
이후 김기남 비서를 비롯한 북측 조문단은 21일 조문을 마친 뒤 국회의장 접견실을 방문, 약 20여 분간 김형오 국회의장과 환담했다.
환담 자리에는 김형오 의장을 비롯, 북측 조문단, 민주당 정세균 대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박지원 의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이 배석했다.
매일일보 2009년 8월 21일 기사이다.
“김기남 단장은 먼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즈음해서 조의방문단을 구성해 보내 주셨다"고 말문을 연 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민족 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조문단의 조문을 감사하고 환영한다"며 "남북대화가 재개돼야 하고 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지만, 이를 계기로 조문단이 찾은 것으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북한에서 어려운 결심을 했다. 특히 김기남 비서 등 고위직을 조문단으로 해서 온 것은 남북 화해와 협력에 대한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힌 뒤 "앞으로 남북이 상생하고 협력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때도 김기남 단장은 민족 화합을 강조했다.
이후 김기남 단장은 청와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뒤 북으로 돌아갔다.
전쟁과 적대를 뒤로하고 ‘민족 화합’의 새 시대를 열자는 북쪽의 정치적 의지를, 서울에서 밝히는 구심 구실을 김기남 비서는 했다.\
▶ 노동신문 김기남 부고에 대해 조사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노동신문>은 지난 8일 1면에 “전 당중앙위원회 비서 김기남동지가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2024년 5월 10일 10시 애석하게도 94살을 일기로 서거하였음을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알린다”라고 부고를 발표했다.
이어 신문은 “1956년 5월부터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해 60여년간 당의 사상이론적 기초를 다지는데 심혈을 다하였다. (중략)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제일 앞장에서 충직하게 받들어 전당과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을 비상히 강화하며 사회주의위업수행 전반을 이끄는 당의 권위와 전투적위력을 백방으로 떨쳐나가는데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뚜렷한 공적을 쌓아올렸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남쪽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KBS는 “‘北괴벨스’ 김기남 前비서 사망”으로 악의적 보도를 했다. 이미 갈 때로 간 언론이지만, 김기남 비서가 민족 화합을 위해 헌신해온 일들은 왜 말하지 않는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필자가 활동하는 사월혁명회는 눈이 오나 비가 쏟아지나, 한파가 몰아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매주 목요일 주례모임을 한다. 그런데 지난 주례모임에서 이번 김기남 비서 부고에 대해 의견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와 국힘은 그렇다 쳐도, 적어도 민주당과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회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은 조문은 못 갈망정, 조사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모두 분노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불렀는데 우리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너도나도 개탄했다.
이러니 북이 이미 싹수를 알고, 새해 초 우리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북의 대사변적 선언과 통일정책 변화 조치가 나온 것이 아니냐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었다.
김기남 선생님!
선생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민족 화합을 위해 남북을 오가며 헌신해온 실천과 신념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조국은 기억하리라!
선생님의 이름과 걸어온 길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