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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총련의 힘〉조국왕래, 동포들의 요망을 실현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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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9-22 08: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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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의 힘〉조국왕래, 동포들의 요망을 실현하는 길

 

 

 

오사까-도꾜 도보행진 37일간의 추억


눈앞에 놓인 추억품은 반세기가 넘도록 소중히 간수하여온 흑백사진이다. 《요청단》의 글발이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도보행진 중계점에서 상봉한 동포들과 함께 촬영기앞에 섰다.

 

 

 


도보행진의 중계점에서 상봉한 동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재일조선인조국왕래요청단》 성원들 (정수가씨 제공) 

 

 

《이들과 함께 지낸 37일간, 인생을 통해 잊을수 없는 감격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정수가씨(82살)는 《재일조선인조국왕래요청단》의 한 성원이였다. 오사까-도꾜(大阪-東京) 도보행진의 연도에서 지지호소의 음성을 울리는 선전원을 맡았다.

 

 

정당한 요구, 연도에서의 호응


 


 


1960년대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국교관계의 유무를 불문하고 모든 재일외국인들에게는 해외에로의 자유로운 왕래가 인정되였다. 그런데도 일본당국은 유독 재일조선인들에 대해서만은 해외려행의 자유뿐만 아니라 조국왕래의 자유마저 유린하고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향하여 첫 귀국선이 출항(1959년 12월)한 때로부터 4년이 지난 1963년에 총련은 조국왕래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방침화하였다. 일본 각지에서 서명운동과 요청행동,  군중집회와 출판물배포활동이 전개되였다.

 

이듬해 1964년의 3월 16일부터 4월 21일까지 《재일조선인조국왕래요청단》의 오사까-도꾜간 도보행진이  진행되였다. 요청단이 걸었던 총 610㎞의 로정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리고 행진에 합세한 동포들이 연도에서 일본시민들에 대한 해설선전과 지지요청활동을 벌렸다.




오사까-도꾜 도보행진이 시작된 날의 《조선신보》(1964년 3월 16일부) 지면 

 

 

3월 16일, 문우평씨(84살)는 오사까 오기마찌공원(扇町公園)에 있었다. 1만여명의 참가밑에 조국왕래요청조선인대회가 열리여 요청단이 도꾜를 향하여 장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요청단은 열광적인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조국왕래는 남의 일이 아니였지요. 나도 요청단과 함께 오사까(大阪)를 출발하여 교또(京都)를 거쳐 시가(滋賀)의  오오쯔(大津)까지 걸었습니다. 》

 

당시 조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문우평씨는 9남매로서 제일 큰 누나가 1959년에 귀국하였다. 그후 다섯번째 누나에게서 가족들과 함께 귀국할데 대한 상담을 받았을 때 그는 《누나들이 먼저 가는것도 괜찮다.》고 응하였다. 그 자신도 조고 동창생들과 함께 귀국할 생각이였다. 그런데 모친이 병을 앓고 운신을 하지 못해 일본에 머무르게 되였다.

 

《귀국한 누나에게서 안부를 전하는 편지가 오게 되면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몰려왔지요.》,

 

행진대렬에는 문우평씨처럼 가족, 친척들이 귀국한 동포들이 있었다. 공화국 북반부에 고향을 두고  수십년간 망향의 정을 안고 살아온 동포들도 있었다.

 

람홍색 국기를 휘날리며 오기마찌공원(扇町公園)을 출발한 행진대렬은 덴로꾸(天六), 하기시요도가와(東淀川), 모리구찌(守口), 스이따(吹田)를 거쳐 첫날째 중계지인 이바라기시(茨木市)에 도착하였다. 2,500여명의 동포들이 요청단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일본시민들이 연도에서 성원을 보냈다. 히가시요도가와(東淀川)의 공장지대를 지나갈 때에는  《일조친선 만세!》,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의 조국왕래를 즉시 인정하라!》는 로동자들의 구호가 터져올랐다. 스이따시청(吹田市庁)앞에서는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요청단 단장에게 약소하나마 써달라고 금일봉을 전달하였다.

 

《총련의 주장과 요구는 정당하며 일본에도 여기에 호응하는 량심은 있다.》 행진대렬에 속하면서 문우평씨는 새삼스레 느꼈다고 한다.

 

《회상기》에서 배운 불굴의 정신





 

그날 이바라끼시(茨木市) 쥬오공원(中央公園)에서 열린 군중집회에서 인사한 요청단의 최영진단장은 일본인구의 75%를 포괄하는 911개의 지방자치체들이 조선공민들의 조국왕래자유실현을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한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조국에 오가는 길을 틔우는 이 길을 모든 힘을 다하여 끝까지 걸어내고야 말것》이라고 말하였다.

 

요청단은 11명의 단원들과 선전원, 수원들로 구성되였다.

 

《선전원인 나는 방송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행진하는 다른 성원들은 발가락에 자꾸만 물집이 생겼고   나중에는 부어오른 발가락을 붕대로 감고 이를 악물며 걸었습니다.》

 

당시 조청 효고현본부 지도원이였던 정수가씨에게도 귀국한 녀동생이 있었다. 요청단에 망라되였을 때 모친은 《조국왕래의 응당한 권리는 꼭 실현해야 한다며 딸의 등을 밀어주었다.》고 한다.

 

《우린 행진하는 도중 이르는 곳마다에서 재일조선공민의 당당한 요구를 열성을 다하여 일본국민들에게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끝나면 밤 늦게까지 그날의 사업을 총화하고 몇시간 잠 잘사이도 없이 아침 일찌기 일어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학습했습니다. 불굴의 정신을 지니기 위해 그런 일과를 짠겁니다. 힘이 들 때면 우리는 조국으로 진군하던 항일유격대원들을 회상하면서 더욱 용기백백하여 힘차게  발걸음을 옯겼습니다.》

 

요청단 성원들은 매일 장거리를 행진하면서도 휴계시간에는 상봉한 지역의 동포들과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면서 락천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요청단의 모습은 함께 행진한 동포들, 연도에서 성원을 보낸 일본시민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한편 요청단 성원들도 행진을 하면서 많은것을 보고 배웠다.

 

《도꾜(東京)를 향한 마지막 중계지, 가나가와(神奈川)에서 목격한 장면들이 생생합니다. 하꼬네(箱根)를 넘는 험한 길, 하늘을 나는 헬리꼽터에서 뿌려진 삐라… 선전원인 나는 난생 처음으로 헬리꼽터를 타고 선전활동을 벌렸습니다.》

 

요청단이 요꼬하마시청(横浜市庁)을 출발할 때에는 800여명의 동포들이 따라섰는데 연도에서 환영한 동포들이 속속 참가하여 가와사끼시(川崎市)에서는 4천여명으로 불어났다. 행진대렬의 길이는 연연 3㎞에 달했다.

 

《귀국한 외손자를 꼭 한번 만나보겠다고 행진에 나선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외손자는 걷지 못해 일본의 병원을 다녀도 고칠수 없었는데 조국의 의사, 간호원들이 자기의 살과 뼈를 떼고 환자에 붙여달라고 나섰고 치료의 결과 외손자가 제발로 걷게 되였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읽고난 할머니와 그의 딸은  조국왕래서명을 1만6천필이나 받아냈고 요청단이 가나가와(神奈川)에 들어와서 행진하는 7일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걸었습니다. <강의한 조선의 어머니>, 그의 억센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국과 동포들을 위해 일하는 녀성활동가로서 평생을 살아가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4월 21일 도꾜(東京)히바야야외음악당(日比谷音楽堂)에서 조국왕래요청재일조선인중앙대회가 열렸다. 요청단을 맞이한 1만4천여명의 동포들은 흥분에 들끓었다.

 

37일간에 걸친 도보행진에 5만1,000여명이 참가하고 각지에서 열린 환영환송대회에는 15만 7,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조국왕래지지결의를 채택한 지방자치체는 일본인구의 80%를 포괄하는 970여개로 불어났다.

 

중앙대회가 열린 날, 요청단은 그 기간에 각지에서 의탁받은 요청서와 1천만명의 서명중, 500만명분의 서명을 가지고 일본국회에 청원하였다.

 

이튿날은 중앙대회에서 채택된 요청문과 500만명분의 서명을 가지고 일본정부에 대한 요청을 진행하였다.

 

《오히라 마사요시외상(大平正芳外相)을 만났습니다. 요청단 단장이 재일동포들의 간절한 념원을 실현하기 위해 오사까-도꾜간(大阪-東京)의 길을 걸어왔고 많은 일본사람들로부터 열렬한 성원과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외상(外相)의 대응은 그야말로 랭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도보행진의 나날에 우리는 승리를 쟁취하는 힘을 보았습니다.》

 

 

일본정부로부터 재입국허가서와 증명서를  받은 2명의 동포들에 의해 조국왕래가 처음으로 실현되였다. (1965년 12월 30일부 《조선신보》)

 

동포들의 투쟁은 계속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12월 28일에 일본정부로부터 재입국허가서와 증명서를  받은 2명의 동포들에 의해 조국왕래가 처음으로 실현되였다. 이 시점에서 조국왕래지지결의를 채택한 지방자치체는 일본인구의 85%를 포괄하는 1,065개에 달하고있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오늘도 계속되고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정당합니다. 자기 힘을 믿고 꿋꿋이 싸워야 합니다.》

 

도보행진의 로정에서 다진 결의대로 한평생 조국과 동포들을 위한 길을 걸어온 정수가씨는 추억깊은 흑백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드놀지 않은 신념에 대하여 말하고있었다.

 

(김지영기자)

 

(출처: 9월 23일부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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