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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4편 -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형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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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1-19 06: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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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4편 -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형성 과정


이 연재글은 미국이 자랑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자료적으로 낱낱이 파헤쳐 그 추악한 실상과 멸망의 불가피성을 살펴봅니다. 이 연재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과 의존심, 공포심을 버리고 맞서 싸울 때만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 나갈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 안광획.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4편 –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형성 과정

 


 

앞선 연재에서 보았듯,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극소수 대독점 자본가들에게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지만, 다수의 민중들에게는 가혹한 독재를 실시하는 가짜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미국의 국가통치제도부터 분석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 국가통치제도가 극소수 대독점 자본가 계급의 의사에 따라 국가권력을 조직하고 실현하는 체계로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간판 속에서 그들의 반민중적 독재를 실현하는 기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가통치제도는 민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무참히 유린하는 반민중적인 통치체계, 파쑈적인 통치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휘황찬란한 문구 속에 ‘자유민주주의’로 미화되는 모순적인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실체를 제대로 보는 것은 기만과 거짓,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 찬 ‘미국식 민주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 국가통치제도를 뜯어보면 ‘미국식 민주주의’가 미국의 추악한 실체를 가리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민주주의, ‘민주’를 빙자한 사이비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만적인 의회제도, 전횡적인 대통령제, 위선적인 사법제도, 배타적인 양당제, 침략적인 연방제 등을 주요 구성으로 하는 미국 국가통치제도는 그 발생과 변천의 전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해온 것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미국 사회의 반동화, 파쑈화 과정의 산물이고 그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1. 이민자들이 가져온 ‘선물’? 원주민의 시체더미 위에 세워진 미국!

 

 

(그림: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침략)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부스(Christopher Colombus)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수천 년 동안 이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자기의 고유한 문화를 창조해 온 미국 원주민(일명 ‘인디언(Indian)’)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고대 노예제 사회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미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의 그 어떤 문명에도 뒤지지 않는 찬란한 문화와 발전된 과학기술을 지녔던 아즈텍(Aztec, 멕시코), 잉카(Inca, 볼리비아-페루-칠레), 그리고 마야(Maya, 멕시코 유카탄 반도) 문명이 꽃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자원을 가진 이 대륙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일확천금의 야망을 지닌 침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탐욕과 황금열(Gold Rush)에 들떠 떼를 지어 ‘신대륙’에 건너 간 각종 극악한 범죄자, 사기꾼, 선교사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미국 원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점령 지역을 각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의 식민지로 선포하였다.

 

피로 얼룩진 미국의 추악한 역사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의 전신은 영국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강도적으로 건립한 13개의 식민지였으며 그 가운데서 최초에 성립된 영국 식민지는 버지니아(Virginia)였다.

 

1606년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위 34도로부터 41도 사이에서 ‘개발’과 ‘식민지 개척’ 사업을 할 데 대한 국왕 엘리자베스 1세(Elisabeth I)의 ‘특허’를 받아 설립된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그 이듬해인 1607년에는 200여 명의 이주민을 실은 3척의 함선을 ‘신대륙’에 파견하였다. 일확천금의 황금열에 미쳐버린 이 식민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첫 발을 들여놓은 제임스 강 유역을 ‘버지니아’로 명명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원주민 학살과 영토 침략의 길에 나섰다.

 

1629년에는 영국 청교도(Puritans)들이 세운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회사가 본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회사를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기고 매사추세츠 식민지를 건립하였으며, 대대적으로 이주해 온 범죄자와 망나니들을 내몰아 날강도적인 영토팽창을 추진하였다.

 

 

(지도: 미국 동해안의 최초 13개 식민지. 우상단부터 메인-뉴햄프셔-매사추세츠-코네티컷-로드아일랜드-뉴욕-뉴저지-펜실베이니아-델라웨어-매릴랜드-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 순이다.)

 

앵글로색슨족 이민들의 영토팽창은 미국 원주민들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쫓아내거나 멸족시키며 다른 나라들이 이마 건립한 식민지들을 무력으로 강탈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이리하여 반세기 남짓한 기간에 뉴욕(New York), 뉴햄프셔(New Hampshire), 조지아(Georgia), 메릴랜드(Maryland), 코네티컷(Connecticut), 로드아일랜드(Lord Island), 델라웨어(Delaware), 노스캐롤라이나(N. Carolina), 뉴저지(New Jersey), 사우스캐롤라이나(S. Carolina),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등의 새로운 식민지들이 원주민들의 시체더미 위에 형성되었다.

 

 

(그림: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의 이주민들의 만행: 원주민 학살, 흑인 노예무역)

 

원주민 학살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각 식민지의 ‘선조’들은 극도의 비인간적이고 범죄적인 ‘흑인노예무역’을 단행하고 그들에게 죽음의 고역을 강요하였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의 식민지화와 동시에 이민국가 법률제도의 기초가 비로소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북아메리카 지역을 에스파냐, 포르투갈, 프랑스 등 여려 나라들이 분할 통치하던 초기에는 각 지역마다 해당 나라의 법률을 적용하였으며, 전체 지역에서 보편적인 효력을 가지는 하나의 법률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이 이 지역의 각 식민지를 차지한 이후에는 대체로 영국의 보통법이 적용되었으며, 매개 식민지들은 입법의 형식으로 보통법의 내용을 보충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의 극보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특징되는 보통법의 산만성과 비통일성, 복잡성 때문에, 영국 식민지들에서의 법률제도는 극히 난잡하였으며 보통법 규범들은 원시적인 ‘개척’ 단계에 처해 있는 식민지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매 식민지들은 자체로 임시헌장 성격을 가진 「기본법규」에 기초해 사회관리를 진행하였다. 당시 식민지 관리를 위한 대표적인 「기본법규」로서는 프리머스의 「메이플라워 서약」과 「코네티컷 기본법」 등을 들 수 있다.

 

 

(그림: 「메이플라워 서약」 체결 재현그림과 서약문)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은 1620년 영국에서 도망쳐 나온 개신교도들이 자기들이 타고 온 배였던 메이플라워호(Mayflower) 위에서 점령지 관리방식과 관련하여 공동으로 체결한 ‘계약’을 말한다. 극도의 영토팽창야욕과 침략야욕으로 가득 찬 그들은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선상에서 벌써 원주민 학살과 미래의 식민지 통치에 관한 죄악의 꿈을 법제화했던 것이다.

 

코네티컷 강 연안 3개 지역을 식민지로 강탈한 영국식 민주의자들은 1639년에 공동으로 「코네티컷 기본법(The Fundamental\orders of Connecticut)」으로 부르는 문건을 제정하여 ‘유한회사의 조직방식’에 따르는 식민지 정부를 조작하였다. 이 기본법은 북아메리카 역사에서 성문헌법의 기원으로 간주되었다. 일부 식민지들은 법률에 명문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기독교 『성서』를 사건 판결의 근거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때 영국은 당시 극도로 격화된 불안정한 국내 정세와 부르주아 혁명의 소용돌이 때문에 식민지 관리에 전혀 낮을 돌릴 수 없었다.

 

영국 부르주아 혁명이 결속된 이후인 17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은 자본주의 상공업의 급속한 발전을 위하여 북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에 대한 ‘압박’과 법률적 ‘통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하였다.

 

영국 통치세력은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자립적 발전을 억제하고 본토 자본가들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항해법」, 「통상법」, 「공업법」, 「재정법」 등을 마구 채택하여 식민지들의 이익에 저촉되는 불평등한 법질서를 강요하였다.

 

특히 영국 국왕은 내부 관리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구실로 식민지 관리에 관한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 회사의 ‘특허장’을 회수하고 그 식민지들을 국왕이 파견한 총독이 직접 관할통치 한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영국의 법률이 각 식민지에서 보편적인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국에서 파견되는 법관들로 구성되는 법정을 각 식민지에 설치하고 각종 사건들을 재판하게 했다. 식민지에서의 입법은 영국 행정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그것이 영국의 법률과 정책에 저촉되는 경우에는 모두 부결되었다. 이리하여 적지 않은 식민지가 국왕의 완전한 직할령으로 전락했으며 모든 식민지들에서는 영국의 보통법전통이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주민들이 ‘신대륙’에 가져온 것이란 바로 야만적인 학살과 영국의 보통법제도였다.

 

2. ‘독립’과 ‘연방’

 

 

(그림: 이른바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과 ‘미국 독립전쟁’ 기록화)

 

식민지 정부에 대한 영국의 노골적인 간섭정책은 자본주의 발전의 첫 철음을 겨우 떼기 시작한 식민지 개척자들의 불만을 크게 일으켰다. 13개 주의 식민지 정부들은 산업과 상업의 자유로운 발전과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영국의 전제적인 법령들을 고의적으로 위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영국 통치세력은 식민지 산업과 상업의 발전을 완전히 제한하고 식민주의자들을 순종시키기 위하여 1765년 「반란에 관한 법령」을 채택한 데 기초하여 식민지에 영국 군대를 파병하였다.

 

그리하여 영국 본토와 식민지 사이의 모순과 대립은 나날이 쌓이고 급해졌으며, 곳곳에서 영국 지배층을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1775년 4월 보스턴 부근에서 일어난 영국 군대와 식민지 무장군 사이의 충돌을 발단으로 드디어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복잡하고 첨예한 사회정치적 배경 하에서 1776년 5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각 식민지주 ‘대표’들로 구성된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되었고 회의는 7월 4일에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작성한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선포하였다. 바로 이 「독립선언서」에 의해 미합중국의 ‘분리독립’이 전 세계에 공포되었으며, 미국 국가통치제도를 확립할 수 있는 정치적 기초가 형성되었다.

 

 

(그림: 이른바 ‘미국 독립선언’)

 

「독립선언서」는 1787년 미국 헌법이 채택되기 이전에 발표된 최초의 헌법적 문건이었다. 「독립선언서」는 ‘인권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는 ‘천부인권’을 규정하면서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고 생명권, 자유권과 ‘행복 추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독립선언서」의 이 규정을 근거로 미합중국의 이른바 ‘건국자’들은 미국을 ‘자유’와 ‘평등’을 지향해 수립된 국가인 듯이 미화하였으며, 그에 속아 넘어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자유의 ‘천국’으로 찬미하였다.

 

그러나 「독립선언서」에 반영된 이 규정은 어디까지나 인종주의와 불평등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것을 온갖 감언이설로 미화한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독립선언서」에서 표현된 사람이라는 범주에 미국 원주민과 흑인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데서 표현된다. 원주민들을 총칼로 학살하고 그들의 시체더미 위에 ‘국가’라는 이민식의 정치 기구를 만들어낸 학살자, 날강도들에게 있어서 원주민이나 흑인은 사람이 아니라 도축장에 나선 짐승으로만 간주되었던 것이다.

 

결국 선언에서 규정된 ‘자유’와 ‘평등’은 인간 살육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며 소수 특권 계층의 탐욕적 요구를 ‘조물주(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신성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국 통치세력은 이 선언을 발표하면서 노예제를 규탄하는 조항들을 전부 삭제했다.

 

「독립선언서」는 ‘국민주권’ 원칙을 표방하면서 정부의 권력은 ‘민중(People)’이 준 것이고 정부 수립의 목적이 하늘이 준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데 있는 것만큼, 만일 정부가 ‘민중’의 의사를 배반하면 ‘민중’은 이 정부를 개편 혹은 폐지하고 새 정부를 세울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독립선언서」에서의 ‘민중’은 일하는 사람들을 뜻한 것이 아니라 학살과 약탈로 배를 불린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만을 의미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어떤 경우에도 민중이 될 수 없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실질적인 민중은 대륙의 원주민들과 노예무역으로 끌려온 수많은 흑인들, 자기의 성실한 노력으로 살아가는 빈민층이었다. 대륙회의에 참가하여 「독립선언서」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자들은 결코 민중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대표’하는 것은 극소수의 부유층에 지나지 않았다. 

 

민중 밖에서 민중 위에 군림해왔고 민중의 고혈을 짜내 배를 불린 날강도들이 자기들을 ‘민중’이라 자처하면서 선언에 ‘민중’이라는 개념을 도용한 것이야말로 천인공노할 파렴치한 짓이었다.

 

「독립선언서」에 규정한 ‘민중에 의한 정부 개편’론은 절대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며 부르주아 계급 내부의 요구와 이해관계만을 반영하고 이들 사이의 ‘권력이양’을 의미하였다. 「독립선언서」는 바로 미국 형성 초기 ‘민중’으로 가장한 작자들의 추악한 권력야욕을 ‘국민주권’으로 미화한 극히 반민중적인 것이었다.

 

「독립선언서」는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무역 등 분야에서 영국의 28가지 죄행을 열거한 다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벗어나 ‘공화국’을 수립하며 영국 국왕으로부터의 모든 예속관계와 영국과의 정치적 연계를 폐지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에 의하여 미국이라는 기형국가의 형성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것은 앞으로 닥쳐올 세계의 재난에 대한 예고였으며 뜻밖의 정치사생아의 출생을 알리는 쓸쓸한 종소리였다. 아직은 방금 태어난 미숙아였지만, 그것은 세상에 울음소리를 터뜨리기도 전에 벌써 미래 인류사회의 온갖 불행과 악덕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유럽 출신 범죄자 및 사기꾼들의 후손으로서 광활하고 비옥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잉태되어 생겨난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독립’ 후 어느 길로 나가겠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다.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이후 각 주는 속속 독립적인 ‘공화국’을 선포하고 주정부를 세웠으며 주 헌법을 채택하였다. 동시에 ‘독립’한 식민지 주들은 연합된 역량으로 영국을 견제하며 전체 대륙에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고 나아가서 세계에 대한 패권을 확립할 목적으로 서로 연결할 것을 희망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제2차 대륙회의는 장기간에 걸친 논쟁 끝에 마침내 1777년 11월 15일 「연방과 영구연합 조례(Articles of Confederation\and Perpetual\union)」(일명 「연방조례」)를 채택하였다.

 

「연방조례」는 미국 헌법 제도가 확립되기 이전 단계에서 만들어진 두 번째 헌법적 문건이었다. 「연방조례」에 의하여 반동을 추구하는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기틀이 형성되었다.

 

「연방조례」는 미국의 국가구조형식은 ‘연방제’이며 그 명칭은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것을 규정하였다.

 

대륙 전체가 아닌 북아메리카의 제한된 지역에 형성된 나라를 전 대륙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아메리카 합중국’이라 이름붙인 것은 결국 미국 지배층의 영토팽창야망을 집중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라는 정치사생아가 처음부터 세계제패의 꿈을 안고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도 없고 문화전통도 없으며 다양한 사회발전단계도 거치지 못한 갓 태어난 아이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간 큰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 미국의 영토 팽창과정. 밤색: 최초 독립선언 13개주(1783년), 흰색: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루이지애나(1803), 청록색 및 갈색: 에스파냐로부터 강탈한 플로리다(1819년), 파란색: 영국으로부터 강탈한 영토(1818년), 하늘색: 이른바 ‘텍사스 공화국’(1845년 합병), 분홍색: 멕시코로부터 강탈한 캘리포니아(1848년), 노란색: 영국과 협정을 맺어 획득한 북태평양 연안주(1846년), 주황색: ‘개즈던 매입’을 통해 멕시코에서 강탈한 영토(1853년), 연분홍: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알래스카(1867년), 암황색: 식민지로 만든 하와이(1898년))

 

실제로 미국은 국가 형성 이후 얼마 안 되는 매우 짧은 기간에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 주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강탈하여 아메리카 합중국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형성 당시 13 개 주에 38만 6,000km에 불과했던 미국 영토는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48개 주에 300만 km로서 8배나 늘어났다.

 

「연방조례」는 연방 체결의 목적이 공동 방어, ‘자유 보장’과 상호 간의 공공복리, 상호 간의 원조 의무 등을 위한 데 있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주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정한 조항으로서 한창 진행 중에 있는 독립전쟁에서 서로 연합하며 자본주의적 착취와 압박을 강화하여 자본주의를 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연합된 폭력으로 해당 지역에서의 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으려는 정치적 목적을 반영하고 있었다.

 

대영관계에서의 독자성,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 노동운동 말살이라는 각 식민지 부르주아지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바로 연방제의 전제로 되었던 것이다.

 

「연방조례」는 연방과 주의 상호관계를 규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연방조례」는 각 주는 자기의 주권, 자유와 독립 그리고 합중국 국회에 준 권력 외의 모든 권리를 가지며 합중국 국회는 전쟁 선포 및 강화체결권, 대사 파견 및 접수권, 우편 및 체신 관리권, 각 주에서 조직된 육군 관리권, 해사범죄재판권 등 대외 사무와 주 사이의 사무를 처리할 권한만을 가지면서 각 주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연방과 지역사이의 권력분배를 규정한 이 조항을 분석해 보면 미국이 초기에는 허약한 연방과 강력한 주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방조례」는 연방을 점차 강화하여 미국이 연방 권력에 의한 관료주의적 중앙집권화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전제로 채택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그 후의 권력구조 확립에서 연방 우위를 법제화하여 병립된 주들의 기계적인 모임에 불과했던 미국을 단일화했다.

 

「연방조례」는 연방의 최고 권력기관은 일원제의 국회라는 것을 규정하였다. 「연방조례」는 상설적인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을 설립하지 않았으며 국회폐회기간에만 ‘각 주위원회’를 설치하여 국회의 권력을 대신할 수 있게 하였다. 동시에 연방국회의 권력행사는 반드시 13개 주 가운데서 9개 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부르주아 통치제도 확립과 관련한 일반원칙의 견지에서 볼 때 「연방조례」는 최고 권력기관 사이의 ‘권력분립’을 표방하면서 그 속에서 행정부 우위를 추구하는 ‘삼권분립’이 아니라 일종의 대표기관을 최고기관으로 한다고 하는 ‘의회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고 권력기관으로서의 의회의 지위 및 그 권한 행사에 대한 「연방조례」의 규제는 독점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적 요구와 이해관계의 반영으로서 초기 미국 국가통치제도에 구현된 기만적인 ‘민주정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연방조례」는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골격을 처음으로 형성하여 그 후의 미국 국가통치제도 발전에서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연방조례」는 하나의 전연방적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단지 나뉘어 존재하는 각 주들 사이에 ‘우호동맹’을 형성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는 「연방조례」의 채택으로 이루어진 미국연방이 고유한 의미에서의 연방국가가 아니라 단순한 ‘국가연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778년 11월에 11개 주가 「연방조례」를 비준하고 연방에 가입하였으며, 1781년 3월에야 「연방조례」는 비로소 13개 주의 비준을 얻어 완전한 효력을 얻었다.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형성과정에서 차지하는 「독립선언서」와 「연방조례」의 지위는 그것들이 국가통치제도 확립을 위한 기초와 기틀을 마련한 것에 있지 않고 미국인들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침략, 영토팽창의 역사를 조직적인 폭력에 기초해 임의로 자행할 수 있는 국가 법률적인 담보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때문에 연방국가 형성 이후 미국 통치세력은 원주민 말살과 영토팽창을 국가 정책으로 정립하고 미친 듯이 침략과 약탈, 전쟁을 감행했던 것이다.

 

역사는 살육과 팽창열에 극도로 환장한 미국인들의 이른바 ‘프론티어 정신’(Frontier Spirit, =서부개척정신)을 조직적인 학살범죄의 대명사로 영원히 잊지 않고 있다.

 

3. ‘쇠사슬’과 헌법

 


 

「독립선언서」와 「연방조례」가 채택된 이후에도 수년 동안이나 지속된 독립전쟁은 영국이 1783년 9월 3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미합중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독립전쟁 종전 이후 미국은 침략과 약탈로 비대해졌으며 새로운 발전기에 들어섰다. 자본주의 경제와 농업생산이 급속히 발전했으며 인구와 영토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팽창했다. 그러나 「연방조례」에 근거해 형성된 ‘우호동맹’은 역사발전의 새로운 요구에 적응할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대내외적 모순과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그림: 1873년 미국 대불황의 시초가 된 뉴욕 제4은행의 ‘뱅크런 사태’)

 

경제적 모순이 심화되고 극심한 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 주들이 제공하는 경영비는 매우 부족했으며 화폐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각 주가 독립적인 관세와 화폐발행권을 가지고 있어 보호무역주의가 성행했으며 그것은 국내 통일시장의 형성과 경제교류를 극도로 저해하였다. 외국상품이 대량적으로 들어와 미국의 자본주의 공업발전을 크게 억제했지만, 연방은 외국과 상업조약을 맺을 권한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미국 자본가들의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리하여 미국 자본가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하여 국내적으로 통일시장을 형성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 발전시키기 위한 권력적 담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해 나섰다.

 

대외적 모순도 심해졌다. 영국과 프랑스, 에스파냐 등 유럽 열강들은 새롭게 출현한 미국의 정치, 경제적 발전을 방해하면서 미국 영토를 끊임없이 위협하였다. 그러나 매개 주는 독립전쟁 후 해당 지역의 내정에만 몰두하면서 연방을 강화하여 미국의 ‘독립’을 튼튼히 하는데 큰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이리하여 미국 자본가들과 통치세력 사이에서 ‘안보위협’에 대한 공포심리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중앙집권적인 연방을 형성하고 강화하여 미국의 ‘독립’을 지키는 것을 사활적 요구로 제기하는 데로 이어졌다.

 

 

(그림: 다니엘 셰이스의 매사추세츠 농민항쟁(1786))

 

계급적 모순이 더욱 첨예화되었다. 독립전쟁 후 미국의 자본가, 농장주들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한층 강화하여 정치경제적 지반을 튼튼히 하는데 혈안이 되어 날뛰었으며 자영농과 노동자, 수공업자를 비롯한 수많은 근로민중의 처지는 더욱 나빠졌다. 민중은 토지분배, 채무근절, 노동조건 개선, 정치적 권리의 평등 등을 요구하여 투쟁에 나섰으며, 그것은 각 지방에서 무력항쟁으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무력항쟁이 바로 1786년 매사추세츠에서 자영농 출신의 다니엘 셰이스(Daniel Shays)의 지휘 아래 일어난 자영농과 빈민들의 항쟁이었다. 이 항쟁은 미국 통치세력의 기만술과 무력 탄압에 의해 반년 만에 진압당하고 말았지만, 미국 통치세력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가까스로 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 미국 자본가들은 지금까지 미국이 의거해 오던 「연방조례」의 약점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연방조례」의 취약성을 개탄하면서 그것을 ‘모래로 만든 밧줄’에 비유했다.

 

그리하여 미국 통치세력은 ‘모래밧줄’ 대신 근로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권력으로 탄압, 말살하고 그들을 자본의 착취에 더더욱 얽매이게 할 수 있는 견고한 쇠사슬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강력한 중앙집권 확립을 목적으로 한 헌법이었다.

 

미국 헌법은 이렇게 미국 사회를 ‘모래밧줄’대신 ‘쇠사슬’로 얽어매는 헌법, ‘쇠사슬’ 헌법으로 생겨났다. 당시 미국에서 정권을 장악한 것은 공장주와 대농장주, 선주, 광산주, 고리대금업자, 변호사 등 대 부르주아지와 극소수 부유층이었으며, 그들은 헌법 제정을 통해 무한한 탐욕을 권력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국가통치제도를 확립하여 심각해진 정치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고 자기들의 통치 지위를 튼튼히 하는 데 공동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그리하여 미국 국가통치제도 확립과 역사발전에서 ‘전환적 의의’를 가지는 헌법제정을 위한 제헌회의가 1787년 5월 25일부터 9월 17일 사이에 필라델피아에서 진행되었다.

 

미국에서 헌법제정은 극히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헌법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의 기본제도와 원칙, 특히 국가정치제도를 규정하는 나라의 기본법이다. 때문에 헌법은 오직 최고주권기관, 최고대표기관에 의해서만, 혹은 국민투표에 의해 기타 법과 다른 특별한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채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국가의 존재유무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일인 헌법제정에서 민주주의를 고도로 보장하여 전체 민중의 의사를 다 같이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이다.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들도 이러한 요구에 따라 헌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헌법은 제헌 당시 최고 권력기관으로 인정되던 연방국회나 국민투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참가 없이 국회 외적으로 소집된 연방회의에서, 회의 참가자의 대다수가 아니라 절반을 겨우 넘기는 숫자에 의해,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극비에 채택된 헌법이다. 초보적인 제헌절차도, 기초적인 제헌요구도 준수하지 못한 헌법이 민주적인 헌법으로 될 수 없고 그 법에 기초하여 세워진 국가통치제도가 민주제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이치이다.

 

「연방조례」를 수정하는 것을 의제로 하여 5월 25일에 소집된 연방회의는 회의 도중에 헌법제정과 관련한 의안이 제기되면서 헌법제정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제헌회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헌회의의 ‘대표’로 70명이 선출되었지만, 회의에 실제 출석한 것은 불과 55명뿐이었고 그나마도 회의의 서로 다른 단계들에 참가하였다.

 

제헌회의에 참가한자들은 다 같은 자본가 계급의 대표자들로서 부르주아의 이익을 옹호하는 통치제도를 수립하는데 대해서는 공동된 요구를 제기하였으나, 각 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서는 서로 대립했으며 그들은 연방파와 반연방파로 갈라져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진행된 제헌회의의 전 과정은 극비에 붙여져 일반 대중은 방청조차도 할 수 없었으며 회의기록도 하지 않았다. 제헌회의 과정에 ‘공민의 기본권리’를 규정할 데 대한 방안도 제기되었으나 그것은 10:0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이것은 제헌회의 목적 자체가 민중 배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제헌회의에서 가절된 헌법초안은 1787년 9월 17일에 39명의 ‘대표’들의 서명을 받은 후 뉴욕에서 소집된 연방국회에 제출되어 통과되었다. 이어 헌법초안은 각 주의 ‘비준’에 넘겨졌으나, 그것은 진정한 민주적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는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래서 각 주의 자본가들은 헌법에 ‘권리 법안’을 추가한다는 기만적인 약속을 한 후에 헌법비준을 강제로 결정하였다.

 

 

(그림: 조지프 케플러, 「의회의 보스들(The Bosses of the Senate)」(1899))

 

미국에서의 헌법채택 과정은 철두철미 자본가 계급의 권력탐욕만을 헌법화하는 과정이었으며, 자본가 계급 내부에서의 권력조정을 위한 싸움과정이었다. 선거에 미국의 전체 시민 중 극소수를 차지하는 백인남자들만이 참가하여 제헌회의와 주 ‘대표회의’에 민중의 대표는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민중의 의사는 헌법에 전혀 구현될 수 없었다. 헌법제정과 관련하여 형성된 연방파와 반연방파도 민중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권력분배를 놓고 추악한 쟁탈전을 벌인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었다.

 

민중을 떠나 민주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민중의 참가 없이 만들어진 헌법도 민주 헌법으로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통치세력은 주제넘게 미국 헌법이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모범 헌법’이나 되는 것처럼 속이면서 그에 의해 확립된 국가통치제도를 다른 나라들에 강요하고 있다.

 

헌법에 의해 확립된 미국 국가통치제도는 온갖 기만과 거짓으로 자본주의를 미화하면서 민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가장 횡포하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말살할 수 있도록 담보하는 극히 반민중적인 제도이다.

 

 

(그림: 미국 삼권분립의 실체)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기만성과 위선성은 헌법이 ‘삼권분립’, ‘상호견제’의 원칙에 따라 국가권력을 배분한 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삼권분립’, ‘상호견제’는 헌법에 해여 확립된 미국 국가권력조직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헌법은 국회, 대통령, 대법원이 각각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권을 행사하며 상호 ‘의존’하고 ‘견제’하면서 국가권력실현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매디슨을 비롯한 헌법 제정자들이 그 이전 시기 유럽의 존 로크(John Locke)와 몽떼스끼외(Montesquieu)가 제창하였던 비과학적이고 기만적인 권력분립사상을 가져와 취사선택한 권력구조이다. 남의 이론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것은 자기의 고유한 사상과 정치이념, 문화전통이 없는 무식한 미국인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국회는 입법권, 정부 및 법원조직 승인권, 조약 비준권, 탄핵심판권 등을 가지고 대통령과 사법기관을 ‘견제’하고 대통령은 법안거부권, 서신권, 판사임명권 등을 가지고 국회와 사법기관을 ‘통제’하며 사법기관은 사법심사권 등을 가지고 정부와 국회를 ‘제약’한다는 것이 미국 국가통치제도에 반영된 ‘삼권분립’, ‘상호견제’의 주요 내용이다.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기본원칙’으로 간주되는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가면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이다. 일정한 국가통치제도가 민주적인 것으로 되려면 그것은 마땅히 민중의 의사를 구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초보적인 정치용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협잡꾼들이 만들어 낸 ‘권력분립’이라는 것은 민중의 요구 실현을 위한 ‘권력분립’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 내부에서의 주권실현과 조정을 위한 내적인 ‘권력분립’이다. ‘권력분립’의 결과, 나뉜 매개 권력은 사회의 다양한 계급, 계층에게 속하지 않고 오직 한 개의 계급, 자본가 계급에게만 속한다. 결국 미국에서 ‘권력분립’이란 자본가 계급의 손에 틀어쥔 유일주권에 분립의 외피를 씌워 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국가통치제도가 확립되어 수백 년의 역사가 흘러갔으나 민중은 언제 한 번도 ‘분립민권력’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민중과 괴리된 국가통치제도는 절대로 민주적인 것으로 될 수 없다. ‘삼권분립’, ‘상호견제’는 오직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통치제도를 미화하기 위한 기만적인 선전물에 불과하다.

 

미국 국가통치제도의 횡포성과 파렴치성은 헌법이 전횡적인 대통령제를 규정하고 있는 데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헌법은 미국을 연방제를 실시하는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규정하였다. 선거되는 대통령을 ‘국가원수’, ‘행정수반’으로 하는 국가가 바로 대통령제 공화국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 ‘행정수반’으로서 가지는 권력 이외에도 기타 국가기관들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국가기관들과의 관계에서 볼 때 대통령이 그 기관들에 대해 행사하는 권한은 절대적인 의의를 가지지만, 기타 기관들이 대통령에 대해 행사하는 권한은 매우 보잘 것 없다. 미국 대통령은 바로 국가의 최고실권, 사실상 무한한 절대권을 가지고 대 독점 자본가계급의 이익 실현을 강행한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중세기의 전제군주제와 내용상에서 똑같은 전횡적인 제도이다. ‘권력분립’이 미국의 국가통치제도를 ‘민주’적인 것으로 묘사하기 위한 가면이라면 그 가면 속에서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민중에 대한 독재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행정만능주의이다.

 

미국통치세력은 1787년 헌법에 의해 확립된 국가통치제도의 이와 같은 기본 원칙과 틀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앵글로색슨족 후예들의 보수성과도 관련되겠지만, 그 보다는 ‘민주’의 외피 속에서 파쑈화를 추구하려는 자본가 계급의 야심적 요구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미국통치세력은 자본주의 발전의 변화에 따라 헌법 수정안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국가통치제도의 극히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제도들을 약간씩 달리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수정안을 통한 국가통치제도의 사소한 변화마저도 민중을 자본의 노예로 더욱 철저히 전락시키고 그들을 사회정치적으로 구속하고 다스리기 위한 법률제도를 구축하는 방향을 지향했다.

 

비록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화려한 미사여구로 엮어진 수정안들도 일부 있지만, 내용을 음미해 보면 그것들이 하나 같이 썩어빠졌고 역겨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환경과 문화전통, 민족특성 등의 차이로 모든 나라들이 국가형성과 국가통치제도 확립에서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갈 수 있지만 아직까지 어느 나라도 미국과 같은 그려한 야수성과 침략성, 흉악성과 교활성을 띠고 형성된 적은 없다.

 

 

(그림: 19세기 미국의 식민지 약탈 풍자화)

 

미국의 형성과 국가통치제도의 확립, 이것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전쟁으로 비대해진 날강도 집단과 그에 의한 지배체재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전 인류에게 있어서 불행하기 그지없는 사건이 되었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좋으나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형성에 대한 인류의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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