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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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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9-09 13:2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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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8)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제2장 김일성주의의 견인력의 원천

 

 

제 3장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

 

 

제 4장 민중중심의 사회역사관의 독창성 문제

 

 

제 5장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의 독창성 문제



제 1절 혁명적 수령관의 본질에 관한 논의


(1) 혁명적 수령관의 본질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에 대하여 특히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수령관을 부정하는 각종 논리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주: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을 왜곡하고 거부하는 논리들을 크게 두가지 경향으로 갈라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견지에서 수령관을 부정하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개인주의에 바탕하여 수령의 특출한 지위와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이고 ‘전체주의'라고 지적하면서 수령의 사상과 영도에 충성하는 것을 ‘획일주의’ 혹 ‘개인독재"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해는 개인주의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보는 부르조아적 관점이며 노동자계급의 수령의 영도를 부정함으로써 사회변혁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민중을 분렬시키며 민중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려는 자본가계급의 반사회주의 선전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에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이론적 설득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전체주의의 반동적 본질은 개인은 전체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미명아래 반동적 통치계급의 탐욕적인 이익을 위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데 있다."(1)


원래 전체주의는 파쇼독재자들의 정치이념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전체주의를 저들의 파쇼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민족자체, 국가전체를 위하여서는 그 어떤 노동운동을 비롯한 계급투쟁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근로민중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 권리도 말살하고 전대미문의 야수적인 폭압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전체주의에서 말하는 '전체'란 민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가, 대지주, 반동관료배, 군벌과 같은 극소수 특권층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전체주의는 곧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을 말살하기 위한 기만적인 구호였으며 소수 특권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개인독재를 가리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체주의는 곧 ‘권위주의,’ ‘개인독재,’ ‘획일주의’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중자신의 자주적 의사와 요구를 집대성하고 민중자신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변혁운동을 지도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와 그것을 받들어 나가는 민중자신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전체주의,’ ‘권위주의,’ ‘개인독재’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의 사회변혁운동 자체에 대한 전면부정, 민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전면부정을 바탕으로 하여 소수 특권계급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설교하는 파쇼통치배들의 반동적 정치이념을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사회변혁의 원리,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정치이념과 동일시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주의적 입장에서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을 부정하는 경향입니다. 이들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수령을 탁월한 개인과 동일시하고 주체의 수령관을 '수령 절대화론' 혹은 '개인 숭배론’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령의 지위에 관한 주체적 견해를 '계급화해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수령의 역할에 관한 주체적 견해에 '자각론’을 대치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수령에게 충효성을 바치는 민중의 추앙심을 '종교적 교권주의’로 보고 있습니다.


나: 그러면 먼저 주체의 수령관의 혁명적 본질과 내용을 요약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주: 우리는 민중이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체라는 주체의 진리를 터득하면서 민족, 민중이 어떻게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힘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며 역사를 전진시켜 나가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민족, 민중의 수난의 역사가 남긴 심각한 교훈은 탁월한 수령을 모시지 못한 민족, 민중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며 자기운명을 성과적으로 개척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태는 탁월한 수령을 모시지 못하면 피흘려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도 수호하지 못하고 다시 착취와 억압의 올가미를 쓰게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역사발전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에 의해 담보되며 민중이 역사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려면 수령관을 올바로 정립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전개된 민중중심의 주체철학에 의해서 비로소 혁명적 수령관이 정립되었습니다. 수령관은 한마디로 말하여 역사발전과 사회변혁운동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며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체의 수령관의 근본특징은 첫째로 수령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의 전일적 체계라는 데 있습니다. 맑스주의에서는 수령이 한낱 탁월한 개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수령관이라는 문제의식조차 제기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맑스주의에서는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이론이 전개되고 자연사적 과정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것이 주되는 사명이었기 때문에 수령관이 민중의 운명, 사회변혁운동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제기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개인에 대한 도덕적 의리의 문제가 단편적으로 제기되었을 뿐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에 관한 문제는 상정될 수조차 없었습니다.


주체철학에 의하여 비로소 수령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에 대한 전일적 체계로서 완성된 구성체계를 갖춘 수령관이 정립될 수 있었습니다. 주체의 수령관의 근본적 특징은 둘째로 역사발전에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를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지위와 역할과의 통일 속에서 새롭게 밝힌 수령관이라는 데 있습니다. 수령은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최고의 뇌수, 민중결집의 구심점이며 민중의 조직적 의사의 체현자, 민중의 최고의 대표자입니다. 물론 역사발전에서 영웅이나 장군, 과학자, 문예인, 정치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의 조직적 의사를 체현하고 있는 대표자가 아니며 민중이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되게 하는 중심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별적 집단이나 계층의 의사를 대변하는 개인과 수령은 엄밀히 구별되며 수령은 탁월한 개인의 범주에 결코 용해될 수 없습니다. 수령과 민중을 운명의 공동체,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본 여기에 주체의 수령관의 근본적 특징이 있습니다.


(2) '수령 절대화론'의 저의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을 탁월한 개인으로 본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따르면서 주체의 수령관을 '수령 절대화론,’ 혹 '개인 숭배론’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의 늪에 빠져 주체의 수령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사람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변혁론에서는 수령을 특출한 개인으로 고찰하였고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탁월한 개인이 아니라 근로민중이라고 보았다. 그 런데 이와는 달리 주사에서는 수령 절대화 논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주사의 오류가 여기에 있다."2)


이러한 견해는 첫째로 수령을 단지 탁월한 개인으로 본 맑스주의적 이해를 유일한 잣대로 하여 그와 다르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흑백논리에 매달려 있는 데 그 부당성이 있으며, 둘째로 민중과 개인을 분리대립시켜 보는 사고방식에 빠져 수령과 민중을 분리대립시키고 있다는 데 그 잘못이 있습니다.


나: 맑스주의는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민중이냐 개인이냐 하는 장구한 논쟁을 비판극복하는 데서 큰 공헌을 하였다고 봅니다.


주: 물론 그렇습니다. 맑스주의는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민중이냐 개인이냐 하는 장구한 논쟁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는 데 일정하게 공헌을 하였습니다. 착취계급 사회에서는 탁월한 개인, 영웅이나 왕, 장군에  의하여 역사와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주의설이 지배적인 고정관념으로 되어왔습니다. 역사를 민중사가 아니라 왕조사로 서술한 것도 이러한 철학적 이해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변의 청소년들이 흥미있게 독서하고 있는 "아라비안 나이트"도 페르샤왕 사흐리야트의 기분을 맞추어야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는 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주의설적 사회관은 착취사회에서 오래동안 내려오면서 민중의 창조적 "무능력성"을 설교하며 통치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설교하는 데 봉사하였습니다. 주의설적 사회관은 부르조아 및 소부르조아 사회학에서 철학적으로 전개되어 민중은 왕이나 영웅이 역사를 창조하는 행위의 '밑거름,’ '재료’에 불과하며 역사는 탁월한 개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른바 ‘적극적 영웅론’과  '소극적 군중론’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러시아의 인민파들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당시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3 세를 없애버리면 농노제가 철폐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개인테러 전술로 황제를 암살하려 하였습니다. 레닌의 형도 이 암살사건에 관계되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적극적 영웅론’과 '소극적 군중론’에 관한 부르조아적 및 소부르조아적 사회학이론은 맑스주의에 의해 극복되었습니다.


맑스주의는 영웅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민중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맑스주의적 이해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이해에까지 승화되지 못하였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창조자라는 맑스주의적 이해는 역사의 기초에 생산양식이 놓여있고 역사의 추동력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며 역사발전과정이 자연사적 과정이라는 이론의 틀안에서 정립된 것이었습니다.


맑스주의 철학은 개인과 민중의 역할을 엄격히 분리하고 민중이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모순의 해결자로서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으나 개인과 민중의 역할에 관한 장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민중의 수령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한 데로부터 민중의 역할과 수령의 역할을 분리시키는 이론적 결과를 빚어냈으며 결국은 민중이 어떻게 역사를 창조하며 역사를 창조하는 민중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힐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남의 캠퍼스에 퍼져있는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교본도 “역사에서 민중의 역할과 개인의 역할”이라는 장을 설정하고 수령의  역할을 개인의 역할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역사의 장구한 논쟁은 개인과 민중을 엄격히 구분하고 탁월한 수령을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최고의 뇌수로 보며 민중의 역할과 수령의 역할을 통일시켜 보는 주체철학에 의하여 비로소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나: 그러면 ‘수령 절대화론,’  ‘개인숭배론’이라고 주체의 수령관을 왜곡하는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이해의 부당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주: 수령의 역할과 관련하여 1960년대에 등장했던 ‘개인숭배론’을 오늘날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반복하여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숭배론’은 일률적으로 수령을 단지 탁월한 개인으로 보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개인숭배’란 원래 환상적이며 비과학적인 것입니다. 착취계급 사회는 왕이나 황제를 이른바 '천자’라고 부르면서 하느님을 믿듯이 그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왕이나 황제는 특권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사적 개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체인 민중에게는 개인숭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민중은 오직 자기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기의 힘에 의거해 역사를 개척해 나갑니다. 역사의 주체의 최고뇌수는 민중의 수령이며 수령의 사상은 민중자신의 조직적 의사이고 민중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합니다. 인간이 뇌수의 작용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자기자신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중이 수령의 사상에 의하여 활동하는 것은 곧 자기자신의 신념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민중의 힘은 결집된 힘이며 민중의 결집은 수령을 구심점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결속됨으로써만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수령의 영도밑에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민중의 역할은 민중과 소외된 개인을 숭배하며 그에 의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개인숭배'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과 근본적으로 대립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자신의 조직적인 의사의 대변자인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추앙심을 '개인숭배’로 매도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숭배론이 제국주의자들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아왔다는 데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특권세력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공포로 되는 것은 수령과 민중 이 운명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변혁운동의 자주적 주체로 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파멸을 선고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의 어용학자들은 수령과 민중이 운명의 공동체를 이룬 사회주의체제를 ‘개인독재체제’로 왜곡하여 왔으며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추앙심을 “개인숭배”로 선전하여 왔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유일수령'을 부정하고 '집단수령’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맑스주의적 이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 개인숭배론을 들고나온 사람들은 저들의 주장이 마치 맑스-레닌주의의 명제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논리를 전개하면서 집단수령론을 들고나왔습니다. 레닌은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는 저서에서 수령을 "다소간 고정된 구룹"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소위 ‘집체적 지도'를 실현하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이 저서에서 레닌은 대중이 노동자계급에 의하여 영도되고 노동자계급은 당에 의하여 영도되며 당은 수령이라 불리우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다소간 고정된 구룹’에 의하여 지도된다고 썼습니다. 레닌의 이 저서는 러시아에서 10 월혁명이 승리한 후 서구의 자본가계급과 어용학자들이 소비에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당의 독재냐, '개인의 독재냐' 하고 비판하는 데 대하여 소비에트는 당의 독재도 개인의 독재도 아니고 노동자계급의 독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대중, 계급, 당, 수령의 상호관계를 지적한 것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당시 러시아 볼쉐비크 공산당은 하나의 사상, 즉 레닌의 사상에 의해 지도되었으며 레닌을 유일한 수령으로 모시었습니다. '수령’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엥겔스도 맑스를 노동자계급의 수령이라고 하였으며 역사상 어느 한 나라도 수령이 집단을 이루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주체철학은 '개인숭배’를 제창한 기회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집체적 지도’를 부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의 의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집체적 지도’를 수령의 유일적 영도와 대치시킬 수 없으며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떠난 ‘집체적 지도’란 실현될 수도 없습니다.


당을 혁명의 무기라고 한다면 그 탄알은 수령의 사상입니다. 하나의 무기에는 한 규격의 탄알만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당은 수령의 유일한 사상에 의해서만 혁명의 무기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집단수령,’  '집체적 지도’란 결국 수령의 역할을 부정하 고 '개인숭배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이며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당을 붕괴시키고 변혁운동의 주체를 와해시키기 위한 계책이라고 봅니다.



제 2절 '수령' 범주의 정치철학적 의미


(1)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과 ' 이원론' 논쟁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수령관을 부정하기 위하여 '수령’이라는 철학적 범주자체를 부정하는 여러가지 이론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이라는 철학적 범주자체를 부정하기 위하여 맑스주의에서는 '수령'이라는 범주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수령’은 철학적 범주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이라고 보는 것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추상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을 말하는 ‘이원론'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 맑스주의에서는 수령이라는 용어자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주: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맑스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을 잣대로 하여 주체사상을 비판한다는 그들이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무지를 반증할 따름입니다. 이남의 한 ML론자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단지 '수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범주자체를 승인하지 않는다."(3) 


이러한 주장은 수령관을 부정하기 위하여 맑스주의 자체도 왜곡하는 의식적인 계책이거나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볼 수 없습니다.


우선 ‘수령’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엥겔스였습니다.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의 수령의 역할과 의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전투부대는 맑스라는 탁월한 수령, 누구나 즐겨 복종하던 수령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덕택으로 오늘까지도 그 의의를 완전히 보존하고 있는 원칙적이며 전술적인 강령, ‘공산당선언’을 가지고 있다."(4) 


레닌도 노동자계급의 수령에 대하여 강조하면서 "맑스와 엥겔스는 정치적 수령"(5)이라고 썼으며 스탈린도 "레닌에 관하여"에서 그를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수령(6)이라고 언급 하였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이 '수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주장은 황당한 것입니다. 물론 맑스주의 철학이 '수령'이라는 범주를 이해한 내용에는 한계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탁월한 개인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은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으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맑스주의에는 사회정치적 생명체, 역사의 주체, 변혁운동의 주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역사발전의 주재자를 물질경제적 관계, 생산양식으로 본 이론에서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과 민중의 최고뇌수로서의 수령문제가 제기될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의 범주가 철학적 범주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분석해 주시지요.


주: 그들중 한 논자는 “어떤 개별적인 대상의 관찰로부터 이끌어진 범주나 특정한 개별적인 대상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범주는 이미 ‘범주,’ 특히 ‘철학적 범주’일 수 없다."(7) "’수령'운운 하는 것도 순전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왜곡에 불과하다."(8)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질-의식 문제의 틀에서 파생되거나 물질-의식 문제의 틀에 맞는 범주만이 철학적 범주라고 주장합니다.


물질-의식의 문제는 세계의 본질과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기 위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물론 세계관을 세우는 데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물질-의식 문제의 틀에서 파생된 범주가 철학적 범주라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옳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식 문제의 틀에서 파생되었거나 여기에 맞는 범주만이 철학적 범주라는 그들의 이해는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주체철학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지고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는 것이 해명된 전제위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이 누구이며 그것을 개조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줌으로써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밝혔습니다.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원리를 밝혀야 할 세계관의 본연의 사명에 맞게 설정된 철학의 근본문제이며 '수령'의 범주는 세계-사람의 문제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는 법주인 것으로 하여 철학적 범주로 됩니다. 즉 '수령’이라는 범주는 민중이 어떻게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 역사의 자주적 주체, 변혁운동의 주체로 되며 주체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게 되는가를 명시해 주는 철학적 범주입니다. 따라서 '수령’이라는 철학적 범주는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 한 변혁운동의 합법칙성, 변혁운동 승리의 기본요인을 명시해 주는 가장 보편적인 철학적 범주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식 문제의 틀에서 파생된 범주만이 철학적 범주이고 그것에 기초하지 않는 범주는 철학적 범주가 아니라는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주장은 주체철학의 독창성을 외면하거나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위해 조작된 황당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주체철학은 수령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독창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의 부당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주: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역설하셨습니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9) 


민중은 하나의 사회정치적 집단으로 결집되어야 반동적 집권세력의 저항을 부수고 사회를 개조변혁하여 자기의 자주성을 실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민중은 역사발전의 전기간 물질문화적 재부를 창조하고 역사를 발전시켜온 역사의 창조자입니다. 그러나 착취계급사회에서 자기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고 하나의 위력한 역량으로 결집되지 못한 민중은 많은 경우에 지배계급의 의사에 따라 역사를 창조하는 무거운 부담을 혼자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민중은 아직 역사의 자주적 주체, 변혁운동의 주체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시키자면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의사를 집대성하고 일반화하여 민중의 운명개척의 길과 방도를 제시해 주는 혁명사상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의사를 집대성하고 일반화하여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학적인 길과 방도를 명시한 혁명사상은 바로 민중의 탁월한 수령에 의하여 창시됩니다. 민중의 사상적 단합의 기초는 바로 수령의 혁명사상입니다. 민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시키자면 민중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민중의 자주성을 실험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하여 탁월한 공적을 쌓아 올려 민중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위인만이 민중의 조직적 결집의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민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결속시키는 조직적 결집의 구심점이 바로 민중의 탁월한 수령입니다.


탁월한 수령의 사상에 기초하여 단결하고 탁월한 수령을 구심점으로 하여 결집된 민중만이 자기의 자주적 요구를 자기자신의 힘으로 실현해 나가는 역사의 자주적 주체, 변혁운동의 주체로 될 수 있습니다.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하나의 위력한 사회정치적 역량으로 꾸리고 민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과학적인 전략전술에 기초하여 통일적으로 영도하여 승리의 한길로 이끄는 영도의 중심도 바로 수령입니다.


인간은 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위환경의 자극과 자신의 요구를 종합분석하여 그에 맞게 자기의 활동을 벌려나갑니다. 개별적 인간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은 집단의 최고 뇌수인 수령입니다. 수령은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민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입니다. 수령은 역사의 자주적 주체인 민중의 최고뇌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민중과 수령을 운명의 공동체,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고찰한 바로 여기에 주체의 수령관의 본질적 특징과 독창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의 대립이라는 '이원론’부터가 실은 종교적 신비주의를 포함하고 있다.(10)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생명이 진짜 사회정치적 생명인 것이다. 양자를 갈라놓고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다고 논하는 것은 관념론이다. 육체적 생명이 '현실적’이고 사회정치적 생명은 '비현실적’이다.(1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거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들은 모두 인간의 사회적 생명이나 정치적 생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12)


이러한 주장은 본질에 있어서 인간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거부하고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부정함으로써 주체의 수령관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궤변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부당성은 첫째로 인간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생물유기체의 생명의 범주에 용해시키는 황당한 주장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언급한 고대의 철학자들의 이해에 대하여 말한다면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정치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동물과 다르지만 본능면에서는 동물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생명의 본질적 특성을 명시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 말과 사회정치적 생명의 본의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대비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대 철학자들의 말이 사회정치적 생명에 대해서 한 말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결국 인간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생물유기체의 생명의 범주 속에 용해시키려는 황당한 궤변입니다.


그들의 주장의 부당성은 둘째로 육체적 생명은 ‘현실적’이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 생물학주의적 관점에 기초한 것입니다. 인간을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만 고찰 하는 것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인 인간과 동물의 질적 차이를 부인하고 인간을 동물과 같은 존재로 비하시키는 지극히 황당하고 유해로운 궤변입니다.


인간은 자주성을 본성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적인 삶을 누리려는 자주적인 사회적 집단의 속성이며 인간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 되면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집단 밖에서 사는 인간은 육체적 생명밖에 가질 수 없지만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 사는 인간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은 자연과 사회의 구속과 예속을 반대하고 자기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의 구성원이 지니는 현실적인 사회적 생명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민중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민중을 착취와 억압에 순종하는 노예로 만들어 특권세력에게 봉사케 하려는 반동적인 주장입니다. 민중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는 일은 그들을 착취와 억압에 순종하는 '온순한 노예’로 만들려는 죄악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입니다.


그들의 주장의 부당성은 셋째로 사회정치적 생명을 논하는 것은 관념론이며 ‘이원론’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은 다같이 인간의 현실적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는 기본적 조건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보다 귀중한 생명은 사회정치적 생명입니다. 생명의 귀중성을 규제하는 것은 인간의 삶의 근본적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신의 안일과 향락을 추구하면서 동물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삶의 근본적 목적으로 하는 인간들에게는 육체적 생명이 보다 귀중한 것으로 될 것이며 민족,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한생을 바치는 것을 삶의 근본적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한 것으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주성을 본성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인간이 자주성을 짓밟히면서 예속과 구속을 감수하며 사는 것은 먹이를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며 번식하는 동물의 생활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노예로 순종하며 살기 보다 차라리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다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주저없이 나서는 것입니다. '관념론,’ ‘이원론’의 비판은 바로 사회적 인간의 자주적 본성을 부정하는 데 바탕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이 '수령’이라는 주체적 견해를 부정하기 위한 그 어떤 논리도 인간의 자주적 본성,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요구와 합법칙성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이 드러나며 그것은 민중과 변혁운동가들에게 결코 수용될 수 없습니다.


(2) ‘수령’ 과 개인, '신비주의'에 대한 주장의 저의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체철학이 밝힌 '수령'의 범주도 결국은 개인이며 '수령’을 개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신과 같은 존재로 해석하는 ‘신비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수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셨습니다.


"노동계급의 수령은 개인이 아니다. 작가는 수령이 개인이 아니라는 사상의 본질을 똑바로 알고 작품에서 수령을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으로 역사발전과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특출한 위인으로 형상의 중심에 내세우고 그의 탁월한 영도자로서의 위대한 풍모와 현실에서 살아 숨쉬고 활동하는 위인으로서의 인간적 풍모를 다같이 생동하게 그려내야 한다."(13)


수령이 개인이 아니라는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사회적 집단의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자주적인 사상을 창시하여 사회정치적 집단형성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고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을 하나의 조직적 대오에 결속시킬 수 있는 통일과 단결의 중심인 수령은 바로 사회정치적 집단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통일적으로 영도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입니다. '수령'이란 바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을 뜻하는 정치철학적 범주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개인의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체입니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이 있고서야 그 구성원인 개인들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수령은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고 이 집단적 생명은 개인적 생명의 모체입니다. 수령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은 하나의 운명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집단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활동에서의 지위와 역할에서는 수령과 이 집단을 이루는 개인들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수령은 집단의 최고뇌수, 생명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개인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수령은 개인이 아니라는 사상의 본의를 올바로 이해하여야만 수령을 개인이 아니라고 하여 추상적으로 절대화하는 편향과 수령도 주체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고 하여 개인 일반과 동일시 하는 편향, 이 두 편향을 다같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수령의 본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에 관한 문제이며 누가 수령인가 하는 문제는 수령의 인격에 관한 문제로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누가 담당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수령’의 본의와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누가 담당하는가 하는 문제는 갈라 보아야 합 니다.


그런데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의 본의에 관한 문제를 수령의 인격에 관한 문제에 용해시키고 수령을 개인이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설령 수령이 그 자체로서는 하나의 범주일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개인에게만 실현될 수 있는 범주라고 한다면 수령이라는 범주는 개인이라는 범주에 포섭되는 하위의 범주일 수 밖에 없다.(14) 개인이라는 범주가 인간이라는 범주를 초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령이라는 범주 역시 개인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실현될 수 없다."(15)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이라는 주체철학의 범주를 부정하고 수령은 개인이라는 자기들의 그릇된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초보적인 형식논리학적 규범마저 무시한 논리적 궤변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수령의 범주가 개인의 범주나 아니냐 하는 문제는 범주가 포괄하는 외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령이라는 범주는 인간이나 개인이라는 범주와 비교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비교는 사물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찾기 위한 논리형식입니다. 예컨대, 무산자의 개념은 유산자와의 관계에서만 성립되어 그 본의가 명시될 수 있는 것이며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개념은 역사의 반동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되어 그 본뜻이 명시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범주와 수령의 범주, 인간이라는 범주와 개인이라는 범주, 개인이라는 범주와 수령의 범주는 비교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수령이라는 범주는 인간 또는 개인과 비교되는 범주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룬 민중과의 관계에서 특징지어지는 범주입니다. 즉 민중이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로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었을 때 그 생명의 중심이 바로 수령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령은 민중의 최고뇌수, 단결의 구심점, 영도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맑스주의 철학에는 집단의 생명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 철학의 틀에서는 주체철학이 명시한 수령의 본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올바로 이해될 수도 해석될 수도 없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이 수령을 개인이라고 보는 것은 물론 평범한 개인들과 같이 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기의 탁월한 지도자와 같이 보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수령을 지난 시기의 운동의 지도자, 또는 영웅과 같은 탁월한 개인의 계열에 놓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요.


주: 그러한 이해는 수령의 본의를 지휘에 관한 문제로만 고찰하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수령을 단순히 최고 지휘관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지휘의 중요성에 대하여서는 어느 사회, 어느 계급에게 있어서나 다 공인되어 있지만 노동계급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으로써 자기 수령을 내세운 계급은 없습니다."(16)


수령과 민중과의 관계를 단순히 지휘하는 사람과 지휘받는 사람과의 관계로만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만일 지휘하는 사람은 지휘할 권리만 있고 지휘받는 사람은 지휘에 복종할 의무만 있다면 그것은 순수한 권리와 의무와의 관계이지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에 기초한 관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과 민중과의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부르조아 민주주의에서는 지휘하는 사람과 지휘받는 사람과의 관계를 권리와 의무와의 관계로 봅니다. 부르조아 민주주의 견지에서는 결코 혁명적 수령관이 이해될 수 없습니다.


수령의 본의는 단순히 지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룬 민중의 최고뇌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운명의 공동체를 이룬 사회정치적 생명체에서 수령과 민중의 관계는 지휘하는 사람과 지휘받는 사람의 관계를 넘어서 사회정치적 생명의 어버이와의 관계로, 하나의 사고, 하나의 호흡,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진 혈연적 유대로 되고 있으며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의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특출한 개인의 지휘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 운동 일반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에 관한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변혁운동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문제 입니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사회나 운동에서는 집단적 생명으로서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없으며 따라서 수령문제가 제기될 수 없습니다.


 

수령의 본의를 지휘에 관한 문제로만 보게 되면 결국 노동자계급의 수령과 착취계급 사회의 왕이나 대통령, 지난 시기의 변혁운동에서 지도자, 농민운동의 두령, 노동운동의 일정한 단체, 조직의 지도자들과 같이 보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수령이 개인이 아니라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여기에는 신비주의적인 것이 있다."는 일부 ML론자들의 주장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개인만이 현실적인 인간이며 사회정치적 집단, 집단적 생명이란 추상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 

 

(1) 김정일,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 4 페이지

(2) "노동해방문학," 471 페이지

(3) "역사와 혁명," [전진], 135 페이지

(4) "맑스 엥겔스 선집," 2권, 376 페이지

(5) "레닌 전집," 4권, 2 분책, 246 페이지

(6) ”현대사상선집," [삼학사], 194 페이지 참조

(7) “역사와 혁명," 131 페이지

(8) 위와 같은 책, 134 페이지

(9) 김정일,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 6 페이지

(10) “역사와 혁명." 193 페이지

(11) 위와 같은 책, 179 페이지

(12) 위와 같음

(13) 김정일, "주체 문학론," 141 페이지

(14) “역사와 혁명," 147 페이지

(15) 위와 같은 책, 140 페이지

 

(16) 김정일,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 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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