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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5편 _ 미국 국회의 실상: 정치도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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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1-20 06: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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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5편 _ 미국 국회의 실상: 정치도박장


이 연재글은 미국이 자랑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자료적으로 낱낱이 파헤쳐 그 추악한 실상과 멸망의 불가피성을 살펴봅니다. 이 연재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과 의존심, 공포심을 버리고 맞서 싸울 때만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 나갈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 안광획.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5편  _ 미국 국회의 실상: 정치도박장

 


 

이번 연재에서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미국 국회에 대해 살펴봅니다.

 

국회(의회)는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기관입니다. 국회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대표자, 즉 ‘국회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 선거제도의 특성 때문에, 대개 국회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대표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대표들만이 들어앉게 되며, 오직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만이 입법에 반영됩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국회 가운데서도 가장 부패하고 가장 반민중적인 국회가 바로 미국 국회입니다.

 

미국 국회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를 짓밟고 대독점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는 법 아닌 ‘법’을 만들어 주는 대가로 억만금을 쓸어 담는 자들이 즐겨 찾는 거대한 정치도박장이나 다름없습니다. 도박에 빠진 이들이 푼돈을 대고 도박을 한다면, ‘정치인’이라 자처하는 미국 국회의원들은 바로 민중의 운명을 걸고 정치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민중의 운명을 우롱하는 법을 누가 더 많이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승패를 결정하는 정치도박꾼들의 집결처,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체현한다는 미국 국회의 실제 모습입니다.

 

사실이 이러한데, 미국 통치세력과 숭미세력은 미국 국회가 ‘주권재민’이나 ‘권력분립(삼권분립)’, ‘대의제’의 원리를 구현한 민주주의의 ‘표본’이라도 되는 양 미화하며 다른 나라들에 본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 국회제도를 구체적으로 해부하고 그 진상을 밝혀내는 것은 온갖 기만과 허위로 일관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1. ‘거수기’, ‘정치 시녀’로서의 국회의 출현

 

 

(그림: 매사추세츠 평의회 상징 마크)

 

미국에서 국회가 처음으로 발생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에 13개 영국 식민지가 형성된 시기였다. 당시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식민지에는 식민지의 최고 권력자였던 집정관을 보좌하는 기관으로서 평의회(Provincial Congress)가 설치되어 있었다. 평의회는 18명의 보좌관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이었다. 1643년부터 ‘특권적인 지배자에게만 식민지 경영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요구가 자본가 계급 속에서 강하게 제기되었으며, 1644년에 마침내 ‘자유민’들로 이루어진 총회가 구성되었다.

 

그리하여 평의회와 총회라는 양원제 형식의 국회가 이 주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훗날 미국 역사에서 국회 제도의 시원으로 간주되었다. 매 식민지들에 존재한 이러한 형태의 국회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아니라 영국 국왕의 추밀원(樞密院, Privy Council)과 같은 단순한 자문기관, 보좌기관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연방제 하의 국회는 「연방조례」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연방조례」에 의해 형성된 연방이 독자성을 가진 주들의 단순한 국가연합이었기에, 연방국회는 온전한 입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매우 취약한 기관이었다. 연방국회는 대외사무와 주 사이의 사무를 처리할 권한을 가지는 외에 예산권을 비롯한 기타 일부 권력은 전혀 가지지 못했으며, 입법권도 거의  행사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기관이었다. 입법권을 비롯해 연방국회가 행사해야 할 주요 권력은 주의회에서 행사되었다.

 

 

(그림: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1787년 「연방헌법」이 채택됨으로써, 미국에 비로소 오늘과 같은 통일적인 연방국회제도가 형성되었다. 그 후 헌법수정안을 통하여 국회제도의 일부 지엽적인 문제들이 수정, 보충되기는 했으나 「연방헌법」에 의해 확립된 국회제도의 본질적인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방헌법」과 헌법수정안에 의해 미국 국회의 지위와 권한, 활동 방식이 전면적으로 법제화되었으며 연방국회제도는 미국 국가통치제도 전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미국에서 국회제도의 발생 및 변천과정은 국가통치제도 전반이 의회중심의 ‘대의제’로부터 대통령 중심의 행정중심주의적 통치제도로 변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초기에 미국 통치세력이 의거한 정치의 기본 거점이 의회였다면,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기 시작한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는 의회가 아니라 대통령을 축으로 하는 행정부가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탱점이 되었으며 의회는 행정부에 종속된 정치시녀로 전락했다.

 

 

(사진: 19세기 미국 대독점자본을 대표하는 두 인물. 앤드류 카네기(왼쪽)와 존 록펠러(오른쪽).)

 

 

(그림: 19세기 록펠러 소유 석유독점재벌인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Company)의 미국사회 장악 풍자화)

 

19세기 말부터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석유),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철강) 등을 비롯한 미국의 독점재벌은 주로 대통령을 내세워 독점적 요구와 이익을 강행적으로 실현하였다. 이것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이념’으로 내세웠던 ‘대의제’나 ‘권력분립’이 사실상 부정당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의회 중심으로부터 행정 중심으로 국가통치제도가 바뀌었다고 하여, 의회가 미국 독점자본가들에게 전혀 불필요한 기관으로 되었거나 독점세력이 의회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형성 초기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회는 의연히 국내외 정책의 ‘정립’과 정부 활동에 대한 ‘견제’ 권한을 가지고 날로 파쑈화 되고 반동화 되어가는 미국 국가통치제도를 ‘민주적’인 것으로 미화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독점자본가들은 대통령을 내세워 자기들의 특정한 요구와 이익을 강행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의회를 장악한 것에 기초하여 독점적 이익을 ‘대의제’의 원리에 마라 정립된 보편적인 미국의 ‘이익’으로 묘사하였다.

 

오늘날도 미국에서 대통령은 물론 국회를 비롯한 모든 국가통치기관들은 철저히 독점재벌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으며, 국회는 독점세력의 요구와 이익을 ‘법률화’, ‘정책화’하면서 거기에 ‘민주주의’의 외피를 씌우는 정치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회의 지위와 역할의 저하와 행정의 강화가 주로 헌법 개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면, 미국에서 ‘대의제’의 부정과 행정만능제도의 확립은 헌법의 수정을 거치지 않고 헌법 외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국가통치제도의 파쑈화 과정을 ‘민주주의’로 은폐하려는 미국 통치세력의 교활한 기만책의 산물이다.

 

2. 민중을 배제한 국회

 

 

(그림: 조지프 케플러, 「의회의 보스들(The Bosses of the Senate)」(1899))

 

미국 국회는 민중과 거리를 둔 대독점자본가들이 민중의 이름을 빌어 조직하는 비민주적이며 반민중적인 통치기관이다.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으로 되어 있는 미국 국회의 양원제는 ‘입법 민주화’의 막후에서 대독점자본의 요구와 이익만을 법제화하는 반민중적인 제도이다.

 

미국 통치세력과 어용 정치학자들은 미국의 양원제 국회 구조가 ‘전제적인 입법’을 반대하고 ‘입법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확립된 것이라고 역설하며 그것을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전제적인 입법’을 막고 ‘입법 안정’을 보장하자면 서로 다른 단위로 구분된 입법기관이 서로 다른 선거방식과 서로 다른 활동원칙을 이용하여 상호 제약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미국에서 양원제 국회제도가 확립되어 나온 역사적 과정과 전혀 맞지 않는 거짓 주장일 뿐 아니라 미국 국가통치제도에 구현됐다고 하는 ‘삼권분립’ 원칙과도 모순되는 제 손으로 제 발목을 잡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양원제 국회 구조는 1787년 「연방헌법」의 제정으로 확립되었다. 「연방헌법」의 제정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의 하나로 된 것이 바로 연방국회의 구조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것은 이 문제가 본질에 있어서 ‘국회대표권’ 문제로서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의 권력 분담을 어떻게 해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제기되는 부르주아 각 계층의 요구와 이익을 균형 있게 보장하겠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헌회의는 바로 ‘국회대표권’ 문제로 연방파와 반연방파로 분열되고 오랫동안의 ‘정치투쟁’을 거쳤던 것이다.

 

이 과정에 ‘주의 주권’을 체현하고 매개 주가 동등한 대표권을 가지고 참가한다고 하는 상원과 함께 ‘연방주권’을 체현하고 각 주의 인구비율에 따라 선출되는 대표들로 구성된다고 하는 하원이 조직되었다.

 

결국 미국에서 양원제 국회는 자기들의 요구와 이익을 강력한 연방주권에 의해 실현하려는 큰 주들의 부르주아 세력과 주에 대한 연방권력을 제한하려는 작은 주들의 부르주아 세력사이의 ‘타협’의 산물이자 부르주아 계급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의 결과이다. 미국에서 양원제 국회 확립과정에 ‘전제적 입법의 방지’나 ‘입법 민주화’는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것은 물론 제기조차 되지 않았다.

 

미국 부르주아 통치세력은 미국 국가통치제도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대통령-사법기관이 상호 ‘견제’하고 ‘제어’함으로써 어느 한 기관도 전제적인 기관으로 될 수 없도록 하는 가장 ‘민주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회는 단원제이건, 양원제이건 상관없이 대통령과 사법기관의 제약에 의해 전제적인 기관으로 절대로 될 수 없으며 입법도 전제적인 것으로 될 수 없다. 미국 통치세력은 양원제 국회구조가 전제적 입법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결국 ‘삼권분립’ 원칙의 기만성과 미국 입법의 전제적 성격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입법의 성격은 그 계급적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결코 입법기관의 내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계급, 계층의 의사를 통일적으로 반영하는 입법이 민주적인 것이라면 특정한 계급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입법은 전제적인 것이다. 즉, 대독점자본가들의 요구와 이익만을 반영하는 미국 입법은 가장 비민주적이고 전제적인 입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국회는 형식상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선거를 통해 조직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하는 평범한 대중들을 배제한 기초 위에서 폐쇄적으로 만들어지는 반민중적인 통치 기구이다.

 

국회 선거에서 나서는 선차적인 문제는 선거자격제도, 즉 선거할 권리와 선거 받을 권리에 관한 문제이다. 선거자격제도에 의해 어떤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갈 권리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 규정된다. 인민에게 선거할 권리와 선거 받을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민중 대표들은 국회에 들어갈 수 없으며 민중이 참가하지 않는 한 국회는 절대로 민주적인 ‘국민대표기관’이 될 수 없다.

 

 

(그림: 19세기 미국 선거에서의 흑인 참정권 박탈을 풍자한 만평.)

 

미국의 선거자격제도는 민중의 선거할 권리와 선거 받을 권리를 부정하는 반민중적인 제도이며, 국회를 부르주아지의 독점물로 만드는 비민주적인 제도이다. 미국 선거자격제도는 민중의 선거권을 심히 제한하고 있다. 국가통치제도 확립의 첫 시기 미국헌법은 선거권문제를 전혀 규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연방적 범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선거권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 주는 주 선거법으로 제각기 선거권 문제를 규정하였다.

 

이 시기 미국의 부르주아지들은 선거권에 대하여 노골적인 차별조건을 설정함으로써 절대다수의 민중들을 선거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각 주는 ‘백인 남자로서 일정한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공인만이 선거권을 가진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인종, 성별, 재산에 따르는 차별조건으로, 당시 미국 성년인구의 약 90% 이상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다.

 

19세기 30년대 미국의 대부분의 주들은 선거권 획득을 요구하는 민중들을 기만할 목적으로 재산 자격 제한조건을 ‘취소’하기 시작했으나, 버지니아(Virginia) 주를 비롯한 일부 주들은 세금납부에 따르는 선거권 제한제도를 집요하게 고집했다.

 

미국통치자들은 정치적 권리를 위한 흑인들과 여성들의 투쟁이 활발해지자, 기만적인 ‘양보’조치로서 「연방헌법」 수정안을 채택하여 인종, 성별 제한조건들을 ‘철폐’하는 것으로 했지만 법률 외적으로 기존의 차별조건을 계속 유지했다.

 

 

(그림: 「조지타운 선거 – 흑인의 선거 참여」(1867). 남북전쟁 이후로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명목상 주어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흑인들이 선거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풍자한다.)

 

남북전쟁 직후에 채택된 「헌법수정안」 제15조에 의해 종족, 피부색, 노예 신분에 따르는 선거권 제한이 ‘취소’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실시되었다. 납세의무를 지지 않는 원주민들은 인구수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원주민은 유권자로 될 수 없었다.

 

특히 남부 각 주의 백인인종주의자들은 연방정부의 지지와 묵인 하에 인두세 조항, 문화측검조항 등과 같은 흑인선거권을 박탈하는 조항을 수많이 제정하였으며 위협과 형벌 등을 수단으로 선거인 등록과 선거에 참가하는 흑인들을 마구 박해하였다. 백인지상주의 통치 아래서 흑인들은 선거권을 도저히 누릴 수 없었으며 20세기 40년대까지만 해도 성년 흑인 중 단지 5% 만이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했다.

 

 

(사진: 1965년 흑인 참정권 시위)

 

그 후 미국에서 세차게 일어난 흑인운동, 민주화운동, 반전운동, 학생운동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 반동정부는 선거권 제한조건을 ‘약화’시키고 선거권 범위를 ‘확대’하는 기만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만적 조치들은 높아지는 민중들의 반자본주의적 감정을 무마하고 그들을 독점자본가들의 권력독점야욕을 실현하는 데 거수기로 이용하기 위한 일시적인 기만책에 불과할 뿐, 실제 효력을 가지고 실시된 것은 아니다.

 

미국 통치세력은 헌법 외의 법들을 이용하여 기만적으로 규정된 헌법적 요구마저 무시하고 수많은 민중의 선거권을 박탈하였다. 최근에 새로 채택된 「미국 선거법안」은 선거자들이 등록할 때 반드시 신분과 거주지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 법조항으로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형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형을 받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흑인이다. 동일한 범죄를 범하더라도, 흑인은 백인에 비하여 더 가혹한 형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흑인은 5g의 마약만 지참해도 5 년 동안의 금고형을 받지만, 백인은 마약 500g을 지참했을 때 5년의 금고형을 받는다. 형을 받았던 사람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제도 때문에, 최근 시기에만도 500만 명의 사람들과 흑인 남자의 13%가 투표권을 잃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민중에게 부여된 보통선거권이란 그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으며, 선거권 행사에서 인종차별을 비롯한 각종 제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미국 선거자격 제도는 여러 가지 제한조건으로 민중의 피선거권 획득을 가로막고 있다. 미국에서 상원의원 후보는 나이가 30세 이상, 거주연한이 9년 이상, 선거되는 주의 거주자만이 될 수 있으며 하원의원 후보는 나이가 25세 이상, 거주연한이 7년 이상, 선거되는 주의 거주자만이 될 수 있다. 이 자격제도 때문에 수많은 청년들과 고정거주지가 없는 수천만 명의 빈민들은 절대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설 수 없게 되었다.

 

 

(그림: 납세(가스비, 전기세 등) 여부, 주민등록(운전면허, 혼인신고 등) 등 다양한 제약으로 사실상 대중의 선거 참여를 막는 미국 선거제도 풍자화.)

 

미국에서 피선거권 획득의 기본조건, 실제 자격은 돈과 재산의 소유 정도이다. 선거법에 따라 의원후보자들은 거액의 선거보증금을 내야만 등록할 수 있다. 후보인 자격에 대한 재산 제한 때문에, 아무런 재산도 없는 극빈층과 실업자들은 도저히 의원 후보자로 나설 수 없다.

 


 

의원후보자들은 선거유세 시에는 선거보증금과 비교도 안 되는 막대한 돈을 지출해야 하며, 따라서 선거경쟁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절대 다수의 민중은 자기의 대표를 후보자로 내세울 수 없다. 오직 거대독점과 그 지배정당인 공화당(Republicans)과 민주당(Democrats)의 재정지원을 받아 선거경쟁비용을 든든히 마련한 자들만이 후보가 되어 보다 많은 당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공화, 민주 양당 외의 기타 정당들*은 아무리 자기의 후보자를 내세운다고 해도 관권과 금전에 기초한 양당의 탄압으로 그들을 당선시킬 수 없다.

 

* 미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USA),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 노동자세계당(Workers World Party), 사회주의해방당(PSL) 등 사회주의 정당, 정의당(Justice Party), 녹색당(Green Party), 청년국제당(Youth International Party) 등 사민주의 또는 신좌파 정당이 이에 속한다. 이외에도 자유당(Libertarian Party), 헌법당(Constitution Party) 등의 극우정당도 있으나 논외로 한다.

 

 

(사진: 현대 미국 대독점재벌의 대표 인물: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2022년에 진행된 중간선거 당시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빌 게이츠(Bill Gates)를 비롯한 대독점재벌과 억만장자들이 ‘개인헌금’의 명목으로만 25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지출하여 독점재벌의 이익을 대표하는 앞잡이들을 후보자로 내세우고 그들을 당선시킨 사실은 미국에서 의원 후보자의 실제적인 자격이 금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독점재벌과 그 단체들은 각종 명의로 자기들의 후보를 내세우고 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출함으로써 당선 후의 ‘보답’과 ‘대가’를 합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리하여 미국에서 정치도박장으로서의 국회의 반동적 성격은 날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선거절차와 방법을 통하여 일하는 대중들을 선거에서 배제하고 있다. 미국에서 국회선거는 선거구 획정-선거인 등록-투표-개표 및 당선자 확정 등의 단계와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매 선거과정과 단계, 절차는 독점정당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는 자들만이 당선될 수 있도록 철저히 담보하고 있다.

 

 

(그림: 특정 유력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짜는 행태인 게리맨더링 풍자화.)

 

미국에서 선거구 제도는 독점 정당들의 정권 독점 야망 실현을 위한 법률적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 통치세력은 행정지역단위와 인구수 등을 고려할 데 대한 선거구 획정의 일반원칙을 무시하고 독점 정당들의 당선 비율을 높이는데 유리하게 선거구를 인위적으로 구분한다.(게리멘더링, Gerrymandering) 불평등한 선거구 획정 방법에 의해 군소정당들은 선거에 참가한다고 해도 당선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당하며, 오직 독점 정당인 민주, 공화 양당의 ‘대표’들만이 당선된다.

 

 

(그림: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 선거인 자격제도)

 

미국에서 선거인 등록은 도시지구에서는 본인등록제, 농촌지구에서는 주로 비본인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선거인 등록에서의 비민주화를 반영하고 있다. 본인등록제는 선거인 등록 시 엄격한 자격심사를 동반하며, 비본인등록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선거에서 누락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 통치세력은 투표와 득표수 계산, 당선자 확정에서도 저들의 당선을 손쉽게 보장하기 위한 이러저러한 권모술수를 단행함으로써 독점 정당들에 유리한 선거결과가 내려지도록 하고 있다.

 

 

(그림: 20세기~현재까지의 미국 투표율 추이. 2000년대에 50% 밑으로 추락했다가 최근 2020년대에 이르러 60%까지 다시 오르는 현상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선거과정의 반동화가 추진되는 역사 속에서 투표율이 계속 떨어져 왔다. 19세기 후반기에 투표율이 65%였다면, 2000년에는 50%로 낮아졌다. 그나마 최근에는 사전투표제 도입과 양당 지지자 결집으로 투표율이 조금 높아졌으나 여전히 60%대를 면치 못한다.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강하는 현상은 양당의 독점적인 선거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반항심과 무관심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선출된 의원들이 소수의 ‘국민’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자격제도를 비롯한 국회선거의 모든 단계와 절차가 민중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어 미국 국회는 민중의 대표가 아니라 민주, 공화 양당을 장악한 대독점재벌과 그 앞잡이들로만 구성된다.

 

미국의 어느 한 정치학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 국회는 가장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기구이다.”라고 함으로써 수많은 민중을 배제한 기초 위에서 수립된 미국 국회의 실상을 인정하였다.

 

미국 국회의 상원의원 100명과 하원의원 435명은 전부 양당에서만 선출된 독점자본가이거나 그 앞잡이들이다. 국회권력에 의한 정치도박판에 맛들인 의원들은 독점의 힘으로 자기들의 의원 직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사실상 미국 국회는 한 국회의원이 당선되면 거의 죽을 때까지 계속 해먹는 구조로 되어가고 있다.

 

1946년부터 1980년까지의 18차례의 국회 양원구성을 분석한 데 의하면 하원의원의 90% 이상이 연임했으며, 상원의원의 약 75%도 연임했다고 한다.

 

2004년 미국의 어느 한 단체는 “미국의 선거과정은 붕괴되었다.”고 하면서 “상원의원의 정원수가 100 명인데 그중 40명은 억만장자이다.(미국 전체로 볼 때 억만장자는 인구의 1%에 불과하다.) 또한 과거 3차례의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현직 재선 비율이 98%이상이어서 새 사람이 참여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함으로써 국회구성의 반민중적 성격과 보수적인 성격을 폭로하였다. 이것은 미국 국회가 민중과 완전히 동떨어진 종신독재 기관, 관료주의적 기관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 국회는 조직과 구성에서 민중을 완전히 배제하는 비민주적이고 민중배타적인 통치기구이다.

 

3. 기만적인 권한 행사

 

 

(그림: 미국 대의제의 실체)

 

미국 국회는 그 활동에서도 민중의 이익을 완전히 배제하고 거대독점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민중배타적인 통치기구이다.

 

대통령 및 정부와의 관계에서 볼 때 미국 국회는 정부와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회와 대통령 및 정부는 서로 별도로 조직되며, 각자 서로 다른 임기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국회는 대통령을 일상적으로 ‘추궁’할 수 없다. 단지 대통령이 ‘죄’를 범하면 하원이 ‘탄핵’을 제기하고 상원이 ‘탄핵’을 심의할 뿐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으며 국회와 대통령 및 정부는 제각기 ‘독립적’이면서 서로 전제한다. 이것이 바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구현했다고 하는 미국 국가통치제도에서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나 미국 국회는 철저히 대통령에게 종속되어 대통령을 위시하는 행정중심주의적인 미국 통치제도를 미화하고 대통령을 통해 실현되는 대독점재벌의 요구와 이익을 ‘국책’과 법률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만적인 기관이다.

 

미국 국회의 반동적 역할은 그에 부여된 헌법 권력의 행사과정이며 이 과정을 동하여 미국의 거대독점세력은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배치되는 탐욕적인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각종  형태의 정치도박을 단행한다.

 

입법권은 미국 국회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권한으로서 법을 제정, 수정, 폐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국회의 입법절차에는 보통 법안제출-법안토론-법안채택 및 공포 단계가 속한다.

 

미국에서 국회입법의 전 과정은 대독점자본가들의 무제한적인 권력야욕과 물질욕망을 법제화하는 과정이다. 법안제출은 국회입법의 첫 단계이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안제출권을 누가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법안제출권은 법률상 개별적인 국회의원들에게만 속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려나 실제적인 법안제출자는 대독점자본가들이다. 대독점자본가들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는 데서 두 가지 경로를 이용하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친서’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입법방향이 반영된 친서를 국회에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국회는 대통령의 친서를 무시하고 입법을 진행할 수 없다. 국회가 만일 대통령의 친서에 따라 입법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 그 법안은 비준 단계에서 대통령에 의하여 부결된다. 대통령의 법안거부권이 절대적이기에, 국회는 반드시 친서에 반영된 입법 방향에 따라서만 법을 채택해야 한다.

 

 

(그림: 2002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대통령의 친서를 통해 국회에 제시되는 입법방향은 본질에 있어서 독점자본가들과 그 ‘이익집단’의 의사와 요구이다. 부시 행정부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George W. Bush)가 2002년 일반서신에서 (북)조선을 이란, 이라크 등과 함께 ‘악의 축(Evil Axises)’이라고 한 것은 국회에서 (북)조선에 반대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 해의 입법방향을 제시한 것으로서 대북적대정책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미국 대독점자본가들의 반동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현재에도 공통된 것이다. 현 대통령 바이든(Joe Biden)은 금융자본과 방위산업체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러시아와의 대결전/대리전을 지속하고자 국회에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지원을 보낼 데 대한 서신을 보냈고, 그 결과 2022년 5월에 양원에서 51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법안이 통과되었다. 나날이 파탄되는 미국 경제상황은 아랑곳 않고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들의 법안제출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각 독점세력들과 ‘이익집단’, 회사 등은 개별 의원들에게 돈을 대주고 자기의 이해관계 실현과 관련된 법안을 국회에 들이대도록 한다. 의원들은 그 대가로 해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그것을 법으로 채택하기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를 다 동원한다. 누가 더 많은 돈을 들이대는가에 따라 법안의 운명이 좌우되기에, 국회는 독점세력들의 정치적 흥정판으로 완전히 전락한다.

 

이처럼 미국에서 실제적인 법안제출자는 대독점자본가들이며, 따라서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에는 민중의 의사가 아니라 오직 대독점의 탐욕적인 요구와 이익만이 반영된다.

 

법안토론은 입법절차상 국회에서 제기된 법안에 대한 심사와 변론을 진행하는 과정이며, 국회입법에서 기본단계로 된다. 미국 국회는 본회의에서 법안을 세 번 심의한다고 하는 ‘3독’ 형식으로 법안토론을 진행한다. 법안토론에서의 ‘3독’ 형식은 오직 국회입법을 ‘민주적’인 것으로 미화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위선적인 제도이다. 그것은 법안의 운명이 법안토론의 ‘기본단위’인 본회의에서가 아니라 상설위원회와 그에 속한 소위원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과 관련된다.

 

자료에 의하면 현재 미국의 매 회기 국회에서 폐기되는 법안의 95%가 소위원회에 의해 부결된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의원으로 구성되는 ‘민주적’ 기관인 본회의에 비하여 상설위원회와 소위원회가 법안토론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로 여기에 미국 국회입법의 기만성과 비민주적 성격이 있다.

 

 

(그림: 미국 국회 법안 통과 과정)

 

법안토론에서 본회의에 비해 상설위원회나 소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독점지배계급에게 있어서 여러 정당(양당)과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치열한 논쟁과 투쟁’을 동반하는 본회의에 비해 한 개 당에 의한 극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상설위원회나 소위원회에서의 ‘타협’과 강행 통과가 보다 편리하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때문에 법안을 제출한 세력들은 상설위원회와 소위원회와의 막후 공작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월슨(Woodrow Wilson)까지도 “개회 기간의 국회는 대중에 대한 전람(쇼윈도, show window)에 지나지 않고, 국회의 각 위원회는 비로소 행동 중인 국회이며, 국회에서 가장 유효한 사업은 각종 상설위원회에서 진행된다.”고 실토함으로써 국회입법을 상설위원회와 소위원회들이 좌우하는 비민주적인 현상을 인정하였다.

 

역사적으로 미국 통치세력은 국회 상설위원회와 소위원회들을 계속 증가시키고 그에 의하여 입법을 강행해 왔다. 법안채택과 공포는 국회입법의 마지막 과정이며 이 단계에서 법안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미국에서 국회에 제기된 법안은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통과되어 법으로 채택된다.

 

국회입법에서 위원회들의 전횡이 크다고 하여 결코 본회의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법안은 다 본회의에서 가결되어야만 법으로 채택되는 것만큼, 미국 통치세력은 독점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저촉되는 법안들이 채택될 수 없도록 법안가결 과정에도 온갖 모략과 협잡을 벌인다.

 

2005년 11월 17일 하원 본회의에 일부 의원들에 의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자, 반동세력은 그에 대한 지지 세력이 공동보조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른바 ‘즉시철수’라는 급진적인 결의안을 제기하고는 그것을 18일에 강제 투표에 붙여 반대 403, 찬성 3으로 부결해버렸다. 이것은 국회에서의 법안가결 과정이라는 것도 철저히 독점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로 좌우되는 사기와 협잡의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국회가 채택한 법안은 대통령의 서명비준을 받아 공포된다. 이 단계에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거부된 법안은 다시 국회에서 토의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법안 거부는 사실상 ‘극복’될 수 없는 절대적 거부이다. 대통령의 법안거부권으로 국회입법은 심한 제한을 받으며, 국회는 대통령에게 더욱 종속되는 기관으로 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통치세력은 국회입법의 매 단계에 층층의 장벽을 만들어 놓고 독점자본가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절실히 필요한 법안만을 통과시키며, 그에 조금이라도 저촉되는 법안은 도저히 채택될 수 없게 하고 있다.

 

 

(사진: 미국 총기규제 입법 촉구 시위와 총기규제 법안 부결)

 

총기휴대를 금지하는 법안을 놓고 국회에서 100여 차례에 걸치는 토의를 하였으나, 그것이 끝내 채택되지 못한 사실은 독점의 이익만을 법률화하는 미국 국회입법의 기만성과 극반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은 무기에 의한 범죄행위로 대중들의 생명재산이 위협을 당하는 것보다 무기판매로 폭리를 얻고 있는 무기생산 독점체들*의 이익이 입법에서 우선시되는 것과 관련된다. 이려한 사실은 민중의 운명을 놓고 정치도박을 벌이는 독점재벌의 반민중적 광기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잘 말해준다.

 

*총기휴대 금지법과 관련해서, 이들은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를 조직하고는 입법 반대 로비를 광범위하게 벌인다.

 

 

​​​​​​​(사진: 미국 하원 휴게실에 몰려있는 ‘로비스트’들)

 

국회입법권 행사의 협잡과 부정행위는 ‘로비스트’ 제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로비스트(Lobbyist)’란 일명 특정한 조직의 이익을 대표하여 국회공작을 진행하는 ‘원외운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외운동자’들이 국회 휴게실(Lobby, =로비)에서 활동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가리켜 ‘로비스트’라고 한다.

 

로비스트는 의원들과 일상적인 연계를 가지면서 ‘친교’를 맺고, 독점세력과 회사, 이러저러한 ‘이익집단’, 심지어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의원들을 매수하고 그들을 제기된 법안의 가결 및 부결에 떨쳐나서게 한다. 로비스트는 국회 밖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법안의 토론과 채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되고 있다. 로비스트는 저마다 자기들이 대리하는 단체나 나라를 위한 각종 「법안」을 만들어가지고 다종, 다양한 내용으로 미국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아들인다.

 

국회 내에서 로비스트의 맹활약과 그들에 의해 매수된 의원들의 비열한 행위로 미국에서의 국회입법과정은 민중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추악한 정치협잡 과정, 정치도박 과정이 되며, 이미 국회 밖에서 독점자본가와 그 대변자들에 의하여 정정된 것을 합법화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자료: 1978~2014년 미국 국회에서의 로비활동과 액수 추이)

 

1998년 미국에서 출판된 어느 한 책에 의하면 1987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의 주요기업체들이 로비스트를 통하여 국회의원들에게 적어도 1억 8,200만 달러의 돈을 뇌물로 주었는데, 그 대가로 국회는 그 기업체들에게 수많은 특혜 조치들을 취했다고 한다.

 

미국 국회가 행사하는 재정권과 인사권 역시 ‘미국식 민주주의’의 진상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권은 국회가 국가수입과 지출을 장악하고 세금 등과 관련한 정부재정을 감독, 통제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 크게 두 측면을 포괄한다. 하나는 세금정수, 차관결정, 국채 및 화폐발행 등에 대한 결정권이다.

 

미국에서는 법률적으로 이러한 권한들은 오직 연방국회에만 속하고 국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부가 이와 관련된 활동을 진행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세금이나 화폐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비일비재로 감행되는 정부의 전횡과 독단을 가리기 위한 거짓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세금장수, 국계관리, 화폐의 주조 및 지폐인쇄 등과 관련한 행정적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재무성의 권력이 비상히 강화되면서, 정부는 세금과 국채, 화폐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다른 하나는 예산결정권이다. 원래 미국에서는 국회에 예산작성권과 예산결정권이 동시에 부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1921년에 채택된 「예산 및 검산규정」에 의해 예산작성권은 대통령에게로 이관되고 국회는 단지 대통령이 제출하는 예산안을 결정할 권한만 가지게 되였다. 이것은 대독점 지배계급의 야망에 따라 기만적인 ‘대의제’로부터 행정중심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비민주화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해마다 행정예산 관리국이 작성한 예산안을 친서를 통해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대통령이 제출한 예산건의를 ‘심의’, ‘수정’ 한데 기초하여 「예산수권법안」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대통령의 서명비준을 받는다.

 

국회가 정부의 재정예산을 ‘심의’,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국회가 정부의 재정활동을 ‘통제’한다거나 그에 대하여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구속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국회는 대통령의 예산안을 변경시킬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예산안에 국가의 대내외정책의 기본 방향과 그 실행을 위한 재정지출계획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기에, 국회는 정부예산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자료: 2023년 미국 예산안 비율)

 

미국 통치세력은 예산안을 통하여 국가의 침략적, 약탈적인 대내외정책과 그 실행계획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와 관련된 세부항목은 전혀 반영하지 않거나 다른 항목으로 이름을 바꾸며 실현 담보가 없는 ‘국민복지’ 항목을 장황하게 설정함으로써 예산의 반동적이고 반민중적인 성격을 은폐한다. 특히 미국 통치세력은 전쟁계획수행, 첩보모략과 관련한 지출항목을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경제 및 군사 ‘원조’의 명목으로 예산에 반영하고 있으며, 전쟁수행시예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추가예산(추경)을 요구한다.

 

이리하여 국회는 정부가 작성한 예산의 수입과 지출을 올바르게 장악할 수 없게 되며, 그로 인해 예산을 통한 ‘통제’를 실제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 국회에 부여된 재정권은 정부의 반민중적이며 반동적인 재정정책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국회의 인사권은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급 정부관리나 법원 판사에 대한 비준권을 의미한다. 미국 국회에서 인사권은 양원이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상원만이 가지는 ‘특권’이다. 

 

미국 통치세력은 상원의 인사활동을 가리켜 대통령의 행정권 행사를 ‘제약’하는 국회의 ‘민주적’인 활동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국회의 인사권은 사실상 독단적인 대통령의 인사행위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극히 형식적인 권한이다.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제약’에 의해 국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자를 원칙적으로 부결하지 않으며, 오직 승인만 해야 한다. 

 

‘심사’ 역시 대통령이 속한 여당 의원들로 구성되는 상설위원회나 소위원회들에서 진행되기에 형식적 행사에 불과하다. 탄핵권은 미국의 행정만능주의적 통치를 ‘민주주의’로 미화하기 위하여 국회에 부여된 중요한 권한의 하나이다. 

 

탄핵권은 대통령이나 정부의 고위관리, 연방법원 판사의 ‘범죄’ 혹은 엄중한 ‘위법행위’에 대하여 국회가 재판절차로 심의하고 파면시킬 수 있는 권한이다. 미국 국회에서의 탄핵재판은 국회 활동을 ‘민주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미국의 반동적이고 반민중적인 국가통치를 ‘청렴정치’로 미화하기 위한 정치기만극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가 진정으로 ‘민주적’인 기관이고 국가통치가 실제로 ‘청렴정치’로 되려면 마땅히 ‘국민대표기관’으로 묘사되는 국회의 탄핵재판에는 민중이 참가해야 한다. 탄핵기소자도 민중이 되어야 하고, 재판에 참가하는 기소 측 대표도 민중 속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 국회의 탄핵재판은 민중 밖에서 독점의 앞잡이들에 의해 조직되고 진행된다. 결국 국회의 탄핵재판 제도는 대통령이나 정부 관리들, 판사들의 온갖 비행과 악행을 민중 밖에서, 국회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처리해 나가기 위한 반민중적인 제도이다.

 

미국 국회의 탄핵재판권은 일상적으로 거의 행사되지 않는 형식적인 권한이며 설사 행사되는 경우에도 그 가결이 불가능한 거짓된 권한이다. 국회는 이른바 ‘정부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탄핵권을 일상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사회적 압력과 여론에 의해 일부 탄핵재판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양당과 의석 차이가 별로 없는 조건에서 2/3의 다수찬성을 절대로 받을 수 없다.

 

헌법 채택 이래 현재까지 하원이 탄핵을 제기한 관리 및 판사의 수는 17명이며 그중에서 상원의 탄핵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연방법원 판사 5명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자료: 역대 미국 대통령 탄핵 사례)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으로서 탄핵재판에 걸려든 자들은 제17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Linden Johnson), 제 37대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제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제45대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4명뿐이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으로 1974년에 탄핵재판에 걸려들었으나 상원에서의 재판 전날에 사직함으로써 탄핵에서 벗어났다.

 

상원에서 탄핵재판을 실제로 받은 대통령은 존슨과 클린턴, 트럼프 3명뿐이었으나 재판 결과 이들은 다 무죄로 선고받았다. 트럼프의 경우 2019년(권력남용 및 의회방해 혐의)과 2021년(미국 국회의사당 시위대 습격으로 인한 내란선동 혐의)에 두 차례에 걸쳐 탄핵이 추진됐으나 모두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리하여 국가형성 이후 오늘날까지 수백 년 동안의 전체 미국 역사에서 탄핵재판으로 밀려난 대통령은 단 한명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국회의 탄핵전이 실제적으로 행사될 수 없는 극히 허위적이고 형식적인 권한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국회의 탄핵권은 사회여론과 규탄의 대상으로 되는 집권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비호해 주는 공간이며, 반동적인 집권계층에 대한 민중의 불만과 항쟁을 무마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미국에서 국회는 조약비준권, 선전포고권 등과 같은 일련의 기타 권한들도 행사한다. 이러한 권한들도 역시 대통령과 정부를 중심으로 작성되고 집행되는 독점자본가들의 반동적이고 파쑈적인 정책과 결정에 ‘민주주의’, ‘합법’의 외피를 씌우기 위한 기만적인 수단에 불과할 뿐 실제적으로 행사되지 못하는 거짓된 것이다.

 

 

(그림: 미국의 기만적 ‘삼권분립’. 실상은 입법부, 사법부가 행정부에 사실상 종속된 상태이다.)

 

미국의 국회제도는 대독점 자본가 계급의 극우 반동적인 통치를 미화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기만적인 제도이다. 때문에 미국 통치세력은 대독점자본가들의 통치에 위기가 닥쳐오는 경우에는 형식적인 국회제도마저 없애버리고 노골적인 대통령 독단의 행정만능통치를 실시하게 된다.

 

미국에서 국회가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돈을 받아먹고 그 대가로 대독점자본가들의 독점적, 탐욕적 요구를 ‘법’으로, ‘정책’으로 만들어주거나 온갖 형식적인 수단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국가통치제도를 미화하는 것뿐이다.

 

민중을 완전히 배제한 기초 위에서 수립되고 민중의 의사를 떠나 극소수 특권계층의 의사에 따라서만 활동하는 미국 국회가 ‘민주적’인 기관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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