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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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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8-14 11:5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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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4)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제2장 김일성주의의 견인력의 원천

 

 

제 3장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

 

 

제 4장 민중중심의 사회역사관의 독창성 문제

 

 

나: 주체철학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과 인간의 운동인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밝히는 것을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 그렇습니다. 주체철학은 인간위주의 철학적 위치에서 출발하여 주체의 사회역사관, <주체사관>을 확립함으로써 선행한 사회역사관의 한계성을 초극하고 사회역사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서 근본적 전환을 이룩하였습니다.

 

나: 그러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민중중심의 주체사관을 비역사적이고 비계급적인 사관이며 주관주의적, 관념론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주체사관의 독창성과 정당성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면서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의 비판을 분석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1절 사회의 본질과 구성요소

 

 

(1) 사회의 본질과 생산관계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주체철학에 의하면 사회를 이루는 데서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람’이다...그러나 사회를 이루는 기초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생산활동이다."(1) 라고 지적하면서 주체사관은 사회관계에 의하여 제약되지 않는 인간만을 내세움으로써 관념론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사회의 본질에 대한 유물사관의 이해의 한계성을 바로 보지못하고 <유물사관>의 ‘틀’안에서 주체사관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유물사관은 사회의 본질을 '물질적 사회관계,' 즉 <생산관계>에서 찾았습니다. 맑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저서에서 "생산관계의 총체는 소위 말하는 사회, 그것도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를 형성한다. 노예사회, 봉건사회, 부르조아사회는 이와 같은 생산관계의 총체이다." 라고 서술하였습니다.

 

유물사관이 사회의 본질을 생산관계에서 찾게 된 것은 관념론적 사회관과 형이상학적 사회관을 초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회의 물질적 관계인 생산관계를 사회의 본질로 규정함으로써 유물사관은 사회를 관념의 총체로, 신비적인 정신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본 관념론적 사관을 타파하였습니다. 유물사관은 또한 사회를 ‘개인들의 기계적인 집합’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속류 유물론적 사관을 반대하면서 사회는 개인들의 기계적인 결합이 아니라 <사회관계>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속류 유물론은 개인들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들을 사회적으로 결합하는 구조, 즉 사회적 연관관계를 무시하였습니다. 맑스주의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초극하기 위하여 사회적인 관계 자체에 주되는 주의를 돌리고 그것을 강조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찰방법은 또한 맑스주의에서 내세운 철학의 근본문제, 즉 물질-의식의 ‘틀’에 맞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맑스가 중요한 과제로 내세웠던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해명하는 데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맑스주의 유물사관이 사회의 본질을 고찰하는 데서 사회관계를 중시하게 된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들이 살고있는 공동체로서의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좌우하게 됩니다. 맑스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사회관계의 총체>로 보고 인간이 사회관계에 의하여 제약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물론 관념론을 초극하는 데서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관계에 의하여 제약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본질을 사회관계에서 찾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일면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사회의 본질을 생산관계를 포함한 사회관계로 보는 이해의 한계성을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주: 생산관계를 포함한 <사회관계>란 어디까지나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물질적 관계에 불과합니다. 사회관계를 주동적으로 맺는 것은 인간이며 어떤 사회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내용과 수준에 의해 규정됩니다. 그리고 사회관계를 부단히 개조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회관계를 놓고보면 사회관계를 주동적으로 맺는 사회관계의 담당자도 인간이며 사회관계를 개조하고 변혁해나가는 것도 인간입니다.

 

주체사관은 사회관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주인의 자리에 놓고 사회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생산관계를 포함한 사회관계의 본질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사회관계가 인간을 제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인간이 사회관계의 지배자, 창조자이며 사회 관계는 인간의 창조물이고 지배와 개조의 대상이라는 점을 주체사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체사관이 사회관계를 무시하고 인간만을 내세운다는 주장은 결국 유물사관을 유일한 척도로하여 모든 것을 분석하는 독경주의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주체사관이 사회관계를 무시하고 인간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운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체사관에 대한 심한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사회의 구성요소

 

나: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사회의 구성요소에 대한 논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토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주체사관이 사회를 “사람,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의 결합으로 파악하고 그에 입각하여 민족, 계급, 사회제도, 사회성격, 사회유형을 분석하고 있는데”(2)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던지면서 주체사관이 사람, 사회적 재부, 사회관계를 “단순 병렬적으로 열거”(3)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회를 “사회관계의 총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 사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의 분석을 통하여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사회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습니다.

 

“...사회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집단입니다.”(4) “사회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5)

 

사회는 한마디로 말하여 사람들이 살며 활동하는 집단입니다. 여기에 인간을 기본으로 하여 밝힌 사회의 본질에 대한 주체적 이해가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에 대한 주체적 이해는 무엇보다도 사회가 인간을 기본구성요소로 하는 인간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명시하여 줍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사물이 있으나 사회를 이루고 활동하는 존재는 오직 사회적 존재인 사람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기 사회를 정신적인 것의 총체로 본 관념론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정신적인 현상을 떠난 사회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현상은 인간사회에만 있는 고유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 자체가 정신적인 것이라거나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근거로는 될 수 없습니다. 정신을 가진 실체가 바로 인간이며 인간들의 집단이 바로 사회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또한 사회를 인간, 물체, 관념의 총체로 본 속류 유물론적 견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체나 관념을 인간과 동격의 구성요소로, 독립적인 구성요소로 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이해입니다. 사회적 재부는 인간이 창조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재부는 물질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과 떨어져서는 사회적인 것으로 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은 모두 인간이 사회라는 집단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여건과 수단일 따름입니다. 이것은 인간외의 그 어떤 요인도 사회를 이루는 기본구성요소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사회를 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집단이라고 보는 것은 또한 사회는 인간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가는 집단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생활과 활동은 물질적 및 정신적 부를 창조하고 이용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인간들의 집단적인 생활과 활동의 필수적 형식입니다. 인간을 떠나 사회적 재부끼리 사회적으로 결합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결합되려고 하는 것도 인간들이며 인간들은 혼자서 고립적으로 생활수단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경제적 관계를 맺고 집단적인 생활을 해야 하며 인간들의 활동의 통일성을 실현하기 위해 일정한 사회정치적 관계를 맺고 집단적으로 살아야 합 니다.

 

총체적으로, 사회는 일정한 물질적 및 정신적 부를 지니고 활동하는 인간들이 일정한 방식의 사회관계로 결합된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사관이 사회관계를 무시하고 인간만을 본다는 견해와 인간과 사회적 재부, 사회관계를 병렬적으로 본다는 견해는 다 주체사관을 관념론으로, 속류 유물론으로 왜곡하려는 일부 학자들의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이러한 궤변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도 주체사관의 견해인 것처럼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보았는지요.

 

주: 유물사관은 무엇보다도 사회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로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사회가 생산력, 생산관계, 자연지리적 조건,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회란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에 대해서 객관적 조건을 이루는 ‘사회적 존재’란 생산력과 생산관계, 자연지리적 조건,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유물사관의 이해입니다.

 

그러면 사회의 기본구성요소를 생산력, 생산관계, 자연지리적 조건, 인구로 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사회의 물질적 관계를 일차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관념론적 사회관을 초극하고 유물사관을 확립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공동체’ 입니다. 인간을 떼어놓고 사회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맑스주의 유물사관에서는 사회의 기본구성요소인 인간이 생산력, 생산관계, 인구에 해소되어 버렸습니다. 생산력에는 단지 인간의 노동력만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일할 수 있는 능력, 즉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이고 그러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수단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인 노동력을 포함한 생산력을 인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생산관계란 생산과정에서 맺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생산관계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관계이지 그 자체가 인간은 아닙니다.

 

그리고 유물사관이 사회의 구성요소의 하나로 보는 인구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들의 수효와 인구밀도입니다. 유물사관은 사회적 생산이 이루어지고 발전하려면 일정한 인간들의 수, 즉 일정한 인구밀도가 필요하다는 데로부터 인구를 사회의 구성요소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인구도 역시 인간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성립할 수 있게하는 물질적 조건으로서의 인구밀도, 인간들의 수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물질적 조건, 사회의 물질적 관계를 중심으로 한 유물사관의 고찰방법은 사회의 기본구성요소인 인간을 등장시킬 수 없다는 것, 인간을 물질적 제관계의 각 요소에 해소시켜 버렸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의 구성요소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역시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나: 그러면 주체사관은 사회의 구성요소와 그들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식화하고 있는지요.

 

주: 주체사관은 인간과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재부,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사회관계를 사회의 구성요소로 봅니다. 여기서 인간이 한편으로 되고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는 사회적 조건을 이루는 다른 한편으로 됩니다. 그런데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 즉 사회적 조건을 창조하고 개변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사회적 조건의 창조자, 개변자로 주인의 지위에 있게 됩니다. 인간과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는 결코 맑스주의의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의 관계와 같은 ‘일차성’ ‘이차성’, ‘반영’과 같은 관계가 아니라 ‘창조’와 ‘창조물’, ‘개조자’와 ‘개조의 대상’과의 관계입니다.

 

(3) 사회의 면모, 사회체제론과 사회경제구성체론

 

나: 사회의 본질을 더 명백하고 깊이있게 이해하려면 사회관계를 더 심도깊게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주체사관이 계급, 사회제도, 사회의 성격, 사회의 유형을 분석하는 ‘틀’이 없는 사관 이라고 하면서 “...주사의 철학적 원리가 실용주의적인 것이어서 사회의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틀까지 마련해 주지못하고 있다.”(6)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 그러면 사회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하여 사회의 본질과 구성요소에 대한 주체사관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유물사관의 이해가 어떠한 일면성과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찰해 보기로 하지요.

 

나: 먼저 사회역사 분석의 ‘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설명해주시지요. 

 

주: 사회역사 분석의 ‘틀’이란 역사발전의 일정단계에 있는 매개 사회의 근본특성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며 그것의 변화발전의 과정을 통하여 사회발전 과정의 면모를 분석할 수 있는 척도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이러한 사회역사 분석의 ‘틀’을 <사회경제구성체>라고 보며 주체사관은 <사회체제>라고 봅니다.

 

나: 그러면 맑스주의가 사회역사 분석의 ‘틀’이라고 본 사회경제구성체(사구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일면성, 한계성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분석해 주시지요.

 

주: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를 고찰할 때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으로 그것을 구분하고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본질을 사회관계, 그 중에서도 ‘물질적 관계,’ 생산관계에서 찾았습니다. 이로부터 일정한 역사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를 해석하기 위하여 사구체라는 개념을 기본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사구체라는 맑스주의 개념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통일을 의미하며 토대, 즉 생산관계가 일차적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 부의 생산양식을 기준으로 해서 일정한 역사발전 단계에 놓여 있는 사회를 사구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성체’라는 개념자체는 원래 맑스가 지질학에서 채용한 개념입니다. 지질학에서 ‘구성체’란 지각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형성된 지질학적 층을 말합니다. 맑스는 새로운 착취제도의 정치적인 형성발전을 고찰하면서 새로운 착취계급의 사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던 중에 처음으로 이 용어를 유물사관의 범주로 썼습니다.

 

이 용어자체에서 기본으로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산관계의 총체, 즉 토대입니다. 생산력의 발전에 상응하게 토대(생산관계)가 서게되며 토대에 의하여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선다는 것, 그리고 토대의 발전에 따라 상부구조가 점차적으로 또는 급격히 변화하며 그리하여 사회는 한 사구체로부터 다른 사구체로 자연사적 과정으로 교체된다는 것이 유물사관의 기본관점입니다.

 

유물사관에서는 생산관계, 그 중에서도 특히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가 사회의 발전정도를 분석, 평가하는 기준으로 됩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바로 유물사관의 사구체론에 의하여 계급, 사회의 성격, 사회의 유형이 다 분석될 수 있는데 주체사관에는 그런 ‘틀’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구체론의 한계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주체적 운동인 사회역사 분석, 사회의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수준의 문제가 도외시 되고 있는 점입니다. 아무리 생산력이 발전하고 낡은 생산관계와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생산관계가 아무때나 저절로 세워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모순은 극도로 첨예화되어 공항이 반복되지만 새로운 생산관계의 확립, 즉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구체론에서는 정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사회제도의 평가에서 주되는 척도로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질적 부의 생산양식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를 평가하는 데서 맑스는 생산력의 발전수준을 중요한 척도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생산력의 발전수준으로 말한다면 산업혁명을 한지 수백년이 되는 영국 등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이 사회주의 나라들보다 더 높습니다. 그러나 이 한면만을 가지고 자본주의 제도가 사회주의 제도보다 더 발전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제도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자면 생산력의 발전에 따르는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정권문제>를 기본으로 하여 분석하여야 합니다.

 

사구체의 개념이 사회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는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관은 사구체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구체의 개념자체가 물질-의식 문제의 ‘틀’ 즉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기본문제로 하여 전개된 사회역사 분석의 틀이기 때문에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사회역사관에서는 기본개념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주체사관이 사구체라는 개념을 쓰지 않기 때문에 주체사관은 사구체라는 개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사관은 그 개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면성과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사람의 문제를 근본문제로 내세우고 사회의 면모를 전면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개념인 ‘사회체제’라는 개념을 그대신에 쓰고 있습니다. ‘사회체제’의 개념은 사회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기본으로 하여 계급, 사회의 성격, 사회의 유형, 사회의 발전을 총체적으로 분석평가할 수 있게 하는 사회역사 분석의 주체적 ‘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사회체제론의 기본내용과 정당성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주: 인간들 사이에 맺게 되는 사회관계의 본질은 사회적인 공동생활을 보장하여 주는 두가지 측면에 의해서 규정됩니다. 그 하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얼마만한 사회적 권한을 가지고 생활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사회적 분공을 맡고 공동생활에 이바지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전자가 사회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를 규제하는 측면이라면 후자는 사회에서 인간들이 놀아야 할 역할을 규제하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관계의 본질은 사회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규제하는 사회적 질서라는 데 있습니다.

 

사회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규제하는 사회관계의 공고한 체계가 바로 <사회체제>입니다. 사회의 물질적 및 정신적 부의 창조자이며 담당자인 인간이 사회의 기본구성요소라면 인간들의 결합방식인 사회관계의 공고한 질서, 즉 사회체제는 사회의 질적 특성을 규정하는 내부구조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관계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어떤 사회이건 그 면모와 본질적 특성은 사회의 기본 구성요소이면서 사회관계의 담당자이고 주인인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내용과 수준 그리고 그것에 의해 규제되는 사회관계의 공고한 체계인 사회체제의 기본특성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사회의 면모와 특성, 그 역사적 위상을 총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반복성의 기준,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기준은 인간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사회관계의 공고한 체계, 즉 사회체제라는 데서 그 귀결점을 찾게됩니다.

 

사회의 면모와 근본특성, 역사적 위상이 인간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제하는 사회체제에 의해 해명되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느 계급, 어떤 사회적 집단이 사회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의 역할을 수행하느냐 하는 문제로 됩니다.

 

인류역사가 성격을 달리하는 사회체제로 교체되면서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것은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계급의 교체에서 확인됩니다. 다시 말하여, 정권을 잡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이 바뀜에 따라 사회가 성격을 달리하는 사회체제로 교체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것은 경제관계나 그 어떤 이념이나 종교의 교체를 중심으로 사회를 볼 것이 아니라 어느 계급, 어느 사회적 집단이 사회에서 주인으로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축으로 하여 사회를 특징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낡은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서 시종일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근로민중이었으며 물질적 및 정신적 부의 창조자도 근로민중이었습니다. 근로민중은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의 발전과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세력의 주력을 이루었습니다. 역사의 발전을 주도해온 근로민중의 역할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더욱 커지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노동자계급이 급속히 성장하고 노동자계급의 당이 출연한 때로부터 최대로 높아졌으며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중심으로 사회를 분석한다는 것은 곧 근로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중심으로 사회를 분석한다는 의미입니다.

 

나: 맑스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그에 기초하여 생산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면 주체사관은 사회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요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요. 그리고 그것이 경제중심의 사구체론과 근본적인 차이를 특징짓는다는 근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주: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정권>과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입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었습니다.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가 못가지고 있는가 하는데 따라 결정됩니다.”(7) 

 

주체사관은 정권과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통일적으로 고찰하면서도 정권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소재문제를 표현하는 사회정치 체제의 기본규정성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사회관계의 공고한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정치 체제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정치가 계급, 또는 사회의 공동의 이익에 맞게 인간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인간에 대한 관리, 지휘라는 의미에서 물질적 재부를 창조하고 분배교환하는 경제와 구별됩니다. 인간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직접 관리하는 정치는 정권의 소유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체제에 의해 실현됩니다.

 

<정권>은 사회구성원들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고 지휘하는 정치적 지배권으로서 인간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됩니다. 그 이유는 정권이 사회의 일정한 계급과 집단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전사회적인 공동의 요구로 내세울 수 있는 권리이고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의 실현에 사회의 모든 인적 및 물질적, 정신문화적 재부를 복종시켜 나갈 수 있는 권한이며 그것을 물리적 힘으로 담보하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지배계급이 정권을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강제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파악하고 권리, 권한보다 권력을 위주로 정권문제를 풀이하였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정권을 경제적 이해관계의 종속변수로만 파악하는 관점으로서 정권자체의 고유한 정치적 성격, 인간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본질적 기능을 경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정치체제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인간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체제는 물질생활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지배권을 규정하는 사회의 공고한 질서로서 역시 인간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됩니다. 생산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생산의 제요소, 즉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자기 노동력의 주인으로 된 정도에 의해 규정됩니다. 그런데 자기 노동력의 처분권만 가지고서는 생산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자기 노동력의 주인이 될 뿐만 아니라 남의 노동력을 활용할 권리도 가집니다. 또한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능력에 관계없이 생산조직과 생산과정에 대한 지휘권과 생산물에 대한 분배권을 행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생활에서 인간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아무리 경제생활에 대한 지배권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인간들의 경제생활이 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생산물에 대한 분배권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에 의해 규정되기는 하지만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적 지배권입니다. 착취계급 사회의 전역사적 기간에 걸쳐 사회의 분배몫에서 첫자리를 차지한 것은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한 착취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에 기초한 분배몫과 함께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막대한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정치적 지배권은 또한 인간에 대한 지배권인 것으로 하여 인간에게 속해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권도 자기에게 종속시키게 됩니다.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인간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면 생활수단에 대한 처분권도 가지게 됩니다. 생산수단의 소유권은 물론 매우 위력한 사회적 권한이지만 그것은 정권이 승인하고 보호하는 한계내에서만 생활수단을 처분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권한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정권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에 비해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주도적 지위에 있게 되며 인간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됩니다.

 

주체사관이 정립됨으로써 생산양식은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재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사회적 운동의 한 형태, 즉 경제적 활동의 발현이며 생산양식의 교체도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내용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사구체론은 민중중심의 독 창적인 주체사관에 의해 그 일면성과 근본적 한계성이 명백히 들어났습니다. 주체사관의 <사회체제론>은 무엇보다도 사회를 총체적으로, 입체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관계와 경제관계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사구체론>은 토대와 상부구조를 통일적으로 고찰하면서 상부구조에 대한 토대의 규정성, 특히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대한 생산관계의 규정성을 밝혔으며 사회의 발전이 경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자연사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맑스주의는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고 노동하는 인간을 구체적 인간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해명이 없었던 조건에서 맑스주의는 사회의 존립의 기초를 물질적 관계, 경제관계라고 보고 경제관계를 위주로 하여 사회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제사관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 제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인간을 구체적 인간으로 보고 인간을 사회역사의 연구의 중심에 놓고 인간의 지위와 역할의 시각에서 사회역사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체사관은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통일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체제의 우위성,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회체제론은 사회를 운동발전의 견지에서 고찰하면서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변화의 상호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사회발전의 과정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본 사구체론의 기본전제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생산관계에 귀결시키며 생산관계를 생산력의 발전수준에 귀결시키는 것입니다. 사회발전의 합법칙적 과정에 대한 주체적 이해, 즉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성장---->인간의 사회적 집단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과 그 실현을 위한 역량의 장성--->정치적 변혁의 실현--->그에 기초한 경제적 변혁과 문화적 변혁의 수행은 민중의 자주성의 실현,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인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사회역사분석의 ‘틀’로하는 주체적 방법론의 과학성과 정당성을 확인하여 줍니다.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중심에 놓고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통일적으로 고찰하는 주체적 방법론은 계급, 사회의 성격, 사회의 유형을 올바로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과학적인 사회역사분석의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경제관계 중심의 유물사관과 인간중심의 주체사관의 근본적 차이와 주체사관 의 정당성과 우월성이 확인되며 주체사관에 대한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의 비판이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히 들어났다고 생각됩니다.

 

 

 

(1) "혁명의 철학," [전진], P103

(2)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밝은 글], P4

(3) "혁명의 철학," [전진], P103

(4)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P12

(5)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P7

(6) "혁명의 철학," [전진], P108

(7) "김일성 저작집," 27 권, 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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