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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종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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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11-08 10: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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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종교관 

 

 

나는 1979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어떻게 하면 기독교가 조국통일에 기여할 수 있을까 연구해 왔다. 왜 이남의 대다수 기독교 교인들은 이북을 <적그리스도>로 여기고 증오하며 통일을 적극 반대하는 것일까? 이들을 조국통일성업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길은 없을까? 나는 계속 <통일신학>을 모색해 왔다.  

 

1932년 나치의 극심한 박해로 독일에서는 더는 교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1955년 정년퇴직한 후 하버드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그 후 시카고대학의 신학부에서 죽을 때까지 조직신학을 강의한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1933년에 쓴 그의 저서 [사회주의의 결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에 종교의 정의가 인간의 근원(roots)으로부터 탈피하여 살려고 투쟁하는 것이라면 사회주의란 하나의 종교운동이다.”(79페이지)

 

틸리히가 말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란 바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문제 그리고 흙, 가족, 국가, 도덕적, 법적, 또는 종교적 전통 등등에 얽매어 사는 문제들을 말한다. 그는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인간이 당면한 현실적인 <요구>, 예를 들면 의식주 문제의 해결, 인권회복, 외세의 지배로부터 자주독립하는 문제, 전쟁과 질병, 재난 등이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역설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영혼이란 무엇이냐?”, “종교란 무엇이냐?” “과연 내세란 존재하는가?” 등의 끝도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몰두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투쟁하는 것보다 인간이 당면한 현실적 요구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에 몰두하는 것이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제도적인 종교들이 추구하고 있는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회변혁운동>이야말로 <종교적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폴 틸리히는 위에 언급한 책에서 다시 지적하기를,

 

“이러한 인간의 정의를 위한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경험하지 못하는 자들은 사회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정신을 가지고 투쟁해본 경험이 없는 자들이 아무리 떠벌여도 단지 밖에서 그것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위 책 7페이지)

 

신학자 틸리히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도 그 시대의 요구를 보고 구경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직면한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관자의 입장을 버리고, 반드시 결단하고 헌신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종교심>이란 <초자연적 신>에 대한 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구별되는 독특한 경험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미국 철학자 죤 듀이(1859~1952)는 <종교(religion)>와 <종교심(religious)>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종교>란 항상 제도적 기구를 가진 독특한 신앙 신조들과 실천사항들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심>이란 어떤 제도적 실체나 신앙 신조의 체계를 뜻하지 않고 모든 대상과 모든 인간의 이상(ideal)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뜻한다”([공통의 신앙], 1934, 9~10페이지).

 

듀이는 인간 공동의 그리고 자연스러운 관계와 동떨어진 초자연적 종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파괴하고 격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듀이는 현 제도적 종교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경험 속에 내포된 <종교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종교심>이란 <경험의 질적인 내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우리가 유일하게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경험 속에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적응력>, <새로운 방향감각>, 그와 더불어 얼마나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주느냐 하는 영향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독특한 경험이 질적으로 종교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초자연적 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경험의 질적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느냐 하는 것이라고 듀이는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독특한 종교의 교리나 초자연적 신에게 헌신하는 것만이 종교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내용> 속에 종교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각자가 민주주의, 정의, 평화, 평등, 자주 등과 같은 포괄적 이상(ideal)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통일을 이루는 곳에는 <종교적인 경험의 질적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고 죤 듀이는 보았다.

 

사실상 이들 인간적인 이상들을 실천하기 위하여서는 자기 생명을 내놓을 때도 있어야 하고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죤 두이는 그의 책 [공통의 신앙] 27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심>을 정의 내리고 있다.

 

“Any activity pursued in behalf of an ideal end against obstacles\and in spite of threats of personal loss because of conviction of its general\and enduring value is religious in quality. <어느 한 궁극적인 이상이 지닌 그 일반적이고 영구적인 가치에 대한 확신 때문에 많은 장애물과 개인적인 손실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추구되는 어떤 활동도 질적인 차원에서는 종교적(영적)이다.>(위 책 27페이지)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인간적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해방 후 김구, 여운형 등 얼마나 많은 애국자가 생명을 바쳤으며, 그 후 4.19와 5.18, 6.29 그리고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이남의 청년들과 진보적 인사들이 감옥에 가고 어려움(obstacles)을 당했으며 심지어 생명까지도 잃었(personal loss)는가? 얼마나 많은 애국자가 <조국통일>이라는 궁극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가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었는가? 전태일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인간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헌신하다 생명까지 바쳤다. 듀이는 이러한 <인간적인 이상들>을 실현하기 위여 헌신하는 모든 활동을 다 <영적인 종교적 활동>이라고 보고 있다. 기독교에만 [영적인 것], [종교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다.

 

죤 듀이처럼 인간 유기체와 자연적,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종교심>을 해석하게 되면 여러 종교적 신조나 도그마 그리고 여러 사상, 철학, 이념으로 분열된 집단과 집단,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장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로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고 남과 북으로 78년 동안 분단된 코리아의 현실 속에서 <인간이 더 나은 자연과 사회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간의 이상에 헌신하는 곳에는 종교적 가치가 있다>고 폴 틸리히와 듀이처럼 해석하게 되면 반드시 이북이 <비종교적>이라고 적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북도 인류의 생명인 <자주성>이라는 인간적 이상(ideal end)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사회주의>라는 인간적 이상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극히 종교적이다. 그리고 북의 인민들은 모두 분단된 우리 코리아 민족의 지상과제(ideal end)인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으므로 아주 종교적이다. 이들 북의 인민들은 <자주성>과 <사회주의>라는 인간적 이상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연합세력들과 이남의 보수세력들로부터 항시적으로 전쟁과 경제제재, 체제전복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궁극적 이상인 <자주성>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으니 폴 틸리히와 듀이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2017년 핵무력의 완성을 선포한 전략국가 이북은 이제부터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연합세력이 만들어놓은 불공평한 국제질서를 과감하게 바꾸어 이 세상의 모든 나라의 <자주권>과 <평등권>이 보장되고 신뢰와 존중의 토대 위에 서로 협조해나가는 <공정한 인류사회>를 건설해 나가겠다고 천명하였다. 이북의 이러한 인간의 당면한 현실적인 <요구>인, <평등한 국제질서>와 자주권과 평등권이 보장된 <공정한 인류사회>의 건설이라는 궁극적 이상(ideal end)을 위하여 헌신하는 활동이야말로 폴 틸리히와 죤 듀이에 의하면 참으로 <종교적>이다. 폴 틸리히와 죤 듀이의 종교심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이남보다도 오히려 이북이 더 종교적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경험의 질적 내용>으로 <종교심>을 평가하게 되면 이북에 종교의 자유가 있느니 없느니 시비할 필요도 없고, 이북이 기독교 신을 믿지 않는다고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조국통일을 위한 <통일신학>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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